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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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뤼 문서뤠서 설명하른 대상른 북괴롬덜과 밀접한 관계가 맀습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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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https://www.youtube.com/watch?v=
대한민국과 북괴에서 공중분해된 행정구역이다
직선으로 그어진 곳이 38선이며 구불구불한 선이 휴전선이다
개성시 개풍군 마냥 전지역 미수복은 아니며
일부 면(행적구역),리(행정구역)은 대한민국 영토로 편입됬고 파주시,연천군 등으로 편입되었다.
일제시대때 여기가 콩으로 유명했다 한다. 아 물론 지금은 그 타이틀을 파주가 들고 갔다.
원래720제곱 킬로미터정도 였는데(스까랜드가 760제곱킬로미터정도.)조선초기 4개의 현을 통폐합해서 만든 것이 지금의 장단군이라고 한다.
개성의 교외지역이여서 고려관련 유적지가 좀 있었..지만 전선지역이라 죄다 부숴졌다.
읍면[편집]
수복지역[편집]
군내면[편집]
郡內面
면적 43.23㎢. 면소재지는 읍내리.
읍내(邑內), 점원(點元), 방목(芳木), 정자(亭子), 백련(白蓮), 송산(松山), 조산(造山)의 7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진림성현(津臨城縣), 혹은 오아홀(烏阿忽)이라 불렸는데 신라때 임진현(臨津縣)으로 개편, 개풍군 개성리에 있었던 개성군(開城郡)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때인 1018년 장단현에 예속되어 상서도성의 소관으로 했다가 1063년 개성부의 속현이 되었다.
1389년 감무가 파견되면서 주현으로 독립했고 1414년 장단현과 합쳐져 임단현(臨湍縣)이 되었다. 하지만 세종시기인 1418년 임진현으로 재분리되었다가 1458년 임진현에 다시 통폐합되었다. 1621년 도원역에 있던 장단도호부의 치소를 옮기면서 장단군의 중심지가 되었다. 1930년 진현내면과 진북면이 스까되면서 만들어졌다.
면남부에 임진강이 서부에 사천이 흐르며 북쪽에는 백학산(白鶴山, 229m) 등의 산지가 있다. 사천과 임진강때문에 비옥한 평야가 펼쳐졌지만 38선때문에 전지역이 전선으로 변하면서 황폐화되었다.
38선이남이라서 초창기부터 전역이 대한민국에 속했는데 6.25 전쟁때 조산리 서부 끝자락 지역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지역을 수복했다. 1972년 민간인 거주 및 활동이 허가되었다.
장남면[편집]
長南面
면적 56.17㎢, 면소재지는 고랑포리.
고랑포(高浪浦), 원당(元堂), 반정(伴程), 판부(板浮), 자작(自作)의 5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야야(耶耶), 야아(夜牙)라고도 불리는 장천성현(長淺城縣)이 있었다. 신라가 삼국통일이후 694년 파괴된 고구려의 우잠성의 속현으로 두었다. 경덕왕때 장단현(長湍縣)으로 개명되었다. 1001년 시중(侍中) 한언공(韓彦恭)의 고향이라고 단주(湍州)로 승격되었으나 1018년 장단현으로 격하되었고 현령이 파견되어 상서도성의 소관이 되었다가 1062년 개성부에 소속되었다.
1414년 임강현에 통폐합되어 장림현(長臨縣)이 되었다가 후에 임진현, 임강현과 함께 장단군이 되었다.
1930년 고남면, 장현내면, 장서면 관송리 + 반정리가 장남면으로 스까되었다.
임진강의 지류인 사미천이 면경계를 따라 동남류하다가 임진강으로 들어간다. 고랑포가 한반도의 남부, 북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고 사미천과 임진강으로 생긴 비옥한 평야때문에 잘나갔다. 하지만 38선이 그어지면서 자작리와 판부리, 고랑포리 대부분이 북괴로 넘어갔다가 6.25때 국군이 전지역을 수복하면서 황폐화되었다. 1963년 전지역에 민간인 거주 및 활동이 허가되었다. 군내중 유일하게 연천군으로 관할이 넘어갔다.
