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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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백인천 In Cheon "The Golfer" Baek
자이언츠 종신골퍼기본 정보 생년 월일 1942년 9월 27일 출생지 중국 장쑤성 국적 대한민국 학력 경동고 가족관계 후배골퍼 박종윤, 직계후임 델동님 경력 입단 1962년 도에이 플라이어스 입단
1982년 MBC 청룡 창단맴버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외야수,포수,골퍼 선수경력 도에이 플라이어스(1962~1974)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1975~1976)
롯데 오리온즈(1977~1980)
긴테츠 버팔로즈(1981)
MBC 청룡(1982)
삼미 슈퍼스타즈(1983~1984)감동경력 MBC 청룡(1982)[1]
삼미 슈퍼스타즈 코치(1984)
LG 트윈스 감독(1990~1991)
삼성 라이온즈 감독(1996~1997)
연세대학교 타격 인스트럭터(1998)
한화 이글스 타격 인스트럭터(1999.2001)
삼성 라이온즈 타격 인스트럭터(2000)자이언츠골퍼(종신)타이틀 크보리그의 유일한 4할타자(0.412)
롯데자이언츠의 레전드급 명장 감독(a.k.a.개새끼).
14시즌 코끼리의 야구에 지친 칰키워들이 백골퍼가 다시 돌아와 한화의 종신감독을 맡아주길 바랐으나 그 대신 가네바야시 세이콘이 노리타들의 시위를 통해 임명되었다.
세이콘이 오모시로이한 야구를 보여줌으로써 백골퍼랑 비교하는놈들이 슬슬 나오는데 아직 세이콘은 백골퍼 따라오려면 멀었다.
최소 세이콘은 1, 2군에 누가 있는지도 잘 몰라서 2군에 있는놈을 대타로 내려 하진 않았다.
- 대신 임기영을 모른다.
선수생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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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야구를 존나 잘하거나 야잘알이며 야구 그 자체입니다. 믈브나 느프브에 있기 마땅한 존재입니다. 크보나 크프브르 같은 건 그에게 너무 좁습니다. |
놀랍게도 잠실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쥐빠들의 패드립에 시달릴 것입니다. |
이 문서에서 다루는 인물을 비난하는 순간 당신은 쥐빠들의 패드립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 틀은 오직 김용수, 이상훈, 이병규, 박용택처럼 LG를 위해 모든것을 바친 전설들에게만 달 수 있습니다. |
일본에서 프로 데뷔를 하였다. 선배 장훈이 활약하던 도에이 플라이어스에서 포수로 입단해 외야수로 전향, 통산 200개가 넘는 홈런과 여러차례 3할 타율을 달성한 뛰어난 야수였다.[2] 1975년엔 수위타자까지 먹었는데 일본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규정타석 수치를 정확히 찍고 수상한 것이었다.
일본 통산 1831안타를 쳤는데 이게 2012년 알렉스 라미레스가 깨기전까진 외노자 통산 안타 1위였다.
NPB통산 1969경기 1831안타 209홈런 776타점 212도루 타율 0.278 출루율 0.316 장타율 0.430 OPS 0.746
1982년에 MBC 청룡에서 감독겸 선수생활했는데 최초로 4할을 달성했고 지금까지 이거 깬 타자 없다.
이종범이 4할 깰뻔했는데 설사 때문에 못깼다 한다. 역시 대장 소장은 개새끼들이다.
근데 다음 해에 삼미 슈퍼스타즈에 이적갔다가 갑자기 타율이 2할대로 떨어지고 얼마 안되서 은퇴했다.
감독생활[편집]
좆쥐의 레전드 감독[편집]
놀랍게도 잠실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쥐빠들의 패드립에 시달릴 것입니다. |
MBC 청룡 창단 선수겸 창단 감독이다. 삼미 은퇴후 현장에서 떠나있었다가, 1990년에 MBC 청룡망하고 세운 LG 트윈스에 들어갔으며 1990년도 페넌트레이스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다.
반쯤 성공한 대표적인 리빌딩 97삼성[편집]
이 문서의 인물은 삼성 라이온즈 종신감독입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고 있는 인물은 삼성 라이온즈의 종신감독입니다.
본 인물은 삼성 그 자체이며, 임종할때까지 라이온즈 감독직을 맡을 사람입니다. 이문서에서 설명되는 라이온즈 종신감독을 욕하면 대구아재들에게 공격을 받을것입니다. |
이 문서는 삼성 라이온즈 그 자체를 설명합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고 있는 대상은 삼성 라이온즈 그 자체이거나, 혹은 삼성 라이온즈의 영웅입니다.
