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조무위키
연대 구분 |
---|
1870년대 → 1880년대 → 1890년대 → 1900년대 → 1910년대 |
세기 구분 |
17세기 → 18세기 → 19세기 → 20세기 → 21세기 |
밀레니엄 구분 |
제1천년기 → 제2천년기 → 제3천년기 |
연도 목록 |
1890년 - 1891년 - 1892년 - 1893년 - 1894년 1895년 - 1896년 - 1897년 - 1898년 - 1899년 |
개요[편집]
유럽에서 고대 그리스 올림픽이 근대 올림픽으로 부활했다.
조선→대한제국[편집]
개씹노답 쓰레기 나라였던 조선[편집]
외세의 간섭으로 곡물 해외 유출이 심해지고 물가가 높아져서 탐관오리들은 일본으로의 쌀 유출을 막고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방곡령을 선포하고 백성들의 쌀을 수탈했다. 1860년대에 등장했던 동학 또한 이때부터 교세를 대대적으로 확장해 농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었는데 이들은 1892년 공주에서 집회를 열고 1893년 보은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러다가 조병갑이라는 새끼가 고부에서 수탈을 벌이다가 결국 화난 농민들이 죽창을 날려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용태를 파견했는데, 오히려 죽창을 날린 주도자들을 처벌하는 일이 벌어지자 결국 녹두장군이 농민들을 모아 봉기를 일으켰고 동학 농민 운동이 시작되었다.
4대 강령을 백산에서 발표한 후 초기에는 황토현과 황룡촌 전투에서 이기는 등 선전하고 전주까지 점령했다. 결국 조정에서 청과 일본을 끌어들였고 전주 화약을 맺어 휴전하게 된다.
약속대로라면 청군과 일본군은 나가야 했으나 둘 다 콧대를 내세우며 존버를 타고 경복궁에 주둔하는 일까지 터진다. 결국 두 군대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며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남에 나라에서 싸우는 꼬라지를 지켜보던 농민군들은 다시 혁명을 일으키나 우금치 전투에서 격파당하고 패배한다.
갑오개혁 이후[편집]
이 과정에서 김홍집 내각이 수립되어 1894년 갑오개혁을 개시했는데, 짱깨 연호인 '광서'부터 폐지시키고 대신 1392년을 원년으로 한 기년법을 도입했다. 그리고 궁 사무를 궁내부에게 넘겼고 연좌제를 철폐했으며 조혼을 금지하고 과부의 재혼을 허용했으며 과거제도 폐지시켰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분제가 마침내 철폐되어 노비와 양반 등이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남아있었지만...
청나라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의정부를 폐지하고 내각으로 변경해 8아문을 7부로 통합했고 23부제라는 개씹노답 행정구역 제도를 실시했는데 이건 얼마 가지 않아 망하고 오늘날의 13도제를 실시한다. 또한 행정과 사법을 분리했고 근대식 교육 기관을 설치했으며 아예 중국과 대놓고 손절하겠다는 포고문인 홍범 14조를 발표했다.
청나라는 청일전쟁에서 대패했으며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조선에서 완전히 나갔고, 두번 다시 조선에 간섭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은 기세가 등등해져 본격적으로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시도를 한다.
먼저 러뽕 빨며 박쥐짓을 하던 민자영부터 조졌는데 민자영이 쌍년이긴 하지만 하필이면 일본이 조졌다는 게 문제였다. 이후 을미개혁을 시도해 소학교를 설치하고 단발령을 실시했으며 건양 연호를 발표하고 그레고리력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뽕을 쪽쪽 주입한 끝에 역풍만 맞았고 을미의병이 거병을 한 데다가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삼국 간섭으로 친일 내각은 실각하고 이것을 기점으로 친러 분위기가 형성되자 한 나라의 국왕이라는 고종 새끼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빤쓰런을 하는 추태를 벌인다. 무슨 문재앙도 아니고 ㅋㅋㅋㅋ
이때 일만 열심히 잘하던 김홍집에게 국모 살해 누명을 씌워 린치당해 죽게 만들었으며 고종 본인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호의호식하다가 이듬해 관에서 기어나왔다. 한편 이때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동료 개화파들과 함께 독립협회를 설립했다.
대한제국[편집]
러시아 공사관에 살던 고재앙은 꼴 추하게 기어나와 존내 뜬금없이 광무 연호를 발표하고 오늘부터 나 황제 할꺼임!을 혼자 주장하며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꿨다.
