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충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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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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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군 괴산군 파일:단양군로고.gif단양군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음성군 증평군 진천군
참고 밑줄: 도청소재지
한국의 행정구역, 청주시 행정구역
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입니다.
이곳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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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오른쪽 주인공의 고향이다.

맥도날드버거킹이 1개씩 뿐이고 KFC는 없다. 시발 이게 대도시냐??
대체 어떤 놈이 충주를 대도시라 하냐? 충북인구의 절반 이상을 청주가 먹어서 다 좆만하다 시장이 유튜브만 관리하고 동네는 관리 안함
전국 어디를 가든 2시간대밖에 안걸린다는 ^교통의 중심지^라면서 정작 동네 교통은 씹창 오브 씹창인 개병신동네
충주시는 '동지역'만 해당된다. 나머진 다 허접ㅋ 좆밥ㅋ

충주시

忠州市

chungju City

파일:충주시 위치.PNG
충주시 위치
광역시도 충청북도
하위 행정구역 1읍 12면 12동 26법정동
인구 213,075명(내국인 208,350/외국인 4,725)
(2016년 12월 기준)
행정면적 983.95 km²
시장&국회의원 조길형 & 이종배
시청 소재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충청북도 충주시 으뜸로 21
사이트 https://www.chungju.go.kr

개요[편집]

청주보다도 더 호구같은 호구동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게 특징이다. 특히 제천 쪽 사면은 험해서 다릿재터널 뚫리기 전에는 1시간 넘게 걸리던 동네란다.

물론 저 지형덕에 조선시대까진 군사요새로서 잘나가긴 잘나갔다.

도로명주소 존나 불편하다 앰

충북에서 면적이 가장 큰 동네다.

2등은 청주 3등은 제천인데 특이하게 시 3개가 톱3 다먹네

역사[편집]

신석기 시대 유물과 유적이 가주동, 풍동, 칠금동, 중앙탑면 탑평리, 금가면 월상리, 동량면 용교리등에서 발굴되었다. 마한에 속했다가 백제가 쳐먹으면서 백제땅이 되었고 낭자곡성(娘子谷城)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중이다.[1] 백제가 충주를 지배했던시절 만든 제철소의 흔적이 칠금동에서 발견되서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고구려가 남진정책을 실시하면서 고구려의 땅이 되었고 이때부터 국원성(國原城), 혹은 완장성(薍長城)으로 불렸다. 481년에 충주 고구려비를 때려박았다. 그러고 진흥왕이 고구려를 복날 개패듯이 후드려패면서 신라땅에 편입되었다. 557년 국원소경(國原小京)으로 승격되었고 신라 6부의 귀족들이 사민되었고 엄청나게 많은 무기와 병사들을 때려박았지만 제대로 군사요새가 된 것은 673년 석문전투에서 패배한 뒤 신라가 국가방어를 위해 국원성을 쌓으면서부터였다. 742년 신라의 중앙이라고 중원경(中原京)으로 승격되었다.

지금의 이름인 충주는 940년 처음 만들어졌고 983년 최승로의 건의로 설치된 12목중 하나로 선정, 충주목을 승격되었다. 995년 성종이 10도 12절도사를 파견할 때 창화군(昌化軍)절도사가 파견되었고 중원도에 속했다. 1012년 도사가 안무사로 바뀌었고 1018년 전국에 8목이 설치될 때 충주목이 되었다. 고려중기 양광도가 신설되면서 양광도에 편입되었고 괴주, 장연현, 음성현, 청풍현, 음죽현등을 속현으로 두었다. 몽골 제국이 쳐들어왔을 때 김윤후가 이끌던 의병들이 야고(也古)가 이끄는 적병을 무찔렀기 때문에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되었으며 관할 소였던 다인철소는 대몽항쟁의 공으로 1255년 익안현(翼安縣)으로 승격되었다.

1281년 파괴된 국원성을 개축하면서 초석에 연꽃무늬를 그렸고 이때부터 예성(蘂城)이란 이명을 얻게 되었다. 1395년 충청도에 속하게 되고 계수관(界首官)이 되었다. 1449년 관찰사의 소재지가 되었다. 1458년 충주진(忠州鎭)으로 바뀌고 영춘, 단양, 제천, 청풍, 괴산, 음성, 연풍등 7개군현의 군정을 관할했다. 1550년 을사사화로 인해 유신현(維新縣)으로 강등되었다. 1602년 감영이 공주로 옮겨졌다. 이후 1896년 8월 4일 충청도가 충청남도, 충청북도로 분리되면서 충청북도에 편입되었고 충청북도의 수부가 이곳에 만들어졌다.

