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메이지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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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덴노
121대 122대 123대
고메이 덴노 메이지 덴노 다이쇼 덴노
일본 122대 덴노
시호
메이지 천황/명치천황
明治天皇
재위기간 1867년 1월 30일 ~ 1912년 7월 30일
궁호 사치노미야(祐宮)
무쓰히토(睦仁)
성별 남성
출생일 1852년 11월 3일
사망일 1912년 7월 30일
황후 조켄 황태후(昭憲皇太后)
능호 후시미노모모야마능(伏見桃山陵)
연호 메이지(明治/명치)
황거 평안궁(平安宮/~1868년)
황거(皇居/1868년~)

개요[편집]

메이지 유신의 주인공 되는 새끼.

명치(明治) 존나 때리고 싶다.

에도막부가 건재했다면 그냥 흘러가는 천황일뻔 했다.

허나 개항이 되면서 존왕양이파들이 메이지 천황을 최고존엄 반열에 오르게 하시고 일본 최고의 통수권자가 되었다.

그러나 힘은 개뿔도 없어서 존왕양이파들이 일본제국을 세우고 올라오는 안건에 인장찍는 예스맨 노릇을 하는 허수아비였다.

그래도 정치적 식견은 있었는지 재능있는 관료들을 잘 뽑아서 군국주의 테크를 잘 닦아놨다.

애가 도장찍는 기계 였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유럽의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이기는 했는데 신하들이 완전히 버리지 못한 유교와 충성심 때문인지 애매하게 힘이 있었다. 웬만하면 도장만 찍어서 신하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극소수였지만 정책결정과 인사에 권력행사를 한 적도 있다.

물론 한국과 중국은 매우 싫어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존나 못생겼다 지들도 아는지 전무후무한 뽀샵으로 딴사람을 만들어 놨다. 참고로 병신같은 고종이지만 이새끼랑 사진 비교 해봐라 대한민국의 압승이다. 와꾸는 헬조선이 ㅆㅅㅌㅊ

ㄴ 메이지 뽀샵짤은 주작이다. 전혀 다른 황족 사진을 가지고 메이지 천황이 뽀샵된거 아니냐? 라는 되도않는 주작을 쳐서 만든 사진이다. 우리가 아는 메이지 천황 사진은 실제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군밤왕과 동갑이다. 하지만 군밤왕과 달리 헬조선이 아니라 갓본이라는 꿀땅에 태어나는 행운을 누렸다. 군밤왕이 서구문물을 즐겼지만 그는 사진찍는 것조차 싫어했고 보수적이었다.

사석에서 그가 없을때이긴 하지만 이토가 대놓고 허수아비, 퍼펫이라고 그를 조롱하기도 했다지만, 그의 치세동안 서양 열강들과 중국으로부터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이 발전하고 식민지를 처묵하는 경사를 누렸다.

헬조센에서도 원쑤 일본의 두목이었지만 실권없는 장식이란걸 아는지 이토히로부미와 달리 존재감이 없다.

차라리 유사인류의 마지막 병신인 병신왕과 보지가 더 까이는 모습을 볼수 있다.

여담으로 이름은 무쓰히토(睦仁)인데, 이 때문에 안창호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목인아 목인아! 네가 큰 죄를 지었구나!" 라고 하셨다고 한다. 물론 이 때 이 새낀 이미 뒈짖하고 없었지만.

즉위 및 치세[편집]

사실 대부분은 그냥 도장만 찍었지만, 어쨌건간에 중요한 일들은 다 기술한다.

1867년에 즉위하였다. 원래는 그도 양이파였으나, 양이파들이 서양한테 신나게 얻어맞는 것을 본 그는 곧 개화파로 전향한다. 그러나 도막사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1867년 11월,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환한다(대정봉환/大政奉還). 이와 동시에 에도 막부는 형식적으로는 사라진다. 그러나 여전히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실권자로 군림하였기에 실질적으로 막부는 유지되었다.

