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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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 설명되는 인물의 연기는 너무 뛰어나서 마치 실제 상황인 것처럼 몰입이 됩니다.
이들의 연기를 보고 암이 나았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명연기를 선사하는 배우들입니다.
당장이라도 눈물로 강을 범람시킬 듯하고 분노로 이 세상을 다 태워버릴 것만 같은 그들의 연기에 힘입어 이들이 나오는 영화/드라마는 믿고 보는 영화/드라마라고 불리웁니다.
이연희, 장수원, 구혜선, 권상우 등의 명배우들에게만 붙일 수 있는 틀입니다!!
강호아재나 윤식당 주인님의 아성을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주니 이 명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드라마는 꼭 보시기 바랍니다!!

1911년 11월 24일 ~ 1969년 8월 8일

한국 근현대무용 그자체나 다름없던 전설적인 한국의 무용가. 무용의 경우 한국 현대무용의 시작을 최승희로 둘 만큼 거의 신에 가까운 대우를 받지만 개인으로서는 친일문제, 월북문제, 본인의 밥말아먹은 인성등으로 인해 이런저런 논란이 굉장히 많다.

체격이 그 당시 여자로서는 엄청 컸는데 그 당시 여자 평균 신장이 152cm, 남자 평균 신장이 165cm 하던 시절에 최승희는 170cm였다. 그러니까 진짜로 남자보다 큰 여자였다.

초기[편집]

강원도 홍천군출신이라는 말이 많지만 카더라 통신빨 정보라서 진짜 고향은 아무도 모른다.

숙명여고[1]를 다닌뒤 슨상이 되기 위해 경성사범학교 입학시험서 7등에 등극했지만 나이제한으로 떨어졌다.[2]

이후 방송인으로 일하던 오빠의 권유로 일본 현대무용의 선구자인 이시이 바쿠의 무용단에서 무용가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머튽이던 이시이 바쿠의 건강문제등으로 바쿠의 무용단이 망테크를 타자 혼자 한국으로 런해서 최승희 무용 연구소를 차리고 무용을 시작했다. 물론 당시 조선에서 최승희에 대한 부정적인 카더라 통신이 쫙 퍼져있었고 무용자체가 당시 조선에선 외계인취급이었던지라 폭망. 이후 이시이 바쿠밑에서 재수학을 한 뒤 1932년 제대로 성공한 무용가가 되기 시작했다.

리즈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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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는 불상적인 아름다움에 완전히 끌려 들어갔다. 최승희 최후의 리사이틀이 제국 극장에 있었을 때에 최승희의 브로마이드를 사가지고 와서 보니까 반나체 불상춤 사진이 있었다. 몸에 보석이 장식된 반나체 사진을 보고 어쩐지 에로틱하게 생각되었다. 그때에는 스트립쇼와 같은 것이 없었으므로 최승희의 이러한 반나체춤은 전쟁 중에 허가된 최후의 반 스트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승희의 반나체 불상춤은 지금의 전 나체의 스트리퍼보다 훨씬 더 에로틱한 자태를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이러한 최승희의 몸에서 무엇인가 환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그 불상춤의 환상은 그 얼굴이 불상과 비슷해서 어디엔가 불상적인 것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더 요염한 맛을 낸 것이 아닌가 본다.

 

일본 제국태평양전쟁터뜨리기 전까지는 최승희의 리즈시절로 뽑힌다. 후원자로 여운형, 설국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같은 거물을 두고 있었고, 한중일 예술인들은 물론 순회공연을 돌면서 갓조국찰리 채플린,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페인파블로 피카소등 거물급 예술인들이 최승희의 공연을 보고 광광울면서 국뽕을 빨 정도인데다 쪽숭이들이 갓조국 선빵만 안때렸으면 할리우드까지 갈 수 있었던 갓-무용가가 되었다.

그녀의 성장스토리를 배경으로 일본에서 <반도의 무희>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해서 그녀가 주인공역할을 맡기도 했지만 "그러나 나는 그녀가 영화배우로서는 마땅치 않음을 어서 빨리 깨닫고 무용가로서만 지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라고 오빠의 친구인 안석주가 극딜할정도로 연기력이 씨발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명세때문에 본전은 쳤다고 한다.

망테크 -친일과 월북[편집]

주의! 이 문서의 대상은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이 문서는 엄청난 기대를 받았지만 결과는 존나 망해서 실망스러운 것(들)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대상을 존나 기대했던 사람들은 호구들이었던 것입니다 광광 ㅠㅠ... 만약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든 결과는 참담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Why did you say that name!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시절 좆본머튽님들 돈따라 좆본군들 앞에서 여러차례 위문공연을 하면서 좆본제국을 찬양하고 헌금도 여러차례 헌납하는 친일짓을 저지르게 된다. 덕분에 이전까지 뛰어난 무용가로서의 위상에는 금이갔고 비난여론도 존나 거세졌다. 그으으으나마 남편인 안막이 좌익활동을 하면서 좆본제국에 항거했다만 빨갱이라서....