1906년 통감부의 월경지 정리정책에 따라 금목면, 법왕면이 음성군으로 옮겨졌다. 2년뒤 도청이 청주로 옮겨졌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때 감물면, 율지면이 괴산군에, 소파면, 사이면이 음성군에, 덕산면이 제천군으로 분할편입되었다. 충주의 중심지에서 마개조되면서 등장한 읍내면은 1917년 충주면으로 개칭, 1931년 4월 1일 충주읍으로 승격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농촌지역이 중원군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1995년 1월 1일 도농복합시가 출범함에 따라 도농통합 충주시가 만들어졌다. 1997년 6월 25일 문화동에 있던 시청이 금릉동으로 옮겨졌다.

교통[편집]

버스[편집]

시내버스 번호 777, 888번은 시내순환이고 999번은 교통대행이다. 근데 정확히 어딜 도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평생 충주살았는데 딱 한번 봤다.

그외로 100번대는 주덕쪽으로 가고 200번대는 수안보로 간다. 충주 시내버스지만 제천시에도 들어오는 위-엄을 보여주신다.

300번대는 목행동, 연수동이었나?

칠금동에 롯데마트와 합친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다. 시설이 애미뒤지게 후졌다. 동서울터미널보다도 후졌다. 여름엔 좆같이 더우며 겨울엔 좆같이 춥다. 화장실 가고싶으면 2층 롯데마트 화장실 가라

쓸데없이 롯데리아가 한 건물에 2개나 있다.

여기 버스가 발전 못하는게 택시가 상권을 장악하고 있어서라고 한다.

철도[편집]

중부내륙선
수서광주선(미개통) (수서 · 모란 · 경기광주 · 부발)
중부내륙선 [판교 · 부발]¹ · 아미 · 가남 · 감곡장호원 · 앙성온천 · 금가 · 충주 · (살미 · 수안보 · 괴산 · 문경 · [점촌 · 상주 · 김천]²)
¹) 경강선 선로 공용 구간 / ²) 경북선 선로 공용 구간


앙성온천 ~ 충주

충북선
조치원 · 오송 · 미호 · 정봉 · 서청주 · 청주 · 정하 · (북청주) · 오근장 · 청주공항 · 내수 · 금암 · 증평 · 도안 · 문암 · 보천 · 상당 · 음성 · 소이 · 주덕 · 달천 · 충주 · 목행 · 동량 · 산척 · 삼탄 · 공전 · 원박 · 연박 · 봉양 · 제천

주덕 ~ 삼탄

주덕읍에 주덕역이 있고 국립대 앞인 한국교통대 앞에 달천역이 있다. 다만 달천역은 학생들 밖에 안 탄다고 폐역당했다.

칠금동 바로옆 봉방동에 충북선 충주역이 있다. 여기 또한 시설이 애미뒤지게 후졌다. 기차타려면 건널목 건너야된다 구름다리 따위 없다. 최근에는 중부내륙선 공사로 역사가 증축되었다. 이제 건널목 건널 필요 없다.

단월동에 수도권과 문경새재를 잇는 중부내륙선이 놓일 예정이라고 한다. 중부내륙선의 역은 충주역과 함께 앙성면에 역 하나, 2023년에는 살미면, 수안보면에 놓인다.

문화, 주변시설[편집]

서비스 시설[편집]

충주여중 바로 앞에 충주경찰서가 있고, 바로 옆에는 시립도서관이 있다. 여성배려 ㅍㅌㅊ?

건대병원이 있다. 코피나서 가봤더니 링거 꽃아주더라. 근데 피부과가 없어서 성형외과에서 다 처리한다.

충주시의 ^유일한^ 맥도날드가 여기 앞에 있다.

문화시설[편집]

교현동에 충주시립도서관이라고 거대한 온실같이 생긴 건물이 있다.

성서동에 메가박스만 두개가 있다. 근데 둘다 존나 작으니 기대는 하지말자. 연수동에 씨네큐 하나 생겼다.

볼거리[편집]

중앙탑면에 중앙탑이 있다 - 역사나 고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가보도록 하고, 지나가는 길이라면 그냥 지나가지 말고 차 세우고 사진한방이라도 찍고 가는걸 추천한다. 탑이 상당히 멋있거든...

제천의 송계계곡을 충주 시내버스 타고 갈수있다

가는길에 탄금대와 세계무술공원이 있다. 근데 다들 반기문공원이라고 부름. 사실 공사할때도 반기문 이름을 좀 많이 팔긴 했다.

성서동쪽에 반기문 생가 복원 건물이 있다. 진짜 할짓이 없다면 한번쯤 가보자.

수안보온천이 있는데 일부러 갈 만한 곳은 아닌듯 함. 문강유황온천이나 가라.

수주팡봉이란곳에 성능 좋은 글램핑장이 있다.

정치[편집]

6:4 정도로 쌍도 맹키로 극단적이진 않지만 대체적으로 보수성향이 우세하다.