1868년 1월, 존황파와 좌막파의 분쟁이 심해졌으며, 결국 좌막파의 선공으로 인하여 두 세력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무진전쟁/戊辰戦争). 그러나 존황파가 전쟁에서 줄곧 우세하였고, 동시에 메이지 천황이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조적(朝敵)으로 선포하면서 도쿠가와는 전의를 상실하여 결국 에도 성 문을 열어주게 된다. 좌막파들은 지속적으로 항전하였으나 얼마안가 전부 항복한다.

1868년 1월 3일, 왕정복고의 대호령(王政復古の大号令)을 선포한다.

1868년 4월 5일, 신불분리령(神仏分離令)을 내린다.

1868년 4월 6일, 5개조의 어서문(五箇条の御誓文)을 발표하여 천황의 친정 및 열강과의 불평등 해소를 선포하였다. 일본제국은 이 때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1868년 10월 23일, 메이지(明治/명치) 연호를 개원함과 동시에 일세일원제(一世一元の制)를 선포하여 천황 1인당 1개의 연호만 선포하도록 하였다.

1869년, 동경전도(東京奠都)를 실행하여 에도를 도쿄로 개칭하고 사실상 천도한다. 그러나 공식적인 천도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은 이 쯤에 본격적으로 실행된다.

1869년 2월, 율령제를 복원하여 6성[1] 을 설치한다. 동시에 공식 행정구역이 아니었던 번()을 공식 행정구역화하나, 2년 뒤에 전부 현으로 갈아치운다.

1869년 7월, 판적봉환(版籍奉還)을 실행하여 각 번주들에게 영지를 반납하도록 하였다.

1869년 10월 1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일오수호통상항해조약(日墺修好通商航海条約)을 체결한다.

1870년에는 일장기가 국기로 지정되며, 가라후토개척사(樺太開拓使)가 설치되어 사할린 개척을 시작한다.

1871년에는 폐번치현(廃藩置県)을 실행하여 번을 전부 현으로 교체한다. 근데 문제는 번들을 전부 현으로 교체해서 당시에는 현이 200개가 넘어갔다고 한다. 동시에 호적법(戸籍法)을 제정한다.

1871년 6월, 신화조례(新貨条例)를 발표하여 엔()을 공식 화폐로 지정한다.

1871년 8월, 동시에 산발탈도령(散髪脱刀令)을 선포하여 상투를 없애고 헤어스타일을 전부 서양식으로 교체하도록 하였다.

1871년 9월, 청일수호조규(清日修好条規)를 체결한다. 동시에 학제(学制)를 발표하여 근대교육을 실시한다.

1871년 11월, 구미권에 이와쿠라 사절단(岩倉使節団)을 파견한다.

1872년, 서력기원을 도입하였다. 동시에 유구국을 해체하고 류큐번으로 교체한다(제1차유구처분/第一次琉球処分).

1873년에는 징병제를 실시하였으며, 정한론 문제를 두고 일본제국 관료 약 600여명이 사퇴를 한다(명치6년정변/明治六年政変).

1874년, 자유민권운동(自由民権運動)이 처음으로 일어난다.

1875년 2월, 평민칭성포고(平民の称姓布告)을 선포한다. 동시에 평민묘자필칭의무령(平民苗字必称義務令)을 발표하여 평민들의 성 보유가 의무화된다.

1875년 6월, 참방률(讒謗律)을 선포하여 명예훼손을 범죄로 지정한다. 이와 동시에 반정부언론 제재를 위해 신문지조례(新聞紙条例)를 발표한다.

1875년 5월 7일, 러시아 제국에게 사할린을 넘기는 대신 쿠릴열도를 받아온다(가라후토・지시마 교환조약/樺太・千島交換条約).

