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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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는 몸에 해로운 전화가 없습니다.

틀:남미의 영웅들

에르네스토 라파엘 "알비셀레스테" 게바라 데 라 세르나
Ernesto Rafael Albiceleste Guevara de la Serna
생년월일 1928년 5월 14 (출생) ~ 1967년 10월 9일 (사망,39세)
국적 아르헨티나[1], 쿠바, 볼리비아
출생지 아르헨티나, 산타페 로사리오
직업 혁명가
종교 없음
정당 7월 26일 운동 → 쿠바 공산당 → 볼리비아 민족해방군
표방이념 중도좌파 ~ 극좌
게바라주의, 혁명적 사회주의

소개[편집]

을 든 예수

혁명의 아이콘이자 사회주의의 영원한 아이돌

아르헨티나 출신의 쿠바공산주의 혁명가.

혁명, 혁명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

ㄴ제발볼드체작작좀ㅡㅡ

존나 웃긴건 체게바라는 안티 자본주의 공산주의 혁명가인데, 오히려 자본주의 진영에서 상품화되어 연예인마냥 인기를 얻고 온갖 티셔츠를 비롯한 체 게바라 관련 상품을 유행시켰다.

빨갱이 외치는 놈들이 체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모순.

얼빠양성의 선구자라고 한다

공산주의합네 하며 지 꼴리는대로 다 해쳐먹는 김일성그 병신새끼 통수쟁이와는 달리 얘는 진퉁 공산주의자이다.

부루주아 도련님에서 쿠바의 해방자까지[편집]

본명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 귀족 혈통의 부루주아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의사였으며, 부모들도 당대 기성 부루주아들과는 다르게 꽤나 진보적인 스탠스를 가졌고, 이는 게바라의 어린시절에 영향을 미친다.

아르헨티나에서 의대생으로 있다가 친구와 같이 오토바이 하나 뽀려다가 아르헨티나 전국을 누비며 여행한다[2]. 그러다가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 CIA의 사주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는 꼬라지와 원주민인 인디오들과 농민층이 착취에 시달리고, 특히 그들을 착취하던 기업들 뒤에 미국이 손을 드리웠다고 생각한 게바라는 앞 날이 보장된 의사 대신 혁명에 투신할 것을 결정한다.

평생의 동지가 될 카스트로 형제와 만난 게바라는 풀헨시오 바티스투타 친미 독재정권 하에 시달리던 쿠바로 들어가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스타트부터 꼬여서(통통배타고 상륙했는데 이미 걸려서 함께 간 대원들 대부분이 죽었다) 그냥 도루묵이 되나 했지만, 착취에 시달리던 쿠바 농민들이 게릴라들에게 우호적이었고 게릴라들 또한 게바라의 의료 봉사로 대표되는 대민지원을 통해 농민 등 빈민층의 지지를 굳건히 했다. 이와 같은 민중의 지지를 통해 결국 초기의 열세를 극복하고,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다.

혁명 투쟁 중 게바라가 게릴라 중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념적 순수성이나 용맹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행한 의료지원과, 한편으로 인디오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기도 하는 등 대민지원 덕분이다. 게릴라가 성공하기 위해선 그 토양이 될 주민들과 얼마나 가까워지느냐가 관건인데[3], 이 부분에서 게바라의 역할이 클 수 밖에 없었던 것.

쿠바 경제를 말아먹다[편집]

혁명의 성공으로 체는 쿠바의 경제부 부장에 취임한다. 문제는 이 작자 전공의학이었으니 경제는 몰랐던게 문제. 마오쩌둥의 중국 혁명을 모델로 두고(실제로 쿠바는 산업국가가 아닌 농업국가였다. 주 수출품이 사탕수수) 경제개혁을 진행했으나, 성급하게 화폐개혁을 하고 이것저것 죄다 국유화를 하는 바람에 안그래도 병신이었던 국가경제가 더 병신이 되버린다. 화폐에 대충 체 라고 갈긴걸 사용했으니 경제가 멀쩡히 돌아가면 이상하겠지만.

한발 양보해서, 그나마 미국하고 사이가 안 틀어졌으면 모르겠는데, 쿠바 혁명으로 자본가들이 다 쫓겨나거나 처형되는 와중에 미국 기업이라고 해도 무사할린 없었고, 죄다 추방되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다. 물론 미국 기업들이 쿠바에 빨대 꽂고 쫙쫙 빨아먹은 것도 있어으니 일방적인 피해자는 아니지만, 문제는 그 시기가 냉전에 돌입한 시점이라는 것. 미국이 21세기에나 들어서 쿠바와 화해 어쩌구 하는게 이 때의 여파다. 아무튼 당연히 이때문에 미국은 쿠바와 단교를 했고, 그나마 사탕수수 팔아먹던 큰 시장인 미국이 날아가니 소련 응딩이에 메달린다.

소련은 소련대로 미국 앞 마당에 위치한 쿠바에서 혁명이 성공해 공산정권이 들어서니 좋았지만 그렇다고 쓸데없는 사탕수수를 사 줄 생각은 전혀 없었고, 나름 독자적으로 성공한 쿠바혁명정권이 친소진영으로 들어오길 원했다. 카스트로도 현실론을 이야기하며 친소정책을 취했고 이 때 벌어진게 쿠바 미사일 사태. 소련 이 와중에 차관 등 지원을 가지고 이랬다 저랬다 쿠바를 가지고논 것은 옵션.

