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군
조무위키
대구광역시의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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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한국의 행정구역 · 밑줄: 시청소재지 |
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입니다. 이곳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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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威郡
설명[편집]
영양군과 경산시만큼 색깔이 없는 동네다. 군위군은 거꾸로 해도 군위군이다.
박ㄹ혜를 가장 사랑하는 지역이라 카더라.
ㄴ 19대 대선 때 문재인 득표율 10% 간신히 넘겼다. 15%도 못 넘긴다. 홍준표는 여기에서 66%로 제일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
참고로 경상도 BYC수준으로 낙후된 개깡촌이다.
음... 임야 매매가 활발하다..
일연 스님이 있었다는 인각사라는 절 말고는 유명한 게 없어서 적을 것이 없다. 아 굳이 더 따지면 화본역, 제2석굴암 정도 있나?
효령고에 재학 중이신 서예부 교주님도 계신다. 교주님 만세! (찰싹)
바위, 넙치, 요다, 잉어킹이라는 군위 4대 흉물이 존재한다.
비슷한 발음 때문에 구미시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군위[구뉘, 구니] vs 구미 ㅋ
A : 어디서 오셨어요?
B : 군위요.
A : 아 구미요?
B : 네 구미요^^
예비 장인: 니 고향이 우데고?
예비 사위: 경북 군윕니더.
예비 장인: 경북군? 나가 소싯적에 여행 깨나 다녀봤지만은 그런 동네 못 들어봤는디예...
예비 사위: 경북 군윕니더! 저 지금 거짓말 하는거 아입니더!
예비 장인: (식구들 불러놓고) 이봐! 여기 사위로 들온다는 자식이 자꼬 '경북군'이라 약팔고 있는데 우짜면 좋겄소?
예비 막내처제: 아버지, 경북군이 아니라 '경북 군위'를 말하는 거 같은데요...
예비 장인: 아 그래? 알긋다 미안하다 (긁적 긁적)
군위군 파이팅........
2023년 7월 1일부로 대구에 편입되었다. 굿바이 군위군 근데 인구가 겨우 2만명에 불과한 오지 깡촌을 공항 짓는다고 합친거라 불만이 많다. 게다가 팔공산이 길을 막고 있어서 여기 갈려면 다른 지역을 거쳐가야 한다.. 보여주기식 지방 행정의 산물.
건치연혁[편집]
신라에선 노동멱현(奴同覓縣)이라고 불렀다. 757년 경덕왕이 숭선군의 영현으로 삼고 이름을 군위현으로 바꿨다.
노동멱현이외에도 효령면 장기리에 치소를 두었던 모혜현(芼兮縣), 부계면에 치소를 둔 부림현(缶林縣)이 있었다. 의흥면은 기록이 없어..757년 모혜현은 효령현, 부림현은 고려초 부계현으로 개명되었다.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 간에 막고라가 한창이었던 928년, 견훤이 부계면을 공격해 군사 1천을 죽이고 장군들을 포로로 잡기도 했다. 참고로 의흥군(義興郡)은 이때부터 등장한다.
현종치세에 사이좋게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인종때 선주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공양왕때 군위, 의흥에 감무를 두고 효령현과 부계현을 각자의 속현으로 편입시켰다.
이후 1914년 군위군이 의흥군을 흡수하면서 지금의 군위군이 만들어졌다.
2023년 7월 1일부로 경상북도에서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
행정구역[편집]
舊 군의현 지역[편집]
군위읍[편집]
軍威邑
면적 84.08㎢. 읍소재지는 동부리.
금구리(金鳩里), 내량리(內良里), 대흥리(大興里), 동부리(東部里), 외량리(外良里), 대북리(大北里), 서부리(西部里), 수서리(水西里), 오곡리(梧谷里), 용대리(龍臺里), 정리(政里), 하곡리(下谷里), 광현리(廣峴里), 무성리(武成里), 사직리(社稷里), 삽령리(鈒嶺里), 상곡리(上谷里)의 17개리를 관할한다.
1914년 군위군 현내면으로서 오항리, 아천리, 성지리, 노상리등의 10개리를 관할했다가 1914년 좆본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해 현내면 + 남면 + 서성면 + 소보면 + 의성군 억곡면 = 군위면이 되었다. 1973년 금성면 광현동을 편입,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읍 동쪽에 선방산(船放山, 437m), 마정산(馬頂山, 402m), 서쪽에 물부리산(무담산, 454m)등이 읍을 둘러싸고 남북으로 긴 분지가 형성되있다. 그중앙은 위천(渭川)이 지나가는데 금성면에서 나온 동천이 위천과 합류하며, 위천근처 좁고 긴 곡저에 농경지, 시가지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동부리에 있는 군위향교가 당시 현청에서 동쪽 2리에 있다고 했는데 무슨생각으로 이런 기록을 한거냐?