1876년 2월,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를 맺었으며, 동년 3월에는 폐도령(廃刀令)을 선포하여 무사들이 도검을 차고 다니는 것을 금지하였다.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 가고시마에 세운 사학교를 조정에서 반정부세력을 키우는 행위라고 비난하였으며, 이후 사이고는 가고시마에서 난을 일으킨다(서남전쟁/西南戦争).

1879년, 류큐번을 오키나와현으로 교체하고 정식으로 병합한다(제2차유구처분/第二次琉球処分). 당시에는 청나라와 양분하자는 의견도 강했지만, 청나라가 유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 모든 영토를 일본이 가져가게 된다.

1881년 10월 12일, 의회론 문제로 인하여 유신지사들이 또 대거 실각한다(명치14년의 정변/明治十四年の政変) 국회개설의 조(国会開設の詔)를 발표하여 일본에 첫 의회제가 도입된다.

1883년, 육군사관학교가 개설된다.

1884년, 자유민권운동(自由民権運動)이 2번째로 일어난다. 이 운동으로 인하여 헌법이 선포된다.

1885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초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이 즈음에 조선에서 일어난 임오군란으로 인해 청일 모두 조선에 군을 보냈는데 이 때 청나라와 톈진조약을 체결하여 양국 모두 조선에서 군대를 뺀다. 동시에 은본위제를 도입한다.

1888년, 구로다 기요타카(黒田清隆)가 2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자유민권운동(自由民権運動)이 3번째로 벌어진다. 동년에 해군사관학교가 설치된다.

1888년 11월 30일, 멕시코와 일묵수호통상조약(日墨修好通商条約)을 체결한다.

1889년 2월 11일, 대일본제국헌법(大日本帝国憲法)이 발표되었고 1890년 11월 29일에 도입된다. 이 헌법으로 인하여 일본은 입헌군주제 형태의 정치체제로 이어지게 된다. 이후 불평등조약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행동을 취하나, 전부 실패로 돌아간다.

1889년 12월, 야마가타 아리토모(山藤有朋)가 3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1890년 11월 29일, 1차 제국의회선거가 실행된다.

1891년 5월, 마쓰카타 마사요시(松方正義)가 4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비슷한 시기에 니콜라이 2세가 황태자시절 일본에 방문하였다가 칼을 맞는 사건이 벌어진다(오쓰 사건/大津事件).

동년 8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5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1894년 7월 16일, 영국과 일영통상항해조약(日英通商航海条約)을 체결한다.

1894년 7월 23일, 동학농민운동을 빌미로 파견된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여 조선의 고위관직자들을 친일파들로 바꿈과 동시에 갑오개혁을 실행시킨다.

1894년 8월 1일, 청나라 해군을 기습공격하여 청일전쟁이 발생한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895년에 시모노세키 조약(下関条約)을 체결하여 조선에서 청나라를 완전히 배제시킴과 동시에 대만과 요동을 차지한다. 그러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3국간섭을 벌여서 요동은 다시 청나라에 반환된다.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한다. 이 결과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튄다.

1896년에는 총리가 자주 바뀌었는데, 9월, 마쓰카타 마사요시(松方正義)가 6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1898년 1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7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였고, 동년 6월에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가 8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동년 11월에 야마가타 아리토모(山藤有朋)가 9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1899년 11월, 의화단 운동 진압을 위해 군대를 파견한다.

1900년 4월, 노동운동을 방지하기 위해 치안경찰법(治安警察法)을 제정한다.

1900년 10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10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1901년 2월에는 가쓰라 다로(桂太郎)가 11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1902년, 제1차 영일동맹(第一次日英同盟)을 체결한다.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을 벌인다. 2월 22일에 대한제국을 군창으로 이용하기 위해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체결한다. 동년 8월 22일에는 제1차 한일협약(第一次韓日協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요직을 일본인 고문이 차지하도록 하였다. 러일전쟁에서 초반 일본군은 돈만 잔뜩 버리고 피로스의 승리만 반복하였으나 이후 쓰시마 해전에서 대박을 터뜨림과 동시에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져, 러시아가 전의를 상실하여 1905년에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고 남사할린을 얻었으며, 남만주철도 부설권을 확보한다. 그러나 이 조약에 불만을 품은 일부 사람들에 의해 히비야 방화사건(日比谷焼打事件)이 벌어진다.

