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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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적의 배후에서 통신ㆍ교통 시설을 파괴하거나 무기나 물자를 탈취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비정규군을 의미한다.(표준국어대사전)
영어로는 '파르티잔(partisan)'인데, 한국어로는 빨치산이라고 한다. 어원은 프랑스어의 '파르티(parti)'로, 당원 · 동지 · 당파 등을 뜻한다. 이후 영국 등을 거치며 꽤 많은 의미 변화를 거치다가 스페인 내전 당시 현대의 의미로 고착됐다.
파르티잔을 러시아어로 Партизан이라 쓰는데 읽으면 빨치산 비슷하게 들린다고 한다. 구글 번역기로 확인 결과 대충 빠르치잔으로 들린다.
일반적으로 좌익계열만 이른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파르티잔이라는 영어식 발음 파르티잔이 아닌 빨치산으로 옮기면서 음절 하나하나가 공산 게릴라를 의미할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높은 것도 있고, 국제적으로 보면 빨치산 중 좌익계열이 많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빨치산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켈로부대 등이 활동했다.
외국[편집]
특히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유럽 각지에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나치 놈들과 싸웠다. 대개 공산주의, 사회주의 계열 좌익이었다.
러시아 혁명[편집]
러시아 혁명 당시 파르티잔이 소비에트 러시아의 내전 수행에 큰 도움을 준다. 후술할 내용이지만 이후 소련이 결성되고 소련에서도 파르티잔들이 활동하는데, 어떻게 여러 번 도움 받은 셈이다.
스페인 내전[편집]
조금만 들여다봐도 우파라고 다 같은 우파가 아니고 좌파라고 다 같은 좌파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이념이란 이념은 싹 모여다가 믹서기 갈아넣어도 모자른 스페인 내전 당시에도 파르티잔은 활동했다. 하지만 그다지 전문적으로 운용하진 않았다고 한다.
대표 예시 1: 프랑스의 레지스탕스[편집]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는 아예 레지스탕스 자체가 파르티잔의 상징이 된 만큼 말이 필요 없다.
대표 예시 2: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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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토가 이끄는 파르티잔은 파르티잔의 대표라고 봐도 무방할 수준인데, 1944년 기준 숫자만 80만에 독립 전차부대가 운용됐다.
이게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길 수준이 아니다. 현재까지 인구가 꾸준히 늘고 국토 절반에 있는 5천만을 지키기 위해 휴전 상태에 있는 대한민국 전력이 50만 명이다. 즉 '웬만한 지역강국 수준이라는 거다.
참고로 이 티토라는 양반은 이후 다민족 국가인 유고슬라비아를 통치한 것으로 유명한데 노동자 자주경영 등 좌익으로서도 모범적이면서 소련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성을 이뤄냈다(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당시 동유럽은 별별 발악을 다 해도 소련이 탱크로 독일을 위시한 추축국 민답시고 그 지역에 기존 민주, 왕정 정부를 인정 안 하고 싹 자기 괴뢰국으로 만들어놨는데 유고는 80만 덕에 이걸 피했다) 심지어 통치 스타일도 스탈린마냥 공포정치를 한 것도 아니기에 그저 개쩐다고밖에 할 수 없다...
기타[편집]
빨치산에 대할때 해선 안되는 일은 미라이 학살의 예다. 한때는 한국군이 빨치산을 무자비하게 처벌했지만 오히려 빨치산에 가입하는 역효과를 낳았고 그게 안되니까 항복을 유도한뒤 "야 좋은자리 남겨놨으니까 전향서 써라. 알겠지?" 라고 한뒤 목숨도 연명한것도 모자라 한국에 전향한 빨치산이 "감사합니다. 빨치산 애들있는곳을 알려드리죠."라고 했으니 얼마나 전향한 빨치산이 감지덕지 하겠어? 그래서 적의적은 나의 동지가 더더욱 열렬히 빨치산 본거지를 알려줬으니 한국군이 너무 좋아서 빨치산 애들을 다 때려잡을수 있었다고. 반면 미군은 때려부수기만하면 장땡! 하기는 개뿔. 베트콩이 메롱 약오르지 까꿍하고 튀었으니 동료잃은 미군이 얼마나 빡쳤겠어. 항복하라고 전향유도를 해야하는데 미군은 그런거 없이 영아,노인,여성,가축들까지 다 죽여버렸었다고. 성희롱도 포함. 그래서 베트민은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싶어서 더더욱 베트콩에 가입하게 된거고. 물론 개념있는 미군에 의해 아이는 4명이나 살렸지만.