물론 본인도 이 친일행위에 대해 반성(?)이라도 한건지 1946년 중국에 고립되었다 귀국한 뒤 '그 동안에 일본에 자의가 되었든, 타의가 되었든 친일을 했다는 것은 변명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나 최승희가 해방된 조국에 와서 속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코리안 발레를 창건하는 것으로 이바지하겠다'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기레기의 말장난과 이전부터 유명했던 최승희 본인의 밥말아쳐먹은 인성때문에 친일짓하고도 개수작부린다는 인식이 확산되서 엄청난 비난여론에 시달리게 되었다. 최승희 본인은 남편이 독립운동가라서 커버쳐질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충격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승희는 친일파 참교육때 자기도 썰릴까봐 나온 두려움, 이전에 연안파로서 소련군정에 있던 남편 안막 + 애미쳐뒤진 혹부리씨발롬의 협박+사탕발림으로 인해 런승만마저도 수기편지를 써가며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1946년 7월 20일 월북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안막과 최승희 사이에서 나온 딸 안성희는 엄마가 월북하면서 같이 월북을 하게 된다.

월북이후 숙청[편집]

[https://www.youtube.com/watch?v=

  1. redirect 틀:Trim Video] on YouTube

인성이 문제였지 무용가로서의 실력은 ㅆㅆㅅㅌㅊ였기에 당시 인텔리 모시기에 혈안이 되있던 애미쳐뒤진 혹부리에게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혹부리새끼는 지금 옥류관자리에 있던 3층짜리 동일관[3]을 최승희에게 무용학교건물로 줬고 여기서 수제자인 김백복등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그리고 공훈배우, 인민배우라는 칭호까지 얻으면서 미친듯이 잘나가게 되었다. [4]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주은래의 주선으로 경극배우 매란방과 경극에 대한 담론을 존나게 주고 받았고 휴전이후 1950년대에 중국, 북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중국 경극과 북괴 초기 무용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하지만 1958년 혹부리새끼가 한설야를 썰기위해 카프계열 작가들을 단체로 숙청하고 댕겼는데, 이때 남편인 안막이 숙청당한다. 그리고 이전부터 혹부리와 사이가 영좋지 않았던 최승희는 혹부리의 갑작스런 집단공연요구에 빡쳐 존나 싸우다가 혹부리한테 숙청당하기 직전까지 가는 수준이 되었다.[5]

하지만 도서정리사업시기 고자, 무뇌봉과 함께 숙청당한다.

사후[편집]

80년대 혹부리가 무의식적으로 '최승희 무용하나는 끝내줬지'하면서 복권각이 터졌고 결국 2003년 완전히 복권되었다. 물론 최승희만 복권되었고 남편인 안막과 도서정리사업시기 세트로 숙청된 안성희의 복권? 그런거 없다.

인성[편집]

주의! 이 문서는 아랫사람을 노예로 갈구는 꼰대에 대해 다룹니다. 어휴... 그저 -꼰-
파일:Dd.PNG 이 문서는 존나 나쁜 놈에 대해 다룹니다. 이놈을 보거든 즉시 정의의 사도를 호출하십시오!

한마디로 말해서 인성 밥말아먹은 꼰대였다. ㄹㅇ 악마의 재능

최승희가 살던 시대 헬조선은 똥군기가 사회전반에 만연했는데도 '어 이건좀... 아니지 않나요?'소리들을정도면 말다했지.

자기 제자들을 심심하면 갈궈댔다고 한다. (김백봉[6]슨상님 피셜) 제자들을 하녀 취급하는 건 물론이고 실제로 어린 나이에 몸종으로 팔려온 공옥진은 무용을 몰래 따라하다가 최승희에게 걸려 무지막지한 구타를 당했다. 후에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인 '심청'에서 최승희에게 얼마나 인성질을 당했는지 잘 나타난다.

심지어 지 입으로 펜레터를 뜯어보지도 않고 걍 태워버린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몇몇 좆크보 빠따선수들보다도 팬서비스가 ㅆㅎㅌㅊ라고 할 수 있겠다.


  1. 우등생이라서 2년 월반으로 일찍 졸업했다고 한다.
  2. 선생은 나이제한이 어쩔 수 없이 적용되는 직업이다. 스승이 제자보다 나이가 어리면 이게 수업이 진행 되겠냐 이거지.
  3. 술집이었다.
  4. 물론 이 건물은 6.25 전쟁갓조국이 평양 초토화시키면서 통구이가 된다.
  5. 아마 이때 주은래가 아니었다면 진짜 숙청당했을 것이다.
  6. 월북이후 최승희가 양성한 제자중에서도 최고엘리트였다고 한다. 안막의 친척과 혼인했고 1.4 후퇴때 가족들과 함께 월남해서 한국 현대무용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