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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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콥
Tyrus Raymond "Ty" Cobb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 |
기본 정보 | |
생년 월일 | 1886년 12월 18일 |
출생지 | 조지아주, 내로우 |
국적 | 미국 |
선수 정보 | |
입단 | 1905년 8월 |
투타 | 우투좌타 |
포지션 | 중견수 |
별명 | 더러움 |
경력 | 디트로이트 타이거즈(1905~1926)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1927~1928) |
비고 | 옆차기 잘함 |
미국이 아직 틀딱볼이던 시절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라 불리우던 중견수..지만 사실 라이브볼 시대에도 4할을 친 적이 있어 라이브볼 시대에 활동할 때도 쩌리가 아니라 탑이었다.
야구인들이 다시는 안 나온다는 꿈의 4할 타자, 4할 타자 할때 그 4할 타자가 이 사람이다. 4할을 3시즌이나 친, 진짜 야구의 신이라 불리던 선수였다. 천하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에게 '4할도 못 치는 찐따', '사못쓰'라고 부른 유일한 인물. 화가 난 베이브 루스는 '나도 단타 위주로 치면 6할도 친다'고 항의했다.
- ㄴ근데 막상 타이 콥은 단타 위주로 친 똑딱이 선수가 아니었다. 통산 3루타 2위, 통산 2루타 4위로 홈런이 안 나오던 데드볼 시대 기준으로는 장타를 엄청 많이 치는 장타자였다. 2루타와 3루타가 많아서 홈런 10개도 못 친 시즌에 장타율 6할도 기록해 봤다. 워낙 빠른만큼 도루왕 역시 많이 했고. 그야말로 데드볼 시대에서 타자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안 빼놓고 다 잘했던 괴물같은 선수.
- ㄴ자기 실력에 대한 부심도 쩔어줘서, 심지어는 나이 칠순 때 한 인터뷰에서도 "내가 지금 빠따 잡아도 3할은 친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오력을 안 해 쯧쯔" 하고 꼰대질함.
메이저리그 통산타율 1위를 죽은지 60년이 지나서도 아직 고수하고 있다. 3000안타 항목에도 나온다.
이단 옆차기로 내야수를 박살내는게 취미였다.
이 옆차기의 역사는 이후 한만두로 계승된다.
개요[편집]
메이저리그 역사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설명이 필요 없는 외야수다.
데뷔시즌을 제외하면 23년중 3할은 커녕 3할2푼 이하를 기록한시즌이 없다.
타이 콥이 1928년 은퇴 후 88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의 타율 기록은 넘길 사람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기록.
수비면에선 다른 선수에게 밀렸을지 몰라도 타격에서는 타이콥을 따라올 선수가 없다.
볼이든 스트라이크든 일단 쳐서 안타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했기에 안타에 비하면 볼넷은 적은 수준.
발야구 스타일이라 도루나 내야안타를 좋아했지 홈런을 좋아하는편은 아니었다.
나중에 등장하는 베이브 루스가 홈런으로 인기끌자 저딴건 야구가 아님 ㅂㄷㅂㄷ거림.
- 타이 콥이 베이브 루스를 정말 혐오한거도 한몫한다 루스에게 흑인의 피가 흐른다라고 한적도 있고
- 타이 콥이 베이브 루스와 반목했던 건 인터뷰할 때 뿐이다. 평소에는 서로 원만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그리고 당시 반깜둥이는 신문에 나올 만큼 흔한 욕이었다.
- 둘이 그냥 라이벌 느낌이여서 서로 까댄거지 막상 베이브 루스도 타이콥 존나 잘한다고 인정해줬고 타이콥도 자서전에서 베이브 루스가 가장 야구 잘한다면서 치켜세워줌
- 타이 콥이 베이브 루스와 반목했던 건 인터뷰할 때 뿐이다. 평소에는 서로 원만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그리고 당시 반깜둥이는 신문에 나올 만큼 흔한 욕이었다.
물론 그건 그거고 데드볼치곤 홈런도 나름 잘쳤다. 홈런왕도 따본적 있고.
유일한 흠이라고 치면 월시 우승이 없음. 물론 투수도 아니고 타자 혼자서 캐리하는 게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이것 때문에 다른 팀 후배인 월터 존슨한테 관음증 비슷한 호감을 보이기까지 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차라리 지가 새너터스로 이적하는 게 좋았을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까 즈그 팀 에이스한테도 막말하던 당시 그 팀 꼬라지 보면 얘 성격에 아가리 턴 새기들 다 두들겨패고 야구 때려쳤을지도.
멘탈만 멀쩡했다면 엄청난 칭송을 받았겠지만 멘탈이나 인성에 대한 평가는 느그혐 수준이라 살짝 평가가 박하다.
흑인을 니그로방출 수준급으로 싫어하는편
- 위의 반깜둥이 욕 같은 걸 제외하면 타이 콥은 인종차별 한 적이 별로 없다. 당시 흑인 사회의 여론은 오히려 타이 콥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래도 타이콥이 MLB 최고의 선수였다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타이콥이 있던 시절은 등번호가 없던 시절이라 영구결번이지만 번호는 부여되지 않았다.
대신 코메리카 파크 왼쪽 담장에 타이콥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여담으로 은퇴후 사업으로 매우 많은 돈을 벌었다.
장례식장에 3명 왔다 하드라.
- 이건 그냥 명백한 거짓말이다. 가족들이 가족장으로 치르길 원해서 아주 많은 사람이 오지는 못 한게 와전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가족장치고는 많은 사람이 왔다. 타이 콥 가족의 요청으로 여러 사람이 갈 수 없어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간부 1명,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구단에서는 사장이 직접 방문했으며, 방문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화환을 보냈다는 신문기사가 있다. 또한 당시 수많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팬들이 가장 위대한 야구인이었던 그를 추모했고, 그를 회고하거나 그의 지인을 인터뷰하여 올린 신문기사들도 많이 나왔다. 타이 콥은 중년에 사업 성공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이후 기부나 자선사업도 했고, 나이먹고 어려워진 선수시절 후배들을 챙겨준 적도 있다. 은퇴 후 사회에서 무시받던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존경받던 사람이다.
단지 현역 시절에 언론들이 부풀린 사건사고가 많아서 그렇지, 인성쓰레기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걍 다혈질이었는데 오늘날에도 이런 이미지가 남아서 악마의 재능 취급도 많이 당한다.
주요 커리어[편집]
통산 타율 1위
시즌 8관왕
12번의 타격왕 & 4할 3번
메이저리그 최초의 MVP
메이저리그 최초의 4000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