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정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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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正統性

특정 정치인의 통치를 받는 사람에게 권력 지배를 승인하고 허용하게 하는 논리적ㆍ심리적인 근거로 정치인에게는 능력, 카리스마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에 해당한다. 대체로 기득권, 그리고 당시 사회의 깨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이런 사례때문에 정통성? 좆도 쓸모없는것 아님?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개소리고 아주 중요하다. 이유는 이렇게 보면 된다.

특정정치인이 아주 ㅆㅆㅅㅌㅊ 정책을 시행할려고 해도 그 새끼의 반대파들, 특히 헬조선이라면 어떤 이유로든 끌어내리고 격하할려고 지랄하고 훈수두고 지들 데리고 와서 빼애액거려서 물거품된것들을 뉴스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좋은 정책을 실시할려면 당연히 이새끼들 모가지를 따든 깜빵에 쳐넣든, 인민재판으로 다굴시키든 그새끼들의 아가리를 버로우시키기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아가리도 고문, 숙청, 학살로 닫아버리면 그쪽에서 도덕적 명분을 들고 시체팔이를 해서 여론이 폭파당하고 국제사회에서 망신당하는것은 물론이요, 이렇게 조질때도 쓸데없는 인력, 비용, 시간낭비가 심해서 리스크가 아주 크다. 그래서 가장 깔끔하고 확실하게 반대파들의 아가리를 다물게 만드는게 명분확립인데, 이중 정권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정통성 확립은 명분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안할 수가 없다. 당연하겠지만 정통성확립이 되있는 지도자는 그렇지 못한 지도자보다 권한이 더 강해질 수 밖에 없다. 근데 이강력한 권한으로 나라를 억척으로 가꾸거나 불지옥 만드는건 본인 능력이니 제낀다.

예시들[1][편집]

조위 vs 서진[편집]

고귀향공은 어디있소?

 
가충이 하남윤 유순과 싸우다가 유순에게 들은말

전자의 국부 조조는 후자의 의 킬수를 능가하는 악행을 저지른 씨발롬에 그 정통성 문제로 보더라도 당시 헬-듕귁의 깨시민들이 못 죽여서 안달이었던 탁류파 출신이지만 정통성 문제에선 후자를 완벽하게 쳐바른다. 다 필요없고 각자 갈아치운 황제를 보면 알 수 있다.

헌제는 동탁이 수괴가 되기 위해 옹립한 바지사장이라 논두렁 깡패 새끼가 대놓고 황제 드립을 쳐도 찍소리 못하는 개씹좆병신급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쬬는 이런 불쌍한 찐따가 개노답 트리오의 대숙청에서 살아남은 6명의 중신들과 빈손으로 쫄쫄 굶으면서 탈출하던거 목숨걸고 구해주고 지 사비로 맥여주고 재워주고 다했고, 후임으로서 조위를 세운 조비는 인성쓰레기지만 헌제는 조용히 살게 냅뒀다. 반면 사마씨새끼들은 양아들일뿐인 황제황제가 성묘 갔을 때 날치기로 일으킨 쿠데타와 대놓고 갈아치우기 2콤보로 작살내고 후자는 지들힘에 도전하니까 아예 죽여버렸다. 삼족이 멸족당해도 안 이상할 황제 시해를 저지른 새끼가 입 싹닫고 뻔뻔하게 나 대륙의 황제요 드립을 치니 네 피지배층에게 권력 지배를 허용? 승인?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박정희 vs 전두환[편집]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

 
김수환이 전땅끄에게

과정과 당시 상황[편집]

