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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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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세르비아의 두번째 트롤링

민족주의, 분리주의가 극단적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예시

유고슬라비아 전쟁이라고도 불리며 1991 ~ 1999년까지

좆만한 남유럽 발칸국가들끼리 난 나갈겨 나 말리지마 , 너 여기 있어라 ㅅㅂ아 하면서

툭탁툭탁 치고 받은 전쟁을 말한다 . 근데 결과적으론 다 나가 떨어지게 되었음 ㅋ

교전국으론 유고슬라비아 해당국가들 , NATO군 등이 참전했다. 사실상 현대의 비극으로 국제전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배경[편집]

요시프 브로즈 티토 사후 유고슬라비아는 경제 위기로 침체해있었고 티토가 억눌렀던 민족간의 증오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지식인이고 정치인이고 가릴 것없이 아따 우덜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보스니아/마케도니아인들만 맨날 피해본당께 하면서 우매한 개돼지들을 선동하면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민족 구분 안하고 오순도순 잘 살던 유고인들도 결국 민족별로 갈라졌다.

특히 세르비아인들이 피해의식이 더 컸는데 2차세계대전때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라는 나치깡패가 자기 나와바리인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과 유대인을 잔인하게 살해[1] 한 전적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2]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와 세르비아의 체트니크는 잘 알려져있어서 보스니아인들이 피해자인줄만 아는데 무슬림들도 나치와 협력하여 SS사단 한트샤르를 조직하여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한 전적이 있다.

80년대 말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화 등 격변을 겪었는데 평화적으로 분리된 체코슬로바키아와 달리 참혹하게 갈라졌다.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크로아티아의 프라뇨 투지만, 슬로베니아의 밀란 쿠찬, 보스니아의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마케도니아의 키로 글리고로프 등의 지도자들이 저마다 우맨피를 시전하고 티토 격하운동을 벌였다. 통일된 유고슬라비아를 외치던 이들은 민족반역자로 몰렸다.

그 중에서 제일 돋보이는 건 대가리 쪽수로 밀어붙이던 세르비아였고 아따 우덜 세르비아가 제일이제를 시전하니까 문화도 다르고 경제적으로 더 부유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개빡돌았고 결국 연방 탈퇴를 선언한다.

세르비아는 이를 저지하려 군대를 파견한다. 참고로 당시 유고 군대는 70%정도가 세르비아인이 차지해서 사실상 세르비아군이라해도 무방했다.

그러나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와 달리 단일민족 국가였고 빠르게 국토를 장악한 뒤 내전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는 민족 구성이 복잡했고 결국 보스니아와 함께 쑥대밭이 되는데..

10일 전쟁[편집]

슬로베니아는 연방 붕괴를 미리 예측하였고 계획을 잘 세운뒤 1991년 6월 25일에 독립했다

6월 26일 먼저 공격을 했고 27일 양측 군대가 각각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한방씩 먹였다

이를테면 헬기를 격추시키거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식의

6월 28일 슬로베니아가 JNA에 반격을 시도했다.

국경 부근의 홀메츠 , 드라보그라드 , 보르보니차 , JNA 무기고와 JNA 포로 91명 등이 슬로베니아에게 넘어갔다

6월 29일 슬로베니아군에게 공격을 시도한 JNA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7월부턴 전쟁보단 슬로베니아에게 유리한 측으로 외교적 협상이 진행되어 7월4일에서 6일까지 휴전이 진행되었다

이후 7월 7일 브라우니 협정으로 총성을 멈췄다

크로아티아 전쟁[편집]

1991년 6월부터 1995년 8월까지 크로아티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배경으론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본 크로아티아가

자신도 독립을 하고자 들고 일어나서 세르비아와 무력충돌한 전쟁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하였고 보스니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세르비아의 전쟁사를 잘 살펴보면 이 자식들이 세르비아랑 다르지 않음을 알수있을것이다

썩을놈들.전쟁범죄라니 <<지랄하네 크로아티아 새끼들이 먼저 2차대전때 세르비아인 존나 학살해서 보복한건데

사실 세르비아는 일단 독립은 허용하되 크로아티아 동부 내륙+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접경지에 세르비아인이 많이 살던 걸 이용해서 괴뢰 공화국(스릅스카 크라이나 공화국) 크라이나 세르비아 공화국[3] 을 세워 간접지원하는 방식으로 내전을 치뤘다. 차도살인 ㅆㅅㅌㅊ

보스니아 전쟁[편집]

유고 내전 중 가장 치열했던 전쟁.