외량리 송호서원, 상곡리 지보사, 하곡리 석조여래입상, 동부리 군위향교, 대북리 남계서원이 있다.
소보면[편집]
召保面
면적 101.30㎢. 면소재지는 송원리.
사리리(沙里里), 보현리(寶峴里), 복성리(福星里), 위성리(渭城里), 달산리(達山里), 송원리(松院里), 신계리(新溪里), 도산리(桃山里), 서경리(西京里), 평호리(平湖里), 산법리(山法里), 내의리(來儀里), 봉황리(鳳凰里), 봉소리(鳳韶里)의 14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소소보부곡(召召保部曲)이라는 부곡이 있었다. 이 때문에 소소보면이라 하였으나 1914년 부군면 통폐합때 소소본면 + 석본면 + 화곡면 + 선산군 산동면의 3개동(신흥, 산개, 오류) = 소보면이 되었다.
일제강점기말기 본면 달산2리에서 금, 주석이 채굴되었지만 8.15 광복이후 폐광됭ㅆ으며 그 근처 마을은 수철마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곡정천(谷亭川)과 그 지류가 만든 강변의 충적평야를 빼면 대부분이 산악지대로 충적평야에 농경지와 마을이 분포해있다. 1992년 본면 위성리에 사과연구소가 설치되어 한국에 맞는 사과재배법, 병충해예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위성리 삼대석, 삼대목, 삼대불, 동암정, 삼수정, 보현리 백련암, 백운암, 효자각, 달산리 법주사이 있다. 까치리 약수터와 장수샘또한 존재한다.
효령면[편집]
孝令面
면적 98.46㎢. 면소재지는 중구리.
노행리(老杏里), 오천리(梧川里), 성 리(城 里), 병수리(竝水里), 불로리(不老里), 내리리(內梨里), 중구리(中九里), 장기리(場基里), 장군리(將軍里), 고곡리(高谷里), 매곡리(梅谷里), 거매리(巨梅里), 금매리(錦梅里), 화계리(花溪里), 마시리(馬嘶里)의 15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모혜현(芼兮縣)이라 불렸으나 757년 효령현(孝靈縣)으로 개명, 숭선군의 속현이 되었다. 현종치세에 상주에 내속되었다가 인종대 일선현의 속현이 되었다. 이후 공양왕대부터 군위의 속현이 되었다. 이때까지 효령현의 치소였던 곳은 장기3리 고지바위에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장군1리 나실에 향교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도 없어졌고.
9세기부터 효령은 효령(孝寧)으로 불렸다가 효령대군의 함자때문에 孝令로 바뀌었다고 한다.
1914년 중리면을 흡수하고 면소재지를 장기3리에서 중구리로 옮겼다. 1983년 2월 15일 부계면의 고곡동, 매곡동을 편입했다.
위천의 북쪽에 국통산(國通山, 337m)과 마정산(馬頂山, 402m), 적라산(赤羅山, 252m)[1], 응봉산(鷹峰山, 279m) 등을 연결하는 산릉이 면계를 둘러싸고 있고 면대부분은 매봉산(梅峰山, 489m)을 최고봉으로 하는 산으로 둘러싸여있다. 면중앙을 남동에서 북서로 남천이 흘러가며 띠모양의 평야가 만들어졌다.
舊 의흥현 지역[편집]
의흥면[편집]
義興面
면적 54.17㎢. 면소재지는 읍내리.
읍내리(邑內里), 수북리(水北里), 수서리(水西里), 이지리(梨枝里), 파전리(芭田里), 신덕리(新德里), 지호리(芝湖里), 연계리(蓮桂里), 매성리(梅城里), 금양리(錦陽里), 원산리(元山里)의 11개리를 관할한다.
의흥의 건치연혁은 고려이전까지 연혁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초 의흥군이 설치되었다는 기록부터 나온다. 1019년(현종 9년) 안동부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 각지의 속현에 감무가 파견될 때 감무가 파견되면서 주현으로 독립했다. 1914년 의흥군 중리면 + 하리면 + 파립면 + 소수면 일부 = 의흥면이 되었다.
파전리에 진산인 용두산(142m)이 있으며 위천을 따라 생긴 충적평야가 비교적(?)넓게 펼쳐져있다. 면내 최고봉은 면 동북부에 있는 선암산(船巖山, 879m)이다.
신덕리 극락암, 읍내리 광풍루, 대월루, 의흥향교, 수서리 솔뫼남쪽 선창, 수북리 수각정, 매성리 자연정, 파전리 어서각등이 있다.
