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무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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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대 덴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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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40대 덴노 시호 덴무 천황/천무천황
天武天皇재위기간 673년 3월 20일 ~ 686년 10월 1일 궁호 없음 휘 오아마(大海人) 성별 남성 출생일 631년 사망일 686년 10월 1일 황후 우노노사라라(鵡野讚良) 능호 히노쿠마노오우치능(檜隈大内陵) 연호 슈초(朱鳥/주조) 황거 비조정어원궁(飛鳥浄御原宮)
개요[편집]
일본 40대 천황. 역대 천황들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던 천황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일본사 최초로 천황이라는 직위를 쓴 천황이다. 또한 그의 치세부터 일본(日本)이라는 국호가 등장한다.
즉위 및 치세[편집]
원래는 형인 덴지 천황의 후계자였으나, 덴지 천황이 갑자기 자기 아들인 고분 천황을 후계자로 정하고 죽어버리자 빡쳐서 반란을 일으켰고, (임신의 난/壬申の乱) 이후 황위를 강탈 후 즉위한다.
이후 천황으로 즉위한 이후, 직위를 왕에서 천황으로 교체한다. 참고로 이 천황은 자기만 천황으로 불리기를 원하였으나 후임들도 전부 천황으로 칭하면서 걍 일본 군주칭호로 굳는다.
덴무 치세에는 관제도 상당히 개혁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개혁은 후임인 지토 천황대 까지 이어진다. 이어 황족들의 위계질서 확립을 위해 황족들에게 숫자를 붙이도록 하였으며(이름에 붙이거나 하는게 아니라 몇위 아무개 황자 이런 식으로 붙이는 식이다.), 관위 48층제라는 새로운 관제를 도입하였다.
그의 관제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나, 현재는 납언(納言)으로 구성된 태정관(太政官), 그 아래에 민관(民官)/법관(法官)/병정관(兵政官)/병정(大蔵)/이관(理官)/형관(刑官)을 두는 6관제 체제였을 것이라고 한다.
이후 덴지 천황대부터 진행되었던 토지국유화사업을 강하게 진행하여 호족들의 사적 토지보유를 일체 금지하고, 관직에 따라 봉토를 일시적으로 받는 형태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귀족성씨들을 개혁하여 팔색지성(八色之姓)제도[1]를 도입하였고, 임신의 난 공신들에게 높은 성을 주어서 요직을 자기 사람으로 임명하는 조치도 하였다.
이후 황권강화를 위해 기존 권력자들을 대규모로 숙청하였는데, 그에게 숙청당한 인물들은 3위 오미왕(麻続王)같은 고위황족부터 다이마노 히로마로(當摩廣麻呂)와 구누노 마로(久努麻呂)같은 일반 신하들까지 포함되었다. 물론 대부분은 유배로 끝나고 진짜 죽인 경우는 많지 않았다.
화폐도 발행하였는데, 일본 최초의 화폐인 부본전(富本銭)을 주조하였으나 초창기 화폐답게 널리 통용되지는 못 하였다고 한다.
675년에는 일본 최초의 천문대인 점성대(占星台)를 설치한다.
외교적으로는 친신라적 정책을 펼쳐서 신라와는 매우 자주 교류하였으나 당과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딱히 신라계 도래인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친 적은 없다고 한다.
문화적으로도 많이 개편을 하였는데 기존의 민간제사들을 규합하여 국가단위로 정리하고 일본 황실 궁정의례를 편성하였다고 하며, 그가 편성한 궁정의례는 현재도 일본 황실의 의례로 쓰이는 중이라고 한다. 675년에는 수도 인근의 유명 예술인들을 모아 궁정에서 공연을 하게 한 후에 그들에게 녹봉을 주었고, 686년에는 배우와 가인(歌人)들에게 포상을 내렸다고 한다.
681년, 역사편찬사업을 대신들에게 명령하였다. 그에 의해 편찬된 일본 사서가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이다. 하지만 전부 그의 치세에 완성되지는 못 하였다.
686년에는 연호제를 부활시켜 슈초(朱鳥/주조)라는 연호를 지정하였다.
종교개편[편집]
신토[편집]
그는 기존 원시신앙이었던 신토에 도교를 주입시켜 신토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였다. 그러니까 현재 신사의 제례들은 전부 덴무 천황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후 자신의 딸을 이세 신궁의 재왕으로 임명하였고, 20년마다 신궁을 다시 짓는 이세 신궁의 종교의례인 식년천궁(式年遷宮)을 처음 제정한다.
이후 여러 신사들에게 정기 제례를 하도록 하였는데, 이게 마쓰리의 시작이다.
불교[편집]
673년 천원사(川原寺)에서 대규모 불경 사경작업을 하였으며, 전국에 사람을 보내 금광명경(金光明經)과 인왕경(仁王經)의 설법을 명하였다. 이후 679년에는 궁중사찰과 수도 내 사찰들에게도 이들을 설법토록 하였다.
685년에는 일반 가정에도 불공을 의무화시켰으며, 이 정책 이후부터 수도권에만 퍼져있던 불교가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도교[편집]
도교는 진흥시켰다기보단 황권강화를 위해 도교적 요소를 정책속에 끼워넣었는데, 8성 중 최고성인 마히토(真人)는 인간의 이상상을 표현하는 용어이자 선인의 동의어인 도교적 용어인 진인(眞人)에서 기원하였다. 또한 그의 화풍 시호인 마노누나하라오키노마히토(天渟中原瀛真人)에 들어간 한자 영(瀛)은 도교의 선인들이 산다는 전설속의 산인 영주산(瀛州山)에서 기원하였다.
연호[편집]
연호 이름 | 사용 시기 | 년수 | 개원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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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초(朱鳥/주조) | 686년 8월 14일 | 686년 9월 30일 | 1년 | - |
황거[편집]
현재 조메이 천황의 비조강본궁(飛鳥岡本宮), 고교쿠 천황의 비조판개궁(飛鳥板蓋宮), 덴무 천황의 비조정어원궁(飛鳥浄御原宮)은 모두 한 곳으로 추정되며, 터에는 아스카미야 유적지가 위치 해 있다.
둘러보기[편집]
각주
- ↑ 높은 성씨 순으로 각각 마히토(真人), 아소미(朝臣), 스쿠네(宿禰), 이미키(忌寸), 미치노시(道師), 오미(臣), 무라지(連), 이나기(稲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