원당리에 호로고루성, 고랑포리에 경순왕릉, 그리고 임진강변의 절벽인 장단석벽등이 있다.
장단면[편집]
長湍面
면적 33.96㎢, 면소재지는 도라산리.
도라산(都羅山), 동장(東場), 노상(蘆上), 노하(蘆下), 서장(西場), 정동(井洞), 덕산(德山), 거곡(巨谷), 석관(石串), 강정(江井)의 10개리를 관할했다.
1930년 장단군 상도면과 하도면을 스까서 만든 면이다. 임진강의 하구지역으로 면의 동남부를 흐르다 한강과 합류, 황해로 들어간다. 38선이남이라 전지역이 대한민국에 속해 잘 나갔으나 6.25 전쟁때 안타깝게도 덕산리, 정동리, 서장리일대를 털렸다.
거주인구 없음.
진동면[편집]
津東面
현재 대한민국의 수복지역 면적은 43.16㎢. 면 소재지는 하포리.
하포(下浦), 동파(東波), 서곡(瑞谷), 초(哨), 용산(龍山)
1930년 당서면의 초리와 용산리를 편입했다. 남쪽에 일월봉(日月峰, 191m)등의 산지가 솟아있으며,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 내려 모든 지역이 100m내외의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그래서 밭이 주류였다. 1930년 당시 기준으로 구릉성은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은 주로 묘지로 쓰고 있었다. 임진강이 면 동남부를 군내면으로 유입된다. 하천연안을 끼고 있는 항구와 38선이남에 있어 크게 문제가 없었으나 6.25때 서곡리의 극히 일부지역을 털렸다. 휴전 이후 전지역이 군사작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진동면 서쪽 끝에 있는 하포리만 유일하게 민간인 출입을 허용하지만 거주는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 하포리에 출입하는 주민들의 마을은 하포리 서쪽의 군내면 방목리에 있다.
묘지가 많은 지역이라 하포리에 서천부원군 정곤수의 묘가 있었다.
거주인구 없음.
진서면[편집]
津西面
현재 대한민국이 수복한 지역 면적은 9.16㎢. 면 소재지는 눌목리.
눌목(訥木), 분지(芬芝), 금릉(金陵), 어룡(魚龍), 경릉(景陵), 전제(田齊), 선적(仙跡), 대원(大院)의 8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지섬(之蟾)이라고도 불렸던 약지두치현(若只頭恥縣)이었다. 신라때 여웅현(如熊縣)으로 개명되어 송악군의 속현이 되었다. 1018년 상서도성에 속했다가 1063년 개성부의 속현이 되엇다가 1418년 임강현에 통폐합되었다.
1914년 등장한 송남면, 송서면이 진서면으로 통폐합되었다. 해방이후 38선이남의 눌목, 금릉, 대원, 전제, 선적, 분지, 어룡리지역이 대한민국에 속했지만 6.25때 금릉리의 극히일부와 백학산 일부를 제외한 전지역이 북괴치하로 넘어갔다.
동쪽은 반룡산, 남쪽은 군내면과의 경계에 백학산, 북쪽은 화장산등의 산지가 있고 그 여맥따라 100m이하의 구릉성산지가 면을 뒤덮고 있다.
사천이 면의 서남부를 남류하다 군내면으로 유입된다.
경릉리에 경릉, 불일사지, 눌목리영릉 + 고분, 대원리에 화장사 7층석탑, 대원사지, 천화사지, 산성지, 전제리에 75기고분, 고려 문하시중 염제신의 묘가 있었다고 한다.
이중 화장사는 공민왕의 어진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었지만 6.25 전쟁때 화장사가 불타버렸다....
