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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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원조노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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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전임이 전두환, 후임이 김영삼이라서 상대적으로 언급이 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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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젊은 시절 키가 178인데 당시 성인 남자 평균 키 생각하면 굉장히 큰 편이다. 아내 역시 남편 닮아서 존예.
ㄴ 정치인 노태우/군인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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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盧泰愚 | Roh Tae-Woo출생일 1932년 12월 4일[1] 데뷔 2021년 10월 26일 (88세)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북도 달성군
現 대구광역시 동구장지 경기도 파주시 동화경모공원 국적 대한민국 가족관계 배우자 김옥숙, 자녀 노소영[2], 노재헌[3] 소속 정당 → → NIS 뮤직 그룹 신체 178cm, AB형 임기 기간 1988년 2월 25일 ~ 1993년 2월 24일 학력 육군사관학교 11기 직업 前 군인, 前 국회의원, 前 대통령군 경력 대한민국 육군 대장 복무 기간 대한민국 육군 1955년 ~ 1981년 종교 불교→ 개신교 별명 원조노짱, 물태우, 보통사람, 아쿠아맨
개요[편집]
“ |
나 이 사람 보통 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
” |
노태우는 대한민국의 제13대(1988~1993) 대통령이자 현재 NIS 뮤직그룹 MC이다.
원조노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생을 친구가 가는 그대로 따라갔더니 대통령까지 된 인물이다.
권위주의적인 대통령 인상과 달리 자신을 보통사람이라고만 칭하면서 비교적 느슨한 대통령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덕분에 물태우라는 별명이 생기는데 기여를 하기도 했고... 불의 대통령이 전두환이라면 물의 대통령은 노태우였다. 그래서 틀딱들에게 물태우 혹은 물통(물태우+대통령)이라고 불린다. 실제로 노태우는 물태우라는 별명을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외부적으로 이전까지 대통령을 부르던 호칭인'각하'를 금하고 그냥 대통령님으로 부르게했다고 한다. 물론 내부에서는 계속 사용되다가 김대중때 완전히 폐지된다.
군인으로선 엄청 까일 수 있을지 몰라도(12.12 당시 9사단 동원) 대통령으로는 딱히 깔 게 없다. 아니, 오히려 한국을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만들고 부국강병을 이룩한 매우 훌륭한 대통령이다. 군사정권의 적폐세력들을 처음으로 숙청한 것도 노태우이다. 반인반신이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위한 주춧돌을 놓고 빡빡이가 그 위에 화려한 금자탑을 쌓아올렸다면, 노태우는 대한민국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디딤돌을 놓은 대통령이라 볼 수 있다.
이 대통령 시절에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게 된다.
냉전 시기에도 불구하고 북방외교를 추진했다. 29만원 시절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 물론 냉전이 사실상 끝난시기임은 감안하긴 해야한다.
ㄴ북방외교는 박정희 때부터 시도되고 있었다. 전땅크도 시도를 했으나 83년에 소련의 KAL기 격추사건과 김씨왕조의 아웅산 테러 때문에 무산됐다
물론 범죄와의 전쟁도 본인이 친위 쿠데타 시도하다가 걸려서 민심회복할려고 한거긴 하다.
대선 출마하며 내놓았던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시대’ 표어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다시 봐도 참 명문이다.
최근엔 몇년동안 골골앓고 계신다. 죽은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다. 오늘내일 하면서도 88세로 장수하고 있다가 2021년 10월 26일 노무쿤의 부름을 받고 국정원 지하로 가셨다. 사스가 재규어의 의지 MC태우 데뷔 ㅊㅋ
장례는 12.12와 5.18, 비자금 사건 때문에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는 박탈되었지만 어쨌든 생전에 대통령직을 수행했고, 앞에 설명한 사건들 때문에 발생한 추징금을 모두 갚고 5.18 관련해서 사과를 하는 등 자기반성적인 행보를 보인 덕분에 2021년 10월 26일 부터 30일까지 국가장으로 장례가 치뤄졌다.
그에 비해 땅크는 멀쩡했지만 결국 지도 병터짐. 업보다 병신들아 ㅋㅋ
ㄴ깜빵도 같이갔으니 저승도 같이갈라고 기다린게 분명하다.
키는 178cm[4]로 나잇대에 비하면 상당히 큰편이다. 하지만 아버지 노병수(盧秉壽. 1901~1940)에 비하면(키 189cm) 작은편이다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자기 베프랑 공통점이 매우많다.