국내[편집]
국내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48년 여순사건, 1950년 6.25 전쟁을 거쳐 1955년까지 활동했던 공산주의 비정규군이 유명해 보통 빨치산 하면 북괴 조선로동당과 연결 짓는다.
본래 여순반란사건이 터지고 대부분의 좌익 반란군들은 미군정과 박사님에게 작살나지만 일부가 살아남아 산으로 숨어들었다. 그나마 얘네는 군인경력과 실전경험이라도 있었다.[1] 물론 장교들은 다 때려잡혀 기것해봐야 초급장교가 최선임이라 한계는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런승만 정부의 강력한 토벌의지에 군경토벌대의 대규모 토벌작전에 쫓겨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완전섬멸당할 뻔하지만 운좋게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살아남았고 경상도 일대를 제외한 북괴군에게 점령당하자 산에서 내려와 각자 완장을 하나씩 차게되지만 무기는 내무서(북괴의 경찰서) 무기고에 반납하고있었다.
근데 엥? 남반부가 맥아더성님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연합군에게 해방되고 허리가 잘려버린 남부지방 빨갱이쉐리~~들은 또 엿되게 되었다. 이에 북괴군은 내무서와 함께 철수할때 무기고의 무기들을 모두 싸들고 북으로 튀었고 빨치산은 그대로 새가 되었다. 그리고 북괴측은 당시 북괴군이랑 같이 내려왔던 대한민국 남반부 점령지 행정공무원들(쏘오련말인 인텔리겐차라고 부른다.북괴 로동당 당원들이기도 했다)에게 다시 내려올 때까지 산에서 버티라고 명령한 후 북으로 튀었고 그들은 고대로 산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골때리는 것이 이들 행정공뭔들을 당원이랍시고 정치장교 이런게 아니라 ㄹㅇ 빨치산 지휘부로 삼아버렸다.
이로서 그나마 경험있던 남반부 토종 빨치산들은 새가 되었다. 당원 아니라고 차별까지 당했다고.
그나마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머릿수도 좀 되었고 부족한 무기문제는 빨치산보다 한국전 초기 군경이 더했기 때문에 빨갱이들이 나타나면 어맛! 오또케오또케~거리면서 우왕자왕 하다가 무기째로 갖다버리고 걸음아 날살려라면서 튀어서 별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1.4 후퇴로 유엔군이 정신없을 때에는 오히려 대담하게 충북도청 소재지인 청주까지 내려와 경찰서랑 교도소를 털어버리는 사건도 있었고.
하지만 전쟁 중반부터 고지전 양상으로 바뀌면서 전선이 안정화되고 때문에 후방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정부는 후방에서 깔짝대는 빨치산 새끼들을 본격적으로 조질 준비를 한다. 그리하여 만주에서 빨갱이 마적단 때려잡던 백선엽을 사령관으로 1951년 겨울 최전선에서 2개 사단을 차출하고 4개 경찰연대를 동원해 군경합동 대토벌작전에 착수한다. 그리하여 군경토벌대는 그리스에서 한 빨치산 때려잡던 미8군 사령관 제임스 밴플리트의 빵빵한 지원을 얻어 신나게 빨치산을 조졌다.
