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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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조선[편집]
철종이 좆선 개혁에 실패하고 결국 보지들을 후리고 술을 퍼마시며 여생을 보낸다. 결국 삼정 문란이 극에 달해 임술민란이 발발해 조선 전역이 개판이 되었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어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려 했으나 아무런 효과거 없었고 철종도 죽으며 세도 시대가 종식된다.
이후 신정왕후 조씨가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을 즉위시켰는데, 실권은 흥선대원군에게 넘겨주었다. 이후 흥선대원군은 문란한 조선의 정치를 근본적으로 갈아엎기 위해 사창제, 양전 사업, 호포제를 실시하여 양반들에게도 세금을 뜯는가 하면 서원을 철폐해 유교탈레반들의 만행도 막았으며 세간의 인식과 다르게 개화에도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먼저 조선의 답없는 내수경제부터 제대로 활성화시킨 다음에야 개화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었고, 정작 본인은 내수경제를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경복궁 중건을 위해 당백전을 양산하며 물가를 존나 올려놓으면서 조선 경제의 허점을 만들었으며,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를 끌어들였으나 프랑스 외교관들에게 개무시를 당하자 이에 풀발해 병인박해를 벌였다.
결국 프랑스군이 이에 대해 시비를 걸면서 병인양요가 발발했으며, 프랑스군이 어찌저찌하여 철수하기는 했으나 이후 프로이센의 유대인 에른스트 야코프 오페르트가 남연군묘 도굴 미수 사건을 일으키면서 국제적으로도 지탄을 받았으며, 조선 내에서도 개새끼로 찍혀 서양과의 통상 거부 정책을 강화했다. 이의 일환으로 척화비가 건립되기도 하였다.
한편 1866년 제너럴 셔먼 호가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다가 주민들의 공격으로 불에 타 버린 사건이 일어났고 이것은 1871년 신미양요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아시아[편집]
일본[편집]
존왕양이파인 미토 번의 가신들이 히코네 번의 번주이자 일본의 실권자였던 이이 나오스케에게 안세이 대옥의 복수를 하고자 사쿠라다 문 밖에서 나오스케의 모가지를 따는 일이 터졌다. 이후 사쓰마 번에서 영국 상인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영국이 사쓰마 번을 침공하면서 사쓰에이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영국이 이겼으나 서로 화평을 맺은 덕에 사쓰마 번은 일본 근대화의 주축이 될 수 있었다. 한편 조슈 번도 서양에 개겼으나 처참하게 깨지고 오히려 일본 내에서의 입지만 나빠졌다.
이후 조슈 번의 입지는 이케다야 사건과 금문의 변으로 더 작살이 나고 결국 에도 막부가 직접 조슈 번을 토벌하러 간다. 하지만 1차 원정에서 사쓰마 번이 막부와 조슈 간의 사이를 중재했고 2차 원정에서는 아예 막부군이 깨졌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모치 쇼군이 죽고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쇼군으로 집권하면서 조슈에서 철수한다.
사카모토 료마가 사쓰마 번과 조슈 번 사이의 동맹을 중재하면서 삿초 동맹이 이루어지고 근대화의 주축이 된 이 세력은 막부 타도 노선으로 갈아탔고 토사 번이 사카모토 료마의 대정봉환론에 감명을 받아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제출함으로써 쇼군은 고메이 덴노 사후 즉위한 새 덴노인 메이지 덴노에게 통치권을 대대적으로 반납하면서 대정봉환이 이루어졌다.
주의. 이 문서는 중증 파오후 일뽕이 작성하였으며 일뽕 그 자체를 다루무니다. 이 글에는 아마테라스 츠쿠요미의 은총과 씹덕의 향기가 가득하무니다. 이 글은 친일성향을 띠는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존나 함유됐으무니다. 만약 당신이 제정신인 갓한민국의 애국자라면 이 글이 매우 역겨울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라무니다. ○○짱 카와이하다능... 쿰척쿰척 |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막부군은 보신전쟁을 일으켰고 영국과 네덜란드의 지원을 받은 신정부군이 막부군을 격파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이 이루어지면서 에도 막부가 정식으로 붕괴하고 일본 제국이 수립되었다. 한편 패퇴하고 있던 막부군은 에조 공화국이라는 국가를 수립하나 1869년에 멸망하면서 최종적으로 수도를 에도→도쿄(東京)로 한 일본 제국 메이지 시대가 개막했다.