군인시절[편집]
이 문서는 똥별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전쟁은 좆도 모르는 똥별에 대해 다룹니다. 팀킬을 밥 먹듯이 하는 이들에게 무타구치 장군님께서 감탄을 하십니다. 이들에게 지휘봉 대신 마우스를 쥐여주고 스타나 하라고 하십시오. ???: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니 풀을 뜯어먹으며 전진하면 된다! |
2 문서는 콩을 다룹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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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동이다! 이 문서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장태완 장군님의 마음가짐으로 반란군노무새끼들의 머리통을 전차로 날려버립시다. |
원래 육사에 갓 입학했을때는 전교 10등으로 공부를 잘하는편이었는데 돌대가리 친구를 잘 못 만나서 같이 돌대가리가 되어버린다. 그래도 어찌어찌 중위권 성적으로 임관하긴 했다. 근데 돌대가리 친구와 함께 처음에는 정말 순수하게 돌대가리 동기들끼리 좆목하려고 떡잎마을방범대처럼 오성회를 만들었는데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이 단체의 창시자가 이 단체를 이용해서 쿠데타 환영 열병식을 열면서 정치단체로 변질되었고 그게 점차점차 커지면서 하나회가 되었다.
노태우는 그렇게 얼떨결에 친구 하나 잘못 사귀어서 정계에 투신하게 된다.
군경력[편집]
- 보병학교 구대장(중위)
- ROTC 창설요원(대위)
- 육군본부 방첩과장 겸 박정희가 만들어 준 하나회 부회장(소령)
- 베트남 전쟁에 수도기계화보병사단 1연대 3대대장(중령)
- 육군참모총장 전속부관(대령)
- 1공수특전여단장(준장)
- 대통령경호실 행정차장보(준장)
- 9사단장(소장)
- 수도경비사령관(소장)
- 국군보안사령관(중장)
- 대장 진급과 동시에 제대
정치인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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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두처럼 일을 존나게 잘해서 조폭을 민주화시켰다. 하지만 이런 노태우도 전두환에게 말못할 열등감이 있었고 자신은 만년 2인자라는 것에 상당히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세동, 노신영과 권력싸움을 하면서 본인이 후계자가 되기위해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 전두환 똥꼬를 존나 빨아주다가 자기가 대통령이 되자 하나회에서 전두환만을 따르던 전두환 패거리들을 몇명만 남기고 죄다 날려버렸고 마지막으로 이후에 전두환을 백담사에 가둬버린다. 전두환은 국가원로자문회의라는걸 만들어서 노태우를 꼭두각시로 세우고 자기가 권력을 휘두를 생각이였지만 노태우한테 통수당하고 아베처럼 자기가 유치시킨 올림픽을 집에서 TV로 보게 된다.
그래도 말년에 너무 이렇게 하나회 숙청시키다간 자신도 쿠데타로 정권 잃을까봐 적당히 하나회 똥꼬를 빨아줬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 본인은 박철언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으나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들이 싸지른 똥 때문에 김대중이 대통령이 될 판이다 보니 김영삼과 손잡고 3당 합당을 해서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어떻게든 편한 말년을 보내려했다.
이 문서가 가리키는 대상은 해결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고역 같던 일이 해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완전 상쾌합니다!!! |
하지만 김영삼은 희대의 통수를 쳐서 하나회는 공중분해 시켜버렸고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12.12 주동자, 5.18 진압 관련자들을 모조리 감옥으로 보내버린다. 심지어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징역 22년 6개월을 때려버림. 이때 김영삼은 정치하면서 쌓아놓은 홧병을 모두 풀어버렸다는 카더라가 있다.
다만 이후 15대 대선 유력주자들이 모두 전두환 노태우 사면론을 펼쳐서 살아남을 팔자였던건 분명하다.
ㄴ이건 애초에 김영삼이 잠깐 넣어놨다가 자기가 퇴임할때쯤에 풀어주려고 했었다고 한다.
재밌는건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물어봤는데 '풀어줘야한다vs안된다'가 반반이었던 전두환과 달리 노태우는 대부분이 사면 반대를 했었다.
결국 슨상님이 땅크와 함께 사면시켜줬다.
사면 반대 여론도 높았고 추징금도 어마어마 했지만 형이 확정된 이후 부터 지속적으로 추징금을 갚아나가면서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으킨 참사에 대해 반성적인 모습을[5]비춘 덕분에 같이 예우가 박탈된 자기 친구 전두환'씨'와 달리 노태우는 국가장 기간동안이라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높여줬다.
