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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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입니다.
이곳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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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경상북도 북동부의 기초자치단체.

봉화군, 영양군과 함께 BYC라는 개노답 깡촌으로 통한다.

건치연혁[편집]

본래 청기현(靑己縣)이었지만 경덕왕시기 적선현(積善縣)으로 개명되어 야성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초에는 잠깐 부이(鳧伊), 운봉(雲鳳)이라 불리다가 청부(靑鳧)으로 개명되어 예주(禮州)의 속현이 되었다.

1394년 진보현과 스까되어 청보현(靑寶縣)이 되었다가 갓종머앟님이 즉위하자마자 소헌왕후 심씨의 관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진보현은 분리되었고 송생현(松生縣)을 흡수, 세조때인 1459년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청송이고 진보고 군대부분이 산악지대에 토질이 좋지않아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고 주민들은 솔검(率儉)했다고 한다.

이후 1914년 부군면 통폐합때 진보현의 일부지역을 흡수하면서 지금의 청송군이 되었다.

현황[편집]

주왕산, 주산지, 청송교도소로 유명하다.

워낙에 깡촌이라 청송 사람들은 청송교도소 확장해 달라고 호소한다. 이 동네에서 그나마 외부인 볼 기회가 교정공무원 가족들 밖에 없을 정도라서.

당진영덕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접근성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진짜 말도안되게 좋아졌다 2000년대 초만 해도 포항이나 대구는 고사하고 가장 가까운 이웃도시 안동가려해도 길이 상당히 안좋았으나 읍내-고속도로톨게이트 확장공사, 당진영덕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해 어마어마하게 좋아졌다 심지어 톨게이트랑 읍내랑 상당히 가까워서 더더욱 체감된다.

주요 명소로는 주왕산과 주산지가 있다

ㄴ 주왕산 강추한다 가을에가면 사람이 많긴하지만 경관도 좋고 길이 좋아서 등산도 필요없다.

그래도 놀 곳은 청송군 진보면이 그나마 낫다 존1나게 깡촌 마을이긴 하지만 영양이나 봉화에 비하면 피시방도 있고 마트도 있고 카페도 있고...

그래봐야 깡촌이다

ㄴ이곳 지역이 고령 인구 지역이라 산도 대머리다 비봉산 머리 다 깎임 엌ㅋㅋㅋㅠㅠ

2023년 1월 1일 부터 청송군 관내 농어촌버스를 군민, 관광객 할거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1]

읍면[편집]

청송읍[편집]

靑松邑

면적 82.43㎢. 읍소재지는 월막리.

월막(月幕), 덕(德), 금곡(金谷), 청운(靑雲), 송생(松生), 교(橋), 거대(巨大), 월외(月外), 부곡(釜谷)의 9개리를 관할한다.

청부현과 함께 청송을 이룬 송생현(松生縣)이 본읍 송생리에 있었다. 이 송생현은 1,000년 예주에 소속되었다가 1143년 감무가 파견된 주현으로 독립했지만 갓종머앟님때 통폐합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이며 북쪽경계에 태행산(太行山, 933m), 중대산(608m), 대둔산(大遯山, 905m), 방광산(放光山, 512m)등이 솟아있다.

용전천 북쪽 하안에 중심시가지가 발달하였으나 하천 남쪽으로 시가지가 쪼까 확산되었다. 하지만 교통의 요지인 진보면에 비해 더 낙후되어있다.

달기약수탕, 태행산, 대둔산을 필두로 한 동부산악지역은 주왕산국립공원의 일부에 속해있다.

부남면[편집]

府南面

면적 122.50㎢. 면소재지는 대전리.

대전(大前), 감연(甘淵), 홍원(洪源), 하속(下涑), 구천(九川)·화장(花場), 이현(泥峴), 중기(中基), 양숙(陽宿)의 9개리를 관할한다.

