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군
조무위키
이 문서를 쓴 사용자나 이 문서의 대상은 닉값하는 중입니다. 닉값도 좋지만 띄어쓰기부터 제대로 해라. |
파일:니켈로디언 로고.PNG |
이 문서는 머대리에 대해 다룹니다. 머리카락도 결국 털일 뿐입니다. 털이 없다는 건 성스럽고 진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이봐 머대리, 머리 좀 기르세, //네 과장님 ㅠㅠ) 민머리 대머리 맨들맨들 빡빡이♩♪♬~ 민머리 대머리 맨들맨들 빡빡이♩♪♬~ |
평안도의 행정구역 | |||||||||||||||||||||||||||||||||||||||||||||||||||||||||||||||||||||||||||||||||||||||||||||||||||
평안북도 |
자치시 | 신의주시 | |||||||||||||||||||||||||||||||||||||||||||||||||||||||||||||||||||||||||||||||||||||||||||||||||
자치군 | 의주군 · 용천군 · 철산군 · 선천군 · 정주군 · 박천군 · 태천군 · 영변군 · 운산군 · 구성군 창성군 · 벽동군 · 삭주군 · 초산군 · 위원군 · 희천군 · 강계군 · 자성군 · 후창군 | ||||||||||||||||||||||||||||||||||||||||||||||||||||||||||||||||||||||||||||||||||||||||||||||||||
평안남도 |
자치시 | 평양시 · 진남포시 | |||||||||||||||||||||||||||||||||||||||||||||||||||||||||||||||||||||||||||||||||||||||||||||||||
자치군 | 안주군 · 대동군 · 순천군 · 맹산군 · 양덕군 · 성천군 · 강동군 · 중화군 · 용강군 · 강서군 평원군 · 개천군 · 덕천군 · 영원군 | ||||||||||||||||||||||||||||||||||||||||||||||||||||||||||||||||||||||||||||||||||||||||||||||||||
참고 |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밑줄: 도청소재지 |
개요[편집]
현재 김씨돼지의 마굴로 변한 평안남도 북서해안지역에 있는 행정구역. 북으로는 안주시, 동으로는 순천군, 남으로는 강서군과 평양, 서로는 바다와 접하고 있다.
1914년 좆본이 부군면 통폐합을 하면서 숙천군, 영유군, 순안군을 합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3개 행정구역을 섞어서 만들었지만 크기는 울산보다 약간 작은 985.05㎢였다.
북괴치하에서 숙천군, 평양시 순안구역, 대동군, 평원군으로 사분할시키고 졸라게 마개조 시켜놨다. 숙천이 그나마 면하나 빼먹고 분리된 수준이지만 나머지는 개판이따로없다.
이후 상기한대로 좆본에서 순안군+영유군+숙천군+평양덕산면+증산한천면=평원군으로 통폐합되었다가 북괴치하에서 사분할되었다.
이름그대로 군역 대부분이 평지로 구성되있어 이전부터 평안남도일대의 농업생산량을 캐리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지형때문에 지금은 군전체가 민둥산과 황량한 논밭으로 뒤덮혀서 탈모갤러들의 머리같이 변했다.
수십년뒤 정으니새끼가 숙천지역에 자신의 딜도를 자랑하는데 쓸 미사일 기지를 때려박았다.
평원면에 훈련정과 법흥사라는 문화재가 있었다. 그리고 제갈량제사를 지내는 삼충사도 있었지만 애미애비쳐뒤진 씨발 혹부리새끼때문에 지금은 훈련정만 남았다.
읍면[편집]
舊 순안군 지역[편집]
순안면[편집]
주의! 정말 극혐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順安郡
1136년 묘청의 반란이 진압된 뒤 조정의 푸시란 푸시를 오지게 받던 서경은 준반역향취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지들 관할지이던 서경기 4도가 공중분해 되었다.
이 서경기 4도가 분해되면서 추자도 부곡(楸子島部曲) + 앵천촌(櫻遷村) + 용곤촌(龍坤村) + 화산촌(禾山村) = 순화현(順和縣)이 되었다. 순화현은 평양 직속현으로 예속되었고 1396년 평양부 안정참(安定站)이 있던 지금의 위치로 현청을 옮겼다. 원래 순화현청은 혹부리우스가 태어난 만경대근처에 있었다.
