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혁명열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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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편집]

북괴야스쿠니 신사 또는 순국7사묘

본래 1954년에 대성산 기슭에 적절하게 조성되어있던 묘역이었는데, 위치도 전망 좋은 곳으로 옮기고 리모델링도 쌈박하게 해주면서 1975년에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공이 되었으며 이후에도 1983~1985년 동안 재정비를 거쳤다고 한다.

정식 명칭은 '대성산혁명렬사릉'이다. 위치는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대성동에 소재하는 대성산(270m)의 정상(주작봉)으로, 이름만 들어봐도 알겠지만 북괴 건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 뤼인들이 안장된 무덤이다. 통일되면 제일 먼저 험한 꼴을 볼 랜드마크다.

대성산이 이름으로 들어간다고 강원도 화천, 철원이나 충북 옥천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중공에도 혁명열사릉이 있지만 그건 동아시아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조선족이 아니라면 알 일도, 볼 일도 없으므로 북괴의 혁명열사릉에 대해서만 적는다.

몇몇 상병신은 '혁명렬사릉에서 참배하기 vs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하기'라는 vs놀이를 하다가 인실좆 당한다 카더라.

구성[편집]

아홉 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망 날짜 순으로 아랫단부터 묘소를 배치했다는 것이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지만 그딴 거 좆까고 일성이 패밀리는 무조건 가장 높은 단에 위치해있다. 김책은 전쟁 도중에 죽었는데 가장 높은 곳에 있노 ^오^

북한에서는 이들을 '혁명 1세대'로 부른다.

묻힌 놈들[편집]

여기여기 를 좀 참고해서 작성했다.

묻혀있는 놈들은 일성이의 최측근을 포함하여 총 160명이다. (배치 순서대로 작성하기보다는 가나다 순으로 했다.) 전부 적으면 북괴를 너무 잘 안다고 의심 받아서 코로 설렁탕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쉽게 검색되는 일부 이름만 썼다. 판사님 저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준수하는 평범한 국민입니다.

정작 여기 묻히고 싶어하던 혹부리는 뽀그리가 미라로 만들어서 관광 자원으로 써먹고 자기도 함께 미라가 되었다.

  • 김정숙, 김형권, 김철주(김일성 동생) 등 김일성의 일가 친척들 (정작 김일성과 김정일은 여기엔 없다. 미라가 되어서 관광 자원이 되었으니까.)
  • 강건: 지뢰를 밟고 고기 파편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시신은 안장되지 않았고 가묘만 조성되었다.
  • 김경석(金京錫): 성진시 출생. 그냥 정치장교다.[1]
  • 김일(金一): 함경북도 출생. 이명은 박덕산 or 김덕산. 김일성 휘하에 있으면서 "나는 김일성밖에 모르오."라는 명언을 남기면서 가명을 김일이라고 지었다. 프로레슬러 아니다.
  • 김책
  • 김혁: 본명은 김근혁. 조~온나 많은 빨갱이 노래를 작곡했다.[2]
  • 류경수: 신흥군 출생.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기본 교육도 받지 못한 엠창인생. 본명은 류삼손이지만 6.25 전쟁 때 서울 점령하고 관리 잘했다고 경수(京洙)라는 이름을 일성이에게서 받았다. 당시 서울대병원,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 중이었던 국군 부상병들과 적색 테러로 골골 대던 우익인사들을 죽인 전범이다. 로동당 창건 30주년(1968년)에 혁명렬사릉 한 칸을 장식했다.
  • 안길(安吉, 1907): 경원군 출생. 20살에는 조선공산당에 입당, 25살에 중공에 입당하는 등 진성 빨갱이 활동을 하던 사람이다. 동북항일연군에서 정치장교 짓거리 하다가 광복 후 1947년에 사망.
  • 오백룡(吳白龍): 회령군 출생. 보천보 전투에 참가했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조선인민군 제8사단장으로 참전했다. 이 사람의 손녀 오혜선 씨가 태영호의 부인이다.
  • 오진우(吳振宇): 북청군 출생. 한국 전쟁 당시 인민군 제43사단장, 최고사령부 부참모장, 제6군단 참모장, 근위 서울 제3사단장이었다. 말년에는 조선인민군 원수를 지냈다.
  • 임춘추(林春秋): 길림성 출생. 소비에트 극동군으로 있었다. 광복 이후에는 연변대학을 설립, 불가리아 대사를 역임했다. 본래 애국열사릉에 있었다가 이장되었다.
  • 전문섭: 아들로 전휘라는 작자가 있었는데 후계자가 확정되기 이전부터 김평일과 가깝게 놀다보니까 일성이에게서 견제를 많이 받았다.[3] 본래 애국열사릉에 있었는데 이장되었다.
  • 조명선: 요덕군(舊 영흥군) 출생. 김일성 명의의 JOY를 마지막으로 받은 인물이다.
  • 지병학: 국공내전에 공산 진영으로 참전했다가 한국전쟁 발발 두 달 전에 인민군 부대 끌고 북괴령에 들어왔던 인물이다. 본래 애국열사릉에 있었는데 이장되었다.
  • 차광수: 용천군 출생. 본명 차응선. 북괴에서는 여포급 무력을 가진 군인으로 선전하지만 사실 서북박헌영 같은 인물이다. 대륙에서 일본군에게서 쫓기고 있어서 중국인 부대에게 헬프를 때리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반공 짱깨군에게 잘못 가는 바람에 총격전을 벌이고 최후를 맞이했다.[4]
  • 최광(崔光): 나진시 출생. 오진우의 뒤를 이어서 인민무력부장을 역임했다. 뽀그리우스에게 숙청되어서 광산에서 마인크래프트를 즐기다가 1977년 황해남도 인민위원장으로 컴백하면서 예토전생했다. 인민군으로서의 명예회복은 1988년의 일로, 이때 혹부리우스 앞에서 무릎 꿇고 울기까지 했다고.[5] 생전의 별명은 '독종'.
  • 최용건
  • 최춘국(崔春國): 온성군 출생. 1950년 7월 30일 안동에서 전투 도중에 지뢰 사고로 사망.
  • 최현
  • 최희숙(崔熙淑): 함경북도 출생. 만주 땅에서 깔짝대다가 1941년에 일본군에게 발각, 체포되어서 사망했다.[6]
  • 태병렬(太炳烈): 한국전쟁 당시 연대장으로 참전했다. 태영호 성님이 막 탈북했을 때 태병렬의 아들이 태영호라는 기사가 몇 번 나왔다. 하지만 팩트체크를 한 결과, 태영호 성님과는 좆도 상관없는 새끼라는 것이 밝혀졌다.

자매품[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