태백산맥내에 있는 산악지대로 경상계 퇴적암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다. 북쪽 무포산(霧抱山, 717m), 매봉산(642m), 남쪽 구암산(九巖山, 807m), 달의령(達義嶺, 743m)등이 솟아 있다. 면 중앙부를 마평천(馬坪川)이 북서류 하며 그연안에 넓은 충적평야를 만들었다.

구천리에 병암서원과 석비가 남아있다. 하속리엔 정월 대보름때마다 당나무에 제사를 올렸던 당나무길이 존재한다.

주왕산면[편집]

周王山面

면적 132.99㎢. 면소재지는 이전리. 2019년 2월 28일까지 부동면.

이전(梨田), 상평(上坪), 지(池), 하의(下宜), 상의(上宜), 부일(扶日), 내룡(內龍), 항(項), 나(羅), 신점(新店)의 10개리를 관할한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청하군 죽북면 하옥리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태백산맥의 일부인 고산(高山), 북쪽 경계 최고봉 금은광이(812m)가 솟아있고 면내에 주왕산이 있으며(때문에 주왕산 국립공원의 핵심이다.) 근처에 무포산, 장산(霧藏山, 641m)등이 있다. 서쪽 경계가까이에는 마평천(馬坪川)이 흐르고 그 강을 따라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마평천의 지류인 주방천(周房川), 주산천(主山川)이 거의 동서방향으로 평행되게 흘러 전면에 걸쳐 하계망을 펴고 있다.

신점리 신점마을 뒷산에 고령토가 많이 산출되기 때문에 사기그릇을 구워 파는 공방이 있다고 한다.

안덕면[편집]

安德面

면적 107.82㎢. 면소재지는 명당리.

명당(明堂), 감은(甘隱), 장전(長田), 문거(文居), 신성(薪城), 근곡(斤谷), 노래(老來), 고와(高臥), 복(福), 덕성(德城), 성재(聖才), 지소(紙所)의 12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이화혜현(伊火兮縣)[1]으로 불렸고 통일신라때는 연무현(緣武縣)으로 이름이 바뀌어 곡성군의 속현이 되었고 이화혜정이 파견되었다.

고려초 안동의 속현이 되었다가 공양왕때 감무가 파견됨에 따라 주현으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태조때 송생현과 합쳐졌다가 갓종머앟님때 청송의 속현이 되었다.

19세기 기독교가 탄압을 받을 때 기독교도들이 성재릴로 숨어들어가 은거했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로마 교황이 하사한 성기(聖器)가 보관되어있다.

1973년 현서면(縣西面)의 복리, 덕성리, 성재리가 본면으로 편입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되어 있으며, 서쪽에 연점산(鉛店山, 871m), 산지봉(産芝峰, 890m)등의 산이 솟아있으며 경상계 신라통에 속하는 퇴적암으로 땅이 이뤄져있다. 보현천(普賢川)이 면을 북류하다 동류하는데 연안에 10.99㎢쯤되는 충적평야가 가 전개된다. 북부에는 길안천(吉安川)이 산지속 감입곡을 형성하며 흐른다.

과수원, 약 50년전부터 개광하여 구리, 아연, 을 채굴했던 청송광산으로 먹고살았지만 한국에서 광물을 캐는거보다 광물깡패 천조국, 호주등에서 수입하는게 가성비에 더 이롭게 되면서 광산은 망했고 지금은 과수원으로만 먹고살고 있다.

1887년에 개광했다가 8.15 광복이후 폐광된 천마 금광도 있었다.

진보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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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寶面

면적 109.51㎢. 면소재지는 진안리.

진안(眞安), 이촌(理村), 후평(後坪), 합강(合江), 기곡(基谷), 추현(楸峴), 부곡(釜谷), 세장(世長), 광덕(廣德), 각산(角山), 월전(月田), 고현(高峴), 신촌(新村), 괴정(槐亭), 시량(時良)의 15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조람현(助攬縣)이 있었다. 진보현의 전신이라고 불리는 칠파화현(漆巴火縣)은 의성군 의성읍 철파리에 있었는데 경덕왕시기 각각 진안현(眞安縣), 진보현(眞寶縣)으로 개명되어 야성군, 문소군의 속현이 되었다.