청[편집]
태평천국 폭도들에게도 개털리고 제2차 아편 전쟁에서 서양군에게 베이징을 따먹히면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 상대로 베이징 조약을 체결해 러시아로부터 연해주를 뜯기고 영국으로부터 구룡반도를 뜯겼으며 서양은 본격적으로 청나라를 털기 시작하게 된다.
함풍제 사후 동치제가 즉위했으며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중체서용이라는 원칙 아래에서 양무운동을 추진했다. 그리고 1864년 최종적으로 태평천국의 수도 난징을 정복하면서 내부 봉기는 어느 정도 안정시켰다. 하지만 애미씨발개씹창년이 이때부터 패악질을 벌이는데...
오스만 제국[편집]
유럽 열강들의 간섭을 받았으며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혁도 진행했다. 하지만 국력은 계속 약해지고 있었다.
유럽[편집]
러시아 제국[편집]
알렉산드르 2세가 시대역행적인 농노제를 폐지시켜 농민들의 지위를 향상시켰으나 폐단도 존재했다. 또한 지방자치제, 재정, 사법, 교육, 군대 등을 개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의 차르 암살 시도로 차르는 보수적으로 변했으며 반동주의자들이 집권해 개혁이 중단되고 개혁에 반대되는 정책들이 실시되었다.
프로이센 왕국[편집]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정신병으로 사망한 후 빌헬름 1세가 즉위했다. 그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고위직으로 등용해 군국주의 정책을 펼쳐나갔으며 독일 통일 사업에 나섰다. 그러던 도중 1866년 오스트리아와 충돌하게 되었으며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면서 오스트리아 위주의 대독일주의 통일은 무산되고 프로이센 주도의 소독일주의 통일 계획이 확립되었다.
이후 독일 연방은 해체되었으며 북독일 연방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1868년부터는 프랑스와 대립관계가 심해지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편집]
강경 통치를 이어나가며 소수민족을 탄압했으나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쳐발리고 독일 연방으로부터 추방당하면서 소수민족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소수민족 중 가장 많은 인구 수를 가진 헝가리인들과 대타협을 이뤄 헝가리인들은 피지배민족에서 지배민족으로 올라섰고 오스트리아 제국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이 되었다. 하지만 헝가리인들이 지배민족이 되자 다른 피지배민족을 억압하는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사르데냐 왕국→이탈리아 왕국[편집]
프랑스와 토리노 조약을 체결해 중부 이탈리아를 합병했으며 이로 북부 및 중부 이탈리아의 통일을 완수했다. 이후 주세페 가리발디가 나폴리 왕국을 정복하여 사르데냐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헌납하며 사르데냐 왕국이 이탈리아를 최종적으로 통일하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리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로이센의 편을 들어 오스트리아의 땅을 일부 뜯어먹었다. 물론 이탈리아 아니랄까봐 오스트리아군에게 발리고 있던 상황에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거의 깨부수고 콩가루를 얻어먹은 셈이긴 하다만.
프랑스 제2제국[편집]
나폴레옹 3세가 다스렸으며 베트남 응우옌 왕조를 복속시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식민지를 세우는 등 영토를 더 확장했으나 괜히 멕시코를 친프랑스화시키려다 실패하고 애꿎은 막시밀리아노 1세만 처형당하게 내버려둔 사건이 일어나자 황권이 수직 하락했다. 결국 전제 통치는 사그라들었고 입헌군주제 체제로 조금씩 전환되었다.
언론의 자유도 증진되었고 의회의 독립성도 증진되었다. 문화적으로는 1832년 6월 봉기를 배경으로 한 레 미제라블이 출판되는 등 문화적 발전을 맞이했다. 그리고 1864년 대파업으로 노동 봉기도 활발해졌다. 영국에서의 인터내셔널 설립으로 프랑스 내에도 많은 빨갱이들이 나타났다.
한편 병인박해를 트집 잡아 조선에서 병인양요를 일으켰으나 빠꾸를 먹기도 했다.
