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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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년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멸망한 후 건국된 망명왕조.
남송 때와 다르게 처참하게 망했는데 왕위 계승을 주장할 수 있는 황족들이 너무 많아서 개나소나 명나라의 계승을 주장하며 들고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득권층들이 목숨을 부지하려면 명나라의 부흥을 주장해야 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을 강제로 징집했고,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오합지졸로 청나라의 침공에 쉽게 깨졌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항쟁하며 버티던 영력제 정권도 청나라에게 궤멸당하고 영력제가 버마로 튀었으나 청나라의 미움을 받기 싫었던 버마 왕가가 영력제를 청에 넘기면서 오삼계가 영력제를 조졌다.
그리고 명 부흥운동을 이끌던 사람 중 정성공이라는 놈은 대만에서 네덜란드령 포르모사를 작살내고 그 땅에 정씨 왕국을 세워 1683년까지 존속했지만 결국 청나라가 여기까지 쳐들어와 멸망했다.
하지만 정씨 왕조의 영향력이 하도 세서 그냥 그들의 명예를 인정해주고 정씨 왕족들을 200년 간 우대해줬다. 이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고 대만을 먹자 그 우대는 끊겼다.
남송이랑 다르게 단명한 이유[편집]
1. [숭정제의 트롤] 숭정제가 북경에서 자살을 안하고 남경으로 런했으면 남송처럼 사직을 보존할수 있었다.특히 남경, 강남에는 친명 세력들이 충분했고 당시 후금,청나라 군은 몽골군 요나라군이 북송,남송치려고 오는거에 비하면 좆밥이었다. 만약 숭정제가 자존심 다버리고 송고종 마냥 런했으면 후계문제로 지들끼리 싸우지는 않았을테니 해볼만했다.
2. [황족들 집안싸움] 남송은 그래도 송고종 중심으로 지역호족과 귀족,황족들이 뭉쳐서 단합이라도 했지, 명황실은 개판 5분전이었다. 지들끼리 자립으로 우후죽순 다 일어났다. 결국 정성공 영력제를 제외한 나머지 얘들은 청나라한테 그대로 진압당한다.
3. [오삼계 트롤링] 말이 필요없다 이자성은 최소한 오랑캐 만주족들과는 손은 잡지않았고 북경에서 청군+오삼계군이랑 싸우다 패해서 쉴드라도 가능한데 오삼계는 시발 ㅋㅋㅋㅋ 그러고 나중에 삼번의 난으로 통수 치다 망한다.
4. [청나라 인재풀 및 대외상황] 인재풀은 ㅆㅅㅌㅊ 였고. 몽골은 웬만한 국가는 다 건드리고 다녀서 전선이 넓었고 거란은 서하+고려+여진+몽골+남송 이라는 5중전선으로 병력을 분산배치했으나 청나라는 그런거 없었다. 조선의 조기 서렌으로 통수 맞을 염려가 사라졌고, 몽골은 이당시에 개병신이었다. 청나라는 조선의 조기서렌으로 조선 전선은 정리가되 통수 맞을 염려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