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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소성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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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買肖城戰鬪

나당전쟁신라당나라군을 매소성에서 격퇴한 대전투.

660년에 망한 백제, 668년에 망한 고구려와 함께 사이좋게 당나라 짱꼴라들의 노예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던 신라를 살리고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못을 때려박은 전투이기도 하다.

배경[편집]

668년 당나라의 불반도 지배야욕에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한 신라는 그동안 적국이었던 고구려의 부흥군들과 동맹을 맺고 당군과 전쟁을 하기 시작했다.

초기 신라군과 고구려 부흥군은 평양찍고 오골성에서 슴만튀를 제대로 한 덕분에 당군을 상대로 여포짓을 하고 있었지만 고간휘하의 짱꼴라군머와 이근행휘하의 말갈뙤놈군머가 날린 선빵을 평양에서 잘못맞아서 황해도로 쪼그라들더니 672년 석문전투, 백빙산 전투[1], 호로하 전투 쓰리콤보로 허벌창이 나버리게 되었다.

게다가 신라는 석문전투때 핵심지휘관과 정예병들이 공중분해되었고 고구려 부흥군은 시빌워에 저 쓰리콤보로 완전히 좆망한 상태가 되면서 모두 전의를 크게 잃었고 673년부터는 임진강유역에서 고착화된 전선에 또 믹서기처럼 갈려나가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경과[편집]

675년, 안그래도 헬오브헬이던 임진강전선에 계림대총관(鷄林大摠管) 유인궤가 투입되고, 유인궤에게 칠중성을 뺏기면서 임진강유역의 성과 보루를 당에게 내어주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문무왕은 이 보고를 받고 당나라앙망문을 작성해 보내면서 제발 진격좀 멈춰달라고 싹싹빌었다한다. ㄴ 사실 나당전쟁 7년내내 양양문을 많이 썼다 그런데 계속 공격함 그러니까 시간벌기용에 가깝다.

칠중성이 털린뒤 이근행은 안동진무대사(安東鎭撫大使)가 되어 기병이 포함된 최정예군[2][3] 을 거느리고 매소성부근에 때려박고 신라육군을 깨강정으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나라는 또 한술 더떠서 대비천 전투서 개털되고 폐서인됬다가 예토전생한 설인귀랑 숙위학생(宿衛學生) 김풍훈(金風訓)[4] 이랑 군마를 포함한 보급물자를 가득 실은 보급함대를 한강하구 천성(泉城)에 보내 고간, 이근행군을 지원하고 한강전선을 장악하고자했다. 하지만 문훈(文訓)성님이 이끄는 1~3만의 신라군한테 말 1,000필이 털릴정도로 보급물자가 다 털려서 GG쳤다.

안그래도 오랜전쟁에 좆목민특성[5] 과 물자고갈로 개판이 된 이근행군은 겨울을 만나면서 군기가 개판이 되고 전투력도 더 떨어지게 되었다.

신라는 이때를 노려 매소성의 이근행군을 복날 개패듯이 두들겨팼고 결국 후장이 탈탈털린 이근행군은 삼국사기기준 군마 30,380필과 조올라게 많은 무기를 냅두고 북쪽으로 빤쓰런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매소성 전투다.

이후[편집]

이 전투에서 막대한 양의 보급물자와 이근행휘하의 정예기병을 잃은 당군앞에서 신라군은 나당전쟁의 승기를 잡을 결정적 기회를 얻었고 이후 수차례 당군을 뚜까패면서 황해도대동강이남 평안남도를 수복하게 되었다.

당나라는 이 전투에서 이근행을 포함한 요동만주방면군의 대다수가 공중분해당한것을 보고 '챠오니마!'하면서 설인귀를 기벌포에 때려박았지만 자세한 것은 기벌포 전투 참조.

  1. 이쪽은 고구려 부흥군과 신라군이 믹서기마냥 갈려나가서야 당군이 이겼기에 당나라 입장에선 피로스의 승리나 다름없었다.
  2. 짱꼴라 + 말갈 + 키탄의 혼성군인 것으로 보인다.
  3. 삼국사기는 이근행이 끌고온 기병이 7만이고 예네포함해서 전병력이 20만이라고 기록했지만 당서는 4만명으로 추정했다.
  4. 이개새끼는 당나라 수군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애비가 하슬라주장관, 병부령을 역임한 군부계의 거물이었다. 그래서 당나라가 동부전선의 강원도전역까지 쳐먹을 생각으로 이새끼를 기용한 것으로 보인다.
  5. 얘네는 경제가 엠창이다보니 수많은 보급을 필요로 하는 장기전보다는 치고빠지는 단기전을 매우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