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열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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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뤼 문서레서 설명하른 대상른 북괴롬덜과 밀접한 관계가 맀습레다! 당련하겠지만 람조선레서 북괴롬덜를 찬량하른 것른 명백한 불법립레다. 해당 반국가단체릐 찬량과 관련된 글, 화면름락리라 련결 등를 게재하른 것른 람조선레서 불법리며 해당 문서라 파릴릐 로룡 및 락룡 또한 제한를 받를 수 맀습레다. 만략 디시뤼키 래레서 돼지덜를 찬량하른 글를 찾랐다면 국번 럾리 릴릴릴레 전화해서 절대시계를 받르시길 바랍레다!!! 만략 람조선리라 렛상레서 저 돼지롬덜를 찬량하다가 코렁탕를 먹더라도 디시뤼키른 책림지지 랂습레다. 김릴성, 김정릴, 김정른 개돼지씹새끼!!! 김정른 래미래비 처뒤진 개씨발새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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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드립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나으니 괜히 드립 쳤다가 평생 까임권을 얻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고인드립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나으니 괜히 드립 쳤다가 평생 까임권을 얻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ㄴ 해방 정국, 한국전쟁 기간 동안 납북[1]된 우익 인사들도 묻혀있어서 섣불리 고인드립 하기 애매하다.
고인을 희화화하거나 비하하십시오.
ㄴ 물론 그렇다고 여기에 묻힌 놈들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고 빨갱이들도 당연히 묻혀있다.
주2! 2 문서는 콩에 관한 것을 다룹니다. 지나친 드립은 노잼2 되니 豆 번만 칩시다. 지나친 드립은 노잼2 되니 豆 번만 칩시다. 어? 왜 豆 번 써져요? 어? 왜 豆 번 써져요? 야 쓰레기 작은 고추의 매운 맛을 보여주마! 폭풍저그 홍진호가 간다! 야 쓰레기 작은 고추의 매운 맛을 보여주마! 폭풍저그 홍진호가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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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편집]
1986년에 개관한 조민인공의 국립묘지로, 혁명렬사릉보다 한 급 낮다. 문화어로는 애국렬사릉.
평양직할시 형제산구역 신미동(대한민국 기준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 신미리)에 위치해있다. 군면리 대폐합 씨발...
2007년에 중앙일보가 확인한 바로는 662명의 묘소가 조성되어 있었다고 하며, 이후로도 남한에 억류되어있으나 전향하지 않고 버틴 비전향 장기수, 북한 고위 정치인들도 추가로 묻히면서 안치된 시신 수는 더 늘어났다.
묻힌 사람들[편집]
편의상 가나다 순으로 작성했다.
이 문서는 너를 울게 만듭니다. 이 문서는 너를 울릴 수 있는 감성팔이을(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문서를 읽기 전에 눈물부터 쏟으시길 바랍니다.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ㅠㅠ 이 문서를 보고 광광 우럮따 8ㅅ8 |
ㄴ 통일되면 엄밀한 재조사를 통해서 몇몇은 현충원 같은 곳에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 김규식
- 양세봉
- 엄항섭: 여주 출생. 임시 정부에서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으며 20년대에는 붕괴 직전까지 갔었던 임정을 김구와 함께 멱살 잡고 이끌었던 인물이다. 김구의 최측근 인사로 항상 언급되는 인물로, 김구가 미국 육군 OSS 특무대와 합동 작전으로 국내 진공 계획을 추진했을 때 김구와 이승만의 연결을 주선하며 OSS 훈련 유치를 위한 활동, 공작을 펼쳤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김구가 암살당한 후 정치적 기반을 잃고, 당시 이승만의 정적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한동안 자진 월북 논란이 있었다. 지금은 오해가 풀려서 1989년에 건국훈장이 수여되었다.
