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무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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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대 덴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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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45대 덴노 시호 쇼무 천황/성무천황
聖武天皇존호 승보감신성무황제(勝宝感神聖武皇帝) 재위기간 724년 3월 3일 ~ 749년 8월 19일 궁호 없음 휘 오비토(首) 성별 남성 출생일 701년 사망일 756년 6월 4일 황후 고묘 황후(光明皇后) 능호 사호야마노미나미능(佐保山南陵) 연호 진키(神亀/신귀)
덴표(天平/천평)
덴표칸포(天平感宝/천평감보)황거 평성궁(平城宮/~740년)
공인궁(恭仁宮/740년~743년)
자향락궁(紫香楽宮/743년~744년)
난파궁(難波宮/744년~745년)
평성궁(平城宮/745년~)
개요[편집]
일본 45대 천황. 수도가 자주 바뀌는데, 그 이유는 그의 치세에 유독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즉위 및 치세[편집]
몬무 천황의 아들로, 원래는 몬무 다음 천황이 되었어야했으나 몬무가 붕어하였을 시기 너무 어렸던데가 몸도 허약하여 한동안 할머니와 고모가 땜빵을 하다가 724년에 즉위를 하였다.
724년, 하얀 거북이가 나타난 것을 보고 연호를 진키(神亀/신귀)로 개원한다. 이후 729년, 선물받은 거북이 등껍질에 새겨진 문자 천왕귀평지백년(天王貴平知百年)을 따 덴표(天平/천평)로 개원한다.
나라 시대는 전체적으로 후지와라씨가 실권가문이었는데, 질병으로 인해 후지와라씨 유력자들이 몰살당하자 그의 치세에는 다치바나노 모로에(橘諸兄)가 실권을 잡는다. 그리고 다치바나는 당시 후지와라씨의 지도자였던 후지와라노 히로쓰구(藤原広嗣)의 직위를 야마토덕수(大養德守)에서 진서(鎭西)의 태재소이(大宰少弐)로 바꾸는데, 이를 좌천이라 생각한 히로쓰구는 반란을 일으킨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정은 즉시 5개 도(道)에서 군을 징발하였고, 741년에 진압한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쇼무는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 하고 조정을 떠나서 740년에 공인궁(恭仁宮)으로 천도한 것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수도를 옮기기 시작한다.
741년, 전염병이 심각하게 돌자 불심으로 이겨내겠다는 생각으로 일본 내 모든 국(国)에 국분사(国分寺)의 건립을 명하였고, 동대사(東大寺)에게 이 국분사들의 통괄을 맏게 하였다. 이후 743년, 동대사의 불상을 거대하게 재건하는 대불개안(大仏開眼)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불교주의적 정책 덕에 고대 일본은 불교문화가 크게 중흥되는데, 이 문화를 천평문화(天平文化)라고 칭한다.
대불개안이 선포된 동년에 기존 천황들의 토지국유화 정책이 아닌 일정량의 토지 사유를 인정하는 법인 간전영년사재법(墾田永年私財法)을 선포하는데, 그 이유는 기존 미개발 토지들을 빠르게 개발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744년 난파궁(難波宮)으로 천도하였는데, 1년만에 2황자 아사카(安積) 친왕이 병사하자 결국 745년에 평성궁(平城宮)으로 환도한다.
749년, 무쓰국(陸奥国)에서 금을 헌상받은 것을 계기로 덴표칸포(天平感宝/천평감보)로 개원하였으며, 동년 8월 19일에 딸 아베(阿倍)에게 양위한다. 이후 756년에 붕어한다.
연호[편집]
연호 이름 | 사용 시기 | 년수 | 개원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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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키(神亀/신귀) | 724년 3월 3일 | 729년 8월 4일 | 6년 | 하얀 거북이를 본 것을 계기로 개원 |
덴표(天平/천평) | 729년 9월 2일 | 749년 5월 3일 | 21년 | 선물받은 거북이 등껍질에 새겨진 문자 천왕귀평지백년(天王貴平知百年)을 따 개원 |
덴표칸포(天平感宝/천평감보) | 749년 5월 4일 | 749년 8월 18일 | 3개월 | 무쓰국(陸奥国)에서 금을 헌상받은 것을 계기로 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