사실 이 동네는 이동네 시장과 국회의원을 지냈던 민선 5-7기 충청북도지사였던 이시종 빼고 민주당을 별로 안좋아한다. 이시종은 여기서 3선 시장과 재선 국회의원을 했고, 충청북도에서 3선 도지사를 한 7전 7승의 진정한 선거의 제왕이다.

근데 19대 대선에선 3%차로 문재인이 이겼다.

ㄴ 19대 대선은 경북괴랑 경남서부 빼고는 다 문재인이 이겼으니까 당연할지도..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제7회 지방선거에서는 충북의 11개 시군 중 단 4곳에서 자한당 출신 지자체장이 뽑혔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충주다.

경제[편집]

충청북도에서 청주 다음으로 가장 잘 사는 동네가 충주다. 머 그닥 나쁘지는 않다.

과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청주와 맞먹을 정도로 제법 잘 살았다. 그때당시엔 충주에 있는 남한강 수운교통을 통해 물자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충주가 제법 발전해나갔기 때문.

하지만 왜정시대부터 쪽바리새끼들이 충주를 갖다버리고 청주를 무지막지하게 키워줌으로써 지금은 청주와 충주가 넘사벽 차이로 벌어졌다. 청주는 광역시 후보로도 크게 발전한 반면 충주는 개좆망 일보직전이다.

행정구역[편집]

문서 최상단에도 써 놓았지만 충주역과 시청을 중심으로 몰려있는 도심지인 '충주동'만이 충주다. 나머진 진짜 아무것도 없는 개깡촌이다.

칠금금릉동[편집]

칠금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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漆琴洞

본래 충주군 북변면지역에 속했는데, 부군면 통폐합때 북변면 대리(琴臺里)[2], 신촌리, 지동(枝洞)[3], 능암동, 봉계동 일부를 합하여 칠금리를 만들고 충주군 읍내면에 편입시켰고 읍내면따라 충주의 도시지역이 되었다.

탄금대 전투가 벌어진 탄금대(彈琴臺)가 舊 금대리지역에 있다. 이 탄금대는 신라로 귀화한 가야출신 악사 우륵이 제자를 육성하고 대문산 풍취를 상미하고 산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탔다고 하여 탄금대라 했다.

2016년 칠금동에서 한성백제시기 제철소유적이 발굴되어 지금도 발굴조사가 행해지고 있다. [1]

롯데마트와 건물을 공유하는 공용버스터미널이 있다. 본래 문화동에 있었으나 교통문제로 그쪽으로 옮겼다고 한다. 노오란 건물인 한국전력충주지사가 있다.

지금은 급식충의 성지가 되었다. 칠금동에 탄금초, 칠금초, 탄금중, 칠금중이 있다.

이중 탄금초는 티볼도 잘하고 정구부가 전국대회 1등을 했다고 한다.(사실 급식충 대회라서 평타만 잘쳐도 도 대회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16년도부터 응디시티를 들으면서 정구를 붂딲하면서 쳤고 19년은 고인물이 다 빠져서 좆된다나?

칠금초 애들은 귀엽게 생겼다.

탄금중 급식충 새끼들이 담배도 피노 ㅋㅋㅋㅋ 빡빡이 새기 하나 있는데 븅신 닮았다.

금릉동[편집]

金陵洞

칠금동처럼 본래 충주군 북변면지역이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김제동, 호암동, 칠지동일부, 연원동, 능암동 일부가 스까되어 금릉동이 되어 읍내면으로 편입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시가 분리될 때 금'능'동으로 개명되었다가 2007년 1월 1일 공식명칭이 금릉동으로 돌아갔다. 1997년 6월 25일 충주시청이 옮겨졌는데 이 시청은 KB국민은행 금능지점 옆길로 가면 나온다.

다니는 차도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도로는 쓸데없이 넓다.

호암직동[편집]

호암동[편집]

虎岩洞

충주군 남변면지역이었는데 부군면 통폐합때 관주동, 도좌동, 대제동 일부를 합하고 마을 뒷산에 호랑이모양의 바위가 있다하여 호암리가 만들어졌고 충주군 읍내면에 속했다.

급식충의 성지 2. 국민체육센터와 수영장이 있다. 포고급식충 새끼들이 많다. 학교건물만 6개다

빅-우려맨이 졸업한 충주고등학교가 여기에 있는데, 이 학교 후문에 그의 이름을 딴 길이 있고 그의 이름을 딴 기숙사도 있다. 우려맨 말고 이학교의 아웃풋다운 아웃풋이 박성웅과 시인 신경림뿐이다... 나머지 이경영, 레밍, 이인영이 있지만 흑역사에 가깝고...

직동[편집]

直洞

충주군 남변면에 속했다. 부군면 통폐합 때 구운리와 발치를 스까해서 곧은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의 지형에 이름을 따와 직동이 설치되었고 충주군 읍내면에 편입되었다. 1962년 7월 2일 호암동과 함께 연합동으로 통합되었다.

