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크 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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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스의 승리... 이 문서는 승리했지만 뭔가가 찝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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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크 섬 전투 (태평양 전쟁의 일부) | |||
웨이크 섬 전투에서 파괴된 일본 순찰정 | |||
날짜 | 1941년 12월 8일 ~ 1941년 12월 2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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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오세아니아 웨이크 섬 | ||
결과 | 일본제국의 피로스의 승리 | ||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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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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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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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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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 일본제국이 오세아니아에 있던 미국령 웨이크 섬을 침공한 전투이다.
배경[편집]
일본은 진주만 공습을 계획하면서 서태평양에 있던 미국령 도서들을 하나하나 점령해가며 제해권을 장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웨이크 섬은 좆만한 섬이긴 하지만 나름 비행장도 있고 충분히 일본에게 위협이 될 만한 섬이라고 판단해서 점령하기로 계획한다.
미국 역시 진주만 공습 이전부터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고 있었고 서태평양에 있던 웨이크 섬의 방어태세를 강화했다. 그래봤자 워싱턴 군축 조약때문에 완전한 요새화는 못했고 소규모의 F4F 와일드캣을 배치한 정도였지만.
참고로 웨이크 섬은 민간 여객기 활주로도 있었다. 태평양을 지나는 여객기들이 잠시 중간 기착하는 장소로 쓰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민간 항공사는 일본군이 공습하기 전 섬을 빠져나갔다.
전투[편집]
초반 공격[편집]
1941년 12월 8일 진주만 공습 불과 몇시간 후 마셜 제도에서 날아오른 미쓰비시 G3M 3 중형 폭격기 36대가 기습적으로 공습하여 섬에 있던 비행장과 대기중이던 와일드캣 8기를 파괴하였다. 그러나 당시 순찰비행중이던 와일드캣 4기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그 4기에 의해 일본 폭격기 2대가 격추되었다.
당시 괌도 손쉽게 점령했기에 자신만만했던 일본군은 미군의 방어태세가 충분히 완파됐다고 판단하고 상륙을 진행한다.
1차 상륙[편집]
1941년 12월 11일 새벽 일본군은 웨이크 섬에 상륙을 시도했다. 당시 순양함으로 섬을 포격했으나 미군의 대응이 전혀 없자 미군의 방어태세가 완전히 망가져서 더이상 대응을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하여 상륙을 개시했으나 이는 미군의 함정이었고 일부러 일본군의 함정들이 해안포 유효사거리 내로 들어오도록 유인했다.
일본 함정들이 해안포의 유효사거리 내로 들어오자 미군은 해안포 사격을 퍼부었고 순식간에 상륙함대의 기함이던 유바리가 피탄당했고 구축함이던 하야테가 단 2분만에 격침당했으며 탑승원 전체가 즉사했다.
이 전투로 일본군은 순식간에 407명의 사상자가 나왔으며 미군의 기습적인 반격에 깜짝놀라서 상륙을 하지도 못하고 후퇴했다. 참고로 이때 침몰한 하야테는 태평양 전쟁에서 최초로 침몰한 일본 군함이 되었다. 반면 미군은 단 한명의 전사자도 나오지 않았다.
한편 일본 상륙함대가 후퇴한 뒤 12월 13일 섬을 정찰하던 일본 잠수함은 초계중이던 와일드캣에게 고폭탄을 맞고 침몰했다.
1차 상륙 이후[편집]
예상치 못한 대패에 당황한 일본은 비상대책회의를 열었고 "일본 제국 해군의 명예를 걸고 기필코 이 섬을 점령하고야 말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걍 괌 전투에서처럼 대충 상륙함대로 처치하겠다는 계획을 파기하고 당시 진주만 공습 이후 귀환중이던 히류와 소류까지 충원했고 중순양함 아오바ㆍ 키누가사ㆍ카코ㆍ후루타카 등 4척과 구축함 아사나기ㆍ유나기 2척을 충원해서 대대적인 공세를 하기로 결정한다.
한편 예상치 못한 대승에 진주만 공습으로 침울해 있던 미국이 열광했다. 당시 상급부대가 웨이크 섬 수비대장이던 커닝햄 중령에게 "필요한 게 뭐냐"라고 무전을 치자 "일본놈들을 더 보내라!"라고 씹상남자 워딩을 해서 미국 국민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구라였고 당시 침울해있던 미국 국민들에게 사기를 불어넣기 위해 주작한 프로파간다였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서태평양 제해권을 일본에게 털렸기때문에 미군은 웨이크 섬에 병력 증원을 해주고 싶어도 해 줄수가 없었고 병력증원을 못하는 핑계로 이런 프로파간다를 뿌렸다고 한다.
참고로 12월 15일 미 함대가 웨이크 섬 인근에서 2차 상륙을 준비하던 대규모 일본군 함대를 발견했지만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함대가 통째로 날아가버려서 가뜩이나 없는 함대를 섬 하나 지키겠다고 날릴 수 없다며 눈물을 머금고 회항했다.
2차 상륙[편집]
1941년 12월 23일 일본군은 웨이크 섬에 해군육전대 1500명으로 대규모 상륙을 개시한다. 좆만한 섬 하나 먹겠다고 1500명을 끌고 온 걸 보면 어지간히도 열받았나 보다. 그와중에도 일본군 교환비는 씹창이 나고 좁은 지형 곳곳에 깔려있던 기관총에 갈려나갔다. 그럼에도 화력차이가 너무 났기에 결국 미군기지 거점들은 하나하나 점령당했고 마침내 12월 24일 13시 30분 미 해병대 잔존 병력들까지 항복함으로서 태평양 전쟁 초기 가장 격렬했던 전투는 일본군의 피로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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