스토쿠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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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대 덴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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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75대 덴노 시호 스토쿠 천황/숭덕천황
崇徳天皇재위기간 1123년 월 18일 ~ 1142년 1월 5일 궁호 없음 휘 아키히토(顕仁) 성별 남성 출생일 1119년 7월 7일 사망일 1164년 9월 14일 중궁 후지와라노 쇼시(藤原聖子) 능호 시라미네능(白峯陵) 연호 덴지(天治/천치)
다이지(大治/대치)
덴쇼(天承/천승)
조쇼(長承/장승)
호엔(保延/보연)
에이지(永治/영치)황거 평안궁(平安宮)
개요[편집]
일본 75대 천황. 몇몇 특수한 때를 제외하고는 시라카와 천황 및 도바 천황의 원정정치 하에 있었기에 힘이 매우 약하였다. 그리고 밑의 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가족 잘못 만나서 참 불쌍한 인생을 산 천황이다.
즉위 및 치세[편집]
아버지 도바 천황의 양위로 즉위하였으며, 1129년까지는 할아버지 시라카와 천황의 원정을 받다가 이후부터는 아버지 도바 천황의 원정을 받는다.
1124년에는 덴지(天治/천치) 연호를 개원하였으며, 천연두의 유행으로 인해 1126년에 다이지(大治/대치) 연호로 개원한다.
이후 1131년에 가뭄이 들어 덴쇼(天承/천승) 연호로 개원하였으며, 역병이 돌아 이듬해 조쇼(長承/장승) 연호로 개원한다.
이후 기아가 발생하여 1135년에 호엔(保延/보연) 연호로 개원한다.
1141년에는 신유혁명(辛酉革命)을 피하기 위해 에이지(永治/영치) 연호로 개원하였으며, 이듬해 동생 나리히토(躰仁)에게 양위한다.
상황기[편집]
양위 후에도 그는 고노에 천황을 상대로 원정을 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원정은 동생이 아닌 자식에게만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고노에 천황은 도바 천황에 의해 숭덕의 양자로 들어가기는 하였으나 원래는 아들이 아닌 동생이었고 도바 천황이 이걸 확고히 하였기에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후대를 상대로 한 원정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후 1155년 고노에 천황이 붕어하자, 스토쿠 천황은 시게히토(重仁)를 후계자로 내세웠으나 이를 이용한 그의 원정정치를 경계한 후지와라노 도쿠시(藤原得子)가 숭덕의 장인인 후지와라노 다다미치(藤原忠通)를 끌어들여서 모리히토(守仁)를 차기 천황으로 올릴 것을 주장하였고, 이후 이들이 '고노에가 죽은건 스토쿠 천황이 저주를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퍼뜨림과 동시에 이 소식을 듣고 격노한 도바 천황이 모리히토를 차기 천황으로 올리는 것으로 결정함과 동시에 그가 장성할 때 까지 도바 천황의 4황자인 마사히토(雅仁)를 땜빵용 천황으로 앉혀버린다.
이후 1156년, 도바 천황이 붕어하자 후지와라노 도쿠시와 후지와라노 다다미치는 스토쿠 천황의 제거를 위한 모략을 시작하는데, 바로 수도에 '상황과 좌부가 연합하여 군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린는 것이었다. 이 소문은 잘 퍼져나가서 고시라카와 천황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이에 격노한 고시라카와는 스토쿠 천황과 좌부 후지와라노 요리나가(藤原頼長)의 에서의 모병을 금지한다는 칙령을 발표한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숭덕은 집을 빠져나가서 여동생 무네코(統子)의 집으로 도망갔고, 후지와라노 요리나가(藤原頼長)도 여기에 빡쳐서 직접 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다(보원의 난/保元の乱). 이후 여러 유력세력이 스토쿠의 편을 들었으나 결국 천황의 군대를 이기지 못 하였고, 결국 스토쿠는 유배를 가 1164년에 거기서 붕어한다.
스토쿠 텐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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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황실 및 섭관가의 유력자들이 전부 요절하거나 이상한 사건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은 이걸 스토쿠 천황의 원령이 저주를 퍼붓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를 두려워한 고시라카와 법황은 스토쿠를 폐제에서 스토쿠 천황으로 올리고 후지와라노 요리나가(藤原頼長)를 태정대신으로 추숭하였다.
이러한 두려움은 현재까지도 이어져내려오며, 메이지 천황이 스토쿠 텐구를 두려워하여 교토시내에 시라미네 신궁(白峯神宮)를 짓고 스토쿠 천황의 영혼을 안정시키려 하기도 하였다. 쇼와 천황역시 무슨 일이 일본에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스토쿠 천황의 영령을 달랬다고 하며, 1964년 도쿄 올림픽 때에는 올림픽 전에 숭덕천황식년제(崇徳天皇式年祭)를 열어서 그를 진정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설은 저주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 쓰치미카도 천황이 상황시기 도사국으로 유배를 갔을 시절 그의 능에서 위로차 비파연주를 하자, 수도에 있는 그의 2황자가 고사가 천황으로 즉위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참고로 그의 능인 시라미네능 옆에는 백봉사(白峯寺)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은 해당지역 사람들이 스토쿠 천황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절이라고 한다.
연호[편집]
연호 이름 | 사용 시기 | 년수 | 개원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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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지(天治/천치) | 1124년 5월 18일 | 1126년 2월 14일 | 3년 | 스토쿠 천황 즉위로 개원 |
다이지(大治/대치) | 1126년 2월 15일 | 1131년 2월 27일 | 6년 | 천연두 유행으로 인해 개원 |
덴쇼(天承/천승) | 1131년 2월 28일 | 1132년 9월 21일 | 2년 | 가뭄이 들어 개원 |
조쇼(長承/장승) | 1132년 9월 21일 | 1135년 6월 9일 | 4년 | 역병이 돌아 개원 |
호엔(保延/보연) | 1135년 6월 10일 | 1141년 8월 12일 | 7년 | 기아로 인해 개원 |
에이지(永治/영치) | 1141년 8월 13일 | 1142년 5월 24일 | 2년 | 신유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