5.16 군사정변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과정과 그 이후 박정희와 전두환의 행보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일단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이전에는 사회하나하나가 개판 5분전에 가까웠고 제2 공화국은 이 개판 5분전과 다름없는 사회를 컨트롤하는데 실패했다. 때문에 수많은 깨시민들은 실망했고 2공의 군축정책과 친북세력의 재등장으로 인해 기존 군부, 특히 채명신(곡산 출신), 김홍일(용천 출신), 김신(아빠해주 출신)과 같은 이북 출신 장성들은 공산화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2공에 반발했다. 반인반신은 이 틈을 이용해서 이북 출신 장성들과 김종오(청원 출신)과 같은 기존 장성들의 지지까지 받아내어서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여기서 시가전 벌어지는 거 아녀?라고 우려도 했지만 당시 2공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병신 상태였던 덕분에 큰 소동도 없이 조용하게 쿠데타를 끝냈다. 이때 개노답 헬조선에 실망했던 조지훈 등 일부 깨시민들은 당시 민족주의, 개혁정치를 펼치던 가말 압델 나세르와 같은 정치 군인들처럼 헬조선의 지옥불 온도를 낮춰줄 것이라고 판단하고 5.16 군사정변을 지지한다. 그리고 거사 이후 반인반신은 자기가 주둔했던 7사단으로 가서 정식으로 제대하고 민간인 신분이 되어서는 2년 동안 군사혁명위원회(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활동하면서 조용히 기다린다.

그리고 이 2년 동안 박정희는 자신이 만들 수 있었던 최대한의 안전 장치를 마련하여 정통성에서 생긴 흠을 메우기 시작한다. 먼저 자기 최악의 흠이었던 남로당 활동 경력은 혹부리우스가 보낸 형님(박상희)의 친구 황태성에게 바람 구멍을 내주고 조금이라도 왼쪽에 기울어진 활동을 했던 인사들은 혁명재판 때 밑에 있는 인간쓰레기들과 함께 쓰레기통에 갖다버려서 깔끔하게 해결하고 친일 경력은 1962년 안중근, 안창호, 강우규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에게 건국훈장을 뿌려서 어느 정도 커버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국민들을 시위판으로 몰았던 1공화국의 인간쓰레기 최인규, 이정재, 임화수, 곽영주, 홍진기, 신정식의 모가지를 썰어버려서 여론의 지지를 제대로 얻었다. 그리고 1963년 대선 때는 자기를 친일+빨갱이로 몰아세우던 민주당 대선 후보 윤보선에게 메카시즘몰이하는 개새끼 보소;; 해서 빨갱이로 몰려서 피를 봤던 한반도 남부 지역의 지지를 얻고 선거에서 당선하여 머통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전두환은 어떤가?

10.26 사태 이후 부마항쟁으로 혼란스러워진 부산, 마산과 유신철폐운동을 주도했던 대학들을 빼면 당시 대한민국은 최규하 당시 머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사태를 수습하면서 국가막장테크를 어째 막고 있었는데 이 새끼는 자기 생존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심지어 반란을 위해 대북방어 병력(9사단 29연대)을 빼돌리고 육군 본부의 경비병력들 중에서 를 구워삶아 시가전을 일으키고 국가를 장악했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선 자연스럽게 신군부 퇴진 운동이 발생했고 이 꼬라지에서 정국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 엄청난 무리수까지 두면서 그나마 남아있었을 수도 있었던 정통성을 쓰레기통에 갖다버리게 된다.


국민의 직접 선택 여부[편집]

박정희는 쿠데타 이후에도 국민이 직접 선택하여 대통령에 다시 올렸지만, 전두환은 엄밀히 말해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적이 없다.

쿠데타 당시의 대한민국 상황이 개좆노답그지깽깽이난장판 vs 굳이 군부쿠데타가 필요없을정도로 인프라 깔리고 배좀 부르고 난장판은 아니었던 상태 의 차이가 있었고 당시 국민이 어찌되었건 국가유지가 안될 양극단 정치충 시위를 억누르며 혼란을 진정시키고, 새마을 운동이니 하며 인프라 깔고 극빈을 해결한 박정희에게는 쿠데타 이후의 대통령 국민선거에서도 표를 주었고 거듭 당선이 되었다.

이 부분은 쿠데타 정권으로서의 박정희가 가진 결정적인 컴플렉스와 절차상 문제점을 당시 대한민국 국민이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 주면서 손을 든 행동이고,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며 개발 과정에서의 도덕적 힘과 지속성을 제공해 주었다.