영국[편집]
이 글이 설명하는 대상은 해가 지지 않습니다. 스케일이 다른 땅따먹기와 색칠놀이에 얼룩진 알록달록 지구! Plus Ultra!!.....In God we trust!! |
세계 최강의 식민제국으로써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으며 짱깨를 조져 이권을 뜯어먹기도 했으며 일본의 내정에 개입해 에도 막부의 붕괴와 일본 제국의 수립을 돕기도 했다.
1863년 영국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영국의 산업화는 더더욱 급속화되었다. 잉글랜드 서북권의 산업도시 맨체스터와 리버풀에서는 노동자 문화의 형성으로 오늘날 영국 축구 리그의 전신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노동 문제가 더욱 대두되어 사회주의자들이 출현하기도 하였고 사회주의 연합인 제1인터내셔널이 출범했으며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출간하여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의 기초를 닦았다.
라이벌인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이 각각 총리로 취임하면서 영국 정계의 주요 세력으로 떠올랐다.
에스파냐 왕국[편집]
이사벨 2세 여왕의 무능한 통치로 인해 스페인 각지에서 봉기가 발발했으며 1868년에 프란시스코 세라노와 후안 프림이 쿠데타를 일으켜 스페인 왕실을 몰아내고 급진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았다. 이후 이탈리아 사보이 왕가의 아마데오 1세를 왕으로 옹립했다.
미국[편집]
북부 자유주와 남부 노예주의 갈등이 더욱 심해져 결국 에이브러햄 링컨의 대통령 당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부 주들이 탈퇴를 선언하면서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남부의 목표는 북부를 정복하는 것이 아닌 남부의 독립을 인정받는 것 뿐이었기에 전세는 북부의 힘이 더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부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앤티텀 전투에서 메릴랜드의 남군을 퇴각시키면서 얼마 후 링컨이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으며, 이로 인해 남부는 외교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몰렸으며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남부군을 격파하면서 북부가 승기를 잡았다.
이후 링컨은 게티즈버그 연설로 많은 사람들을 감명시켰으며 최종적으로 1865년 북부군이 남부를 멸망시키면서 남북전쟁은 종식되었으며 미국은 재통일되었다. 하지만 존 윌크스 부스가 링컨을 암살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북부 주민들은 남부를 혐오하게 되었으며 실제로 1877년까지 남부는 군사정권의 치하에 놓였다.
차기 대통령은 민주당의 앤드루 존슨이었으며 그는 남부에 대해 유화정책을 펼치며 해방된 노예들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렸으며 인종차별 단체들의 활동을 허가하면서 원성을 샀다. 한편 이때 미군의 함대가 조선에서 개항을 요구하다가 불탄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일어났다.
여하튼 인종차별주의자로 찍힌 존슨은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의 합의로 탄핵당할 뻔했으나 1표 차이로 살아났고 1869년 임기를 마쳤다. 차기 대통령으로는 율리시스 S. 그랜트가 당선되었다.
1860년대생[편집]
18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한국 근대사를 전부 겪은 헬조선 그자체다.
마지막 씹선비세대이자 개화세대다. 성균관 유생에서 의병부터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정치인까지 한 세대다.
20~30대 동안 신분사회, 유교사회에서 살다보니 마인드가 뚫린 대한민국 초 정치인세대인 1880년대생에 비해 틀딱이다. 그래도 당시로써는 유교틀딱레반들 마인드를 뒤집는 사상들을 주장해온 열린세대인 편이다.
30대때 대한제국 신민(?)이 됐다가 늙어서 일제시대를보내고 오래산 사람들은 헬조선 건국때까지 살았다. 6.25때까지 산 경우도있다.
1950년 극초반에 한국에 70917명이 살아있었다. 1960년에 2301명으로 줄었다. 1970년에는 15명으로까지 줄었다.
이 열다섯은 미개한 조선왕조가 나라의 문을 열고 개혁을 하고 대한제국이 됐다가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고 세계대전이 터져서 혼란스러워지다 광복한 다음 6.25 전쟁과 이승만의 실각, 박정희의 집권과 경제발전까지 다 본 분들이다.
역사의 산 증인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