업적[편집]
노태우는 조폭들을 전부 말☆살 하고 국영 의료보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노태우가 특전사 9여단장 시절에 특전대원들을 사복 차림으로 위장시켜 부대 인근 조폭들을 다 때려잡았을 정도로 깡패 소탕에는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범죄와의 전쟁 당시 할당량을 지정해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등 경찰의 강압수사로 피해자가 생기긴 했지만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보듯 대형 조직에게도 얄짤없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의 폭력배들 세력이 이상하게 약한 게 이 덕분이다. 경찰 간부가 마피아에게 암살되는 외국과 비교하자.
그리고 물태우는 (물론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다가 걸렸지만) 어쨌든 민주화를 거스르지 않았으며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과 협의하면서 대국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다가 못 참아서 3당합당을 했지만.
친위쿠데타를 벌이려다가 걸린 걸 만회한다고 한 쾌거가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다. 29만 원이 깡패 때려잡아도 대형 깡패들은 못 잡거나 안 잡았는데 노태우는 그 대형 범죄 집단까지 싹 쓸어서 머한을 치안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북한의 온갖 방해 공작을 물리치고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유치하면서 남북 체제 경쟁에서 승리의 쐐기를 박아넣었다.
비교적 적재적소에 인재들을 기용했다. 역대 정부마다 인사 문제 등으로 논란과 비판이 많았지만 노태우 정부에서는 비교적 그러한 비판이 별로 없다. 실제로도 그가 기용한 인물 중에는 훌륭하게 맡은 역할을 해낸 사람이 나왔고 최저임금제를 처음으로 실시한 인물도 노태우였다.[6] 요약하면 장기 호황을 바탕으로 분배 정의가 강화되고 낮은 실업률 유지와 구매력 증가가 지속되었던 시기로 최근 강조되는 분배를 통한, 소위 '소득 주도 성장'이 우리 경제 역사상 실제로 이뤄졌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북방 외교를 통해서 짱깨와 소련 및 기타 공산권과 수교하면서 북조선과의 체제 경쟁에서 압승에 쐐기를 박아넣었고 타이완인들을 쫓아냈다. 그 결과가 1991년 남북한 UN 동시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발표. 물론 그 반동으로 타이완인들이 G랄하는 게 단점이 됐지만...
ㄴ짱깨와의 수교는 그당시 국제정세상 외교적, 경제적으로 이득보려면 어쩔수 없긴 했다. 다른 자유진영 국가들은 70년대까지 대만과 전부 손절친데에 반해 우리나라는 냉전시대가 끝날때까진 수교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통령 시절만 보면 씹ㅅㅌㅊ라서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말도 많이 나온다. 단군 이래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최전성기가 이뤄진 시기기도 하다.
ㄴ 안 그래도 요즘 들어 노태우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데,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괜히 재평가 움직임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덕분에 아들 노재헌 변호사가 공개 활동을 비교적 순조롭게 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아들 본인이 5.18 항쟁에서 아버지가 벌인 과오를 인정하면서 사과하고 유족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등 개념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 한몫한다. 5.18에 대해서 사과한 유일한 사람이 노태우지만 탱크보이의 어그로가 너무 심한 탓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못난 친구를 둬서 미안하드아아! 물론 일부 5.18 재단은 아들이 사죄한거지 노태우가 직접 사죄한게 아니라며 국가장 당시에 난리쳤었다.
그러나 짱깨랑 수교한 거 때문에 세월이 지난 뒤에는 원조짱깨 욕을 듣게 되었다.
인간관계[편집]
- 전두환: 부랄친구이자 적이다. 사실 땅크는 대통령 끝내고 지 군인할때부터 친구인 물태우 당선 떴을때 한숨 돌리고 있었지만, 허수아비로 남을 생각이 좆도 없었던 노태우가 전두환의 정치적 영향력을 거세하고 백담사로 꽂아버려서 극대노 띄우고 사이가 틀어짐. 그래도 80쯤 되가니 극적인 화해를 하긴했다. 김대중 김영삼도 갈때 되니까 화해한거 보면 확실히 세월 앞에 장사없다.
노태우가 국정원가서 땅크랑 폭동나믹듀오 활동 기대하는 부분.. 노태우 사망한지 1달도 안돼 전두환이 뒤따라와서 진짜로 폭동나믹듀오로 결성되었다고 한다.