고로면[편집]
古老面
면적 114.61㎢. 면소재지는 학성리.
화수리(華水里), 화북리(華北里), 괴산리(槐山里), 학성리(鶴城里), 장곡리(長谷里), 인곡리(仁谷里), 양지리(陽地里), 낙전리(樂田里), 가암리(加岩里), 석산리(石山里), 학암리(鶴岩里)의 11개리를 관할한다.
원조는 괴산리 지역에 중심을 두었던 고로곡부곡(古老谷部曲)이 있었다. 1408년 의흥군 소수면(小首面)과 의성군 소야면(巢野面)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소수면 + 소야면 = 고로면이 되었다.
화산(華山, 828m), 선암산, 조림산, 매봉(800m), 뱀산(834m), 방가산(758m)등 600 ~ 800m의 급사면에 둘러싸인 고위 평탄면이 동서로 길게 펼쳐져있다. 위천의 상류지역으로 곡저평야가 펼쳐져있으며 학암지라는 거대한 저수지가 있다.
삼국사기의 저자 일연으로 윾띵한 인각사가 화북리에 있다. 인각사에는 왕희지의 친필로 쓰여진(?) 보각국사비도 있다고 한다.
낙전리에 압곡사가, 장곡리에는 장곡휴양림이 있다고 한다.
우보면[편집]
友保面
면적 59.98㎢. 면소재지는 이화리.
나호리(羅湖里), 달산리(達山里), 두북리(杜北里), 모산리(毛山里), 문덕리(文德里), 미성리(美城里), 봉산리(鳳山里), 선곡리(仙谷里), 이화리(梨花里)의 9개리를 관할한다.
과거 니화촌(尼火村)이 이화리에 있었다.
1914년 내화면 + 우산면 + 우보면 + 의성군 산운면 + 군위군 중리면 = 우보면이 되었다.
면북쪽에 왕제산(旺齊山, 320m)·국통산(國通山, 337m)등이 있으며 위천과 그 지류를 따라 충적평야가 형성되있다. 군내 유일의 왕골생산지로 군위의 특산품인 돗자리가 나호리 진박골에서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달산리 봉강서원, 신흥사, 윤효자비, 북산리 복당골 옻물샘[2]이 있다.
산성면[편집]
山城面
면적 36.77㎢. 면소재지는 화본리.
백학리(白鶴里), 삼산리(三山里), 봉림리(鳳林里), 무암리(武岩里), 운산리(雲山里), 화본리 (花本里), 화전리 (花田里)의 7개리를 관할한다.
1914년 팔공산에 있던 팔공산성의 이름을 따 부동면(缶東面) + 신남면(新南面) = 산성면이 되었다. 1983년 12월 15일 원산리, 금양리가 의흥면으로 편입되면서 관할리가 7개리로 줄었다.
운산리 산성마을에 팔공산성 북문터가 남아있다.
동쪽 조림산, 남단 시루봉이 최고봉으로 이들 산지에서 뻗어나온 구릉성 산지가 면 대부분을 차지한다. 위천 지류인 구천이 산지를 침식해 하천 연안에 충적평야를 형성하였다.
붓다가 목욕을 했다는 민담이 전해지는 불목골, 봉림역 남쪽에 만모정이 있다.
부계면[편집]
缶溪面
면적 64.81㎢. 면 소재지는 창평리.
창평1리(昌平1里), 창평2리(昌平2里), 가호1리(佳湖1里), 가호2리(佳湖2里), 춘산리(春山里), 대율리(大栗里), 동산1리(東山1里), 동산2리(東山2里), 남산리(南山里), 명산리(明山里), 신화1리(新化1里), 신화2리(新化2里)의 12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부림현(缶林縣)이라 불렸다가 고려초부터 부계현(缶溪縣)이라 불리게 된 부계현의 소재지였다. 부계현은 1019년 상주, 인종 때 구미로 소속이 옮겨졌다가 공양왕 때 의흥현이 독립하면서 의흥현의 속현이 되었다. 이후 현내면(現 창평, 가호, 춘산, 신화), 현서면(고곡, 매곡), 부남면(대율, 동산, 남산)의 3개 면으로 분리되었다.
1914년 현내면 + 현서면 + 부남면 = 부계면이 되었다.
면 남쪽에 팔공산을 두고 머구와 접하며 남천과 그 지류 사창천 유역으로 소규모의 충적평야가 형성되어있다. 하지만 팔공산이 있다보니 등산객들 상대로 바가지장사를 하거나 미나리를 팔면서 먹고 사는게 메인이다.
남산리 남산서원, 석굴암보다 50년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존석굴, 창평리 문양서원, 도산리 오도암, 남산리 휘찬여사목판, 대율리 대청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