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구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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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三國志에 관련된 것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삼국지는 역사가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와 역사적 사실에 각종 구전 민담, 전설 등을 섞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로 구분됩니다. 三國志演義는 단지 재미를 위한 진실과 거짓이 섞여있는 中國 소설로 받아들이면 빛이 되지만 역사서 正史三國志처럼 받아들이면 어둠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삼국지 시대의 中國人과 현재 中共人은 종족, 언어만 빼면 엄연히 다른 사람들이니 삼국지에 심취해 中뽕으로 흑화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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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구 검(毌丘 儉) | |
이명 | 자 중공(仲恭) |
출생 | 미상, 하동군 문희현[1] |
사망 | 255년 3월 16일? |
국적 | 위나라 |
가족 | 아버지 장작대장 관구흥(毌丘興) |
개요[편집]
위나라의 장수이며 동천왕 당시의 고구려를 개털어 버리고 환도성을 불내성(못 견디는 성)으로 개명했다. 물론 고구려 좆병신이네? ㅋㅋㅋㅋ 이랬던 건 아니고 영혼의 맞다이 까다가 2차 침공까지 막아내고 3차 침공에서 고구려군이 말 그대로 궤멸하고 검이는 수도까지 걸어감 ㅋㅋㅋㅋㅋ 씨발 수도를 대놓고 점령당한 좆구려 군사력수듄 무엇?
뭐 그래도 변호를 해 주자면 당시 바닷가는 짱깨(요동, 낙랑군)이 쳐묵하고 있었고 만주에서 꿀땅인 송화강 유역은 당시 나름 잘나가던 부여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당시 고구려는 압록강유역 산투성이 근처의 쓰레기땅밖에 없는 찐따였다. 엥? 함경도 해안과 육진은 저때 ㅆㅅㅌㅊ곡창지대였는데? 응 그거 옥저가 쳐먹어서 간접통치 겨우 돌렸다.
짱깨가 존나 신기한 게 공손찬이나 동탁이나 시발 병신들이 한족 상대론 개 빌빌대는 새끼가 이민족 상대로는 존나 무쌍찍음 ㅋㅋㅋㅋㅋ 씨발 대이민족여포새끼들이 진짜 아무튼(사실 관구검도 고구려는 패지만 부여, 고구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공손씨 정권한테는 격퇴당해서 퇴갤한다.)
사실 중국 사서에선 저딴 역전승이 아니라 걍 처음부터 스무스하게 개바른 걸로 나온다. 글고 고구려만 공격한 것도 아니었음. 이래도 삼국사기가 사대주의 사서냐?
이후 문흠과 같이 난을 일으키지만 사마사에게 진압당한다.
고구려를 털었다는 이유로 삼국지 2에서는 무력이 90으로 나온다. 하지만 삼국지 3에서는 개역당해 무력이 75로 깎이고 그저 그런 장수가 되고 만다.
공손연의 몰락[편집]
이새끼는 일찍이 능력을 인정받아 조비, 조예에게 신임을 받아왔다. 그런데 저 먼 요동반도, 누군가 계속 깝치는것이 포착되었다 바로 공손연. 이새끼는 즈그할애비 공손도가 요동을 쳐묵한 시절부터 지역수저물고 3대를 이어서 요동은 내땅이다 이기야 하면서 응디를 흔들어왔으며 3대가 됐더니 요동에서 왕을 자처하고 나선것이다.
조예는 대사마 벼슬 내려주면 얌전해지겠지?해서 대사마 벼슬을 줬는데, 공손연 이 병신새끼가 빼애액 나 대사마싫어 왕할끄야 빼애액으로 대답했다. 이새끼가? 해가지고 조위는 진압군을 파견한다.
관구검군은 기세좋게 들어왔지만 요동에서 그냥 비가 아니고 폭우가 오는 바람에 일단 지켜본다. 그동안 조정에선 사마의를 또 보냈다.
공손연 : 옹~ ㅗㅜㅑ 폭우가 오네 개꿀ㅋㅋㅋ 이제 저새끼들 집에가겠지?
사마의 : 안할껀데?
공손연 : ?!
장마따위 무시하고 사마의, 관구검군대는 공손연따위 가볍게 밀어버린다. 238년, 요동의 공손연은 사마의에게 목따이고 뒤졌다. 병↑신↓
그당시 고구려의 상황[편집]
이제 고구려의 상황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고구려의 왕은 동천왕. 애비는 산상왕이다. 산상왕은 형사취수제에 따라 지 형수랑 결혼했던 유부남이었다.