1905년 7월 29일,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을 일본이 차지하는 것을 미국에게 승인받는다.

1905년 8월 12일, 제2차 영일동맹(第二次日英同盟)을 체결한다.

1905년 11월 17일, 제2차 한일협약(第二次韓日協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한국통감부를 설치하여 대한제국을 괴뢰국화한다.

1906년 1월,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가 11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1906년 3월 31일, 철도국유법(鉄道国有法)을 발표하여 사철을 금지한다.

1907년 7월 24일, 고종을 강제퇴위시킴과 동시에 제3차 한일협약(第三次韓日協約)을 체결하여 관리임명권을 일본이 가져가였고, 대한제국의 군대해산을 명시한다.

1908년 6월 22일,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한다(적기사건/赤旗事件).

1908년 7월, 가쓰라 다로(桂太郎)가 12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1909년 7월 12일, 기유각서(己酉覺書)를 체결하여 사법권과 교도 행정권을 일본이 가져간다.

1909년 9월, 남한 의병들을 제거하기 위해 남한 대토벌 작전을 개시했다. 동년 10월 26일에는 안중근 의사께서 이토 히로부미하얼빈에서 저격하셨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을 병탄한다.

1911년, 관세자주권이 회복되어 불평등조약이 대부분 철폐된다. 동년 8월에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가 13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이후 1912년에 붕어한다.

연호[편집]

연호 이름 사용 시기 년수 개원 이유
메이지(明治/명치) 1868년 1월 25일(10월 23일) 1912년 7월 30일 46년 메이지 천황 즉위와 왕정복고의 대호령으로 개원

관련 문서[편집]

둘러보기[편집]



