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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사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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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정몽주 등 여말선초를 다루는 숱한 드라마에 등장하는 문돌이들 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방원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권문세족보다는 훨씬 똑똑한 놈년들이 많았다. 그도그럴것이 권문세족은 죄다 음서로 관직에 진출했지만 신진사대부는 죄다 과거로 관직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최씨정권과 말기 무신정권의 바호 하에 성장해 오던 사대부들이 무신정권이 붕괴함에 따라 몰락하게 되고 그후 사대부들이 정치 일선에서 사라지게 된 원인을 제공한 원나라에서 성리학이 수입되었고 이 성리학을 바탕으로 성장한 것이 바로 신진사대부들이다. 이들이 정치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건 다름아닌 신돈에 의해서인데 불교와의 타협은 절대로 불가하다고 주장하던 성리학자들을 정치세력으로 키워낸 자가 바로 신돈이라는 걸 보면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신돈이 무슨 의도로 이들을 정치적으로 성장 시켰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아마도 신돈 자신도 불교계의 주류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무리 공민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온 사방에서 자신을 몰아치는 상황에서 왕의 신임만을 믿기에는 공민왕의 성격상 매우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진사대부들을 양성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신돈 자신의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로 연합하기 시작한 권문세족과 불교계를 견제를 해준다면 땡큐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진사대부들은 신돈은 물론이고 공민왕도 신뢰하지 않았다. 이는 공민왕이 신돈을 반역죄로 죽인 후 정치 일선에 복귀 했을때도 공민왕을 도와 국정운영을 하기는 커녕 공민왕의 나약함을 비꼬면서 조롱을 하면서 절정으로 치달았는데 이에 공민왕은 더 이상 국정운영에 뜻이 없어지고 죽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다 결국 홍륜과 최만생에게 살해 당했고 우왕의 즉위와 함께 집권한 이인임에게 대대적으로 줘 털리게 된다.

이때 정치일선에 남아있던 대부분의 신진사대부가 쓸려나갔으며 일부는 전향하여 이인임에게 빌붙어 신진사대부가 분열되기 시작한다.

한편 이때 이인임에게 찍혀 쓸려 나간 인물 중 하나였던 정도전은 이때부터 역성혁명의 꿈을 꾸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야망은 있으나 방법을 몰랐던 이성계와 연합하여 마침내 역성혁명의 실현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신진사대부는 신흥무인세력과 연합해서 권문세족을 싹쓸이해나가기 시작한다.

우왕시기 대부분을 집권하던 이인임의 권력이 우왕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커지기 시작하자 이에 두려움을 느낀 우왕은 최영이성계로 대표되는 군부의 손을 빌려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마침내 이인임을 실각시켜 버렸다. 이때가 위화도 회군 6개월 전

이 친위 쿠데타를 기점으로 신진사대부들이 본격적으로 정치일선에 등장하게 되는데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창왕이 폐위되자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고려라는 틀을 유지한채 변혁을 주장한 세력과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역성혁명을 주장한 세력으로 또 분열된다.

이들은 공양왕 통치기 전반에는 적당히 간을 보면서 눈치를 살피다가 과전법 문제로 인해 격렬히 충돌하게 되고 이성계의 낙마 사고를 기회로 정몽주가 먼저 칼을 빼들었으나 그래도 자신을 옹립한 군부의 수장인 이성계를 죽이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한 공양왕 때문에 도로아미타불... 결국 이방원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철퇴로 살해하면서 사태는 역전되었고 결국 공양왕이 폐위되고 이성계가 왕이 되면서 역성혁명이 성공한다.

어떻게 보면 매우 애미가 없는 씹새끼들로서 자기네들끼리 몇번씩이나 분열해가면서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여 죽여대게 만든 원한 때문인지 고려에 대한 적개심이 차고 넘친 집단인데 결국 이들이 최종 승리자가 되면서 벌인 왕씨 대학살을 보면 고려에 대한 적개심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이들의 고려에 대한 적개심은 유달리 심한 편으로 헬조센 역사 중 나라가 좆망할 스멜이 날때 나타난 신흥 엘리트 집단을 보면 대체적으로 해당 국가의 망국에 일조하여 신세력의 풀발기에 동조하는 형태를 보이는 편이다.

신라의 6두품 세력이나 조선친일파들이 그러했듯이...

하지만 이들은 해당 국가의 망국에 동조는 하였으나 그 국가의 왕족들의 신변은 건드리지 않았다. 뭐 고종의 경우 독살 의혹이 있긴 있지만 공양왕처럼 대놓고 처형하지는 않았으며 전주 이씨 왕족들 대부분이 좆본 귀족으로 편입되어 한 평생 잘 먹고 잘 산 반면 왕씨들은 사정없이 줘 털리기 바빴다.

사실 이들의 애미리스 함은 이들이 공민왕대 정치일선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그 징조가 나타났는데 신돈에 의해 의도적으로 정치적으로 성장했던 신진사대부들은 정작 공민왕신돈에게 정치를 맡기자 게거품을 물며 풀발기 했고 집단 태업으로 맞서며 공민왕과 대립했다.

그 후 신돈공민왕에게 줘 털리고 오랜만에 공민왕이 정치일선에 전면으로 나서며 이들 신진사대부들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이들은 이미 공민왕에 대한 신뢰를 접은지 오래였고 공민왕의 정치 파트너가 되자는 신돈의 제안에 조롱과 멸시로 답을 하였다.

한편 고려의 모든 정치세력으로부터 버림받게 된 공민왕은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홍륜 등에 의해 죽게 되었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인임을 비롯한 친원 보수세력들은 암만 좆같다 하더라도 국왕을 저따위로 까는 신진사대부들을 매우 좆같이 보고 있었으며 이는 우왕이 등극한 후 이인임이 집권하면서 정치판에 남아있던 신진사대부들이 모조리 쓸려 나가는 중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요새로 치면 지들만 잘났다고 설치는 '오렌지족 금수저'에 정치인 짓거리 하는 국k-1 정도랄까.... 역사적 승패만 반대로 놓자면 바읍읍당?

이 후의 역사는 훈구 또는 사림 항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