1992년 4월부터 1996년[4] 까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가 충돌한 전쟁으로

여지껏 일어난 전쟁 중에 제일 더러운 전쟁으로 인종청소 , 도시폭격 , 대학살 등이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걸 지켜본 미국이 개입하여 나토군이 들어갔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던 세르비아는 좆털리고 광광우럭따고 한다

결과적으로 보스니아가 독립했다.[5] 그런데 무슨 이유로 크로아티아랑 또 충돌한다[6]

이 전쟁 하나로 군인+민간인 사망자가 10만명이 넘었으며 여기다 민병대 사망자+부상자+난민 합치면 인적 피해만 수십만 된다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군인 31,720명 사망 민간인 33,071명 사망

크로아티아: 군인:5,439명 사망 민간인 2,163명 사망

유고연방(사실상 세르비아 지분율 90%) 군인 20,649명 사망 민간인 4,075명 사망

보스니아-크로아티아 전쟁[편집]

보스니아 내전의 하위 전쟁이다. 일단 전체적으로는 보스니아계&크로아티아계vs세르비아계 구도였지만 이 와중에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 역시 지들끼리 피터지게 싸웠다. 처음에 두 민족은 동맹관계였지만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싸우는 거는 싸우는 거고 보스니아도 나눠먹자는 밀약을 맺는다. 그 이후 크로아티아는 헤르체고비나 지방을 중심으로 보스니아 땅을 갉아먹는다. 뒤통수 오진다 야... 물론 그 와중에 세르비아계를 밴치마킹하여 보스니아계도 존나게 학살했다. 2017년에 헤이그 법정에서 독극물 원샷한 슬로보단 프랄략도 이때 보스니아계 마구 죽인 크로아티아계 사람이다.

그런데 세르비아계가 워낙 넘사벽으로 크로아티아계와 보스니아계를 압도하자 더 이상 3파전은 무리였다. 결국 1994년 워싱턴 협정에 의해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연방이 탄생했다. 보스니아계는 빡쳤으나 미국 성님에 기댈 수밖에 없어서 크로아티아계와의 재연합에 찬성했다. 세르비아계가 더 싫었기도 하고.

코소보 전쟁[편집]

코소보 참고

코소보 사태라고 불린다 . 세르비아 엄마없는 새끼들이

코소보에서 알바니아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터트린 전쟁으로 뭐 원래는 알바니아 민병대가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론 세르비아가 더 쓰레기임을 입증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개입하자 세르비아는 또 광광 울며 짜졌다고 한다

마케도니아 전쟁[편집]

얘네는 세르비아랑 전쟁 안 뜨고 코소보(+알바니아)랑 전쟁 떴다.

얘네는 원래 유고 시절부터 세르비아랑 별로 충돌할거 없었다. 경제적으로 좆밥이고 세르비아인이 별로 없고 여유도 없어서 세르비아가 딱히 태클 걸 거 없거든.

근데 독립하고 나서 자기네 땅에 있는 알바니아인들과 갈등을 빚고 있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2001년에 코소보에서 넘어온 알바니아인들이 자기 사는 땅에서 마케도니아인 몰아내고 코소보 + 알바니아랑 합병할려고 시도했고 결국 마케도니아가 나토에 헬프쳐서 일단락 됬다.

그리스 국명 갈등 문제는 북마케도니아로 개명하면서 일단은 해결됐고

결과[편집]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

남동부 유럽 국경선이 이전과 다르게 엄청 복잡해지게 되었다

겉으로 보면 평화가 정착되어있는 듯 하다.

하지만 지금도 민족간의 앙금은 한일관계를 쌈싸먹고도 남을 지경이고 특히 보스니아 내에 살던 세르비아 인들이 스르프스카 공화국을 결성하고 나 독립하고 세르비아 성님한테 붙을래 빼애액 하니까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등 전쟁이 언제 재발될지 모르니...

