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넵타
조무위키
제18왕조→ 이집트 제19왕조 파라오 목록 →제20왕조 |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람세스 1세 (기원전 1292년~기원전 1290년) |
세티 1세 (기원전 1290년~기원전 1279년) |
람세스 2세 (기원전 1279년~기원전 1213년) |
메르넵타 (기원전 1213년~기원전 1203년) |
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아멘메세스 (기원전 1201년~기원전 1198년) |
세티 2세 (기원전 1203년~기원전 1197년) |
십타 (기원전 1197년~기원전 1191년) |
투스레트 (기원전 1191년~기원전 1189년) |
이집트 제19왕조의 파라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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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 | → | 메르넵타 | → | 세티 2세(공식) 아멘메세스(반란자)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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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13년 ~ 기원전 120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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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이집트 제19왕조의 제4대 파라오.
파라오가 되기 전[편집]
세티 1세가 이집트를 다스리던 기원전 1283년에 람세스 2세의 13번째 왕자로 태어났다. 기원전 1279년 람세스 2세가 파라오 자리에 오른 뒤 왕위계승서열 13등이었던 메르넵타는 어차피 왕 못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람세스 2세가 90살까지 살면서 자기 형들이 아빠보다 먼저 뒤져버렸다. 기원전 1239년 이집트의 군 사령관이 되었으며 기원전 1225년부터 이미 메르넵타는 아빠를 대신해 통치하고 있었고, 기원전 1213년 마침내 람세스 2세가 뒤졌을 때, 12명의 형은 전부 죽은 지 오래였고 왕위계승서열 1등이 된 메르넵타가 파라오 자리에 올랐다.
치세[편집]
근데 파라오에 올랐을 때 이미 70살이었다. 기원전 13세기가 끝나가던 시점, 지중해에서는 바다 민족이라는 씹새끼들이 미케네 문명, 히타이트 등을 박살내고 다니면서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그들은 메르넵타가 다스리는 이집트도 쳐들어왔지만, 그 강하다던 바다 민족이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이집트 앞에서는 힘도 쓰지 못하고 박살났다.
메르넵타가 이끈 이집트군은 6천명 정도 쳐죽이고 9천명을 포로로 잡았다. 그리고 레오폴드 2세마냥 포로들을 '손목' 하면서 개선식을 열었다.
또한 메르넵타 석비를 보면 이집트 역사 최초로 이스라엘 민족이 언급된다. 대충 메르넵타가 가나안을 토벌하면서 이스라엘이 박살났다는 내용. 성경의 내용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은 판관 시대였을 것이다.
기원전 1203년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메르넵타도 아빠인 람세스 2세 못지않게 장수했다. 다음에는 메르넵타의 아들 세티 2세가 즉위했다.
메르넵타의 미라를 안치하는데 쓴 석관 중 하나는 후대의 파라오인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에서 나왔는데 쇠퇴해가는 국력으로 인해 새로 관을 만들 여력이 없자 몰래 꺼내서 재활용한 것이다. 혼란기 시절이 되면 선대 파라오의 무덤에서 부장품을 털어서 자기 것으로 재활용하거나 재정에 보태어 쓰는 경우도 많았고 아예 남의 무덤을 자기 무덤으로 쓰는 투장 사례도 종종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