하지만 어느날, 탈주한 제사용 돼지를 주통촌이라는 위치불명의 마을에서 어떤 여자가 그 돼지를 잡는 일이 발생했다. 근데 그여자를 찾아가보니 너무 ㅗㅜㅑ한거. 그래서 산상왕이 그녀랑 붕가붕가를 해서 나온 아들이 동천왕이다.
잠깐 시간을 거슬러 233년, 손권은 공손연과 으쌰으쌰해서 위나라를 칠 계획을 구상했다. 손권은 공손연에게 손을 벌려봤지만... 근데 공손연 이 병신새끼는 눈에 뵈는게 없으니까 쿨하게 뻐큐날리고 사신한놈 모가지 써는걸로 답했다. 이 칼부림에서 살아남은 일부는 죽자살자 ㅌㅌ해서 고구려로 도망갔다.
고구려 동천왕은 이들을 받아준다. 그래서 동천왕이 거 오나라는 콩손연이 싫습네까?이러니까 오나라는 ㅇㅇ 저새끼 개씹새끼임 조져야됨으로 반응했다. 이전부터 요동을 먹을 계획이었던 고구려는 오나라가 위나라를 치는 동안 공손연을 쳐서 요동을 먹으면 되겠다면서 콜해주고 오나라와 동맹을 맺게 된다.
그러니까 위나라 + 공손연(위에 잠깐충성) vs 오나라 + 고구려가 되었던 것. 근데 갑자기 위나라랑 공손연이 치고박고 싸우게 된것이다. 에잉.... 뭐 우리레 공손연만 잡으면 되지 하면서 그동안 즐거웠슴무다 77ㅓ억 ^^드립치면서 빤쓰런을 시전한다. 오나라 손권? 뭐긴뭐야 오랑캐따위에게 쪽쪽 빨린 흑우다된거지. 병↑신↓
동천왕은 위나라의 공손연 토벌때 군머를 보내고 238년, 공손연의 뚝배기가 깨지면서 상황이 일단락되는듯 했다. 그래서 고구려가 사마의를 만나봤더니
지원군 고맙다이기 잘가
동천왕 : 거 도와줬으니 우리한텐도 뭐 해줘야 되는거 아닙네까!
사마의 : 고작 1천명 보내놓고 생색내지마라 ㅗㅁㅈㅎㅗ
동천왕 : 안주면 요동은 우리가 먹으면 되디!
그래서 빡친 고구려는 242년, 고구려 서안평을 공격한다. 사실 고구려가 서안평에 쳐들어와서 깽판치는건 후한시대부터 이어진 연례행사였기에 고구려는 그냥 먹어버렸다.
또 서안평은 낙랑군과의 연결통로까지 되고 있어서 서안평 따묵 → 안그래도 개천까지 밀린 낙랑군 띨망[2] → 한반도 내 중국세력 좆망이라는 위험한 테크를 타기 때문에 위나라는 고구려군의 서안평 점령에 발칵 뒤집혔다.
사마의, 조상 (위나라 양대산맥) : 오랑캐새끼들이 기어코 우덜 머-중화에 도전을 하네? 관구검, 준비해.
관구검은 와카리 마시따하고 전쟁을 준비, 결국 244년 관구검의 군대가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고구려와 위나라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고구려는 고구려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허약했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굳이 관구검일 필요가 없었던 거. 광개토대왕 시절의 고구려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되는 것이다.마치 헝가리 축구팀이 지금은 존나 별 볼일 없지만 1950년대에는 당대 최강팀이었던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비류수 전투[편집]
관구검의 위군과 동천왕의 고구려군은 양구(梁口)에서 만났다. 삼국사기에는 '양맥(梁貊)의 골짜기'로 나온다. 대충 요령성 본계근처 어딘가로 결정난 상황.
동천왕 : 거 아새끼들 철기땅끄로 까부수면 된! 가즈-아
ㄴ 보병 2만이라고 되있던디
관구검 : 우덜 머-중화의 군머가 이기겠지?
근데 상황은 달랐다. 고구려군의 철기병이 부릉부릉 거리면서 밀려오는 땅끄처럼 위군에게 달려들었고, 위군은 이 땅끄에 탈탈 털리고만다.
관구검 : ;;; 일단 튀자 ;;
관구검은 진을 재정비하고 오리지널 양맥에서 다시 대치한다. 참고로 양맥은 확실히 본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맥이 어디있는지랑 상관없이 위군은 또 고구려 기병에게 탈탈 탈곡당했다.
이렇게 양구전투, 양맥전투에서 위군은 도합 6천~8천의 피해를 낸다.