성내충인동[편집]

충주의 옛 시가지가 있던 지역으로 대부분이 남변면에 속했다.

성서동[편집]

城西洞

충주의 관아가 있던 지역으로 관아터가 관아공원으로 남아있다.

충주군 남변면과 북변면사이의 지역 + 부청소재지였는데, 부군면 통폐합때 남변면의 일부동, 이부동, 삼부동, 남부동, 북변면 동문리, 내리, 대가미리 일부를 섞어 충주읍성의 금정이 되었다. 이 금정은 해방이후 1946년 왜식동명 변경에 의해 충주읍성의 서쪽이라 해서 성서동으로 개칭되었다.

지금은 조선시대 관청소재지였던 곳들 상당수가 으레그렇듯 좆망해서 메가박스아니면 다 뒤졌을 병신동네가 되었다. 현대 지하상가도 다 쳐 망해서 출입문마저 걸어잠군상태다. 언뜻보면 90년대 부산같이 존나 혼잡하고 드러운 곳이다.

가는길 골목에 충주의료원 폐건물이 있다. 근데 충주시 시발년들이 철거할 생각은 안하고 오히려 병원주차장을 공영주차장으로 쓰고있다.

근데 철거도 안할거면서 건물은 또 막아놓는 심리가 뭐임? 귀신이라도 나오냐?

성내동[편집]

城內洞

1931년 충주면이 읍으로 승격된 뒤 4개의 정으로 분리되었는데, 이지역에 본정(本町)이 설치되었다. 1946년 왜식동명변경정책때 충주성의 안쪽이라 해서 성내동이 되었다.

충인동[편집]

忠仁洞

1931년 충주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4개의 정으로 분리되었을 때 이지역은 대수정이 되었다. 이중 1구가 1946년 왜식동명 변경정책에 의해 충인동으로 개명되었다.

충의동[편집]

忠義洞

1931년 충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을 때 충주읍은 4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는데, 이중 이지역은 대수정이 되었고 이중 2구가 1946년 왜식동명 변경정책에 따라 충의동으로 개명되었다.

연수동[편집]

連守洞

충주군 북변면에 속했는데, 부군면 통폐합 때 연원(連原), 동수동(東守洞), 대가미리, 칠지동의 일부를 스까하여 연수리가 만들어졌고 충주군 읍내면에 편입되었다.

충청도지역의 역도중 하나인 연원도(連原道)의 찰방관이자 중심인 연원역(連原驛)이 있었고, 연원역찰방의 동편을 지키는 망대가 있던지역을 동수라고 칭했다. 이 연원역은 14개역을 속역으로 두고 있었다.

힐스테이트, 리슈빌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들어선 택지지구는 신연수동이라 불리고 있는데 연수동은 국원초랑 아파트만 있고 신연수동에는 술집만 득실득실하다.

용산동[편집]

龍山洞

충주군 남변면 지역이다. 부군면 통폐합 때 서부동, 달신리, 대제동, 일부동, 남부동, 호암리 일부, 이부동 일부가 합해지고 충주군 읍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이름은 지금의 담배인삼공사자리에 있던 연못에서 용이 승천했다하여 용산동이 명명되었다. 1962년 7월 8일 1구, 2구, 지곡동, 빙현동, 역전동으로 분리되었고 이중 1구와 2구가 1969년 용산동으로 합해졌다.

용산초가 있는데 최근에 용산동 먹자골목이 활성화되면서 용산동에 사는 주민들이 주차난을 겪고있다. 건물주놈들이 1층에는 상가짓고 2,3층에는 빌라를 짓는 바람에 주차공간이 부족해서 먹자골목에 차 끌고 먹으러 온 사람들이 주차 할 곳이 없자 주변에 있는 빌라 전용 주차장에 주차하는 미친년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간간히 주차문제때문에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있는 공간에는 전부다 1층엔 상가 2층엔 빌라를 쳐지어놔서 주차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문화동[편집]

文化洞

1962년 7월 2일 용산동이 1구, 2구, 지곡동, 빙현동, 역전동으로 분리되었는데, 이중 역전동이 1992년 3월 1일 선진문화시민의 자긍심을 높이자면서 문화동으로 개명되었다.

이마트와 시내버스 차고지가 있다. 뭔가 번쩍거리는게 많은데 존재감은 없다. 터미널이 이사가면서 주변 상가가 싹 다 뒤진채로 몇십년간 놓여있다가 요즘은 공공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부활하고 있다

봉방동[편집]

鳳方洞

본래 충주군 북변면 지역이었다. 부군면 통폐합 때 방장골<ref충주역일대로 들가운데 샘이 있었으며 방씨집성촌이 있어 방정동이라고도 불렸다.</ref>, 금대리, 대가미리, 칠지리, 신촌리, 봉계동[4] 의 일부가 병합되었고 봉방리라 명명되어 충주군 읍내면에 편입되었다. 1956년 7월 8일 1구와 2구로 분리되었다가 1962년 7월 2일 원상복귀했다.