거주인구 없음.
미수복[편집]
강상면[편집]
江上面
現 북괴령 황해북도 장풍군 구화리, 덕적리, 임강리, 자하리.
원래 면소재지는 구화리였다.
구화(九化), 마성(馬城), 덕적(德積), 갈운(葛雲), 임강(臨江), 자하(紫霞), 솔랑(率浪)의 7개리를 관할했다.
본래 임강리에 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라 불리던 장항현(獐項縣)이 있었다. 이는 신라때 임강현(臨江縣)으로 바뀌고 694년 성이 만들어지면서 정식으로 설치된 우봉군의 속현이 되었다. 1018년 상서도성의 소관으로 넘어갔다가 1063년 개성부의 속현이 되었다.
1389년 감무가 파견되면서 주현으로 독립했고 1414년 장단현과 스까해서 장림현이 되었다가 두어달 뒤 원상복귀했다. 1458년 장단현, 임진현과 함께 스까되었다.
북서쪽에는 원통산(元通山)등의 산지가 솟아있고 여맥이 남동쪽으로 뻗어내려 모든 지역이 구릉성 산악지대에 해당되어서 하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소규모 콩밭만 지었다.
원래부터 38선이북에 있었기 때문에 8.15 광복이후부터 북괴령에 속했고 1951년 중공군 춘계공세이후 서부전선에서의 북진도 좆망해서 전지역이 북괴로 넘어갔다.
북괴치하에선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구화리(구화리 + 갈운리 일부), 덕적리(덕적리 + 솔랑리 + 갈운리 나머지), 임강리, 자하리(자하리 + 마성리)로 개편되었다.
솔랑리 심복사지, 덕적리 성불사지가 있었고 7개리를 관할했다.
대강면[편집]
大江面
現 북괴령 황해북도 장풍군 사암리, 국화리, 나부리.
면 소재지는 청정리.
청정(靑廷), 나부(羅浮), 포춘(浦春), 우근(禹勤), 독정(篤正)의 5개리를 관할했다.
1914년 장단군 강남면(江南面)과 대위면(大位面)을 스까해서 만들어졌다. 200m내외의 구릉지로 구성되어있으며 여맥이 서에서 동으로 뻗어내려 모든 지역이 구릉성산지로 구성되있다. 사미천은 극히 일부만 지나가서 평야 자체가 극히 조금만 존재한다.
38선이북에 있어 전역이 북괴령이었지만 6.25때 포춘리와 청정리 극히일부지역을 수복하는데 성공했다...만 전지역이 연천군 백학면으로 통폐합되었다.
북괴로 넘어간 지역은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사암리( 청정리 + 독정리 일부), 국화리(우근리 + 독정리 일부), 나부리(나부리 + 미수복 포춘리)로 개편되었다. 1961년 사암리 일부지역이 국화리로 편입되었다.
대남면[편집]
大南面
現 북괴령 황해북도 장풍군 석촌리, 가곡리, 장좌리, 석촌리 극히일부
면소재지는 위천리.
위천(渭川), 성곡(聖谷), 석촌(石村), 장좌(長佐), 가곡(佳谷)의 5개리를 관할했다.
원통산, 대개산(大蓋山, 577m), 수룡산등의 산지가 솟아있다. 지형적으로 수룡산, 대개산을 잇는 산줄기는 이 면의 분수령을 이루며, 북쪽은 구연천(九淵川)의 지류, 남쪽은 사미천이 흐른다. 그래서 비옥한 평야가 많다.
장좌리와 석재리일대에 백치성(白峙城), 성재산산성(城載山山城), 석간동의 반신나체좌불상등이 있었다.