후삼국시대 진보현의 대빵 홍술왕건에게 성을 내주면서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는 진보현, 진안현을 스까해 보성부(甫城府)를 두었다. 이 보성부는 현종치세에 예주의 속부가 되었지만 고려말 왜구의 침입때 주민들까지 사라지는 수준으로 초토화되었고 조선건국이후 보성감무(甫城監務)가 진보면에 파견되면서 복구되기 시작했다. 갓종머앟시기 청송과 스까되 청보군에 잠시 속했다가 진보현이 되었고 현감이 파견되었다.

하지만 1473년 금맹함(琴孟諴)이 현감 신석동(申石同)을 후드려팬 사건이 벌어져 청송부에 혁속되었다가 1477년 주민들의 요구로 진보현이 복구되었다.

산지가 많은데 남부에는 태행산, 대둔산등이 솟아있으며 북고남저의 지형을 가지고 있으며 토질은 경상계 퇴적암으로 되어있다. 물살이 거세어 빠졌다가 익사하기 딱좋은 반변천이 서류하는데 진안리일대에는 넓은 충적평야를 전개시키고 광덕리에는 거대한 오지를 만들어내는데, 그 오지가 바로 청송교도소.

교통이 편리하여 청송읍보다 더 발달된 곳으로 청송교도소가 본면 시가지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교도소때문에 교정공무원들의 가족이 많이 살고 있다.

파천면[편집]

巴川面

면적 99.53㎢. 면소재지는 관리.

관(官), 중평(中坪), 덕천(德川), 신흥(新興), 신기(新基), 지경(地境), 병부(丙夫), 황목(皇木), 어천(魚川), 송강(松江), 옹점(甕店)의 11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진보군 남면에 속했지만 1914년 상리면의 괴정일부와 부내면 내부곡일부가 스까되어 11개리로 개편되었고, 면중앙을 흐르는 파질천(巴叱川)의 이름을 따 파천면이 되었다.

반변천의 지류인 용전천(龍纏川)이 면을 북쪽으로 뚫고지나가면서 연안에 충적평야를 만들고 북쪽 비봉산, 남동쪽 중대산, 방광산과, 300~400m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현동면[편집]

縣東面

면적 78.72㎢. 면소재지는 도평리.

도평(道坪), 거성(巨城), 눌인(訥仁), 월매(月梅), 개일(開日), 창양(昌陽), 인지(印支)의 7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안덕현에 속했는데 안덕현 동쪽에 있다 하여 현동면으로 칭하게 되었다. 1914년 청하군 죽북면 오창리의 월경지가 편입되면서 지금의 7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동쪽 자초산(紫草山, 763m), 남쪽에 베틀봉(930m), 면봉산(眠峰山, 1,113m)같은 병맛스런 이름의 높은 산이 솟아있다. 눌인천 상류가 면전체를 흘러 개일리 부근에서 북동류하면서 연안에 충적평야를 만든다.

현서면[편집]

縣西面

면적 112.52㎢. 면소재지는 구산리.

구산(九山), 백자(栢子), 수락(水洛), 무계(武溪), 갈천(葛川), 월정(月亭), 도(道), 모계(慕溪), 천천(泉川), 화목(和睦), 덕계(德溪), 두현(豆峴), 사촌(沙村)의 13개리를 관할한다.

이화혜현, 연무현에 속했다가 조선시대에 청송도호부에 속하게 되었고 부서족에 있다 하여 현서면이 되었다.

남쪽 경계에 보현산, 서쪽 경계에 구무산, 산두봉, 어봉산, 남부에 고모산, 대정산, 방각산등이 솟아있다. 방각산에서 길안천일 발원하여 산지사이를 개석, 구산리 북방에서 동류하고 그 연안에 충적평야가 펼쳐진다.

아웃풋[편집]

  1. 때문에 '이벌혜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