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퓌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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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헬불란서[편집]
엠스 전보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군은 프랑스를 원펀치 쓰리강냉이로 퇴갤시켰다. 그 결과, 스트라스부르와 메스를 뜯기고 특히 독일 제2제국 선포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이뤄지고, 프로이센이 50억 프랑을 배상금으로 뜯어감에 따라 그 충격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어마어마한 굴욕에 여론은 분노로 타올랐다. 이때 불란서의 높으신 분들은 미개한 어느 동쪽 나라의 국개의원처럼 물타기+책임전가로 이 사건을 묻으려 했다.
드레퓌스[편집]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
보불전쟁때 프로이센의 간첩이 프로이센으로 보낸 편지의 4개 단어가 유대인 출신(사실 드레퓌스는 자기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마저도 없었다.)의 프랑스 보병 수습장교인 드레퓌스의 글씨체하고 매우 비슷하단 이유로 정부, 보수 언론이 좆나게 까대기 시작한다. 아주 그를 묻어버리는데, 국가반역죄로 악마섬에 유배형+아주 대놓고 망신주면서 강등식을 거행한다. 원래 강등식은 아무도 안보는 데서 조용히 예의 바르게 하는데, 이 강등식은 군인들 다 보는 데서 단추뜯어내고 칼을 뺏어서 부러뜨렸다.
ㄴ 그의 조상이 원래 독일에서 거주하다가 유대인박해를 피해 그나마 덜하던 프랑스로 이주를 왔다. 이름부터가 이미 독일식이다. [드라이 + 푸스] = 세 발. 귀족 아니면 개차반으로 성씨를 정하던 독일식 이름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알고보니 방첩대가 간첩[편집]
이 사건이 생기고 난 지 2년이 지났다. 2년이 지나면서 인간특유의 냄비근성과 유배형으로 사건은 거의 잊혀져갔다.
그러나 이 사건은 누군가의 재발굴로 드러난다.
참모본부 정보국에서 일하던 조르주 피카르 중령. (그는 드레퓌스의 은사이자 상관이었다) 그는 반역자가 쓴 편지를 연구했더니 그편지의 주인은 방첩대(간첩잡는 국정원같은 곳) 실무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던 헝가리 태생의 페르디낭 에스테라지 육군소령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피카르는 이를 까바른다. 비록 그는 까바른 대가로 식민지로 좌천당했으며, 이까발림덕에 프랑스는 황우석 사태때의 신탁통치 오보이후 한국을 방불케하는 수준으로 변한다.
이때 사건의 재심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철저하게 나뉘었는데,
- 재심반대:
이 문서는 보수주의 또는 보수주의자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머튽님도 자칭 반북 애국보수입니다. 물론 태극기 부대같은 극우들은 보수의 탈을 쓴 파시스트 새끼들이란 것을 명심하세요. |
프랑스 정부와 군부, 왕정복고파, 반유대주의자
- 재심찬성: 공화주의자, 일부 지식인, 자유주의자
이랬다.....만 반대쪽이 힘이 너무컸고 이때문에 피카르는 비밀누설죄로 빵에 들어가고, 간첩이 훈장을 받는 미개함이 드러났다.
그리고 까발린 편지연구를 하다 에스테라지가 진범임을 알게된 드레퓌스의 형이 또한번 까바르지만 gg쳤다. 이후 더긴 세월이 지나...
나는 고발한다.[편집]
작가 에밀 졸라가 문학신문 '로로르'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정부투고문을 내며 드레퓌스 주작질을 한 정부와 군부를 호되게 비판하고 드레퓌스의 재심을 요구하며 이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에 대한 파장으로 여러 지식인들과 언론사 <르 피가로>에서 에스테라지의 유죄주장,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게 되었다.
ㄴ 로로르 [여명] 의 당시 편집장은 훗날 전시 총리로서, 베르사유 조약의 책임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조르주 클레망소였다. 원래 에밀 졸라가 기고한 글의 제목은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였으나 클레망소는 이 글이 사회에 가져올 파급을 인지했으며 더 큰 임팩트를 주기 위해 '나는 고발한다' 로 변경했다.
여기까지 오면 드레퓌스는 무죄라는게 너무나 자명했던지라 프랑스 머법관들은 '법정의 권위가 있으니 무죄는 못주고 대신 보상금을 두둑하게 주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타진요, 김보름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는 소수 의견이었고 노양심 인간 쓰레기 새끼들이 훨씬 많았다. 노양심 자폐아들 + 애국보수 언론의 파워탓에, 드레퓌스 뒤져라는 계속 나오고 있었다. 에밀졸라의 집에는 매일같이 돌팔매가 날아들어 동네 유리가게가 호황기를 맞았고, 에밀졸라와 일가를 모조리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투서가 대문 앞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헬불란서의 도래와 시오니즘의 대두[편집]
헬법란서가 드레퓌스의 유무죄 여부로 양분됐다.
마치 신탁통치 오보사건이 터진 직후의 한국처럼, 프랑스는 개나소나 '유대인 OUT' '유대인 뒤져라 이기야!', '드레퓌스가 무죄라고? 니 빨갱이 종독아니노?! 뒤져라 이기야!'를 외치게 된다. 이렇게 하면서 프랑스내 유대인들은 간첩으로 몰리고 생활이 어려워졌다.
문제는 프랑스가 유대인에게 그나마 관대한 편인 나라였다. 근데, 그런 프랑스조차 저꼴이 나니까 위기감을 느낀 유대인들 사이에서 시오니즘이 대두됐고, 이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자를 외치며, 유대주의 운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2000년간 팔레스타인에서 살았던 아랍인들은 윾머인들에게 쫓겨나고 헬중동이 태어나게 된다.
여담[편집]
진범으로 의심되는 에스테라지(너무 과거의 이야기에 증거가 상당히 소실되어 가장 확률이 높을 뿐 진범이라 확정할 수는 없음)가 독일쪽 간첩이라는 얘기나(그럼 불란서는 독궈한테 제대로 놀아난 것) 아니면 프랑스에서 간첩인 척 해서 역정보를 흘리는 이중간첩이라는 얘기도 있다(이렇게 되면 종북몰이처럼 국가에서 다 알면서도 드레퓌스를 몰아간 것. 역시 불란서 병신).
물론 그냥 설에 불과함.
나는 고발한다로 한창 싸울때가 되면 정작 드레퓌스는 더 이상 정치이슈에 끼길 거부했다고 한다. 에밀졸라 패밀리가 항소하라는 것도 좆까라하고 머법관들이 보상금 준다는 것도 좆까라고함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갓랑스의 똘레랑스 정신 발현 사례라며 프뽕들에게 빨린다. 하지만 당대 유럽 수준에서 그나마 나았던거지 프랑스의 반유대감정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정말로 관용적이고 반유대주의가 약했으면 애초에 저 지랄이 안났겠지(사실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제일 덜했던 곳은 오헝제국이었다) 근데 좆랑스가 과거세탁해서 드레퓌스 사건=똘레랑스=좆랑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