- 박희도: 직속 후배로 엔두가 육참총장 시켜줬지만 엔두 물러나고 물이 대통령되자 바로 현부심으로 불명에 전역시켰다.
- 박철언: 아내의 고종사촌동생으로 '6공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갖고있다.
데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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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지하은(는) 어떤 곳일까... |
병실에서 오늘내일하다가 결국 2021년 탕탕절에 국정원 레코즈 소속 가수로 데뷔했다.
향년 89세였고 문재인 정권의 독재가 또 한번의 정권연장을 위해 이재명을 대선후보로 출마시킨지 2주만이었다.
박정희가 죽은 지 정확하게 42년 후 사망했다.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5.18에 대해 더 사죄해라면서 빈소주변에 시위가 벌어지고있다. 사죄해도 지랄 안해도 지랄 이러니깐 전남광주가 더 까일 명분만 제공할 뿐이다.
약 1달후에 친구도 J.Tank로 데뷔했다.
6.29 선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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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width="" height="">uRVAfoxpygQ</youtube> |
6.29 선언을 하는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 |
동지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이제 우리나라의 장래의 문제에 대해 굳은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국민들 사이에 쌓여진 뿌리 깊은 갈등과 안목이 국가적인 위기로 나타난 이 시대적 상황에서 정치인의 진정한 사명에 대해 깊은 사색과 숱한 번뇌를 하여 왔습니다.
또한 학계, 언론계, 경제계, 종교계, 근로자, 청년, 학생 등 각계로부터 지혜를 구하고 또 국민의 뜻을 확인하였습니다.
오늘 저는 각계각층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여 이 나라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정부 역시 국민들로부터 슬기와 용기와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비장한 각오로 역사와 국민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저의 구상을 주저 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구상은 대통령 각하께 건의를 드릴 작정이고 당원 동지 그리고 국민 여러분의 뜨거운 뒷받침을 받아서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본인의 결심입니다.
첫째. 여야 합의 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88년 2월 평화적인 정부이양을 실행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각료의 대다수가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의원으로 구성이 되어 자율과 개방을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 속에 민주책임정치에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서 가장 바람직한 제도라는 저의 생각에 변화가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비록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다수 국민이 당장 원하지 않는다면 필경 그 제도는 국민과 유리되고 이에 따라서 탄생되는 정부는 국민과 꿈과 아픔도 함께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이 시점에서 저는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고 국민적 화해를 이룩하기 위하여는 대통령 직선제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며 국민의 뜻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입니다.
둘째. 직선제 개헌이라는 제도의 변경뿐만 아니라 이의 민주적 실천을 위하여는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 국민의 올바른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 선거법을 개정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새로운 법에 따라서 선거운동 투, 개표과정 등에서 최대한의 공명정대한 선거 관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만 직선제라 하더라도 근거 없는 인신공격과 대중선동으로 적개심을 불태우면서 혼란과 무질서가 판을 치게 되고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 결국 국가안정을 해치고 진정한 민주발전을 저해해서는 안 되며, 정책대결로 선의의 대결을 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우리 정치권은 물론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반목과 대결이 과감히 제거가 되어 국민적 화해와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저는 그 과거가 어떠하였던 간에 김대중 씨도 사면, 복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들 자손의 존립기반인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를 부인한 반국가사범이나 살상, 방화, 파괴 등으로 국기를 흔들었던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시국관련 사범들도 석방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들도 민주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분수령인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 크게 웃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된다면 차기 대통령 선거가 국민의 숙제로 승화될 것이고 새로 출현하는 정부는 튼튼한 국민적 기반위에 위대한 나라건설에 더욱 매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인간의 존엄성은 더욱 존중되어야 하며, 국민개개인의 기본적 인권은 최대한 신장되어야 합니다.
이번의 개헌에는 민정당이 주장한 구속적부심 전면 확대 등 기본권 강화조항이 모두 포함되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정부는 인권 침해 사례가 없도록 특별히 유의하여야 하며 민정당은 변호사회 등 인권단체와의 정기적 회합을 통하여 인권 침해 사례의 즉각적 시정과 제도적 개선을 촉구하는 등 실질적 효과 거양에 주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언론 자유의 창달을 위해서 관련 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의도가 좋더라도 언론인 대부분의 비판의 표적이 되어온 언론 기본법은 시급히 대폭 개정되거나 폐지되어 다른 법률로 대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방 취재기자를 부활시키고 프레스카드 제도를 폐지하며 지면의 증면 등 언론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합니다.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하려고 시도하여서도 아니 됩니다.
