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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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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의 정치인이자 변호사, 보스니아 내전 당시 독립한 보스니아의 초대 대통령.

얘도 유고 말기 민족주의 포퓰리즘으로 표 받아먹고 보스니아 정부군과 민병대의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인 학살을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등

뒤가 꽤 구린 편인데 내전으로 폐허된 보스니아의 지도자라는 동정표 때문에 미화된 감이 없잖아 있다.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대통령이 얘 아들이다.

생애[편집]

유고 왕국 시절 보스니아 지역의 몰락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고 사라예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 사법연수원 수습생이 될때 쯤 2머전이 터지고 만다.

그러자 알리야는 '젊은 무슬림들'(Mladi Muslimani)이라는 이슬람 단체에 가입했는데 문제는 이 단체가 보스니아인들로 구성된 SS휘하 사단 한트샤르와 밀접관계가 있었다는 의혹을 받던 단체였다.

자기 딴에는 집안이 가난해서 전전긍긍하다 거기 가입하면 밥도 주고 재워도 준다해서 갔다고 변호 했지만

유고 머장 타이틀 단 티토는 그를 나치 가담 혐의로 3년간 옥살이를 시켰다.

출소 이후엔 얌전히 변호사나 하면서 사나 싶었는데 1970년에 '이슬람 선언'(Islamska deklaracija)이란 이슬람 근본주의 논문을 발표해 다시금 티토의 심기를 건들이게 된다.

결국 1983년 민족주의 선동 혐의로 징역 14년을 선고 받았는데 유고 내 각 민족 통합의 구심점이던 티토가 1980년에 죽어버려 각 지역에서 민족주의가 대두되던 유고의 상황을 간파하지 못한 국제 사회와 엠네스티가 강력한 항의 서한을 전달해 결국 5년만에 출소한다.

당시 노구의 몸으로 깜빵 생활하면서 생각을 많이 했는지 이슬람 선언에서 드러낸 정치 견해를 철회하고 다원주의를 지향하면서 온건 이슬람 정당 민주행동당을 수립하고 크로아티아인을 포용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물론 태생이 무슬림이었던 지라 이슬람을 더 중시하는 성향을 보여 보스니아 정부군의 크로아티아인 학살을 방관한 일도 있었고

내전 직전에 앞서 서술된 나치 가담 의혹, 이슬람 선언으로 인해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종전 이후에도 보스니아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2003년 심장병으로 사망했으며

오늘날 보스니아 무슬림들은 알리야를 거의 국부급으로 숭상하는 중이다.

2018년 보스니아에서 그의 일생을 각색한 알리야(Alija) 라는 드라마가 방영됬다.

세르보크로아트어 잘아는 사람 있으면 한번 봐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