1914년 순안군 군내면 + 정방면 + 송현면 = 평원군 순안면이 되었다.
동쪽에는 동금강, 담화산등의 산지가 솟아있고 그밖 대부분지역은 구릉성산지로 이뤄져있다. 보통강이 남류하다 대동군으로 들어가는데 하천연안에 비옥한 평야가있다.
그리고 사금이 있어 일제강점기에 순안사금주식회사가 설치되기도 했었다.
남창리에 순안배회정, 담화리에 금강암등이 있었다.
1947년 양화면, 동암면과 함께 대동군으로 옮겨졌다.
1.4 후퇴이후 북괴가 재수복한 뒤에 국군, 유엔군 포로들을 동원해서 이지역에 순안비행장을 세우고 수십년뒤 1989년에 세계청년학생축전인지 뭔지로 활주로를 근처에 새로 세우면서 우리가 잘 아는 순안국제공항이 되었다.
참고로 저 1987년 활주로 재설치때는 수맥이 터지고 허리까지 빠지는진흙탕에 모래층, 암반층까지 있어서 그냥 공사를 해도 엄청난 극한의 공사였는데 시발 북괴에 인권이 어딨어? 산업재해 보상 그런게 어딨어? 돼지가 1987년 2월에 제작완료하라니까 제끼고 끝내버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갈려나간것은 잊혀졌다.
지금은 돼정은이 공항으로 쓰다가 2017년 8월 29일 일본영공을 넘어가는 탄도미사일을 여기서 발사했다.
탈모갤같이 황량한 평야에 공항만 딸랑있으니 뭔가 쏘름끼친다.
1952년 북괴가 실시한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순안읍(구교리 + 군상리 + 관북리 + 남창리 + 포정리), 남산리, 택암리(연산리 + 사직리 + 상양리 흡수), 구서리(신안리 + 양학리흡수), 성주리(원일리 + 성일리 + 성이리), 오산리(담화리 흡수), 안흥리(수우리 + 신상리 흡수)로 개편되어 순안군으로 흡수되었다.
1953년 순안읍이 남산리를 흡수했다.
1972년 순안군이 평양에 순안구역으로 흡수되면서 순안읍은 신성동, 역전동, 석박동, 남산동으로 쪼개졌다. 1979년 성주리는 동산리로 개명되었다.
순안불고기가 이 지역 음식으로 유명했으나 북괴 농업이 쇠락하고 소는 대부분 농장 부림소로 쓰이면서 소 도축이 제한되자 쉽게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양화면[편집]
兩花面
1914년 연화면 + 동화면 = 양화면이 되었다.
남쪽은 월명산, 북쪽은 자화산, 금강산등의 산지가 있고 대부분비옥한 평야지대이다.
소련군정시기인 1947년 순안면, 동암면과 함께 대동군으로 옮겨졌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용복리(옥정리 + 평리흡수), 양화리(신성리 + 요화리 + 신리), 상송리(신정리 + 금강리 흡수), 상서리(중흥리 + 내송리 흡수)로 개편되어 순안군에 편입되었다. 1972년 순안군이 평양시 순안구역으로 흡수되면서 상송리가 평원군으로 옮겨졌다.
동암면[편집]
東巖面
면소재지는 신음리.
1929년 순안군 동두면 + 舊영유군 석암면(용흥면인데 1917년 개명) + 자덕면 + 괴전리 일부 = 동암면이 되었다.
동쪽에 청룡산, 중앙남부에 전좌봉등의 산지가 있고 이외에는 구릉성산지와 평야로 구성되있다. 보통강이 남류하다 대동군으로 유입되며 하천연안에 비옥한 평야가 있다. 1930년 평안수리조합이 만든 평안저수지가 본면과 공덕면 경계지역에 있다.