그리고 광무개혁이라는 개혁을 실시했는데 오래된 것을 모티브로 새 것을 받아들인다는 명목 아래 근대식 기관들을 설치하고 교통 시스템을 발전시켰으며 인재들을 전국 각지에서 끌어모았다. 하지만 아주 치명적이고 커다란 문제점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정치를 좆도 못하는 고재앙 씨발새끼 혼자서 다 해쳐먹겠다는 전제군주제를 강화한 것이다. 이것은 헬조선에 큰 치명타가 되어 명줄을 재촉했다.
한편 독립 협회에서는 관민 공동회와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신분에 상관없이 인권 운동 김칫국을 마시며 황뎨폐하 헬됴선을 됴우쇼셔를 운운하고 있었는데 찌질한 찐따 고재앙은 측근들의 말에 현혹이 잘 되는 팔랑귀 새끼였던 터라 이들이 공화국을 세울 것이라는 혼자만의 망상을 해내고 결국 보부상들을 동원해 이 단체를 때려부순 후 대한국 국제를 발표해 고재앙 혼자 해쳐먹기로 결정된다.
여하튼 조선 최초의 철도가 설치되는 등 진전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가면 갈수록 일본과 러시아의 수탈이 심해져갔다.
아시아[편집]
일본 제국[편집]
일본 오쓰 시에서 웬 미친 쪽바리가 러시아 왕자 니콜라이 2세를 공격해 중상을 입히는 오쓰 사건이 일어나 러시아와 일본 간의 관계가 소원해질 뻔했지만 암살범을 바로 처벌해 사이가 다시 좋아졌다.
이후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 거듭났으며 1894년 조선의 동학농민운동에 개입해 경복궁에 주둔했고 1895년 청군과 충돌해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의 결과 승리해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했고 청나라는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하고 타이완 섬, 산둥 반도를 일본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일본 제국은 조선에 대한 본격적인 간섭을 시작하며 민자영을 조지고 만주까지 진출하려고 했으나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간섭으로 무산되었다.
이후 조선에 대한 패권을 두고 러시아와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청[편집]
30년 이상 넘게 이어진 양무운동을 이어나갔으나 결국 일본과의 청일전쟁에서 완전히 처참히 쳐발리면서 양무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일본에게 만주 이권까지 털릴 뻔 하지만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일본을 방해해서 무산되었다.
이후 광서제가 직접 서태후 세력을 숙청하고 변법자강운동을 벌였으나 위안스카이의 통수로 서태후가 무술정변을 일으키면서 광서제는 유폐당하고 변법자강운동을 이끌던 관리들은 모조리 숙청당했다.
1899년에는 서구 세력을 반대한다(지만 정작 본인들은 서구의 문물로 싸우)는 극단주의자들이 의화단을 세워 의화단 폭동을 일으켰고, 서태후는 본인의 지지기반을 확립하기 위해 의화단의 폭동을 지원했다.
의화단은 서양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했고 심지어 자국민까지 학살했다. 이를 보다못한 대영제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미국의 군대가 이들을 막기 위해 출동했다. 당시 의화단은 대한 제국까지 넘어와 만행을 벌였고 대한제국군도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싸웠다.
오스만 제국[편집]
압뒬하미트 2세가 전제정을 부활시켰음에도 여전히 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했다. 하지만 1897년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크레타 섬을 빼앗겼으며, 이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본격적은 철혈 독재 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러시아 제국[편집]
대대적 산업화를 진행해 나라가 발전했으며 독일에서 비스마르크가 실각한 후 팽창주의자인 빌헬름 2세가 카이저가 되자 1892년 독일 제국의 팽창을 막기 위해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삼제동맹 체제를 무너뜨리고 협상국 체제의 기초를 만들었다.
1894년 알렉산드르 3세가 사망하자 니콜라이 2세가 차르로 즉위했다. 그는 전제정치를 유지했으나 아버지와 다르게 무능한 바보병신이어서 나라를 씹창내놓고 있었다. 한편 조선 일대에서 세력을 넓히던 일본을 옛 동맹인 독일, 새 동맹인 프랑스와 함께 견제하며(쪽바리들은 부들대며 삼국 간섭이라고 부른다) 조선에 대한 영향력이 커졌다.