놀랍게도 라팍에선 이 영웅을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영웅을 욕보일 시 당신의 휴대폰은 불에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
1996년에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와서 모 감독에 의해 55 찍던 팀을 감독 첫 해에는 6위했지만 KBO역사에 다시 없을 급속 리빌딩에 완벽히 성공했고, 그 후 4위의 성적을 찍는 것으로 시작하여 삼성은 1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성공했다.
그때 삼성이 어느정도였냐면 좃크보 최초 20홈런 타자 4명과 20-20 타자 2명(최익성,양준혁) 홈런왕 오푼이까지 배출한 오모시로이 한 타선이었으며,(물론 대구빨로 홈런이 많긴 했는데, 광주 대전 인천 전주도 당시에는 만만치 않았다. 즉 잠실 빼면 지금 탁구장으로 분류되는 사직이 홈런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죄다 탁구장이었던 시절, 지금 최고의 탁구장은 사직이랑 비슷한 인천이지만 이시절에는 명함도 못내밀었다.)
특히 오푼이는 보이지 않는 그분의 지상 최초 홈런왕-도루왕 동시 석권을 막으면서 mvp를 가져갔다.
순페이 야왕 노지심 홍미륵이 최전성기였던 1992년 해태의 최다득점기록을 경신한 팀이었다. 덧붙여 그 해태 이후 2번째로 700득점을 돌파한 팀.
지금 보면 700득점이 우수워 보이겠지만 그해 우승한 해태가 득점 2위였는데 삼성이랑 100점 이상 차이나게 적었고 칰 꼴떼 빈대는 500득점도 못할 정도로 투고타저였던 시기였다.
다만 그때 투수진은 씹창이라 꼴떼 다음으로 많은 살점을 허용하기도 했다. 즉 이시절 해태는 점수 많이 내고 적게 실점하면서 승리를 챙기는 팀이었다면 삼성은 매일 불꽃놀이를 즐기는 팀이었다.
총득실 +117로 해태 +106보다 우위고 피타고라스 승률에 의하면 해태와 자웅을 겨루는 2위인데,(공식상 적게 득실 한 팀이 유리) 투수들이 까먹으면서 쌍방울한테 밀린 4위를 하고 말았다. 즉 크게 이기고(27-5 정경배 연타석 만루홈런도 이해 기록) 작게 지는 경기가 많았던 것이다. 물론 준플에서 쌍방울한테 보복은 했지만, 투수력에 과부하가 걸리며 LG에게 한국시리즈 티켓을 넘겨주고 만다.
오푼이도 자신이 거포타자가 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으로 백인천 감독을 꼽았다. (다만 삼성 시절에 강기웅을 은퇴로 내몬 건 숨겨진 만행이었다만..)
그렇게 갔으면 "종신감독"이라는 틀은 가지지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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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감독시절[편집]
본 인물은 롯데 그 자체며 감독으로서 영구결번감입니다. 롯데 종신감독을 욕보일 시 많은 꼴리건들의 저주로 살지 못할 것입니다. |
이 인물은 KBO 역사상 길이 남을 전설적인 감동님이십니다! 이 인물은 현재, 이전에 야구팀의 감독을 맡아 전설적인 업적을 이룬 초대형 감동님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좆레전드급 감독분에게만 이 틀을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
이 문서는 종신감독님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팀을 말아먹어서 다른 팀들에게 감동을 준 감동님에 대해 다룹니다. 모두 이 감독을 위해 따봉을 들어보입시다. |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쓰레기감독입니다. 이 문서는 말그대로 감독노릇을 존나게 못못하면서 존나 오래해먹는 노양심 철밥통쓰레기감독들을 다룹니다. 이 새끼들은 감독이라 부르기엔 매우 민망하므로 하루빨리 감독계에서 퇴출시켜야되는것들입니다. 이 새끼들은 야구감독이든,영화감독이든 축구감독이든 농구감든이든 드라마감독이든간에 이딴새끼들은 절대로 감독하면 안되는 새끼들이며 만약 이놈을 보시거든 죽창으로 당장 관통시키든지 하십시오. 제발 좀 은퇴해 씨발! |
이 문서는 경질된 사람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존나 애미애비 처뒤진 운영을 해놔서 모가지된 사람을 다룹니다. 이 팀은 곧 좆망합니다. |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야구를 존나 못하거나 야알못이며 야구계에서 퇴출시켜야 하는 것들입니다. 아니면 딴팀으로 꺼지든가 은퇴해 씨발 |
이하 내용보다 깔끔하게 정리된 글 출처 : [1][2] 참고로 이 블로그에 롯데 암흑기에 대해서 99년 플레이오프이후부터 8888577시기에 걸쳐 7편의 글과 그외 외전 세 편 더 올렸으니 심심하면 가서 보시라.
