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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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興寺
한국의 사찰중 하나다.
강원도 법흥사[편집]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을 만나고 붓다님 사리를 전수받고 귀국해서 이걸 상원사[1], 정암사[2], 통도사, 봉정암[3]에 드래곤볼 처럼 뿌리고 남은 것을 이절 세우고 난뒤에 봉안했다. 초기이름은 흥녕사(興寧寺)였다.
891년 통구이가 되었다가 944년 중건되었지만 듣보잡 동네 절로 남아 좆망했다가 1902년 비구니 대원각이 중건하면서 법흥사로 개명되었다. 1912년 통구이가 되어 1930년 중건했다가 1931년 산사태로 절터 일부와 석탑이 없어졌다. 적멸보궁 뒤에 붓다님 사리가 봉안되었다는 법흥사 부도가 있는데, 이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73호로 지정되었다. 그외에 보물 제612호인 영월흥령사징효대사탑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징효국사부도(澄曉國師浮屠)와 패엽경(貝葉經)이 있다.
평안도 법흥사[편집]
평안남도 평원군 공덕면 법흥리[4] 법홍산에 있는 절.
존나 오래전에 법흥(法興)이란 양반이 창건했다고 김부식이 전한다. 묘청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통구이가 되었다가 1123년 김부식과 정습명이 묘청한테 죽은 왕씨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래위치에서 조금 북쪽에 있는 터에 옮겨서 지어 1125년 봄까지 80개의 건물을 만들었다. 엄청나게 큰 절이었으며 임진왜란시기 서산대사는 이 절을 기반으로 1,500명의 승려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켜 명나라군사와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6.25 전쟁시기 르메이 쉐프님이 소이탄을 존나 뿌리면서 많은 부속건물들이 파괴되었지만 극락전, 장경각, 삼화상각, 요사등이 북괴치하에서 복원되어 지금까지 전해내려온다. 여기에도 팔만대장경 목각경판 700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보현사로 옮겨졌다.
중국 법흥사[편집]
중국 산서성 장치시 장자현 자림진 최장촌 취운산(翠云山)에 있는 절이다. 당나라때 지어졌고 송나라때 중건되었는데, 용케 그혁명버티고 살아남아 1988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일본 법흥사[편집]
일본어로는 호코지라고 한다. 나라 현 다카이치 군 아스카 촌에 있으며 쇼토쿠 태자라는 양반이 좆본을 지배하면서 시작된 아스카 시대에 백제승려들과 장인들이 처음 지은 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스카데라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