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랴쿠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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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이 새끼는 인간을 밥 먹듯이 죽여댄 인간도살자입니다!! 이 문서에서는 인간을 대량으로 도살해버린 쓰레기 새끼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으니 정상적인 인간은 자리를 피하십시오. Ah! Fresh Meat!!!! |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국민들을 존나게 학살해댄 엄청난 폭군입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인권을 밥 말아먹은 건 덤이고 국민들을 밥 먹듯이 쳐죽여댄 존나 잔인한 폭군들입니다. 이 새끼가 당신에게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피하는 게 좋지만 만약 길을 가다가 이 새끼를 보시면 죽창으로 관통시키십시오. |
일본 역대 덴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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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21대 덴노 시호 유랴쿠 천황/웅략천황
雄略天皇재위기간 456년 12월 25일 ~ 479년 9월 8일 궁호 없음 휘 오하쓰세와타케(大泊瀬幼武)/무(武) 성별 남성 출생일 418년 10월 사망일 479년 9월 8일 황후 구사카노하타비히메(草香幡梭姫) 능호 다지히노타카와시노하라능(丹比高鷲原陵) 연호 없음 황거 박뢰조창궁(泊瀬朝倉宮)
개요[편집]
일본 21대 천황. 왜5왕 무(武)로 추정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람을 워낙에 많이 죽였어서 부레쓰 천황과 함께 대악천황(大悪天皇)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유라쿠 아니고 유랴쿠다. 발음 제대로 하자.
생애[편집]
즉위 전 아버지 안코 천황이 암살당하자, 그는 아버지를 죽인 인물들을 찾기 시작하였는데, 맨 먼저 인교 천황의 4황자인 야쓰리노시로히코(八釣白彦) 황자를 범인으로 의심하여 죽인다. 그러나 그는 안코 천황을 죽인 사람이 아니었고, 이어 다시 사람을 찾던 웅략은 인교 천황의 3황자인 사카이노쿠로히코(坂合黒彦)황자와 마요와 왕(眉輪王)을 범인으로 의심하여 그 둘을 죽이려고 한다.
사카인쿠로히코와 마요와는 이를 알아채고 호족인 가쓰라기노 쓰부라(葛城円)의 집에 숨으나, 웅략은 귀찮았는지 그냥 가쓰라기의 집에 불을 질러서 전부 죽여버린다.
이후 정적인 이치노헤노오시와(市辺押磐)황자와 미마(御馬)황자도 죽인 뒤에 곧바로 천황에 즉위한다.
이후 헤구리노마토리(平群真鳥)를 대신(大臣)으로, 오토모노 무로야(大伴室屋)와 모노노베노 메(物部目)를 대련(大連/군을 관리하는 관직)으로 임명하고 황권을 강화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엄청나게 많이 죽인다.
황권을 강화한 웅략은 주변 국가들을 하나하나 자신의 세력으로 복속시키기 시작하였으며, 길비국이라는 매우 웅략 최대의 적국 역시 복속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유송(刘宋)으로부터 아야하토리(漢織), 구레하토리(吳織)라는 사람을 등용하여 일본의 양잠업을 발달시켰다고 한다.
한반도 정벌 및 임나일본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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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에서는 유랴쿠 천황이 어떻게 한반도 국가들을 박살내고 다니는 꿈을 꿨는지 아주 자세하게 개소리를 지껄여놓은 상태다.
그는 즉위 8년차에 고구려를 부수고, 이후 신라를 치려고 하였으나 기노 고유미(紀小弓)가 전사하여 실패하였다. 근데 삼국사기에는 이 때 실제로 일본이 신라를 공격한 것은 맞으나 성 몇개만 함락시키고 결국 복속에 실패하였다고 적혀있다.
또한 고구려가 백제를 한강 유역에서 몰아낸 시기, 고구려군이 백제군을 전멸시키지 않은 이유가 백제군을 다 죽이면 천황폐하께서 노여움을 사 고구려를 또 조질 것이다 라는 아주 대단한 개소리를 써 놓은 상태이다. 그리고 한강에서 쫒겨난 백제에게 구마나리(久麻那利/현 공주시)를 주었다고 했는데, 이건 빼박 임나일본부 이야기다.
백제 삼근왕(三斤王)이 붕어하였을 시기, 당시 왜에 인질로 있던 부여곤지(扶餘昆支)의 둘째 아들인 부여말다(扶餘末多)에게 축자국의 병사를 호위에 붙여서 귀국을 도왔을 뿐 아니라 그 병사를 이끌었던 아치노오미(安致臣)와 우마카히노오미(馬飼臣) 등이 고구려를 토벌했다고 전하고 있는데, 저 때 고구려의 왕은 장수왕이라는 천재 군략가가 왕으로 있었던 시기인데다가 토벌은 커녕 침공을 받았다는 이야기 자체가 일본서기 외에는 적혀있지 않다.
황거[편집]
현재 그의 궁인 박뢰조창궁(泊瀬朝倉宮)의 터에는 시로야마히메 신사(白山比咩神社)가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