- 손원태: 손정도 목사가 생전에 일성이의 생명의 은인이었다는 걸 생각해서 그의 차남인 손원태에게 김일성이 1991년에 초청장을 보낸 일이 있었다. 길림성에서 지낼 적에 둘이 아주 친하게 지내서 서로 잘 알고 지냈다고 한다. 이 방북에 대한 회고를 친구 관계였던 김동길[2]에게 풀어놓기도 했다. 2004년에 사망. 여담으로 그의 형은 현충원에 묻혀있다.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했다든지 부정적으로 평가할 여지가 딱히 없어서 여기에 추가함)
- 오화영: 평산군 출생.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다.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 유동열: 박천군 출생. 신민회에서 활동하다가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 나오고서는 임시 정부에 참여해서 광복군이 창설된 뒤에는 군사 정책을 담당했다. 미군정 시기에 조병옥의 천거로 통위부 부장(現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한국전쟁 도중에 납북되었다. 납북당할 때 그의 나이가 72세라서... 희천군의 어느 빈농가에서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했다.
- 윤기섭: 장단군 출생. 김규식, 지청천 등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조직하고 민족유일당 운동에 참여했다. 40년대에는 임시 정부 국무위원을 지냈다.
- 이준: 북청군 출생. 이위종, 이상설과 함께 헤이그 특사 갔던 사람이다. 헤이그의 한 호텔에서 병환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기 때문에 시신을 옮기지 못했고 가묘만 조성되었다.
- 조봉암: 진보당 사건으로 모가지 날아간 것을 기념해 가묘를 만들었다.
- 조소앙: 파주군 출생. 대한민국 임시 헌법, 제헌 헌법 제정에 참여한 사람이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 조완구: 한성부 북부 양덕방(陽德坊) 계생동계(桂生洞契) 출생(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대한민국 임시 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 최동오: 의주군 출생. 손병희에게서 천도교 교리를 직접 배운 제자다. 조선혁명당(1935) 당원,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위원, 임시의정원 의원, 외무위원 등을 역임했다. 광복 후에는 좌우합작위원회의 우측 인사로 활동했다. 최덕신의 부친이다.
여기부터는 좋은 방향으로의 재평가가 많이 힘든 사람들이다.
- 강량욱: 대동군 출생.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한편으로는 김일성의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그의 육촌 형 강돈욱이 김일성, 김철주 형제의 외할아버지다. 그러니까 김일성의 8촌 친척인 셈인데, 생전에 김일성이 '동무'라고 하지 않고 '스승님'이라고 부르면서 유일하게 존경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조만식이 타계한 이후 북조선에서 유일했던 우익 민족주의 성향의 조선민주당은 최용건과 이놈이 장악하면서 맛이 가버린다. 이 사람의 형이 강선욱이라는 사람인데, 이만갑에서 얼굴 자주 비추는 강명도의 할아버지다.
- 김광진: 북한의 경제학자. 일성이에게 경제 과외를 해줬다. 학생이 돌대가리라서 그렇지...
- 김달삼
- 김무정: 경성군 출생. 김두봉과 함께 조선의용군 결성했다고 반드시 나오는 이름이다. 한국전쟁 때 낙동강에서 미군에게 존나 깨지고 이후에도 평양 방어 전투에서 또 깨지는 등의 화려한 업적을 남겼다.
- 도상록: 함흥군 출생. 경성제국대학을 경성대학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참여해서 이공학부장을 지냈지만 미군정 반대 투쟁에 참여하면서 해임당했다. 그래서 월북해서 김일성종합대학 물리수학부장을 역임했다. 북괴 핵물리학 연구의 선두주자.
- 무뇌봉
- 여연구: 상하이에서 여운형의 차녀로 태어났다. 1946년 7월에 자기 동생 여원구와 함께 월북했다. 임수경 석방투쟁 조선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여운형의 딸이라는 이유로 긍정 평가 하지 마라. 여연구는 북괴 수뇌부에서 각종 회의의 의장직도 지냈고 여원구 이 미친 년은 노짱 정부 때 큰맘 먹고 여운형에게 독립훈장 주겠다고 했는데 자기 아버지가 미제 놈에게 죽었는데 진정성이 있다면 주한미군 철수부터 하라는 정신 나간 소릴 지껄였다. 참고로 여운형 암살범이 누군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남한에 있던 몽양 유족이 결국 대신 서훈 받았다. 여연구, 여원구가 유일한 후손이 아니라는 것임.