1947년 순안면, 양화면과 함께 대동군으로 편입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산양리(상탄리 + 조산리 + 용산리 흡수), 용이리(문암리 + 용우리 흡수), 산음리(부백리 + 암적리 + 원화리 흡수), 석암리(도전리 + 송석리 + 신흥리 흡수), 율화리(율일리 + 반송리 흡수), 어중리 일부(서문리), 그리고 23개리중 나머지는 알수 없는 상태로 전체가 순안군으로 편입되었다.
1972년 순안군이 평양시 순안구역으로 개편되면서 어중리, 율화리가 평성시로 들어갔다. 그리고 용이리, 석암리, 산음리가 평원군으로 옮겨졌다.
공덕면[편집]
公德面
면소재지는 흥운리.
1914년 순안군 공전면(용암리, 성교리, 산송리, 신화리, 신교리지역) + 평천면 = 평원군 공평면이었는데, 1929년 자덕면을 흡수(괴전리 일부는 남았다)해 공덕면이 되었다.
묘향산맥의 여맥에 뻗어내려 북으로 강룡산, 남으로 연산봉등의 산이 솟아있고 대부분이 구릉성산지이다. 하천의 발달도 미약하여 밭농사를 행했다고 한다. 본면 법흥리에는 좆본치하 불교 31본산중 하나였던 대찰 법흥사가 있었지만 셰프님이 대웅전등 일부건물말고는 몽땅 태워주셨고 북괴가 복원을 아주 찔끔해놓은 상황이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장흥리 대부분(장재리 + 흥운리 + 산송리), 용상리(용암리 + 용흥리 + 병상리 + 퇴남리), 신성리(퇴현리 + 상이리 + 퇴상리 + 법흥리), 양교리(간리 + 성교리 + 상량수리 + 하량수리),원암리(향암리 + 적암리 + 괴전리 + 원리), 송림리일부(송매리) 나머지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에서 면전체가 평원군에 편입되었다.
1967년 장흥리가 어파노동자구로 개편되었다.
1997년 5월 원암리가 땅을 용이리에게 땅을 좀 떼줬다.
舊 영유군 지역[편집]
평원면[편집]
平原面
고려 정수현(定水縣)이었는데 영청으로 개명, 용강군에 붙였다가 현령을 두었다. 1256년 현령을 없애면서 안인진(安仁鎭)의 진장이 민정을 겸하는 병맛스런 형태가 되었다가 1358년 현령이 재파견되었다.
조선초 안인진은 안주로 이관되었고 함종에 속했던 통해현을 흡수, 1396년 영원진(寧遠鎭), 유원진(柔遠鎭)을 쓰까해 영녕현(永寧縣)이라 칭했고 1423년 갓종머앟님이 영유현으로 개명했다.
1914년 영유군 영유면 + 동부면 + 중부면 + 서부면 = 평원군 평원면이 되었고 군청이 때려박혔다.
남쪽에 자화산, 북쪽에 조운산등의 산지가 있지만 대부분이 구릉성산지에 중교천이 면북부를 서류하다 용호면을 지나 황해로 유입되는 동안 생기는 비옥한 평야이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평원읍(대부리 + 이화리 + 괴천리 + 영덕리), 장흥리 일부(어파리), 송림리일부(장림리), 월일리(월정리 + 자일리 + 월평리), 송석리(부용리 흡수), 삼봉리(원류리 + 화림리 + 어은리)로 개편되어 평원군으로 편입되었다.
1954년 월일리가 평원읍에게 땅을 좀 떼줬고 송석리는 1967년 삼봉리에 땅을 조금 떼줬다.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의 최기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해소면[편집]
海蘇面
면소재지는 금학리.
1914년 영유군 소호면 + 해율면 = 평원군 해소면이 되었다. 평야지대이다.
북괴치하로 넘어간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기은리(금학리 + 종률리 + 내덕리), 신풍리(용현리 + 월현리 + 송정리), 소은리(난산리 + 용교리)로 개편되어 딴면들이 평원군에 남을때 얘만 병신같이 숙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77년 소은리가 해빛리로 개명되었고 1982년 기은리가 금풍리로 개명되었다.