고구려는 엨 ㅋㅋㅋㅋ 위나라 좆빱새끼! 카 우리 고구려 클라스 에지고 지리고 ㅇㅈ? ㅇ ㅇㅈ 주모~ 냉면육수 한그릇더~ 하면서 국뽕을 빨고 있었다.
어음... 이번엔 전략을 바꿔보자.해서 관구검은 계책을 새로짠다. 이후 고구려군과 위군은 비류수, 지금의 혼강에서 위군과 대치한다.
고구려군은 위군을 공격했지만 위군은 수레를 가로로 세워 방어진을 친다 (방진)
이전과는 달리 방진 앞에서 막힌 고구려 기병대는 급자기 무너지게 되었고, 관구검은 요오시하고 버스터콜 칼버젼을 통해 투창, 화살로 다굴때리니까 고구려군은 대거 학살당했다.
그동안 치사량으로 국뽕을 빨았던 고구려군은 이 전투에서 제대로 개털리게 된다. 이 전투는 훗날 벌어지는 쌍령 전투, 현리 전투와 함께 한국사에 길이길이 기억될 참패로 기억되고만다.
이렇게 비류수에서 도망친 고구려군은 달아나 전시수도인 환도성에서 최후의 저항을 준비했지만 관구검 군대는 환도성도 박살내고만다.
이에 동천왕은 누구처럼 국민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환도성은 안전합니다하고 빤쓰런 했다. 파괴된 환도성으로 입성한 위군은 환도성을 초토화시켜버리고 인근 야산에 관구검기공비라고 자기 전공을 자랑하는 비석을 때려박았다. 성버리고 ㅌㅌ한 동천왕은 훗날 조선족 소굴중 하나가 된 혼춘에 있던 북옥저로 갔다. 관구검의 부장 현도태수 왕기는 옥저를 찍고 북옥저로 추격대를 이끌고 쫓아갔다. 근데 이새끼가 부여가 있던 길림찍고 말갈이 있던 녕안찍고 북옥저로 왔다는 말도 있다. 삼국사기에는 동천왕이 도주한 곳이 남옥저였다고 나온다.
아무튼 이 추격대는 오지게 쫓아왔지만 밀우의 발악, 유유의 발터때문에 고구려군은 위군을 고구려에서 축출하는데 성공했고 그렇게 고구려와 위나라간의 전쟁은 끝났다.
동천왕은 허벌창난 국내성을 두고 지금의 강계나 자성군강건너로 추정되는 동황성(東黃城)으로 수도를 옮긴 동천왕은 245년 신라북쪽도 공격하며 찔러봤다가 결국 248년 40세의 나이로 죽는다 (스트레스 때문인듯)
이 공로로 관구검은 좌장군으로 승진하고,
여기까지가 관구검의 전성기 되시겠다
관구검의 최후[편집]
우리 모두의 죽창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나 행동, 사상에 대한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우리들이 반드시 죽창을 들어 찔러야 하는 특정 대상, 해결책은 오로지 죽창뿐인 인물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죽창 앞에선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죽창... 주욱창을 가져와라... |
위나라 조정은 사마씨가 득세하게 되었다
사마의가 죽고 큰아들 사마사가 권력을 잡은 상태
허수아비 황제 조방, 하후현, 이풍 등이 사마사를 암살하려 했지만
내가 바본줄 아노?
도리어 발각되어 하후현과 이풍은 처형되고 조방은 폐위당한다
관구검 : 사마사 씨발놈 순 역적새끼노!
관구검은 결국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여기에 절친 조상이 숙청당하며 위태위태해진 문흠까지 가담
사마사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관구검, 문흠을 처리하러 나선다
(이하생략) 사마사 휘하의 무장들은 시대의 톱 에이스들
등애, 제갈탄, 사마사, 호준의 군대는 순식간에 관구검과 문흠의 근거지를 포위한다
폭도는 총을 버려라
좆됐노
문흠 : 나랑 내아들 문앙이 어떻게든 뚫어볼께
관구검 : 부탁한다
문흠과 문앙이 뚫어보려 했지만
등애 : 예상하고 있었다 새끼들아!
자기들도 전멸하고 겨우겨우 오나라로 도망친다
남은건 관구검 하나뿐
관구검 : 에라 씨발 나도 도망쳐야겠노
일반백성 : 이타다키마쓰
한때 고구려를 발라버린 명장
결국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허망하게 죽고만다
잘가 관구검!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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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2에서 무력 90이라는 이상한 능력치를 달고 나온다.
이후 삼국지 3부터는 무력 75로 깎였고 계속 그 능력치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