면전체가 38선이북에 있어 북괴땅으로 넘어갔고 6.25이후에도 그래도 전지역이 북괴로 넘어갔다. 북괴로 넘어간 뒤 석촌리(석촌리 + 성곡리 일부 + 위천리 일부), 가곡리(가곡리 + 성곡리 일부 + 위천리 일부), 장좌리(장좌리 + 위천리 일부)에 편입되었다. 1967년 일부지역이 세골리로 편입되었고 장좌리의 일부와 석촌리의 일부를 흡수했다.
소남면[편집]
小南面
現 북괴령 황해북도 장풍군 장풍읍 대부분, 세골리 일부, 월고리, 십탄리, 금천군 양합리 일부.
면소재지는 유덕리.
유덕(有德), 지금(知琴), 홍화(弘化), 박연(朴淵), 두곡(斗谷)의 5개리를 관할했다.
대개산, 서쪽은 월양산(月陽山, 578m), 남쪽은 화장산(華藏山, 560m), 배릉산(裵陵山, 392m), 북쪽은 대둔산(大屯山, 760m)등의 산지가 솟아 있으며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내려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를 이룬다. 월양산 줄기가 면 중앙부를 동서방향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와 면의 분수령을 이루는데, 오조천이 흐르는 서북부 분지와 사미천이 흐르는 남부 분지로 나뉜다.
유덕리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왕릉, 홍화리에 홍화사지, 두곡리에 천황사지, 지금리에 고려 문하시중 문충공 이제현의 묘등이 있었다. 38선 이북이라 전지역이 북괴로 넘어갔지만 그대로 북괴로 넘어갔다. 이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장풍읍(유덕리 + 홍화리 일부), 월고리(홍화리 일부 + 개풍군 영북면 월고리), 십탄리(두곡리 + 지금리), 양합리 일부(박연리)로 개편되었다. 이후 1967년 장풍읍과 십탄리의 일부지역이 세골리로 편입되었고 1983년 개풍군 영북면 고덕리와 길상리를 스까서 만들어진 산성리가 박연리로 바뀌었다.
장도면[편집]
長道面
現 북괴령 고읍리, 사시리, 대덕산리, 항동리
면 소재지는 고읍리.
고읍(古邑), 사시(沙是), 석주원(石柱院), 중(中), 상(上), 하(下), 오음(梧陰), 항동(項洞), 매현(梅峴), 두매(杜梅)의 10개리를 관할했다.
1458년 장단현, 임진현, 임강현이 스까되어 새로운 장단군이 만들어졌을 때 1621년까지 장단군의 치소가 된 도원역(桃源驛)이 있었다.
이후 1930년 동도면, 서도면, 장북면을 스까서 만들어졌다. 강상면과 마찬가지로 모든 지역이 100~200m의 구릉성산지로만 구성되어 하천 자체가 아예 안지나간다. 그래서 소규모 콩밭만 하고 있었다. 38선이남에 두매리, 매현리, 중리만 겨우 대한민국땅으로 넘어갔지만 6.25때 동부끝자락이던 오음리, 항동리일부를 제외하면 전역이 북괴령으로 넘어갔고 이때 수복된 극히일부지역은 연천으로 넘어갔다.
미수복지역은 군면리 대폐합때 고읍리(고읍리 + 상리), 사시리(사시리 + 석주원리 + 매현리), 항동리(항동리 + 오음리), 서암리(중리 + 하리 + 개풍군 영남면 경릉리 + 대원리 일부)로 개편되었다. 1967년 사시리와 서암리의 일부가 고읍리로 편입되었고 1983년 서암리는 대덕산리로 개명되었다.
그 이후[편집]
파주시 연천군에 각각 분리되었다.
1989년: 연천군 원당출장소가 장남면으로 승격하였다.
2011년: 파주시 군내출장소가 장단출장소로 개칭되었다.
사실상 군자체가 폐지되긴 했으나 장단출장소(면읍시군 승격때 만드는 임시 행정구역)로 승격되면 명맥을 이어간다
군내, 진동, 진서, 장단 4면 관할 면적 139.08 ㎢(유일하게 장남면은 연천군으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