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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Century / 1世紀 / 1년~100년
국가 로마 제국 · 파르티아 · 쿠샨 제국 · 흉노 · 진한시대(한나라(전한 · 후한) · 신나라) · 한 9군 · 쯩 자매 · 제2차 북속시기 · 한사군 · 고구려 · 부여 · 마한 · 백제 · 진한 · 변한 · 신라 · 일본(야요이 시대)
사건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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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국내성 천도 (3년) · 가야 성립 (42년) · 모본왕 암살사건 (53년)
대표 인물 예수 · 베드로 · 리노 · 아우구스투스 · 네로 · 오현제 · 왕망 · 광무제 · 쯩 자매 · 모본왕 · 태조대왕 · 온조왕 · 혁거세 거서간 · 탈해 이사금 · 수로왕
관련 작품 성경(신약)
베트남의 역사
한 9군 쯩 자매 제2차 북속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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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를 향해 욕설이나 비방이나 저질스러운 단어를 쓰지 맙시다.
이 문서는 개쩌는 여성에 대해 다룹니다.
이 틀은 하는 거라고는 빼애액밖에 없는 메오후 같은 쿵쾅이들이 아닌, 존경받아 마땅한 여전설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첫째는 원수를 깨끗이 씻어내고 (Một xin rửa sạch nước thù)
둘째는 옛 웅씨의 업을 다시금 세우고 (Hai xin dựng lại nghiệp xưa họ Hùng)
셋째는 남편의 원억을 달래고 (Ba kêu oan ức lòng chồng)
넷째는 공령의 소를 도울 것을 맹세하나이다. (Bốn xin vẻn vẹn sở công lênh này)

 
— 할문의 회체에서(會體喝门)

A.D 14년 8월 1일, 웅왕 시대, 당시 미령 현의 낙장(지방 토호)이 훗날 베트남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할 쌍둥이 자매를 낳았으니, 바로 징측과 징이 자매다.

중국 남부와 베트남 북부의 영토를 가진 남월은 중국 대륙을 재패한 제국인 한나라에 정복당하여 총독의 지배를 받고 살아갔다. 특히 간접통치에서 직접통치로 바뀐 시대에는 잦은 부녀자 겁탈, 가혹한 중세와 노역 등으로 남월인들은 한에 대한 복수심이 쌓여갔다. 그 증오심이라고 이 두 자매에게도 없을리가 없다.

미령 현의 이웃 고을 주연의 낙장은 이 두자매의 아버지 못지 않은 애국자였다. 아들인 시색 또한 아버지처럼 족장회의에 참가하는 등 남월의 미래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애국자였다.

어느 날, 징측과 징이가 시색을 만난 이후로 남월을 위해 자신을 단련해온 이 어린 삼인방의 우정은 싹트고 징측과 시색은 사랑에 빠졌다. 마침내 둘은 결혼을 하였고 두 마을 사람들은 결혼식을 열렬히 축하하였다.

그러나 남월 반란군들의 교전으로 심기가 불편한 한의 무자비한 교지태수 소정이 진압군을 보내 결혼식을 파탄내고 시색을 체포하였다. 징측은 진압군에게 그자리에서 강간당하였다. 처음에는 마을에 반란을 중단하라는 협박을 보냈으나 주민들이 아랑곳하지 않자 시색을 참형에 처하였다.

시색의 죽음으로 마침내 두 자매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담아둔 원한이 한꺼번에 솟구쳤다. 자매는 직접 사냥한 호랑이 가죽으로 전투명령서를 만들고 반란군에 가입해 코끼리를 타며 직접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며 군대를 지휘하였고, 빡돌아버린 고을 주민들도 반란군에 가담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소규모로 활동하던 봉기군, 아뚜 지망에서 결성한 백발백중의 활솜씨를 지닌 여군들도 징자매의 군대로 모였다.

후달리는 전술과 무기에도 불구하고 반란군 세력은 단숨에 베트남 북부에서 광둥성에 이르는 65개 성을 함락시켰다. 소정은 결국 한나라로 줄행랑을 쳤다. 당시 반란군의 인물들 중엔 여장군이 36명이나 되었던걸로 보아 남월은 모계사회임을 알 수 있다.

징측은 왕위에 올랐고 2년간 면세와 남월 문화 복원 등의 정책을 펼쳤다. 위협을 느낀 한의 황제 광무제는 복파장군 마원을 파견했다. 백전노장 마원은 8천의 정규군과 1만 2천의 징병한 군사들을 이끌고 징씨 자매의 군대와 대치했다. 징씨 자매의 군대는 용맹히 맞섰으나, 물자와 훈련의 부족, 낙장들의 도망, 군사들의 전의 상실, 마원의 노련한 전술로 결국 하노이 근처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다가 패주하였다.

결국 두 자매는 몸을 숨겼지만 이마저도 발각되어 목이 잘리는 최후를 맞이하였다. 수급은 한의 수도 낙양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물에 빠져 투신자살했다고 기록되어있다.

비록 실패한 반란이지만 후진 자원들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제국을 상대로 끈기있게 버텨낸 그녀들의 독립정신은 오늘날까지 그녀들을 기리는 베트남인들의 가슴속에 꺼지지 않고 영원히 불타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