- 연형묵: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공과대학에서 유학생활 지내던 엘리트. 1991년 남북고위회담 당시 북측 대표로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북조선의 경제 개혁을 꿈꾸던 소장파였지만 정일이가 조까라우 식으로 나온 덕분에 전부 흐지부지되었고 1992년 12월에 총리 자리에서 해임당했다. 그 후로...
- 이기영: 아산 출생. 호는 민촌.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통칭 카프)의 일원으로서 여러 사회주의적 작품을 냈다. 필자의 한능검 시험에서 3점을 가져간 새끼다.
- 이면상: 함주군 출생. 중일전쟁 당시 친일 성향의 작곡을 한 덕분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새겨넣었다. 근데 왜 얘가 애국릉에 묻힌 거냐?
- 이용(1888): 이준의 아들이다. 본명은 이종승이지만 일본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개명했고 이객우라는 가명도 사용했다.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 참전했다. 자유시 참변 당시에는 러시아 적군 세력에게 붙잡혀서 하마터면 요단강 티켓을 끊을 뻔했지만 이르쿠츠크로 압송되던 도중에 탈출하고 연해주 이만(Iman) 지방에서 대한의용군을 재건한다. 이렇게 꽤 화려한 전적이 있지만 자진해서 월북하고 북괴 정부 수립 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별도의 서훈은 없다.
- 이인모: 풍산군 출생. 북괴군 종군기자 출신(북한 주장) 혹은 의용군 징집 담당과 빨치산 출신(남한 주장)으로, 휴전 이후로도 남한에서 34년 동안 사상 전향도 안 하고 버티다가 1993년에 최초로 북으로 송환되었다.
- 이찬
- 이현상: 금산군 출생. 6.10 만세운동에 참여, 신간회에서 활동했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쭈욱 좌익 활동 하던 새끼인데, 여순반란 사건 때 남은 병력을 끌어모아서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 활동을 주도했다. 휴전 후 그의 시신은 이현상 가족들 모두 월북한 상태라서 수습되지 못했고 바지만 입힌 채로 창경궁 도로변에 3주 동안 전시되었다. 남한에 잔존해있던 그의 친척들은 빨갱이들에게 고초를 겪어서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빨치산 토벌 당시 참가했던 차일혁이라는 분이 에휴 ㅉㅉ 하면서 직접 섬진강에 화장해주었다고 한다. 애국렬사릉에 가묘가 조성되었다.
- 조기천: 연해주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서 유년 시절에는 러시아에서 학창 생활, 중앙아시아에서 잠시 슨상 생활을 했다. 해방 정국 때 사회주의가 돋보이는 시 다수를 발표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인민군의 전의를 고취하는 시를 발표했다. 평양 폭격으로 사망.
- 최승희
- 한설야: 이기영과 함께 카프에서 활동하던 작가. 8월 종파사건으로 숙청되었다는 설이 나돌다가 1976년에 사망했다 카더라. 사후에 생전 작품이 어찌 김씨 돼지 마음에 든 모양인지 복권되었고 여기에 묻혔다.
- 허헌: 명천군 출생. 이인, 이극로와 함께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하던 변호사다. 근데 광복 이후 행적이 껄끄러워서 위인으로 여기기는 힘들다. 여운형이 박헌영과의 마찰로 남로당 일을 때려치우자 그 뒤를 이어서 제2대 남로당 위원장으로 활동했는데 이 시기에 박헌영 노선을 지지하면서 따랐다.
- 허정숙
- 홍명희
- 황철: 한국전쟁이 발발한 틈을 타서 심영과 같이 최은희 등 여러 배우들과 백인제 등 의사와 여러 주변 인물들을 죄다 납북했다. 그 천벌로 미군 성님들의 폭격으로 오른팔이 독일로 가버리는 병신쇄끼가 되었다. 원래 도서정리사업 대상이 되었어야 했으나 일찌감치 죽는 바람에 도서정리사업 대상은 되지 않았고 온갖 미화만 잔뜩 받은 채 여기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