아 물론 빨치산놈들도 민심 얻을려고 했다가 그게 뭔가요 먹는건가요?라는 반응 보인 놈들한테 죽이고 다녔으니 빨치산에 갈리가 있냐 절대 없지
게다가 하필이면 이 시기에 또 장티푸스가 도는 바람에 또 엄청나게 죽는다. 이때 빨치산이나 민간인들은 미군이 생화학무기를 뿌렸다고 주장하는 병신들이 존재하는데 정작 걔들과 매일 부대낀 토벌대나 민간인들은 전염병에 안걸린거 보면 유엔군의 생화학무기 투하설은 걍 쉰 떡밥이다. 대부분의 빨치산들은 걍 환경이 더러워서 병걸리고 뒤진 거다.
이들은 대부분 남로당계 소속이었는데 대한민국 군경한테 조짐을 당하는 와중에도 자신들은 북괴군 소속으로 헤이그 조약에 의거 전시교전권자(즉 군인)임을 인정받아 포로로서 유엔과 적십자사를 통해 이북으로 송환될 것이며 당원증도 받고 영웅으로 잘 먹고 잘살 것이라고 김치국을 퍼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혹부리우스가 전쟁 책임회피를 위해 박헌영, 리승엽 등 미리 월북했던 남로당파 빨갱이들을 싸그리 다 숙청하면서 벌써부터 이들을 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한 대한민국과 유엔군측도 제발 애네들 포로교환할 때 데리고 가라고 사정중이었다. 이런 어중이 떠중이 때문에 민간인 피해 늘어나는것도 싫고 군경병력 동원해서 예산까먹고 인력 소모하는거 싫으니 제발 데리고 가라고 했지만... 북괴 혹부리가 모른 척 했다고한다. 위에 써있듯 빨치산파인 김일성이 남로당파인 남반부 빨치산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겨우 숙청으로 혹때놨는데 도로 혹을 붙이는 꼴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북괴에서 갖다준다해도 안 받겠다고 해서 남북 모두한테 팽당한 이들은 휴전 직후 벌어진 2차 대토벌작전 때 개박살나고 1953년 9월 빨치산 두목이었던 이현상이 뒤지고 1955년에 지리산 입산금지령이 해제되었다. 이쯤 되면 아직 안 잡힌 몇 명 빼고는 다 없어진거나 마찬가지라 대규모 토벌작전은 이걸로 끝나고 나머지 안 잡힌 놈들은 망실공비라 해서 경찰이 추적을 이어가다가 1963년에 마지막 망실공비가 검거되면서 드디어 멸종한다.
양민학살죄가 없으면 경찰에 훈방조치되어 집으로 갔지만 이후 반공정권에게 탄압과 감시를 받게된다. 단 적극적으로 적의 동향을 알려준 빨치산은 반공정권이 유지되도 탄압과 감시를 안받고 높은 요직에 앉게된다. 반면 양민학살의 죄가 있는 인원들은 사형내지는 징역형을 언도받고 전향서를 쓰고 나와서 역시 탄압받던가 아님 비전향 장기수로 끝까지 버티다 북으로 돌아간다.
좌빨들의 미화[편집]
버림받은 이후로는 간첩들과 사이좋게 깜방에서 썩었는데, 끝까지 전향을 안한 새끼들이 바로 옛날에 (노짱 때) 이슈가 됐던 비전향 장기수이다. 물론 얘들이 인권 탄압당했던 게 사실이긴 한데 그렇다고 민주화니 양심수니 하는 소리에 선동당하지는 말자.
아니 이 십새끼들이 다카기 독재 정권에 대항했다고 사상의 자유를 지킨 업적이 있다는 게 말이 되냐? 이건 다카기 독재 정권에만 대항하면 이씨 조선 복벽 운동이든 이슬람 근본주의든 친일파든 네오나치든 또 다른 군벌이든 다 민주화 투사라는 거랑 동급의 개소리다.
이 개새끼들 논리면 히틀러도 깜방에서 지 좆같은 신념 지켰으니 민주 투사일거다. 전두환도 벌금 내가면서 광주는 폭동이라는 신념 유지하니까 민주투사일 거고. 근데 비전향 장기수 옹호하는 새끼들은 전두환 옹호 절대 못한다 병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