용호면[편집]
龍湖面
1914년 용흥면 + 갈하면 + 연하면 + 통호면 = 용호면이 되었다.
중교천이 면중앙을 서류하다 황해로 유입되고 북쪽 와룡산을 빼면 면전체가 평야지대이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연화리(관성리 + 장평리 + 남양리), 약전리(용강리 + 응오리 + 당우리 흡수), 석교리 일부(연교리), 매전리(중항리 + 어당리 흡수), 청룡리 일부(청운리), 운룡리(운봉리 + 안연리 + 뇌송리), 판교리일부(판교리)로 개편되었고 이중 연화리와 약전리는 숙천군으로, 판교리는 대동군으로 넘어갔고 나머지는 평원군에 남았다.
1963년 연화리는 남양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1990년 새로 개간한 간척지 + 운룡리 일부 + 매전리 일부 + 신성리 일부를 스까서 대풍리가 신설되었다.
노지면[편집]
鷺池面
면소재지는 용정리.
1914년 영유군 상계면 + 덕지면 + 백로면 = 노지면이 되었다. 남쪽은 금강산, 대원산, 자화산등의 산이 솟아있는데 거기말고는 모두 평야지역이다. 중교천이 면의 북부를 서류하다 용호면으로 들어간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대암리(대송리 + 정림리 + 용암리), 대정리(용정리 + 용당리), 문흥리(문명리 + 대주리 + 추흥리), 석교리 대부분(석소리 + 쌍암리)로 개편되어 평원군으로 편입되었다.
청산면[편집]
靑山面
면소재지는 구원리.
1914년 영유군 청지면 + 화산면 + 수남면 = 청산면이 되었다.
남쪽에는 대원산등의 산지가 있지만 대부분이 평야지대이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운봉리(운탑리 + 구원리), 청룡리 대부분(용암리 + 송현리), 신송리 일부(운송리), 남산리(계산리 + 남흥리 + 개수리), 청보리(금봉리 + 교산리 + 보방리)로 개편되어 평원군에 남았다.
舊 숙천군 지역[편집]
숙천면[편집]
肅川面
면소재지는 관전리.
발해멸망이전 연혁은 미상이고 고려에서 평원군(平原郡)을 설치했다는 것이 숙천지역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928년 고려가 진국성(鎭國城)을 축성하고 947년 이름을 통덕진(通德鎭)으로 고쳤다. 983년 숙주(肅州)로 승격되어 방어사가 파견되었다가 지군사가 되었고 1416년에 숙천으로 개명, 도호부가 되었다.
1914년 숙천군 우상면 + 우하면 + 동부면 + 서부면 = 평원군 숙천면이 되었다.
면대부분이 평지에 소규모의 하천만이 존재했으며 엄청난 곡창지대였다고 한다.
본래 경의선에서 평양찍고 숙천면을 찍고 안주시로 올라가 신의주로 갔기에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디. 이때문에 6.25 전쟁중 북진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20일, 맥아더성님은 북괴군수뇌부의 퇴로차단, 미군포로 구출을 위해 순천군과 숙천에 미187 공수연대 + 105mm 곡사포등의 각종장비를 보냈다.
이 공수연대는 1950년 10월 22일 북진한 본대와 만나기 전까지 북괴군 1,000명을 벌집으로 만들고 3,813명을 포로로 삼는 큰성과를 보여줬지만 실질 목적인 북괴군 수뇌부 정의구현이나 미군포로 구출은 싹다 말아먹었다. 왜냐하면 이씨발새끼들이 평양털릴 각뜨니까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덕천찍고 강계로 튀었기 때문이다.
김응룡갓끼리 성님의 고향이기도 하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숙천읍(관전리 + 관동리 + 당하리 + 사직리 + 성남리 + 심정리), 흥오리(내동리 + 덕수리 + 만흥리 + 송저리 + 신남리), 장흥리(미남리 + 백로리 + 신흥리), 용덕리 대부분(통덕리 + 도덕리)로 개편되어 숙천군의 중심지가 되었다.
1967년 백암리가 용덕리에 땅을 좀 떼줬다.
