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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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밑줄: 도청소재지 |
개요[편집]
六鎭[1]
함경북도 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6개 고을을 일컫는다. 부령군, 회령군, 경흥군, 종성군, 경원군, 온성군이 여기에 속한다. 조선 초기 북진 정책의 목표가 되었던 곳으로, 세종대왕 시기 4군6진 개척으로 조선령으로 들어왔다.
서울에서는 지도 상의 직선 거리로 제주도보다 먼 지역이며 여진족들의 잦은 왕래 및 침입, 그리고 혹독한 기후로 악명이 높았다. 그 때문에 사민정책으로 여기에 이주한 남부민들이 큰 고통을 겪었고 조선시대 단골 유배 코스로 남해안 섬 지역, 삼수갑산과 함께 애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후기부터 두만강을 끼고 만주, 연해주 등을 건너가며 만주족이나 청나라 사람들과 밀무역을 하는 이들이 많았으며 20세기 초 일제의 침략과 적백내전 등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이를 노린 초적들이 활개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지역 주민 다수가 연변이나 연해주 등지로 대거 이주하였다. 그래서 연변 일대 조선족 다수는 해당 지역에 살았던 조상을 두고 있다.
북괴 치하에서는 국군포로와 숙청 당한 정계 인사 등을 이곳으로 유배보냈으며 이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기 위해 아오지 탄광, 회령 전거리 수용소(12호), 창평 수용소(12호, 폐지), 종성 수용소(13호, 폐지), 회령 수용소(22호, 폐지), 청진시 수성 수용소(25호), 온성노동단련대등의 수많은 정치범수용소들이 설치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회령 등지가 탈북의 성지로 떠오른 바 있다. 두만강 상류 지역은 겨울에 얼어붙을 경우 국경경비대에 발각되지 않는 한 건너기가 용이할 정도로 폭이 좁은 까닭이다. 하지만 두만강 범람으로 큰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잦다.
해당 지역 대부분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 방언과 현저한 차이가 드러나는 육진 방언을 사용하며 육진 방언권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은 부령군이나 경흥군, 동해안(나진으로 분리된 지역) 지역도 서울 등지와 큰 차이가 나는 함북 방언이 쓰였다.
연혁[편집]
본래 단결 - 크로우노프카문화로 대표되는 옥저계열의 예맥족들이 살고 있었다. 옥저를 정복한 고구려는 육진중 하나인 경원군의 강건너에 책성(柵城)을 건설, 그곳을 고구려 동부지방 중심도시로 성장시켜 소금, 해산물, 미녀, 쌀등을 보급받기위한 곡창지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관구검의 침공때 현도태수 왕기와 관구검이 옥저의 모든 마을들을 초토화시켜버리고 옥저인들을 학살하면서 크게 황폐화되었다.
비류수 전투이후 고구려는 전연과 속말부말갈의 침공으로 무너지면서 등장한 부여계 난민과 목단강, 한카 호, 우수리강일대에서 살던 말갈족과 고구려계 주민들을 불러들여서 이지역을 재건했고 이때부터 육진에는 고구려인, 부여계난민, 백산말갈이 섞여사는 곳이 되었다. 평양, 요동과는 매우 멀리 떨어져있었다보니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망하는 헬게이트에서도 큰 피해없이 남아있었고 30년뒤 세워진 발해는 육진근처에 중경 현덕부(화룡시 서고성촌), 동경 용원부(혼춘 팔련성. 책성에서 약간 동북쪽에 있다.)를 세우고 육진을 크게 일궜다. 하지만 거란한테 발해가 좆망하면서 같이 망했고 500여년간 여진족이 차지하게 되었다.
명소[편집]
- 아오지 (경흥군)
- 적도 (경흥군) : 이성계의 증조부 되시는 이행리가 여진족에 쫓겨 이 섬으로 피난한 바 있어 용비어천가등에서 언급되었고, 함경도 지역 산수화에서 함흥본궁 등과 함께 조선 왕실 사적으로 가끔씩 다루어지곤 하였다.
- 서번포 (경흥군)
- 난도(卵島) (경흥군) 웅기읍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으로, 물새들이 알을 낳고 둥지를 많이 지어 구경거리가 되곤 하였다.
- ↑ 현지에서는 눅진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