왕조정권 시절에는 국왕의 자녀라는 것이 누가 대표자를 이어받을 것인지에 대해 결정해주는 중요한 기준점과 정당성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세조나 인조의 그것을 반정이라고 부르는 것) 미국에 의해 민주주의 정부를 성립한 대한민국 체제 안에서 '국민의 직접선거 선택에 의한 당선 경험 유무'라는 이 부분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전두환의 신군부의 경우 국민이 납득할만한 구군부 수준의 업적을 군정기간동안 쌓고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하였고, 구군부보다도 강한 힘에 의한 억압통치를 펼친 전두환임에도 불구하고 반대시위가 특정 정치성향 소수의 사람이 난동부린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격렬하게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따라서 본인이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 직접선거에 출마한 적이 없고 국민은 직접투표로서 전두환을 선택한 적이 없다.


전두환 밑에서 꼬붕, 쩌리 취급받으며 놀림받아도 대응하지않아 전국민에게 요즘으로치면 '호구' 느낌의 '물태우'라 놀림받던 노태우의 경우에도 (실권이 있건없건 얼굴마담 바지임원 이었건간에 상관없이)신군부 출신임에도 어찌되었건 국민의 요구에 의해 치뤄진 직접선거에서 군부내 온건파 이미지로서 당선이 되었고, 이 점은 노태우가 상왕정치를 하려던 전두환을 정치적으로 실각시키고 그 관련 군부세력의 쿠데타등 시도 혹은 반대편 극좌진보세력의 체제전복 선동 시도 같은 구세력과 재야 양 극단의 시도등을 억누르고 안정적으로 정권을 이어나가는데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점을 좌우 정치선동 전문가들은 종종 무시한다.

신군부 세력 대장인 전두환이 자신의 통치를 계속 이어나가려고 하는데도 반대로 세력 내부 역성혁명 수준으로 갈아엎고, 친전두환 잔존 세력을 상당수 흡수하여 선거에 의한 민주정 이양 과정을 국민이 선택했다는 정통성에 따른 정당한 권위로서 강제적으로 납득하게 하였으며, 조폭척결이나 외교 국민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 등 다양한 정책을 빠르고 강하게 펼치고 유지하는데 전국민이 참여한 선거에서 선택하였다는 '정당성'이 준 힘이 없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 투표 시스템대로 5년간 집권한 노태우 보다 긴 7년간이나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폭압적 전제정치까지 펼쳤음에도 현재에도 보수세력을 극혐하는 진보계 인사 뿐 아니라 보수인사, 혹은 정치언급을 잘 안하려는 일반적인 대중들 사이에서도 박정희는 업적과 과정을 인정하지만 전두환은 대통령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국민이 뽑은 적 없지 않느냐? 대통령이 아니라 집권자 혹은 권력자 등으로 불러야 된다 라는 목소리조차 종종 나오게 된 것이다.

때문에, 친 전두환 계열 정치파벌로 인식되고있는 전두환-이명박-김무성 계열 정치권 계열 인사들은 애써 못본척 피하는 사실이지만, 구군부와 신군부를 비교할 때

1 당시의 상황이 군부쿠데타를 유발시키거나 그에 의한 힘에 의한 통치가 유익하게 느껴질 정도의 상황이었는가.

2 양자의 업적의 차이 수준

3 국민이에 의한 직접투표 당선 : 쿠데타를 하였고 자신의 의사에 의한 강한정책을 펼쳤음에도 국민이 그 과정의 정당성이나 업적을 인정하고 직접적으로 선택을 해 주어 손을 들어준 적이 있는가


이러한 부분을 비교하는 인식이 대중간에 크게 깔려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역사에 남은 사실은, 이승만부터 박정희의 구군부, 지금의 대통령들까지 쿠데타나 탄핵 하야 여부를 떠나서 국민이 직접 선택한 적이 있지만, (특수상황에 따른 권한대행을 제외하고) 집정자 중 전두환만은 그리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정통성이 없는 세력이라는 것. 때문에 잘못한 사실 뿐 아니라 잘한 부분에서도 계속 시비털리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정통성과 그에 따른 정당성 부여가 되었는가 현대사회에도 이정도로 중요하다.

  1. 전자는 정통성이 완벽하지 못했어도, 이를 확립하는데 노오력하고 또 그걸 성공해서 후자에 비해 비교적 욕을 덜 처먹는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