이 일련의 상황으로 쿠바의 수뇌부들은 빡쳤지만 그중에서 제일 빡친게 이상가였던 체 게바라로, 다른 이들은 현실을 보면서 참던 걸 이 양반은 UN 가서 소련을 대차게 까버렸다! 이로서 미소 양국의 심기를 건드렸고 결국 쿠바의 경제력은 시망했다.

웃긴건, 그가 한편으로 주도했던 국가정책이 의료정책으로, 전공이었던 만큼 자신있게 추진한 정책들이 성공을 거두어 쿠바는 현재도 의료에서 만큼은 세계 수위권 안에 드는 강국이다. 경제장관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장관을 했어야 할 인물.


혁명가에서 우상으로[편집]

경제가 무너지고 소련의 심기를 건들였으니 혁명 정권 내에서 체 게바라의 입지가 불안해진다. 동시에 그 자신도 동료들의 현실안주에 불만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피델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시 혁명가의 길로 돌아간다.

먼저 아프리카 콩고로 가서 새로운 혁명을 계획했으나, 내전이 극심한 상태에다가 문화가 달라 어려움에 시달렸다. 그리고 소련에 망신을 준 경력 때문에 정작 콩고 공산당은 그에게 적대적이었다. 결국 아무 성과도 못 거둔체 콩고 계획은 실패했다.

콩고 다음에 갔던 나라는 남미의 볼리비아. 그러나 이번에도 체는 실패했는데, 쿠바와는 달리 볼리비아는 친미독재긴 해도 농민에 대한 정책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영농의 비율이 높았다. 혁명, 그리고 게릴라 전이 성공하기 위해선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민중에게 혁명의 당위성을 납득시키는 것이 핵심인데, 정작 볼리비아 민중들은 혁명에 그닥 관심이 없었던 것.

이런 상황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진 못하고 오히려 행적이 알려져서 미 CIA와 볼리비아 의 추적을 받아 한 협곡에서 소규모 교전 끝에 생포되어 살해된다.


자본주의에게 조리돌림당한 체 게바라[편집]

까놓고 애기하면 혁명한답시고 지 쾌락살인 욕구만 충족한 ISIL 같은 사이코패스 살인마에 불과한데 와꾸만 잘생기면 빨고 보는 머가리 텅텅빈 새끼들이 늘어가자 이걸 캐치한 더러운 자본가들이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빌려 온갖 상품을 쏟아내어 배에 지방을 늘리는 중이다.

자칭 혁명가 새끼가 자본주의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한 수준 ㅋ 체 게바라가 한 짓을 보면 자본가에게 조리돌림당해 자본주의의 아이콘으로 재 탄생한 것이 체 게바라에 있어서 충분히 과분한 최후 일 것이다. 물론 그 사이코패스 살인마하고 같이 다닌 동료 살인마들은 체 게바라를 자본가 새끼들이 모욕한다고 피꺼솟 잼 ㅋ 근데 이게 또 체게바라 후손들에게는 돈을 갖다 바치니 이거 참 아이러니하다.

명언[편집]

네 자유와 권리는, 딱 네가 저항한 만큼 찾는다.

 
— 체 게바라

나는 해방자가 아니다. 해방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민중은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 체 게바라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진정한 혁명가를 이끄는 것은 위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이런 자질이 없는 혁명가는 생각할 수 없다.

 
— 체 게바라

혁명은 다 익어 저절로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다. 떨어뜨려야 하는 것이다.

 
— 체 게바라

아이러니[편집]

  • 중증 천식환자라서 항상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지참하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헤비스모커 골초다. 더군다나 이놈 직업은 또 의사다. 이보시오 의사양반...
  • 풀핸시오 바티스타가 독재자라서 몰아낸 녀석이 정작 피델 카스트로라는 독재자를 옹립했다.
  • 공산주의자라면서 그의 사진이 박힌 티셔츠가 아주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게다가 할리우드에서 이 사람 영화를 3번이나 촬영했다. 그 이후에도 어마어마하게 상품화가 대박났다. 이건 그가 사망한 이후 벌어진 일이라지만 결과부터 보자면 공산주의자인데 재벌이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도 2011년 그의 후손들이 상품권을 등록하는 바람에 이후 체 게바라 면상이 박힌 티셔츠는 하나 팔릴 때마다 몇십원씩 체게바라 가문으로 귀속된다. 만약 그가 볼리비아에서 죽지 않고 그냥 포로로 잡힌 뒤 탈출하고 이후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돈방석에 앉았을 것이다.

기타사항[편집]

  • 마누라가 두명이었다. 물론 일부다처가 아닌 두번 결혼. 개부럽
  • 요즘 남미에선 그를 성자로 추종하는 양반들도 있다는 모양. 특히 아르헨티나가 쿠바보다 훨씬 심한데 자기나라 출신이라서 그렇다. 하긴 남미 현실을 보면...
  • 인민재판으로 꽤나 많은 사람들을 수용소에서 죽였다. 게바라 개인의 흑역사이면서 동시에 현실 사회주의의 어두운 면.
쿠바 돈을 잘 보면 3페소 지폐에 얘 얼굴이 달려있다.

  1. 국적포기가 불가능한 나라임.
  2. 이 과정을 다룬 영화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 마오쩌둥도 게릴라와 민중의 관계를 비유한게 '수어지교'다. 민중은 물, 게릴라는 물고기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