충주역이 있다. 모텔♥♥이 아주 많다.

달천동[편집]

달천동[편집]

達川洞

부군면 통폐합때 충주군 남변면 송림리, 이부동, 달신리, 단신리의 각 일부를 스까하여 만들어졌고 충주군 읍내면에 편입되었다. 1998년 9월 30일 단월동과 달천동이 통폐합되었다.

충주 시내에 속하긴 하지만 사실상 대소원면에 가깝고 시내까지 가는길은 무척이나 험하다. ~동 이라고 하기엔 옆동네 대소원면보다 더 깡촌이다.

단월동[편집]

고려때 단월부곡(丹月部曲)이 있었는데 조선때 역으로 바뀌었고 면리제가 실시되면서 남변면에 속했다. 부군면 통폐합때 남변면 상월리, 하월리, 송정리, 단신리 일부가 스까되어 단월역의 이름을 따 단월동이 되었다.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가 있다. 학교앞에 논밭, 옆에는 술집밖에 없다.

살미면[편집]

乷味面

면적 91.55㎢. 면소재지는 세성리.

세성리(洗星里), 문화리(文化里), 재오개리(才五介里), 무릉리(武陵里), 신당리(新堂里), 공이리(公耳里), 내사리(乃沙里), 용천리(龍川里), 향산리(香山里), 설운리(雪云里), 신매리(新梅里), 문강리(文江里), 토계리(土界里)의 13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광반석부곡(廣反石部曲)이 있었고 조선시대 부곡이 폐지된 뒤 사을미곡(沙乙未谷)이 되었다. 이후 사을미면(沙乙未面)이 되었는데 1895년 살미면이 되었다. 부군면 통폐합 때 연풍군 수회면의 강진, 문산(문강리), 도랫말, 솔안, 자사골, 왕다래기(토계리)지역과 유등면의 팔봉리 일부를 병합했고 목벌리 일부를 중민동에 옮겼다. 1985년 충주댐의 건설로 내사, 문화, 신당, 무릉, 재오개, 목벌, 신매의 7개리의 일부지역이 수몰되었다...

근처에 야비군 훈련소가 있다.

수안보면[편집]

水安堡面

면적 73.40㎢. 면 소재지는 온천리.

온천리(溫泉里), 안보리(安堡里), 화천리(花泉里), 사문리(寺門里), 미륵리(彌勒里), 고운리(古雲里), 중산리(中山里), 수회리(水回里)의 8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상모현(上芼縣)이었는데 1018년 장연현(長延縣)으로 개명되어 지금의 괴산 연풍면지역인 장풍현(長豐縣)과 함께 충주의 속현이 되었다. 이후 1394년 장풍현에 장연현이 통폐합되어 감무가 파견되었고 1403년 연풍현(延豐縣)으로 개명되었다. 1476년 수회촌(水回村, 現 수회리)이 편입되었는데, 수안보면은 장연현(고사리면(古沙里面)), 수회촌이 있던 지역이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고사리면과 수회면이 통폐합되고 옜 상모현의 이름을 따 상모면이 되었다. 연풍군이 괴산에 통폐합되었기 때문에 본래 괴산군에 속했지만 1963년 1월 1일 충주의 농촌지역인 중원군으로 옮겨졌다. 이후 2005년 4월 1일 수안보 온천의 이름을 따 수안보면으로 개명되었다. 수안보 온천은 60~70년대에나 잘나갔지 지금은 여기갈빠에 동네목욕탕에 가는게 훨씬 더 좋을 정도로 폐급이다. 상모면이 수안보면으로 바뀌었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틀딱들이 거기하면 수안보지!하고 머가리없이 바꾼것으로 보인다.

미륵리에 미륵대원지(미륵리사지)가 있는데 여기서 절터 구경하고 하늘재까지 올라갔다오는것도 괜찮다.(참고로 하늘재 넘어가면 경북 문경이다.)

240번 버스를 타고 30분정도 가면 나온다. 사실 버스타고 가본적 없어서 잘 모름. 가보면 돌아다니는 차는 없고 주차된 차들만 즐비하다. 길목 전체가 공영주차장 수준.

국토종주하는 사람들이 주로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주말이나 공휴일 같은경우 관광객들이 넘쳐 방을못구해서 노숙해야하는 불상사가 생길수 있으므로 국종시 주말이나 공휴일에 머무는건 다급적 피하는것을 추천한다.

옛날에 와이키키 호텔이 있었는데 망했다. 건물도 그대로 남아있으므로 공포체험 하고싶으면 굳이 말리진 않겠으나 책임은 안진다.

주덕읍[편집]

周德邑

면적 48.56㎢. 읍 소재지는 신양리.

