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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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황해도지역을 어떻게 통치했는지에 대해 말이 많다.
신라의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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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량주(歃良州)/양주(良州) | 사벌주(沙伐州)/상주(尙州) | 청주(菁州)/강주(康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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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山州
개요[편집]
553년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장악한 뒤 지금의 하남시 춘궁동 이성산성에 설치했던 신주(新州)에서 시작되었으나 4년뒤에 치소가 서울강북지방으로 옮겨져 북한산주(北漢山州)로 개명되고 이후에도 또 치소가 옮겨져 남천주(南川州)로 옮겨졌다가 604년 잠깐 북한산주로 옮겨졌다고 처음 설치했을 때처럼 하남시 춘궁동으로 옮겨져 한산주로 고정되었다.
본래 경기도와 남한강수계에 해당하는 충청북도일부지역만 담당했지만 고구려가 좆망한 뒤 황해도까지 관할범위가 늘어남에 따라 신라에서 가장 넓은 주가 되었다.
북쪽으로 발해땅이던 평안도와 접했다. 하지만 발해가 서경압록부 관할지역인 압록강유역을 빼면 평안도 전역을 완전히 버린땅 취급을 했기 때문에[1]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757년 경덕왕에 의해 한주(漢州)로 개명되었다. 주 치소는 상기한 대로 하남시 춘궁동 이성산성에 두었고 지방군으로 남천정(南川亭), 골내근정(骨乃斤亭)과 5소경중 하나인 중원경(中原京)을 두었다. 처음 개명되었을 때는 1소경 27개군 46개현을 두었지만 헌덕왕대 황주군. 중화군일대에서 취성군이 설치되면서 28개군 49개현으로 늘어났다. 초창기엔 지금의 경기도, 충북, 휴전선 근처의 동네들만 겨우 통제했지만 나당전쟁때 당나라군의 공격, 고구려유민의 월남으로 개판된것을 200여년가까이 수습해가면서 황해도까지 지배지역을 넓혔다. 하지만 얼마못가 후삼국시대 크리터져서 도로아미타불이 됬지만.
경주하고 졸라게 멀리 떨어져있었다보니(現 경주에서 하남시까지 259km), 경기도지역인 한산주 남부지역도 저당시엔 최전방으로 취급했다고 한다. 지금 KTX끊어서 타도 3시간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저땐 졸라 오래걸렸겠지. 암튼 수도와의 애미없는 거리때문에 통제력이 매우 약했고 신라 조정이 망하면서 9개주중 지역군벌들이 가장 먼저 등장한 주가 되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쓸 때, 당대기준으로 신라의 그것을 재정비한 행정구역대로 비정했다. 나도 그렇게 했다. ㅎ
행정구역[편집]
- 한주(漢州) : 주의 중심지. 남천정을 관할했다.
- 중원경(中原京)
- 괴양군(槐壤郡)
- 소천군(泝川郡) : 골내근정을 관할했다.
- 흑양군(黑壤郡) : 후삼국시대에 진주(鎭州)로 개명되었다.
- 개산군(价山郡) : 후삼국시대에 죽주(竹州)로 개명되었고 기훤이 차지하게 되었다.
- 백성군(白城郡)
- 수성군(水城郡)
- 당은군(唐恩郡) : 콩진호의 종씨인 남양 콩씨 홍유가 차지했다.
- 율진군(栗津郡)
- 장구군(獐口郡)
- 장제군(長堤郡)
- 한양군(漢陽郡)
- 내소군(來蘇郡)
- 교하군(交河郡)
- 견성군(堅城郡)
- 철성군(鐵城郡) : 닉 퓨리가 자신의 홈그라운드로 삼은 그 철원이다.
- 부평군(富平郡)
- 토산군(兎山郡)
- 우봉군(牛峯郡)
- 송악군(松岳郡)
- 개성군(開城郡)
- 해구군(海口郡)
- 영풍군(永豐郡)
- 해고군(海皐郡)
- 폭지군(瀑池郡)
- 중반군(重盤郡)
- 서암군(栖嵒郡)
- 오관군(五關郡)
- 취성군(取城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