2002년에 김명성 감독 서거로 어수선하던 롯데에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리빌딩을 한답시고 대놓고 시즌 포기 선언하고 승률 2할대 찍어서 8888577을 찍었다. 롯데빠들한테는 아주 그냥 개새끼다. 리빌딩 할꺼면 제대로 하지 전혀 리빌딩 되지 않았다. 오히려 5 찍은 양상문이 훨씬 더 리빌딩 잘 한 듯.
인터뷰 중 야구 얘기는 안하고 골프 얘기만 줄창 한다고 해서 백골퍼라는 나쁜 별명도 얻음^^
솔까 이 때 한 짓을 보면 그냥 롯까 아니었나 싶다. 롯데를 파.괘.하러 온 테러리스트.
롯데 시절 왜 이렇게까지 심하게 망가졌는지 매우 의문이 안 간다. 프런트랑 구단과 수틀렸다고 저렇게 공개적으로 뻔뻔하게 태업한 감독은 이 할배 말고는 없다. 그러다가 2016년 축구판에서 울리 슈틸리케가 이 분의 후계자로 부상하는 중이다. 축협과 수틀렸다고 태업에 가까운 운영을 하는 꼬라지가 딱 백골퍼를 연상시킨다.
ㄴ 역대 모든 스포츠 감독들과 비교해도 백골프는 따라잡기 힘들어.
ㄴ 똥칰 세이콘, 좆쥐 이순철, 홍어 각동님, 메갈돡 쪽동님 정도면 가능하지 않냐?
ㄴ 그 작자들은 최소한 1군&2군에 누가 있는지 몰라서 2군에 있는 놈을 대타내려하지는 않았잖아...
ㄴ 그나마 비벼보자면 세이콘 순페이 정도?
ㄴ 타자-좌완 사이드암 투수, 투수-포수 전향 시도만으로도 이미 넘사벽이야. 저 둘 아무리 욕쳐먹어도 저렇게까진 못할걸?
ㄴ 여긴 팔 갈아 마신 건 많이 없잖아?
ㄴㄴ양성제, 변인재 혹사로 갈아버려 빠르게 은퇴. 손민한, 이정훈, 김사율 등은 선발 불펜 안가리고 자주 등장. 설명 끝
ㄴ 솔까말 세이콘&순페이는 물론이고 델동도 백인천에 절대 못 비벼. 저 위의 셋은 그래도 이겨보려고 별의별 지랄하다가 결국 패배하고 상처만 남았기라도 했지만 백인천은? 아예 이길 생각조차 1도 없고 아예 팀 하나를 씹창내려 했잖아. 오죽하면 언론에서조차 이를 비판했겠냐? 모든 종목 다 막론하고 다른 종신 감독들 다 합쳐도 백인천 하나도 못 이기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그 이전에는 아주 괜찮은 능력을 보여줬던 백인천이 유독 롯데에서 왜 저지랄했는가 하는 이유가 크게 2가지로 드는게...
1.건강문제. 삼성 감독 시절에 뇌일혈이 도져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런 병에 걸리고 나면 이전에 갖고 있던 능력이 사라지는 등 사람이 안 좋은 쪽으로 변하는데, 백인천이 그 케이스고...
2.꼴런트와의 갈등. 전임 우용득 감독이 꼴지를 달리는 꼴데를 못 살리고 잘리는 바람에 꼴런트는 급하게 타격 인스트럭터로 뛰는 백인천을 "모셔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꼴런트가 백골퍼에게 사사건건 간섭하자, 백골퍼 : 이럴거면 차라리 제발 짤라줘! 경질시켜 달라고! ㅆㅂ 꼴런트 : 싫은데? 그럼 차라리 자진사퇴해. 잔여연봉 주기 싫어! 백골퍼 : 에미씨발! 누가 이기는지 함 해 보자!!!!!!!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태업이나 쳐한거라는 설이 있대.