신양리(新陽里), 창전리(倉田里), 대곡리(大谷里), 삼청리(三淸里), 신중리(新中里), 화곡리(花谷里), 사락리(社樂里), 장록리(長菉里), 덕련리(德蓮里), 당우리(堂偶里), 제내리(堤內里)의 11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버드나무가 많다고 명명된 주류면(周柳面)과 덕면(德面[5]), 신니면 수청동의 일부를 합하여 주덕면이 되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땐 창전리에 면사무소가 있었다.

1933년 신양리로 면사무소가 옮겨졌고 1987년 12월 10일 신양리에서 면사무소가 근처로 쪼끔 옮겨졌다. 1995년 3월 2일 읍으로 승격되었다.

대개 요도천발 평야지역인데 견학리가 면남북 중앙을 반쯤 가른 모양세이다. 북부경계에는 문성자연휴양림을 비롯한 산지가 있고 남부지역의 경우 각각 대곡리와 삼청리를 통해 소이면 대장리, 후미리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 사이엔 산이 있고 남동쪽엔 어래산이 있다.

어래산은 배극렴이 은거했는데 이성계가 데려가겠다고 삼고초려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사락리에 충강곡이상급신도비, 삼청리에 효자문과 단군전이 있다.

잉여동네다. 기업도시가 들어섰다고 한다.

대소원면[편집]

大召院面

면적 62.04㎢. 면 소재지는 대소리.

대소리(大召里), 금곡리(金谷里), 장성리(長城里), 만정리(萬井里), 두정리(豆井里), 탄용리(炭用里), 매현리(梅峴里), 문주리(文周里), 검단리(檢丹里), 완오리(完五里), 본리(本里), 영평리(永坪里)의 12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대소원면 금곡리 지역에 다인철소(多仁鐵所)가 있었는데 1255년 주민들을 몽골군을 격파했기 때문에 익안현(翼安縣)으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조선건국이후 속현이 정리되면서 깔끔하게 없어졌다.

1914년 이안면(利安面)의 14개리[6] 와 유등면(柳等面)의 18개리를 스까 13개리로 개편하고 이류면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하문리가 괴산군 불정면으로 옮겨졌고 2012년 1월 1일 조선의 역원인 대소원의 이름을 따 대소원면이 되었다.

중북부는 요도천리 흐르면서 평야가 만들어져있는데 남부지역은 그냥 산지이다.

대소리에 마산봉수, 문주리에 석탑과 석불좌상이 있다.

달천역이 있지만 교통대 학생들 밖에 안 타니 폐역당했다.

한국교통대학교 충주캠퍼스(구 충주대학교)가 있다. 학교앞에는 원룸과 술집, 각종놀거리가 가득하며 매우 시끄러운 동네이다. 또한 조금만 가면 논밭이 있는 곳이다.

중앙탑면[편집]

中央塔面

면적 48.09㎢. 면 소재지는 탑평리.

탑평리(塔坪里), 가흥리(可興里), 하구암리(下九巖里), 누암리(樓巖里), 봉황리(鳳凰里), 장천리(長川里), 용전리(龍田里), 창동리(倉洞里)의 8개리를 관할한다.

가흥리를 필두로 하여 봉황, 장천지역엔 남한강 수상교통의 요지인 가흥창(可興倉)과 가흥역(可興驛)이 있었다. 부군면 통폐합 때 금천면(金遷面) 22개리와 가흥면(可興面)의 16개리와 복성면(福城面)의 죽암리 일부를 스까 가금면을 만들었다. 이후 2014년 2월 1일 중앙탑의 이름을 따 중앙탑면이 되었다.

남한강을 기준으로 충주 금가면, 엄정면, 소태면과 접하고 본면은 산으로 마을이 분리되있다.

탑평리에는 중앙탑면의 어원이 된 중앙탑, 용전리엔 충주 고구려비, 창동리에 마애불 오층석탑, 누암서원, 봉황리에 마애불상군, 누암리에 고분군, 장천리의에 장미산성이 있다.

금가면[편집]

金加面

면적 33.78㎢. 면 소재지는 도촌리.

하담리(荷潭里), 도촌리(島村里), 매하리(梅下里), 원포리(遠浦里), 오석리(梧石里), 사암리(沙巖里), 잠병리(岑屛里), 유송리(遊松里), 문산리(文山里), 월상리(月上里)의 10개리를 관할한다.

하담리, 잠병리일대의 가차상면(加次上面)의 14개리와 금생면(金生面)의 19개리를 합하여 만들어졌다.

남한강을 기점으로 동남쪽에 충주시가지와 접하고 서쪽으로 중앙탑면과 접한다. 도촌리의 해발고도 186m짜리 태고산을 제외하면 대전천(大田川)발 평야지역이다.

하담리에 하강서원, 모현정, 오석리에 이수일의 사우와 신도비, 유송리에 김생의 사지와 제방등이 있다.