국가 안녕보장을 저해하지 않는 한 언론은 제약받아서는 아니됩니다.
언론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독립된 사법부와 개개인의 국민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합니다.
여섯째. 사회 각 부분의 자치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각 부분별로 자치와 자율의 확대는 다양하고 규명 있는 사회발전을 이룩하여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했습니다.
개헌 절차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구성은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하고 시도단위 지방의회 구성도 곧이어 구체적으로 검토 추진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의 자율화와 교육자치도 조속히 실현되어야 이를 위해 대학의 인사, 예산, 행정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을 하고 입시, 졸업제도도 그와 같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수한 많은 학생들이 학비 조달에 큰 어려움이 없도록 관련제도를 보완하고 예산에 반영하여야 할 것입니다.
일곱째. 정당의 건전한 활동이 보장되는 가운데 대화와 타협의 정치풍토가 조속히 마련되어야 합니다.
정당은 국리민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고 결집하는 민주적 조직체여야 합니다.
정당이 이러한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건전한 활동을 하는 한, 국가는 이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데에 전력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전당 없이 국법 질서를 준수하는 가운데 대화와 타협으로 사회의 갈등을 조화와 화합으로 이끌고 국론을 통일해 나아가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폭력을 써서라도 일방적인 주장만을 관철시키려는 야당 있는 한 여당 역시 항상 양보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여덟째. 밝고 맑은 사회건설을 위하여 과감한 사회 정화 조치를 강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모든 시민이 안심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폭력배를 소탕하고 강도, 절도사범을 철저히 단속하는 등 서민생활 침해사범을 척결하고 우리 사회에 잔존하는 고질적인 비리와 모순을 과감히 시정해 나아가야 합니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추방되고 지역감정이나 흑백논리와 같은 단어들이 영원히 사라져 서로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 국민이 안정된 사회환경속에 안심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오늘의 난국을 타계하고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시급한 당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역사의 단절이 아니라 지속적 발전을 바라는 여러분의 기대를 등에 업고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하는 겸허한 마음으로 오늘 저는 이 시간을 감히 하는 바입니다.
저는 우국충정에서 나온 이 구상이 대통령 각하와 민주정당 전 당원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의 성원으로 뽑힐 수 있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저의 이 기본 구상이 받아들여질 경우에는 앞으로는 이에 따른 세부 추가사항들이 추진될 것입니다.
만에 일이라도 위의 제안이 관철되지 아니할 경우 저는 민정당 대통령 후보와 당 대표위원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할 것임을 아울러 분명히 밝혀두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대통령 단임제의 실천으로 이 나라 헌정사에 민주주의의 깊은 뿌리를 심기 시작했고 물가 안정과 국제경쟁력 강화로 흑자경제를 이룩하여 국가 안보영양을 대폭 강화하면서 올림픽을 유지하는 등 우리 제 5공화국 정부의 빛나는 업적을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수호발전을 포기할 수는 없으며 평화적 정부이양의 화합은 우리 행하여야 할 눈앞에 크나큰 과제입니다.
또한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아니한 현 시점에서 국론이 분열되어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당하는 국가적 수치를 방지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간직한 채, 청년은 이상을 향하여 실력을 배양하고, 근로자 농민은 안심하고 일하며, 기업가는 창의적 노력을 더하고, 정치인은 대화와 타협의 묘를 기울여 미래를 설계하는 사회를 이룩해 나갑시다.
법과 질서가 준수되면서 생동하고 발전하는 진정한 민주사회를 위하여 저도 최선의 노력을 경구할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나라는 우리 모두의 나라입니다.
조상과 선열의 뜨거운 피로 세워지고 다져진 이 나라를 땀과 자제와 지혜로 훌륭히 가꾸어 우리 후대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시대적인 책무입니다.
한민족의 역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한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알려주어 세계사에 공헌할 수 있도록 국민적 슬기를 한데 모아주실 것을 바라 마지않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 동지 여러분과 야당 정치인 여러분.
저의 충정이 받아들여서 오늘의 난국이 극복되고 모든 국민 개개인이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위대한 나라를 열어가는 전환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망언[편집]
1995년 노태우는 신라호텔에서 열린 경북고등학교 모임에서 "문화대혁명때 수천만이 죽은 엄청난 걸로 말하자면 광주사태 저거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망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1] 이후 논란이 확산되자 "자신은 그런 발언을 한적이 없던듯한데 녹음테이프를 들어보니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수있는지 스스로 놀랐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2]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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