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로빈슨
조무위키
놀랍게도 미국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양키성님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
이 문서는 금손에 대해 다룹니다. 우리 같은 앰생똥손들은 암만 노오오력해 봤자 손톱의 때만큼도 실력을 못 따라가는 금손을 가진 사람이니 그냥 열심히 후장이나 빠시기 바랍니다. |
주의. 이 문서는 인성쓰레기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인성이 씹창났거나 성깔이 존나게 더러운 자들을 다룹니다. 당신에게 어떤 범죄를 저지를까 하는 궁리만 하고 있거나 잘못 건드렸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일단 피하시기 바랍니다! 너 인성 문제 있어? |
놀랍게도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는 그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시 빅 레드 머신 골수팬들의 저주로 제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
놀랍게도 캠든 야즈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시 쇼동니뮤의 저주로 제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야구를 존나 잘하거나 야잘알이며 야구 그 자체입니다. 믈브나 느프브에 있기 마땅한 존재입니다. 크보나 크프브르 같은 건 그에게 너무 좁습니다. |
프랭크 로빈슨
Frank Robinson 볼티모어 오리올스, 신시내티 레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No.20 | |
기본 정보 | |
생년 월일 | 1935년 8월 31일 |
출생지 | 텍사스주 보몬트 |
국적 | 미국 |
선수 정보 | |
입단 | 1953년 신시내티 레즈 자유계약 |
투타 | 우투우타 |
포지션 | 외야수, 1루수 |
경력 | 신시내티 레즈(1956~1965) 볼티모어 오리올스(1966~1971) LA 다저스(1972) 캘리포니아 에인절스(1973~1974)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74~1976) |
지도자 정보 | |
포지션 | 감독 |
경력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75~1977)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1981~1984) 볼티모어 오리올스(1988~1991) 워싱턴 내셔널스(2002~2006) |
야구는 잘했는데 성깔이 더러웠던 인물이다.
근데 더럽긴하다만 좀 애매하게 더러운 사람이다. 막상 사구 쳐맞을땐 묵묵히 잘 참고 그랬음.
신시내티 시절엔 신인 최다 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탔고 심지어 MVP까지 탈정도로 실력만큼은 엄청 끝내줬으나 프런트한테 깝친다는 이유로 레즈가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보내버렸다.
당연히 성깔만 더럽지 야구는 잘했기 때문에 프랭크는 오리올스에서 날아다녔고 레즈 단장은 이 병신짓을 한 댓가로 잘림.
오리올스로 갔던 로빈슨은 66년 트리플크라운을 시작으로 샌디 쿠팩스와 돈 드라이스데일 씹사기급 원투펀치로 이루어진 브루클린 다저스를 월시에서 4대떡으로 만들어버리며 볼티모어에게 창단 이후 첫 월시 우승을 안겨줬고 본인은 월시 MVP에 아메리칸 MVP까지 따내며 최초로 양대리그 MVP를 따낸 선수가 되었다.
71년에는 올스타전 MVP까지 따냄으로 역대 최초로 신인왕, 월시 MVP, 양대리그 MVP, 올스타전 MVP를 모두 따낸 선수가 되었다. 한 마디로 상복이 뛰어난 선수.
그에 감동한 볼티모어에선 72년에 프랭크에게 영구결번을 수여해줌.
그 이후 저니맨이 되긴 했지만 꾸준히 잘해주었고 3000안타까지 노려보기도 했으니 딱 3000안타 치고 야구계 떠났으면 좋았겠지만..
감독[편집]
프랭크는 말년에 뛰던 클리블랜드에서 1975년 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프랭크는 각동님의 조언을 잊고 추해지기 시작한다.
에이스 투수였던 게일로드 페리를 마음에 안든다고 트레이드한다든지 기량 하략이 완연함에도 백인천처럼 자기 기록 위해서 선수 겸 감독 지위를 남용해서 억지로 경기에 출장하는 등의 치졸한 짓거리만 일삼다가 작작 지랄하라고 욕 쳐먹어서 결국 깨갱하고 3천안타는 포기한 채 1976년에 선수로써는 완전히 은퇴하고 감독으로 전임했다. 하지만 곧바로 다음해에 해고ㅋ
이후에도 야구계에서 안 떠나고 샌프나 볼티모어, 워싱턴에서 감독직을 맡았는데 감독 맡는 내내 가을야구에 1번도 못갔다. 특히 워싱턴 시절엔 김선우 마음에 안든다고 아웃카운트 하나 남았는데 뜬금없이 강판하는 등의 개짓거리를 벌였다.
이랬기 때문에 결국 말년엔 선수들에게 항명으로 죽창맞고 추하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