그리고 지금은 북괴 돼지의 딜도발사장이 되었다.
검산면[편집]
檢山面
면소재지는 검흥리.
1914년 상검면 + 하검면 + 법리면 + 애산면 = 검산면이 되었는데, 1년뒤 안주군 대니면 이서리 일부가 편입되고 검흥리가 안주군 대니면 봉명리 일부와 입석면 송산리 일부를 흡수, 검서리가 송산리 일부를 흡수했다.
평야지대에 따뜻한 지역이었는지 누에재배도 활발했다카더라.
검흥리 검양리 일대의 당장대, 검흥리 신도비, 검흥리와 터산리 사이의 검산약수터등이 있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검흥리(검서리, 신지리 흡수), 대성리(터산리 + 송양리 + 신성리), 검산리(검양리 + 용포리 + 학산리)로 개편되어 숙천군에 편입되었다.
1953년 검흥리 일부가 검산리로 들어갔다.
동송면[편집]
東松面
1914년 숙천군 동산면 + 송리면 = 동송면이 되었는데 1915년 안주군 대니면 서리일부가 본면에 흡수되었다.
남쪽 공덕면과의 경계에 서있는 강룡산을 빼면 전체가 평원이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용덕리극히일부(용담리), 평화리(송현리 + 청룡리 + 월봉2리), 쌍운리(군자리 + 운평리 + 운룡리 + 월봉1리), 백암리(백석리 + 수암리 + 백운리)로 개편되어 숙천군으로 편입되었다. 백암리는 1967년 용덕리에 땅떼주고 1972년 평화리에 또 땅을 떼줬다.
서해면[편집]
西海面
면소재지는 사산리.
1914년 고리면 + 보민면 + 평리면 + 당리면 = 서해면이었는데 1915년 중흥리가 안주군 입석면 남상리 일부를 흡수했다.
대한민국 보령시 천북면처럼 강으로 다른 지역과 분리되있다.
1952년 광천리(당오리 + 남포리 흡수), 창동리(연풍리 + 보원리 + 보덕리), 칠리(송천리 + 순정리 + 성덕리), 사산리(용산리 흡수)로 개편되어 숙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53년 칠리가 사산리에게 땅을 조금 떼줬다.
조운면[편집]
朝雲面
면소재지는 갈산리.
1914년 숙천군 취리면 + 삼리면 + 성상면 = 조운면이 되었다.
남쪽에는 조운산이 있고 이 산에서 발원한 조운천이 면의 남부를 서류하다 노지면, 용호면을 찍고 황해로 들어가며 하천연안에 비옥한 평야가 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송덕리(송천리 + 순정리 + 성덕리), 운정리(조운리 + 재정리 + 응암리), 평산리(태평리 + 갈산리)로 개편되어 숙천군으로 편입되었다.
기타지역[편집]
덕산면[편집]
德山面
1914년 평양에서 평원으로 이관되었다. 북쪽에 대원산, 중앙에 만덕산등의 산지가 있지만 나머지는 평야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덕제리(탑리 + 제리 + 삼정리), 덕포리(원오리 + 대포리 + 호려리), 심원리 일부(동하리)로 개편되었고 이중 덕제리, 덕포리, 심원리 일부로 넘어간 동하리는 평원군에 남았고 나머지는 대동군에 편입되었다.
한천면[편집]
漢川面
1914년 증산군 진방면 + 초곡면 = 평원군 한천면이 되었다. 서쪽에 불곡산이 솟아있고 나머지는 바닷가 평지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화진리(감륙리 + 감칠리 + 감팔리), 신송리(신성리 + 예지리 + 인의리), 심원리 대부분(감삼리 + 감사리), 송화리(감일리 + 감이리 + 감오리)로 개편되어 평원군에 편입되었다.
1992년 화진리일부, 신송리 일부지역이 스까되어 한천노동자구가 신설되었다.
아웃풋[편집]
참고문헌[편집]
세종실록지리지-순안현 [1], 세종실록지리지-숙천도호부 [2], 세종실록지리지-영유현 [3], 한국민족문화백과-평원군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