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17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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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790년부터 1799년까지의 연대.

조선[편집]

정조신해통공을 실시해 시전 상인들이 난전 상인을 막 대할 수 없도록 했으며 수원수원화성을 건립해 한성 집중 현상을 어느 정도 줄이려고 했다.

다만 글씨체 좀 아니꼽게 썼다고 지랄염병을 하는 등 좆같았던 면모도 있었던 듯. 그리고 정조의 탕평책은 붕당을 철폐하는 대신에 특정인에게 힘을 지나치게 실어주어 훗날의 세도 정치를 유발했다.

아시아[편집]

일본[편집]

칸세이 개혁이 진행되었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당대 일본인들에게는 개악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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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백성들이 살기 힘들어져 백련교도의 난 등이 일어났으나 진압당했다. 얼마 후 건륭제가경제에게 황제 자리를 넘겨줬으며 본인은 상황으로 통치하다가 죽었다.

가경제는 건륭제가 죽자마자 부정부패 끝판왕인 니오후루 허션을 조지고 그 돈을 압류했는데 정작 그게 국고가 아닌 황제 재산이 된 탓에 사회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인도[편집]

영국이 마이소르를 멸망시키고 인도 반도 남부를 식민화했다. 그리고 마라타 제국과 시크 제국만 멸망시키면 되는 상황이었다.

오스만 제국[편집]

셀림 3세가 오스만의 현실을 깨닫고 니자므 제디드라는 이름의 서구화 개혁을 개시했다. 기존의 권력자들이던 예니체리들이 반발했음에도 쌩까고 추진했다.

한편 러시아에게 발려 러시아의 크림 병합을 인정해주게 되었다.

유럽[편집]

러시아 제국[편집]

1793년1795년에 제2, 3차 폴란드 분할로 원수같았던 폴란드를 완전히 멸망시켰다. 그 다음 해인 1796년 예카테리나 2세가 사망하고 파벨 1세가 차르로 즉위했다.

그는 귀족을 탄압하고 유럽풍을 금지시켰으며 차르 자리는 장자만 계승할 수 있게 하는 장자계승원칙을 만들었다.

프로이센 왕국[편집]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다스렸으며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쫄아있던 귀족들이 자진해서 프로이센에게 땅을 바쳤으며 오스트리아의 외교 훼이크 때문에 프랑스를 치려다 쫄고 프랑스 공화국을 승인하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제2, 3차 폴란드 분할에 가담해 땅을 얻었다.

오스트리아[편집]

레오폴트 2세 즉위 후 프랑스 혁명 때문에 프랑스와의 동맹을 끊고 영국과 재동맹함으로써 동맹의 역전 체제가 완전히 종식되었다. 이후 프란츠 2세가 즉위하며 프랑스와 계속 전쟁을 벌였다. 역시 끈질긴 악연이다.

프랑스 왕국→프랑스 제1공화국[편집]

루이 16세바렌느 배신 사건으로 오스트리아로 튀려다가 붙잡혀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목이 잘렸으며 국민공회 통치 시대가 열려 프랑스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급진파인 조르주 당통의 실각 이후 막시밀리앵 프랑수아 마리 이지도르 드 로베스피에르가 실권을 잡았지만 폭정을 벌이고 왕당파, 온건파, 심지어 같은 급진파들도 반동몰이를 하며 조져댄 탓에 본인의 목도 같이 잘려나갔다.

이후 총재 정부가 열려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가 총재 직을 맡았으나 여전히 프랑스 국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못했고 결국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일으켜 통령으로 취임했다.

영국[편집]

프랑스 혁명 전쟁에 휘말려 프랑스와 싸우느라 바쁜 한편 인도의 마이소르를 정복해 본격적 인도 식민화에 나섰다.

에스파냐 왕국[편집]

왕인 카를로스 4세는 놀고먹기 바빴으며 마누엘 고도이가 실권을 쥐었다.

미국[편집]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며 8년 간 다스렸으며 이때 인구주택총조사와 토지조사가 실시되었으며 뉴욕증권거래소가 개장했다. 그는 8년의 임기 후 더 대통령을 하지 않고 제때에 물러났다.

이후 연방당의 존 애덤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토머스 제퍼슨과 정치적 싸움을 벌였다.

1790년대생[편집]

유소년기부터 세도정치기를 겪었다. 당시 평균수명이 40~50대 전후인지라 사실 이들도 1800년대생 못지않게 세도정치만보다간 불쌍한 세대라 봐도된다.

물론 장수한 경우 개항을 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