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3세
조무위키
제19왕조→ 이집트 제20왕조 파라오 목록 →제21왕조 |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세트나크테 (기원전 1189년~기원전 1186년) |
람세스 3세 (기원전 1186년~기원전 1155년) |
람세스 4세 (기원전 1155년~기원전 1149년) |
람세스 5세 (기원전 1149년~기원전 1145년) |
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람세스 6세 (기원전 1145년~기원전 1137년) |
람세스 7세 (기원전 1137년~기원전 1130년) |
람세스 8세 (기원전 1130년~기원전 1129년) |
람세스 9세 (기원전 1129년~기원전 1111년) |
제9대 | 제10대 | ||
람세스 10세 (기원전 1111년~기원전 1107년) |
람세스 11세 (기원전 1107년~기원전 1077년) |
이집트 제20왕조의 파라오 | ||||
---|---|---|---|---|
세트나크테 | → | 람세스 3세 | → | 람세스 4세 |
재위기간 | |||||||||
---|---|---|---|---|---|---|---|---|---|
기원전 1186년 ~ 기원전 1155년 |
이 문서는 성군(聖君)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세금 헌터 머똥령들이 본받아야 할 개념 군주에 대해 다룹니다. 우리 똥수저 백성들의 편이니 모두 폐하에게 경배합시다. |
주의! 이 문서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문서입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공존합니다.
그 2가지 측면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이 문서는 마지막 희망입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나머지 모든 것들이 망해버려서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에 대해 다룹니다. 이것마저 실패한다면... 더 이상 남은 희망도 가망도 없읍니다... |
개요[편집]
이집트 제20왕조의 제2대 파라오.
'최후의 위대한 파라오'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이 람세스 3세를 끝으로 이집트는 이집트 문명으로서의 전성기를 두 번 다시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20왕조의 전성기인 람세스 3세 치세가 끝난 후 이집트는 계속 쇠락하게 되고, 이집트 제3중간기와 이집트 말기 왕조 때부터는 아예 이민족의 지배가 많아지면서 고대 이집트인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집트 역사의 전성기가 다시 오기는 왔지만, 그 때는 이미 이집트 문명이 멸망한 후였고 파티마 왕조나 아이유브 왕조 같은 이슬람 제국으로 변모해 있었다.
파라오가 되기 전[편집]
람세스 2세가 죽기 4년 전, 즉 메르넵타가 대신 통치하던 기원전 1217년에 대귀족 세트나크테의 아들로 태어났다. 4살 때 람세스 2세가 죽었고 14살 때 메르넵타도 죽었다. 10대에서 20대 시절에는 이집트에서 왕위를 두고 큰 다툼이 일어났다. 아멘메세스가 세티 2세에게 반란을 일으킨다든지, 십타가 일찍 죽어 양어머니 투스레트가 대신 즉위한다든지...
28살이 되던 기원전 1189년, 아버지인 세트나크테가 투스레트를 축출하고 새 왕조 제20왕조를 개창했다. 이렇게 그는 갑자기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되었다. 아버지는 3년 동안 아들을 위해서 왕권을 강화하고 통치의 기반을 다져놓았고, 그렇게 안정화된 이집트는 기원전 1186년 세트나크테가 죽으면서 람세스 3세에게 물려졌다.
치세[편집]
람세스 3세가 파라오로 일하던 기원전 12세기 초중반, 지중해 일대에서는 국제정치의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기후 변화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인해 북쪽에 살던 많은 바다 민족들이 떼거지로 지중해 일대를 박살내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미케네 문명과 히타이트 제국이 바다 민족의 개지랄을 쳐맞고 반병신이 되어 있었다.
기원전 1178년 마침내 히타이트 제국이 바다 민족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다. 그리고 이집트 북부 해안에서도 깔랑거리기 시작했다. 같은 해 람세스 3세는 바다 민족과의 전쟁을 벌였다. 근접전에서 매우 강력했던 이집트는 해전 때 갈고리를 던져 바다민족의 배를 이집트 해군 배와 연결시킨 다음 바다민족 배에 올라서 바다민족을 모조리 쳐죽이거나 노예로 만들었다.
이렇게 이집트는 기원전 1170년대와 기원전 1160년대에 잠시 안정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경제 침체가 뒤따라 일어났는데, 바다 민족, 리비아, 누비아와의 전쟁으로 국고가 비어버리자 월급이 부족해진 것이다. 기원전 1157년, 계속된 경제 침체와 월급 체납으로 인해 빡친 노동자들이 역사 기록 최초의 파업을 벌였다.
아이슬란드에서 헤클라 화산이 폭발했다. 이때 화산재가 유럽과 지중해 일대를 덮어버리면서 식물 성장을 방해했다. 농업 강국인 이집트도 이 타격을 직빵으로 받아서 좆되어버렸다.
이렇게 조금씩 민심이 박살나던 시기, 기원전 1150년대 중반 람세스 3세의 부인 중 한 명인 티예와 그 아들 펜타웨레트가 람세스 3세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벌였다. 람세스 4세를 왕위 계승자로 지명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람세스 3세는 즉시 죽지는 않았으나 치명상을 입었고, 암살범들은 전부 체포당했다.
얼마 뒤 치명상으로 인해 기원전 1155년 람세스 3세는 사망했다. 다음 파라오로 지명되어 있던 람세스 4세가 즉위해 암살범들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