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신도 다쓰야

조무위키

이 틀의 대상은 골든글러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관총 타선
1番
2番
3番
4番
5番
이시이 다쿠로
하루 도시오
스즈키 다카노리
로버트 로즈
고마다 노리히로
6番 (우투수)
7番
8番
6番 (좌투수)
or 代打
사에키 다카히로
다니시게 모토노부
신도 다쓰야
나카네 히토시
신도 다쓰야
進藤 達哉

Tatsuya Shindo

기본 정보
생년 월일 1970년 1월 14일
출생지 도야마 현 다카오카 시
국적 일본 일본
학력 다카오카 상업고교
신장 174cm
체중 75kg
선수 정보
입단 1987년 번외지명
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내야수
경력 요코하마 베이스타스(1988~2000)

오릭스 블루웨이브(2001~2003)

소개[편집]

일본의 전 야구선수이자 야구코치

선수 시절[편집]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1군 멤버로 자리잡는데 성공하였고 팀에서도 차기 주전 유격수로 키우려던 선수였다. 하지만 오야 아키히코 감독의 내야 수비 위치 변경안에 의해서 강제로 포지션을 2루수로 옮기게 되었고[1] 수비위치 부적응과 잔부상 등을 이유로 3루수로 또다시 포지션을 옮기게 되었다.

화려하면서도 안정적인 수비로 유격, 3루 모두 잘 소화해 냈으며 도루를 많이 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발도 빨랐다. 왜소한 체격에 비해 펀치력이 있어 6번이나 시즌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고 머신건 타선 주전멤버 중 유일하게 시즌 세자릿수 안타 기록이 없을 정도로(최고기록은 1999년의 95개) 타율은 낮았지만 영양가있는 타격을 할 줄 아는 의외로 쓸만한 타자였다. 97~99시즌 3년 연속으로 3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98년 우승 때도 8번타자로써 분전하였다.

또한 중요한 장면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맹활약을 여러차례 펼쳤는데 93년 베이스타스로써의 첫 승리[2] 때의 끝내기 만루 홈런, 98년 리그 우승이 결정된 10월 8일 코시엔 vs한신 원정경기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역전 적시타, 2000년 개막전 끝내기 안타 등 중요한 장면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2000년 시즌 이후 오릭스로 트레이드 되었는데 이때 후쿠모토에게 허락을 맡고 오릭스 팀내에선 사실상 영구결번이었던[3] 등번호 7번을 달았다. 하지만 이적 후엔 전성기에 못미치는 활약을 보이며 오릭스의 침체를 막지 못했다. 이전 문서엔 오릭스의 막장 물빠따 타선을 생각해 본다면 팀에서 그나마 사람다운 플레이를 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적혔는데 물빠따는 2002년 한정이었고 나머지 해는 리그 상위권이었다. 투수진이랑 득점력이 싸그리 망해서 문제지. 그리고 이시기 파리그가 타고투저 시절이어서 아무리 봐도 못한게 맞다.

결국 2003년 시즌을 끝으로 만 33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머신건 타선 주전 멤버들 중 나카네와 함께 가장 먼저 은퇴했다.

은퇴후엔 코치, 스카우터, 구단 프런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타[편집]

요코하마시절 응원가 [https://www.youtube.com/watch?v=

  1. redirect 틀:Trim Video] on YouTube
スイング軽く バットも軽く
스윙은 가볍게 배트도 가볍게
ひと振りすればもう スタンド入りだ 단번에 휘둘러 스탠드에 이를테니까

각주

  1. 대신 유격수를 맡게 된 전 3루수 이시이 다쿠로는 그 이후로 골든글러브급 유격수로 성장했다.
  2. 이해 베이스타스는 훼일스 때부터의 만년약체답게 시즌 개막 이후 5연패를 달렸고 결국 시즌을 5위로 마쳤다. 이름 바꿔도 노답
  3. 원래 한큐 브레이브스 시절인 1984년 후쿠모토가 1천도루를 달성한 기념으로 영구결번으로 제정하려다 본인이 아직 현역이라는 점 등으로 고사하여 취소되었는데 은퇴시즌인 1988년에 한큐 구단이 오릭스에 팔리는 바람에 영구결번이 나가리가 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