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남양군

조무위키

南陽郡

한국 남양군[편집]

파일:초딩물로켓.PNG 문서가 물에 젖었습니다.
살면서 문명에 기여한 거라고는 과학의 날에 만든 물로켓밖에 없으면서
허구한 날 개소리나 하면서 좆부심으로 무장한 몇몇 문무새 이과 새끼들이 다녀갔습니다.
물 묻은 손으로 문서를 만지는 바람에 문서가 젖었습니다. 아는 게 없으면 병신이란 걸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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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화성시 서부 해안지역에 있었던 군. 콩진호의 성씨인 남양 홍씨가 시작된 곳이다.

지금의 서신면 서부지역에 당항성이라는 성이 있는데, 이성은 백제때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당항성은 삼국시대 ~ 통일신라까지 김치 - 짱깨간 해상무역에서 중요한 무역거점 역할을 했다.

백제는 모르고 고구려는 당성군(唐城郡)이라고 하고 신라는 경덕왕때 당은군(唐恩郡)이라 했다. 고려초 당성군으로 개명했다.

현종치세에 수주의 속군이 되었다가 나중에 인주의 속군으로 옮겨졌다가 명종때 감무가 설치되었다. 충렬왕시기 남양사람 홍다구(洪茶丘)가 몽골놈들 후장을 너무 잘빨아 정동행성 우승이 되었으므로 익주(益州), 강녕도호부(江寧都護府)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충선왕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익주목에서 강등되어 남양부가 되었다.

조선시대땐 신증동국여지승람기준으로 부내면(府內面)[1], 화척면(禾尺面)[2], 저팔리면(楮八里面), 둔지산면(屯之山面), 신리면(新里面), 송산면(松山面), 미지곶면(彌之串面), 분향면(分鄕面), 마도면(麻道面), 서여제면(西如堤面), 세곶면(細串面), 수산면(水山面), 쌍수리면(雙守里面)의 13면이 있었다.

쪽바리스탄시기 부군면 통폐합을 하면서 수원군에 통폐합되어 사라졌다.

수원광역시 떡밥으로 부활?[편집]

본 문서는 향후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를 담고 있습니다.
이 문서의 내용은 디시 친구들이 미래에서 흘러들어온 전파를 수신하여 사실에 가깝게 적었습니다. 하지만 전파의 상태가 워낙 나빠 실현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즘도 심심하면 수원, 화성, 오산 지역이 통합하여 수원광역시가 되는 떡밥이 계속 나돌고 있다. 만약 현실이되면 수원광역시 남양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도로는 대충 이렇게 될 것이고

인구는 대충 이렇게 된다.

읍면 인구[3] 비고
남양읍 41,246
우정읍 17,423
향남읍 85,481
갈담면 4,689 왜 이렇게 예측됐는지는 여기를 참고
매송면 5,381 천천리 인구 제외. 마찬가지로 여기를 참고
비봉면 5,825
마도면 6,902
송산면 10,931
서신면 7,113
팔탄면 9,899
장안면 10,254
양감면 4,008
정남면 11,347
합계 220,499 -

중국 남양군[편집]

이 문서는 대륙의 기상이 묻어있다 해.
너무 웅장할 수 있으니까 글 읽을 때 주의하라 해.

ㄴ지금 난양시도 지금 경북 + 경남다합친수준으로 거대한데 남북조시대 이전까진 샹양 시, 쑤이저우 시, 핑딩산 시 까지 쳐먹고 있었으니 진짜 대륙의 기상이다.

지금의 중국 허난성 난양시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초나라가 화북지역으로의 진출을 위해 따먹은 곳으로 허난성의 다른 지역과 후베이성과는 산으로 격리된 분지지역이다. 초나라는 이렇게 고립된 지역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허난쪽으로 ㄷ자모양의 장성을 쌓았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 최초의 장성이다.

기원전 292년(소양왕 25년), 백기가 초나라를 개박살내고 완을 점령한 뒤 272년(소양왕 35년) 남양군을 설치했다.

한나라때는 낙양이랑 가장 가깝고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라서 37개라는 경이적인 클라쓰의 속현을 가지고 있는 매우 거대한 군이었다. 지금기준으론 시촨현을 제외한 남양군 전역, 핑딩산 시 , 후베이성 샹양시, 후베이성 쑤이저우 시 까지 차지한 대륙적인 행정구역이었다. [4]

후한시기엔 여전히 교통의 요지에 수도 배후지역이라 37현 243만 9618명의 주민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후한말 삼국지시대엔 주요 전장이 되었기에 유명한 현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치소인 완현과 신야현, 그리고 가 나중에 양양군으로 분리독립시키는 양양현이 대표적이었다.

가 형주를 일시적으로 장악했을때 군의 서부지역이 남향군, 군의 남부지역대부분이 양양군으로 독립되면서 군역이 축소되었다. 그리고 영가의 난이후 화북에서 내려온 수많은 난민들이 남양군에 정착했는데, 이러면서 여러개의 군이 신설되고 인구도 폭증했다. 결국 한대 남양군지역으로 옹주(雍州)가 신설되었다.

  1. 음덕리면(陰德里面)과 같은듯.
  2. 화척지면(禾尺只面)과 같다.
  3. 2020년 10월 기준이다.
  4. 사실 위성지도를 보면 양양, 남양지역은 서로 평지로 연결된 분지지형임을 알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