일본 덴노 목록
취소선은 실존여부가 불확실한 인물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진무
(기원전 660년~기원전 585년)
스이제이
(기원전 581년~기원전 549년)
안네이
(기원전 549년~기원전 511년)
이토쿠
(기원전 510년~기원전 476년)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고쇼
(기원전 475년~기원전 393년)
고안
(기원전 392년~기원전 291년)
고레이
(기원전 290년~기원전 215년)
고겐
(기원전 214년~기원전 158년)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가이카
(기원전 157년~기원전 98년)
스진
(기원전 97년~기원전 30년)
스이닌
(기원전 29년~70년)
게이코
(71년~130년)
제13대 제14대 섭정/제15대 제16대
세이무
(131년~191년)
주아이
(192년~200년)
진구
(201년~269년)
오진
(270년~310년)
닌토쿠
(313년~399년)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리추
(400년~405년)
한제이
(406년~410년)
인교
(411년~453년)
안코
(453년~456년)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유랴쿠
(456년~479년)
세이네이
(480년~484년)
겐조
(485년~487년)
닌켄
(488년~498년)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부레쓰
(498년~506년)
게이타이
(507년~531년)
안칸
(531년~535년)
센카
(535년~539년)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긴메이
(539년~571년)
비다쓰
(572년~585년)
요메이
(585년~587년)
스슌
(587년~592년)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스이코
(592년~628년)
조메이
(629년~641년)
고교쿠
(642년~645년)
고토쿠
(645년~654년)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사이메이
(655년~661년)
덴지
(661년~672년)
고분
(672년)
덴무
(672년~686년)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지토
(686년~697년)
몬무
(697년~707년)
겐메이
(707년~715년)
겐쇼
(715년~724년)
제45대 제46대 제47대 제48대
쇼무
(724년~749년)
고켄
(749년~758년)
준닌
(758년~764년)
쇼토쿠
(764년~770년)
제49대 제50대 제51대 제52대
고닌
(770년~781년)
간무
(781년~806년)
헤이제이
(806년~809년)
사가
(809년~823년)
제53대 제54대 제55대 제56대
준나
(823년~833년)
닌묘
(833년~850년)
몬토쿠
(850년~858년)
세이와
(858년~876년)
제57대 제58대 제59대 제60대
요제이
(876년~884년)
고코
(884년~887년)
우다
(887년~897년)
다이고
(897년~930년)
제61대 제62대 제63대 제64대
스자쿠
(930년~946년)
무라카미
(946년~967년)
레이제이
(967년~969년)
엔유
(969년~984년)
제65대 제66대 제67대 제68대
가잔
(984년~986년)
이치조
(986년~1011년)
산조
(1011년~1016년)
고이치조
(1016년~1036년)
제69대 제70대 제71대 제72대
고스자쿠
(1036년~1045년)
고레이제이
(1045년~1068년)
고산조
(1068년~1073년)
시라카와
(1073년~1087년)
제73대 제74대 제75대 제76대
호리카와
(1087년~1107년)
도바
(1107년~1123년)
스토쿠
(1123년~1142년)
고노에
(1142년~1155년)
제77대 제78대 제79대 제80대
고시라카와
(1155년~1158년)
니조
(1158년~1165년)
로쿠조
(1165년~1168년)
다카쿠라
(1168년~1180년)
제81대 제82대 제83대 제84대
안토쿠
(1180년~1185년)
고토바
(1183년/1185년~1198년)
쓰치미카도
(1198년~1210년)
준토쿠
(1210년~1221년)
제85대 제86대 제87대 제88대
주쿄
(1221년)
고호리카와
(1221년~1232년)
시조
(1232년~1242년)
고사가
(1242년~1246년)
제89대 제90대 제91대 제92대
고후카쿠사
(1246년~1260년)
가메야마
(1260년~1274년)
고우다
(1274년~1287년)
후시미
(1287년~1298년)
제93대 제94대 제95대 제96대
고후시미
(1298년~1301년)
고니조
(1301년~1308년)
하나조노
(1308년~1318년)
고다이고
(1318년~1339년)
제97대 제98대 제99대 제100대
고무라카미
(1339년~1368년)
조케이
(1368년~1383년)
고카메야마
(1383년~1392년)
고코마쓰
(1392년~1412년)
제101대 제102대 제103대 제104대
쇼코
(1412년~1428년)
고하나조노
(1428년~1464년)
고쓰치미카도
(1464년~1500년)
고카시와바라
(1500년~1526년)
제105대 제106대 제107대 제108대
고나라
(1526년~1557년)
오기마치
(1557년~1586년)
고요제이
(1586년~1611년)
고미즈노오
(1611년~1629년)
제109대 제110대 제111대 제112대
메이쇼
(1629년~1643년)
고코묘
(1643년~1654년)
고사이
(1655년~1663년)
레이겐
(1663년~1687년)
제113대 제114대 제115대 제116대
히가시야마
(1687년~1709년)
나카미카도
(1709년~1735년)
사쿠라마치
(1735년~1747년)
모모조노
(1747년~1762년)
제117대 제118대 제119대 제120대
고사쿠라마치
(1762년~1771년)
고모모조노
(1771년~1779년)
고카쿠
(1780년~1817년)
닌코
(1817년~1846년)
제121대 제122대 제123대 제124대
고메이
(1846년~1867년)
메이지
(1867년~1912년)
다이쇼
(1912년~1926년)
쇼와
(1926년~1989년)
제125대 제126대 - -
아키히토
(1989년~2019년)
나루히토
(2019년~)
- -

각주

  1. 궁내성(宮内省), 민부성(民部省), 대장성(大蔵省), 형부성(刑部省), 병부성(兵部省), 외무성(外務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