동량면[편집]

東良面

면적 109.34㎢. 면 소재지는 조동리.

조동리(早洞里), 화암리(花巖里), 하천리(荷川里), 용교리(龍橋里), 대전리(大田里), 손동리(遜洞里), 지동리(紙洞里), 사기리(沙器里), 명오리(鳴梧里), 서운리(瑞雲里), 포탄리(浦灘里), 함암리(咸巖里), 호운리(好雲里)의 13개리를 관할한다.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해 충주군 동량면(東良面) 17개리가 7개리로 개편되었고 1987년 1월 1일 제천군 한수면에서 사기, 명오, 서운, 포탄, 함함, 호운가 편입되다.

면사무소와 대전리등 서부일부를 빼면 전지역이 산앗지역으로 추충주댐 우안에 위치하고 있다. 충주호 선착장이 있어 유람선관광이 행해지고 있다.

노은면[편집]

老隱面

61.81㎢. 면 소재지는 연하리.

연하리(蓮河里), 법동리(法洞里), 안락리(安樂里), 대덕리(大德里), 가신리(佳新里), 문성리(文城里), 신효리(新孝里), 수룡리(水龍里)의 8개리를 관할한다.

대충 400년전 청안현감을 지낸 정경연이 은퇴하고 자기만의 구역을 만들어 조용히 살았다고 하여 주민들이“저 고개는 한 노인이 은거하는 고개이다” 라고 해서 노은현(老隱縣)이었다가 바로 면으로 개편되었다.

가로가 긴 직사각형 형태로 생겼는데, 동북쪽 끝에 을궁산(乙宮山, 394m), 서북쪽끝의 원통산(怨慟山), 서쪽 중간끝의 행덕산(行德山, 447m)ㅡ 남부 웃고개, 능안고개, 우리재, 질마루재, 북서쪽 승대산(僧代山, 650m), 정북쪽 국망산(國望山, 770m)과 보련산(寶蓮山, 764m), 북동쪽 국사봉(國師峰)등이 솟아 면내 평지를 사각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이 산들사이엔 한포천(漢浦川)이 서쪽으로 동류하여 평야를 이루고 남한강으로 들어간다.

수용리에 천룡폭포가 있다.

신니면[편집]

薪尼面

면적 59.77㎢. 면 소재지는 용원리.

용원리(龍院里), 화석리(化石里), 신청리(新淸里), 문숭리(文崇里), 문악리(文樂里), 광월리(廣越里), 송암리(松巖里), 선당리(仙堂里), 원평리(院坪里), 마수리(馬水里), 화안리(花顔里), 견학리(見鶴里), 모남리(毛南里), 대화리(大花里)의 14개리를 관할한다.

부군면 통폐합 때 신니곡면(申尼谷面) 또는 신니면(申尼面)의 17개리[7] 와 신석면(新石面) 23개리, 덕면(德面)의 석우리, 주류면(周柳面)의 창전일부지역이 스까되어 만들어졌다. 1973년 7월 1일 광월리 무수마을이 음성군 음성읍으로 편입되었고 1982년 3월 1일 화안리의 산안마을이 군부대에 편입되면서 없어졌다. 1996년 8월 22일 화안리 석포마을이 주덕읍으로 편입되었다.

요도천의 상류지역으로 견학리만이 주덕읍사이로 돌출되있는 형태이고 면을 정북쪽 화개산(花開山, 395m), 남쪽 가엽산(加葉山, 710m), 서부의 수레이산, 부용산(芙蓉山, 644m)등이 솟아있다. 송암리에 낚시로 유명한 신덕저수지가 있다. 원평리에 미륵석불과 삼층석탑, 견학리에 토성, 신청리에 박팽년사당, 문숭리에 당간지주와 용담사 미륵불등이 있다.

앙성면[편집]

仰城面

면적 100.24㎢. 면 소재지는 용포리.

용포리(龍浦里), 영죽리(永竹里), 강천리(江泉里), 단암리(丹巖里), 중전리(中田里), 목미리(木美里), 본평리(本坪里), 마련리(馬蓮里), 사미리(沙美里), 돈산리(敦山里), 능암리(陵巖里), 조천리(釣川里), 모점리(毛店里), 지당리(智堂里), 용대리(龍垈里)의 15개리를 관할한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앙암면(仰巖面)의 14개리와 복성면(福城面)의 23개리를 스까해서 만들어졌다. 1972년 수해로 강촌리가 양촌리에 편입되었다.

충주의 서북단에 있는 면으로 남한강이 여기서 동쪽 면경계를 따라 동남쪽으로 흘러간다. 정서쪽경계에 오갑산(梧甲山, 609m), 노은면과의 경계에 승대산, 국망산, 보련산, 국사봉, 무쇠봉이 솟아있다. 앙성천이 지당리 승대산에서 발원, 북쪽으로 흘러 본평리 동쪽에서 동쪽을 꺾어 중앙부를 관통하고 능암리에서 남한강으로 들어간다.

