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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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미래가 창창한 최고의 갓-감독입니다. 이 문서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거스 히딩크,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혹은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스칼로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한마디로 존나 개씹사기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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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2004년 하류인생이후론 흥행참패에 개봉도 못하고 창고에 처박히는등 퇴물감독의 모습을 보여줬고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개막식으로 제대로 결정타를 맞고 나이도 들었는지 2015년 화장을 끝으로 감독일을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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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예전에 영화를 찍는도중 미성년자배우 에게 사전에 말을 하지않고 상의탈의를 하라고 협박을 하고 찍어서 아직도 욕먹고있다
임권택(林權澤) | |
본관 | 나주 임씨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 | 1936년 5월 2일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
종교 | 천주교 |
학력 | 광주 장성중학교 졸업, 광주숭일고등학교 중퇴 |
강제규(62년생), 봉준호(69년생), 박찬욱(63년생), 강우석(60년생)등 386 세대감독들이 한국영화계의 르네상스를 이룩하는데 밑거름을 마련한 한국의 전설적인 갓-독이다.
1953년 소품보조일을 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기 시작했고 1962년 독립군과 좆본군이 스키를 타면서 총격전을 벌이는 기괴한 만주 웨스턴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고 10년동안 50여편의 영화를 찍었다. 이걸 혼자 다하신건 아니고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를 만들어주면 임권택옹이 적당히 수정해서 촬영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본인은 이 영화를 만든 것을 지금도 흑역사로 여기지만 엄청난 독서량으로 단련된 각본가로서의 기본기로 버티는데 성공했다고 한다...지만 영화사가 발로쓴 시나리오 적당히 고쳐서 만들었기 때문에 퀄은 쒵이었다고 한다...[1] 시발 갓독 크라스.. 그리고 이때부터 남의 영화를 카피하지 않고 한국의 고유한 정서를 표현하는 갓독이 되기로 결심하고 짱구를 열심히 굴리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70년대에는 증언(1973), 울지 않으리(1974),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원작자가 미완으로 방치한 것을 뒷목잡고 캐리해 완결낸 깃발없는 기수(1979)등 수많은 반공영화를 만들었는데, 이중 증언과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6.29선언이전까지 나온 반공영화중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레전드로 평가받고 일본 전쟁영화 덕후들에게 숨겨진 명작으로 재발굴되었다.
80년대에는 반공영화뿐 아니라 이념의 허무성을 표현한 짝코(1980)를 만들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인생작으로 꼽히는 만다라(1981), 씨받이(1986),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 그리고 한국 블록버스터영화의 효시가 되었던 장군의 아들(1990)과 같은 엄청난 대작들을 만들어냈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서 모티프를 따온 길소뜸(1985), 흥행에서 좆망한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1984), 비구니들에게 욕을 드립따쳐먹고 필름원본이 소실되 미완성작이 됬던 비구니(1984)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90년대에도 대작인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노는 계집 창(1997), 그리고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춘향뎐(2000)을 만들었다.
거장이긴 한데 길소뜸, 춘향뎐에서 각각 당시 15살, 17살이었던 여배우에게 베드씬을 찍으라고 한 변태라는게 심각한 결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02년 아햏햏이 나오는 취화선을 통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근데 흥행이 똥망한건 함정. 그리고 하류인생(2004)으로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후 작품들이 흥행에서 망하고 결정적으로 본인이 연출했지만 이름값을 못할정도로 퀄이 저질이었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개막식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2015년 안성기, 청산가리 킴주연의 화장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