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무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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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대 덴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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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42대 덴노 시호 몬무 천황/문무천황
文武天皇재위기간 697년 8월 22일 ~ 707년 7월 18일 궁호 없음 휘 카루(珂瑠) 성별 남성 출생일 684년 사망일 707년 7월 18일 부인 후지와라노 미야코(藤原宮子) 능호 히노쿠마노아코노오카노에능(檜隈安古岡上陵) 연호 다이호(大宝/대보)
게이운(慶雲/경운)황거 등원궁(藤原宮)
개요[편집]
일본 42대 천황. 참고로 부인인 후지와라노 미야코는 황후로 올라가지 못 하였으나, 대신 사후 고켄 천황에 의해 태황태후로 추숭된다.
즉위 및 치세[편집]
아버지인 오카노미야 천황이 천황의 자리를 잇지 못 하고 급사하자, 결국 할머니인 지토 천황이 그 자리를 대신하다가 문무가 장성하자 양위하면서 천황에 즉위한다.
703년, 쓰시마에서 금을 헌상받은 것을 계기로 다이호(大宝/대보)라는 연호를 제정하였으며, 15년만에 일본의 연호제는 다시 부활한다.
이후 그는 선황인 덴무 천황과 지토 천황의 율령제 개혁이 문제가 많음을 깨닫고 새로운 율령을 제작하는데, 이게 바로 다이호 율령(大宝律令)이다. 이 율령은 지금까지의 율령체제와는 다른 중국의 율령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또한 가장 완성에 가까운 율령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당나라 3성 6부제를 모방한 일본의 율령제인 2관 8성제가 이 때에 만들어진다.
이후 문무는 이 율령을 전국화시키기 위해 사람을 서해도를 제외한 모든 도로 파견하였고, 이후 모든 국(国)에 해당 율령을 따를 것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 다이호 율령은 중간중간 약간씩 바뀐 것을 제외하면 거의 그대로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유지된다.
704년 5월 10일, 황궁 위에 상서로운 구름이 나타난 것을 계기로 연호를 게이운(慶雲/경운)으로 개원한다.
다이호 율령의 내용[편집]
형법인 율은 당나라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민법 및 통치체제인 령은 당나라를 기반으로 일본 특유의 체제를 살짝 섞어서 제정하였다.
정치구조의 경우 천황을 중심으로 태정관(太政官)과 신기관(神祇官)의 2관을 두고 중무(中務)/식부(式部)/치부(治部)/민부(民部)/병부(兵部)/형부(刑部)/대장(大蔵)/궁내(宮内)의 8성을 설치하였다. 또한 공문서의 경우 남발방지를 위해 무조건 연호를 기재함과 동시에 인감을 찍고, 정형에 따라 작성된 문서 이외에는 수리하지 않는 등의 정리가 이루어졌다.
지방행정체제도 정비하였는데, 지방행정구역의 경우 도(道), 도 밑에 국(国), 국 밑에 군(郡), 군 밑에 리(里)로 정리되고(단 수도권은 도가 아닌 5개의 국으로 함), 국을 통치하는 국사(国司)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군을 통치하는 군사(郡司)에게도 일정한 권한을 주면서 일본 특유의 봉건체제의 기반이 완성된다.
연호[편집]
연호 이름 | 사용 시기 | 년수 | 개원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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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호(大宝/대보) | 701년 3월 21일 | 704년 5월 9일 | 4년 | 쓰시마국(対馬国)에서 보물을 현상받은 것을 계기로 개원 |
게이운(慶雲/경운) | 704년 5월 10일 | 708년 1월 10일 | 5년 | 상서로운 구름을 본 것을 계기로 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