동맹국[편집]
독일 제국[편집]
빌헬름 2세가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숙청하고 세계 정책을 펼치면서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에 식민지를 개척했고, 청나라 의화단의 폭동을 가장 강력하게 진압하면서 제국주의적 행보를 드러냈다. 이는 고립주의 노선을 채택하던 영국과 평소부터 독일을 아니꼽게 보던 프랑스, 러시아 등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후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 러시아가 동맹을 맺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편집]
초기에는 소수민족의 증가로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팽창 정책을 잠시 접었으나 오스트리아의 지배민족인 독일계가 분리 움직임을 보이자 민족을 하나로 묶어 제국의 해체를 막기 위해 다시 팽창 정책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왕국[편집]
제국주의 정책을 펼치며 에티오피아 제국을 쳐들어갔으나 아도와 전투에서 처참하게 깨지고 기존의 식민지도 일부 잃어버리면서 국제적인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이후 국가의 권위도 실추되었다. 한편 오늘날 이탈리아 피자 중 하나인 피자 마르게리타가 이탈리아 마르게리타 왕비의 나폴리 방문 때 탄생했다.
프랑스[편집]
아프리카 내부로 깊이 파고들어가며 영토를 확장했으며 이 과정에서 프랑스의 아프리카 횡단 정책과 영국의 수단 남하 정책이 충돌하며 파쇼다 사건이 일어났으나 얼마 후 화해했다. 외교적으로는 러시아 등과 동맹을 맺으며 독일을 견제했다.
사회적으로는 독일과의 전쟁 위험이 커지면서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몰아 기아나로 유배 보내는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는데,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기사를 실어 이를 비판하자 프랑스 내에서 반드레퓌스파와 친드레퓌스파가 나뉘어 싸웠다.
문화적으로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이라는 단편영화를 선보이면서 큰 충격을 주었다.
영국[편집]
영국 역시 아프리카 수단 남하 정책을 펼치며 영토를 확장했는데 프랑스와 잠시 충돌했으나 얼마 안 가 화해했다. 한편 독일이 세력을 급속도로 키우자 고립주의 노선을 점차 버리고 독일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을 모으는 노선으로 갈아탔다.
러시아와의 냉전인 그레이트 게임이 절정에 달했으며 영국은 일본을 지원해 러시아를 견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사이에 끼어있던 조선과 청나라가 얻어터지기도 했다.
문화적으로는 산업화된 도시들에서 축구 클럽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등장한 영화는 영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미신 관련 소재들이 소설로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영국의 문화는 미국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갱단이나 마피아 등이 어두운 사회상을 바탕으로 활개를 치기도 했다.
에스파냐 왕국[편집]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알폰소 13세의 섭정을 이어나갔으며 쿠바에서는 흑인 노예들의 반란이 일어난데다가 결국 1898년 메인 함 침몰 사건이 일어나 미국은 스페인을 메인 함을 침몰시킨 주범이라고 규정하며 쿠바에서 미국과 충돌하면서 미국-스페인 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전 세계에서 이민자들을 받으며 급성장하고 자본주의를 이끌어나가고 있었던 미국 앞에서 한때 잘나갔으나 지금은 나라 꼴이 개판인 스페인 따위는 게임도 되지 않았으며, 카리브 해의 스페인령을 모조리 미국이 가져갔으며 필리핀마저 미국에게 뺏기면서 스페인 식민제국은 완전히 몰락했다.
미국[편집]
벤저민 해리슨 대통령이 당시 막나가고 있던 대기업들의 트러스트 행위를 견제하기 위해 독접 금지법의 초기 형태를 만들었다. 이후 과거에 대통령을 했던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재선되었는데, 이때 경제를 잘 하지 못해 공화당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공화당 대통령으로 당선된 윌리엄 매킨리는 관세장벽으로 보호 무역을 했으며 금본위제를 정착시켰다. 그리고 먼로 독트린을 사실상 폐기하고 본격적인 제국주의 행보를 보였다. 이의 일환으로 하와이를 미국령으로 편입했으며 스페인에게 시비를 걸어 미국-스페인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때 종이호랑이나 다름없었던 스페인을 완전히 깨부수며 카리브 해를 장악하고 필리핀을 뜯어냈다.
사회, 문화적으로는 영국의 큰 영향을 받아 노동자 대중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아메리칸 드림을 명분으로 한 많은 이민자들을 받았고 자본주의가 급격히 발달해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본격적인 마천루들이 미국 뉴욕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1890년대생[편집]
우리나라가 털리던 시절에 어린 시절을 보내 일제 시대에 청장년기를 보내다가 50대가 돼서야 독립을 맞이했다. ㄹㅇ 역사 그자체. 조선시대에 태어나 대한제국 일제시대 미소군정 대한민국 1공을 다 거쳤고 일부는 2~5공때까지 살았다. 3.1 운동 당시 20대로 3.1 운동 핵심 세대다.
2017년에 마지막 1890년대생 할머니가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