꼴데에서의 구체적인 만행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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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딱이형 타자 김주찬을 거포스윙으로 개조시키려함. 덕분에 3할타율에서 1할타율까지 떨어짐 [3]
- 이대호를 뚱뚱하다는 이유로 트레이드 시키려 하고, 또한 같은 이유로 살빼라고 쪼그려뛰기와 오리걸음 시킴. 때문에 무릎 아작남(이대호는 당시에도 100키로가 넘었다) 근데 무릎 아작나서 병원에 누워있는동안 살이 30키로가 더 찜
- 1번부터 9번까지 스윙폼이 똑같음
- 경기 도중에 잠
- 채상병을 다승왕 손민한하고 트레이드 시킬려다가 손민한이 거부하자 반항한다고 포수 전향 시키려 함]]
ㄴ 이건 루머로 밝혀지긴 했다.다만 트레이드설은 사실.이때 골퍼가 "손민한을 포수전향 시켜야 하나"라고 농담조로 말한게 와전되면서 저리 됐다.프런트나 당시 수코였던 김용철도 이건 못들어봤다고.
- 자기 팀의 1군과 2군에 누가 있는지 모름. 2군에 보낸 선수를 대타로 올리려 함
- 팀이 지독한 연패에 빠져있는데 인터뷰하면 골프얘기만 함
- 타율 3할에 장타율 5할 조경환을 타격폼이 맘에 안든다고 SK로 트레이드 시킴.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가 윤재국, 박남섭(박준서)
ㄴ 사실 2002년에 조경환이 부진하긴 했다. 다만 당시 개좆병신이던 꼴데에 조경환만한 장타가 있던 선수가 전혀없었다.고로 이 틀드는 좆틀드.참고로 조경환은 트레이드 된날 존나 억울해서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사직구장 스탠드에서 엄청 울고 인천으로 갔다 카더라
- 박정태의 타격폼을 개조시키려다 거부하자 타격폼 병신같다고 2군으로 내려보냄(박정태의 흔들타법은 아재들에게 유명하다) 그러다가 갈마충들에게 살해위협을 받으니까 놀래서 다시 1군콜업
- 외국인 용병 필요없다고 다 내침. 그러다가 좆망하자 데려온게 보이 로드리게스, 모리 가즈마. 후자는 시즌 시작도 전에 퇴출당했고, 전자는 0타점 1할을 기록하고 7게임만에 퇴출
ㄴ 보이의 경우 요코하마에서 괜찮긴 했다. 일본에서 뛰었던게 하필 백인천이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다와 겹쳤다는게 문제였지... 사실 모리는 존나 못했다. 보이도 위에 있다시피 병신이었고... ㄴ 모리 가즈마는 일본 선수인대도 일본 위키에도 없는 그냥 사회인 야구 선수였다 ㅅㅂ
- 신인선수가 제구가 잘 안 잡힌다는 이유로 "얘는 선수가아니다" 라는 말을남기며 그냥방출. 이로서 꼴데는 2차1라운드픽을 1년만에 제구가 안잡힌다는 이유로 날려버렸고, 이후 방출된 선수는 솩으로 가서 만개함. 물론 롤코는 타지만...
- 외야수 이명호를 단지 어깨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투수전향시키고 부상. 이후 타자로 복귀하고도 부진하자 방출됨. 당시 이명호는 오푼이급으로 성장 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굉장히 유망한 선수였다.
- 2002년 35승 1무 97패 승률 0.265라는 역대 뒤에서 3번째라는 성적을 남긴다. (참고로 이때 제일 꼴데를 많이 놀린 팀이 꼴칰. 이후 꼴칰은 김인식이라는 또다른 명장을 만나 2008년부터 588689967이라는 성적을 남긴다.) 저 0.265조차 백인천 부임 이전의 성적도 합친거여서 부임후 성적은 무려 18승 53패 승률 0.253이라는 더 병신같은 승률이었다.
ㄴ 최저 승률 1위는 82삼미(승률 0.188) 2위 99쌍방울(승률 0.224) 3위 02롯데(승률 0.265) 4위 86빙그레(승률 0.290) 5위 93태평양(승률 0.293) 6위 03롯데(승률 0.300)이다
저 중에 3위랑 6위를 관여했다는거 자체가 씹넘사벽이다
참고로 허구연이 세운 86청보의 (승률 0.273)는 전반기이고 총 승률은 (0.302)로 끝남
마구마구에서조차 02롯데덱은 건질 카드가 단 한장도 없다! 마구마구 역사상 최악의 덱으로 손꼽히는 덱이 02 꼴데덱이다.
경질되고 나서 한 말은 더더욱 가관이다.
“ |
이 팀은 앞으로 10년[4] 동안 가을야구 못 할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