영죽리에 백년사, 마련리에 보광사와 성복사, 능암리에 성주사등이 있다.

중부내륙선 앙성온천역이 여기에 있다.

소태면[편집]

蘇台面

면적 63.00㎢. 면 소재지는 오량리.

오량리(五良里), 복탄리(福灘里), 덕은리(德隱里), 주치리(周峙里), 야동리(冶洞里), 동막리(東幕里), 양촌리(陽村里), 중청리(中靑里), 구룡리(九龍里)의 9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충주목 성태양면이었다가 1898년 소탱이골의 이름을 따 소태양면(蘇台陽面)으로 바뀌었다. 1760년 여지도서기준 5개리, 1898년기준 10개리, 1912년 24개리로 관할리가 늘었는데 9개 법정리로 개편되었다.

크게 양촌 야동 구룡, 주치 오량 중청, 복탄, 덕은, 동막이렇게 평지로 연결되있고 나머지는 산지로 구성되있다. 이중 야동 구룡양촌과 오량 중청 주치의 경계지역에 꾀꼬리봉, 복탄리 북쪽에 약수봉(藥水峰, 352m)과 청계봉(淸溪峰), 복탄리 서쪽 응봉(鷹峰), 중앙부 흑봉산(黑峰山)등이 솟아있다. 구룡리지역은 구룡천이 구룡리에서 발원해 남류하여 남한강으로 들어간다.

오량리 청계봉에 청룡사지가 있다.

야동리는 특이한 지명으로 잘 알려져 있고, 과거에는 한술 더 떠서 초등학교도 있었다.

엄정면[편집]

嚴政面

면적 56.49㎢. 면 소재지는 용산리.

용산리(龍山里), 율릉리(栗陵里), 목계리(牧溪里), 논강리(論江里), 미내리(美內里), 괴동리(槐東里), 신만리(新萬里), 추평리(楸坪里), 원곡리(院谷里), 유봉리(柳峯里), 가춘리(佳春里)의 11개리를 관할한다.

이름만 전해지고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는 엄정사(嚴政寺)에서 이름을 따와 엄정면이라고 칭했다. 억정사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도 있지만 전자가 주류다. 부군면 통폐합때 11개 법정리로 개편되었다.

남부지역에 면사무소가 있고 북동부지역 광활한곳이 산으로 둘러싸여있다. 북쪽 유봉리, 가춘리에서 제천시 백운면과 접하는데, 유봉리쪽 경계에 옥녀봉(玉女峰, 700m)과 시루봉(732m), 남부 용산리와 괴동리 사이에 빌미산, 약수봉(藥水峰, 352m), 가춘리 동쪽 경계지역에 오청산(五靑山, 655m), 추평리 동쪽의 장병산(長屛山, 409m), 면소재지 남쪽의 태고산(太古山)등이 솟아있다.

원곡천(院谷川)이 남류하여 빌미산 서쪽에서 논강천(論江川)에 합류하고 이게 영덕천(永德川)에 흘러들어 남한강으로 들어간다.

괴동리에 억정사 대국사비, 경종의 태실과 태실비, 백운암의 철불좌상, 추평리에 삼층석탑, 미내리에 반공지사추모전적비가 있다.

산척면[편집]

山尺面

면적 78.35㎢. 면 소재지는 송강리.

송강리(松江里), 영덕리(永德里), 명서리(明西里), 석천리(石川里)의 4개리를 관할한다.

천등산(天登山)의 이름을 따 산척면이라 했는데, 부군면 통폐합 때 37개리가 5개리로 개편되었다. 1989년 1월 1일 원월리 응평, 원서, 매촌, 대월, 소월 재현, 가정등의 7개마을이 제천시 백운면으로 넘어갔다.

송강리와 영덕리를 빼면 전체가 산악지대로 송강리 동쪽에 천등산(807m)이 있다. 그리고 남쪽 동량면과의 경계에 인등산(667m), 부산(婦山, 780m), 용천산(龍天山, 293m)이 솟아있고 동부지역은 산으로 둘러싸여있다. 영덕천의 지류가 서류하여 산간분지의 평야를만들었다.

유튜브[편집]

충주시(유튜브) 문서 참고.

아웃풋[편집]

각주

  1. 정확한건 말이 오지게 많다.
  2. 탄금대근처의 마을이다.
  3. 마을근처에 옻나무가 무성하여 칠지동이라 했다.
  4. 現 충주농고근처에 있던 마을로 냇가에 새가 많이 서식했다.
  5. 現 화곡, 사락, 제내, 장록, 덕련, 당우
  6. 現 대소, 금곡, 검단, 완오, 본리(이안면 소재지), 영평
  7. 現 용원리, 광월리, 대화리, 송암리, 선당리, 마수리, 화안리, 견학리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