2000년대 무렵부터 코소보를 제외한 구 유고 곳곳에서 우리가 이 지랄을 왜 했냐며 티토 그리워요 엉엉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일단 구유고 대부분의 나라가 갈라진 이후 그리 잘 사는 편이 아닌데다 국제적으로도 나름대로 제3세계에서 떵떵 거리던 국가에서 개듣보잡 나라로 그 위상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나이 좀 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티토가 살아있을 때에는 헬조선식 야근 없이도 그럭저럭 풍족하게 살았고, 80년대만 하더라도 유고 여권이 자본주의 진영, 공산주의 진영 양쪽에서 잘 통햇지만 지금은 그런 거 없다고 한다. 특히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 구유고 권에서 가난한 편에 속하는 지역들은 외국에 나갈 때마다 불법체류자 의심 받는다며 불만을 품는 경우가 꽤 있다. 하다 못해 티토 사후 막장화된 유고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가고 나름대로 경제적으로 풍족한 슬로베니아에서도 지금보다 티토 시절이 훨씬 나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과반은 아니다 독재정권 찬양한다며 비판하거나 티토시기 때 벌어진 인권침해를 이유로 우상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하지만 이제와서 후회하면 뭐하나 이미 늦었는 걸. 묵념.

구 유고 지역 축구선수들[편집]

내전은 지금 해축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알만한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 보스니아 등 국가들 출신의 축구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예시를 들자면

1.루카 모드리치:할아버지를 내전 때 잃어버리고 호스텔 수준의 방에서 빈곤을 강요받았다고 함.
2.데얀 로브렌:보스니아에서 태어났는데 내전 땜에 피난가야 하는 시련을 겪었음. 괜히 태극기 휘날리며에 감명깊었다고 말한게 아님
3.에딘 제코:하필이면 위험천만한 사라예보에 살았던 탓에 죽을 위기를 많이도 겪었다. 친구들과 놀려고 밖에 나가려는 걸 엄마가 막아놨고 다음날에 그 친구들 밖에서 놀다 폭탄으로 죽었다는 비보를 들었다고.
4.셰르단 샤키리,그라니트 샤카:코소보 출신으로 난민이 되었고 스위스 국적으로 뛰게 되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서 하필 세르비아와 맞붙었고 둘이 나란히 골을 넣고 알바니아 상징인 쌍두독수리 세레머니를 세르비아 앞에서 선보이며 도발했다. 더군다나 자카의 부친은 코소보 독립에 가담하다가 세르비아의 감옥서 개고생했다고 한다.
5.아드낭 야누자이:가족들이 유고군 징집을 피해 벨기에로 빤쓰런하고 거기서 태어난 게 야누자이다. 근본론이 나오게 된 원흉이 바로 이 내전 되시겠다.
6.다리요 스르나:유고 내전으로 고향 크로아티아가 개발살나는 걸 피하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우크라이나 리그서 뛸 때(소속팀은 샤흐타르) 우크라이나 내전이 터지자 자기 고향의 감귤 20톤을 기부했다.[1]

(추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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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산부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낸 원조나치도 놀랄 미친놈들이었다
  2. 물론 세르비아인들도 체트니크라는 우익 저항단체가 무슬림 민간인들을 보복살해하는 짓거리를 했다. 이는 90년대 내전에서도 재탕됨
  3. 사실 크로아티아 전쟁은 스릅스카 공화국 보다는 크라이나 공화국+ 세르비아가 주도했다. 1990년12월 21일 세르비아인 민병대원들이 크로아티아 도시인 크닌을 점령하고 거기다 정부를 설립해서 만든 국가다 수도 이름을따 크닌 공화국으로 불렀으며, 1995년 크로아티아의 5월 총공세로 무너진다. 유고전쟁 시기의 쓰인 크라이나 익스프레스 장갑열차가 얘들꺼다
  4. 종전협정이 1995년 12월 14일 체결되었고, 사라예보 포위전이 1996년 3월 1일 끝났다. 그 이후로 1996년 내내 수많은 세르비아놈들이 보스니아 땅에서 꺼졌다.
  5.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한 국가안에 보스니아+크로아티아계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세르비아계의 스릎스카 공화국이라는 두 국가가 따로 살림차리게됨.
  6. 사실 보스니아의 정식 국명에 헤르체고비나가 보스니아 내에 크로아티아 인이 많이 사는 동네를 뜻한다. 크로아티아는 이참에 자기네 동포들이 사는 땅 삥뜯으려고 충돌한거다. 얼마전 슬로보단 프랄략이라는 크로아티아 전범이 이 때 무슬림 민간인들 학살한 죄로 재판받았는데 나 죄읎다. 억울하다고 항변하고는 독약마시고 탈지구하는 사건이 있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