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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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金宗元) | |
이명 | 金山宗元 (창씨개명) |
출생 | 1922년 경상북도 경산군 |
사망 | 1964년 1월 30일 경상북도 경산군 |
국적 | 일본제국 → 대한민국 |
경력 | 좆본군 관동군 하사관, 국방경비대 제 1연대 A중대 소대장(해방직후) 제5연대 1대대 대대장(여순사건), 계엄군 사령관(1949.5~) 내무부 치안국장(1956.5.15 ~ 1960.5) |
설명[편집]
“ |
학살에는 귀신, 전투에는 등신 |
” |
— 부하와 동기들의 평
|
“ |
부하에게 가혹하였고 전투에 비겁했던, 전술적 두뇌가 없었고 부하 장병들로부터 원성이 높았다. |
” |
— 미국 군사고문의 보고
|
한국의 기무라 헤이타로
신성모를 훨씬 능가하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악의 군인이다. 아니 솔까 신성모에 빗대는 것도 신성모에 대한 고인드립이다. 하다못해 신성모와 최덕신은 독립운동가 출신이기라도 하지 이새끼는 좆본군 출신이다.
좆본군 입대 이전의 생애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일본군에 자원 입대하여 좆본육군 하사관으로 들어갔다. 이 새끼는 1940년대 필리핀, 뉴기니전선에서 군복무를 했다. 이 전선은 갓조국 군머와 호주군이 으쌰으쌰해서 피터지게 좆본군을 탈탈 털어버린 곳으로, 이곳의 좆본군은 원숭이 고기와 인육을 먹으면서까지 동원하면서 싸웠다. 근데 이 새끼는 이 전선에서 악마가 되어 살아남았고 뒤질 때까지 인육 먹고 버틴 것을 자랑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해방직후 대한민국 국군에 들어왔는데 만주군과 친일파출신이 드글드글했던 당시 국군에서도 "이건 사람 새끼도 아니다."라는 악평을 듣고 짤렸다가 복직하기를 밥 먹듯이 할 정도로 악행이 자자했다. 이건 여순사건 때 가담자로 지목된 시민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당히 일본도로 참수해버리고 힘 빠지면 권총으로 죽여버렸다. 근데 이걸 또 미군에게 자랑을 했다. 당연히 이 자랑을 들은 미군은 '악마 새끼인가?'라고 생각하면서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미고문관을 두들겨 팬 죄로 군머에 짤려 경찰로 찌그러지게 되었다.
1949년 5월, 북괴의 숨은 남파간첩 신성모의 추천을 받아 계엄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6.25 전쟁 초창기에는 3사단 23연대 연대장(중령)으로 있었는데 북괴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이 23연대가 동해안으로 배치되면서 이 새끼의 군사적 재능이 얼마나 엠창인지 드러난다.
동해안으로 내려온 북괴군은 중공군 164사단이 북괴로 위장한 정예 5사단, 그리고 예비사단인 12사단으로 1개연대가 2개 사단을 막는 것 자체가 중과부적인 건 인정한다. 이 새끼는 어떻게든 북괴군의 공격을 몸빵으로 막아내면서 영덕 - 봉화까지 후퇴했고 7월 19일부터 미친 듯한 고지전을 치르게 된다. 근데 7월 25일 이준식 3사단장(준장)이 봉화 181고지를 탈환하라고 해서 탈환했는데...
문제의 23연대가 181고지를 털렸다는 이유로 소대장과 사병 1명을 즉결처분했던 것. 심지어 이 새끼가 7월 25일 밤에 미군 전초기지에서 총질하고 자기 부하들에게 반자이 어택을 강요하고 이를 반대, 우회 공격을 제안한 작전장교(중위)를 보고는 ㅂㄷㅂㄷ거리면서 헌병들한테 "저 새끼 죽여 빼애액!"거렸으며 작전장교가 헌병 앞에서 총을 꺼내들고 총싸움 직전까지 가게 만들었다. 심지어 미군 군사고문이 보는앞에서 부하를 멋대로 죽이고 개머리판으로 부하를 두들겨 팬 적도 있었다. 결국 씨발년아를 외친 미군은 23연대에서 해임하고 계엄사령관으로 때려박는다. 거창양민학살사건과 4딸라 협상도 이 씨발롬이 계엄사령관으로 있었을 때 일어난 일이다.
거창군의 주민들을 몽땅 빨갱이로 낙인 찍어 양민학살을 자행했고 자기 부하를 빨치산으로 변장, 진상규명을 하려던 거창군 국회의원과 기자들, 국회조사단원들을 공격하여 방해했다. 참고로 전설의 4딸라도 이 새끼가 계엄군사령관으로서 부산에 있었을 때 생긴 에피소드다.
이 사건으로 1951년 9월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지만 우리 저승만이 바로 특사로 풀어주고 1956년 부정선거에도 관여하여 11대 내무부 치안국장으로 임명되었다. 4.19 혁명 이후 임흥순, 이익흥 등과 함께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의 가담자로 찍혀서 서대문형무소에서 참교육을 받았지만 1961년 12월 당뇨병으로 골골대다가 1964년 1월 30일에 지옥에 떨어지려 했으나 지옥에서도 쫓겨나버려서 마계로 끌려갔다.
야인시대에서[편집]
야인시대! 그렇다. 그것은 그가 몸 바쳐 살아온 이 나라 격동기의 또 다른 역사의 한 장이었다! 이 문서에서는 국민적인 필수요소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드라마인 야인시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서를 보다가 김두한 일당에게 단죄를 당해도 디시위키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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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에선 4딸라 장면의 주인공들 중 하나로 임금문제 때문에 김두한과 협상을 한다.
그외에도 조병옥이랑 이승만 따까리로 등장하지만 별 비중은 없다.
4딸라 협상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미군과 함께 김두한과의 협상에 임했으나 김두한의 협상방식에 일방적으로 털리게 된다.
원래 김세민이 배역을 맡았지만 4딸라 협상때는 오동영이 스턴트맨으로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