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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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품도 좋고 머리도 비상하고 인생 전반에 걸쳐서 '헌신'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인생을 살았지만, 강점기 말년부에 오야코동을 맛보고 친일 경력을 지낸 것이 그의 흠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 인물의 한 사람이며, 미국 유학파 출신의 정치학자이자 광복 직후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한민당의 두 번째 당수로서, 김성수와 송진우의 친구가 된다.
두 형과 함께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했는데 둘째 형 장덕진은 임정의 행동 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자금 모금을 하던 중 카지노장 한 곳을 털다가 사살 당한다.
첫째 형 장덕준은 동아일보 만주 지역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취재하다가 의문의 암살을 당했다.
살아남은 장덕수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대학교수로 활동했다.
중일전쟁 이전만 해도 나름대로 활발한 항일 활동을 펼쳤지만 흥업구락부 사건 이후 사상 보국 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야마토주쿠 등 일제의 각종 어용 단체에 참여하면서 그 단체에서 주관했던 강연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내선일체를 찬양하는 수없이 많은 글을 기고하거나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했다. 덕분에 훗날 1980년대 친일파 연구가 임종국이 쓴 『한국의 친일파 99인』에 수록되었고, 민족 문제 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었다.
광복 후 김성수, 송진우와 함께 한민당 창당에 참여했다.
송진우가 신탁 통치를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받아들이자는 취지로 발언했다가 찬탁 인사로 몰려서 갑자기 암살 당했고 그 이후로 한민당을 떠맡게 됐다.
그는 미소공위에 적극적인 참가와 김구 중심의 보수 정당 단일화를 반대, 소극적이었던 김성수에 대해 합당은 한민당을 통째로 임정에게 바치는 거라고 반대한다. 이 일로 김구와 만난 뒤 고성이 여러 번 오고 갔다.
1947년 12월 8일 집에 있었던 중에 박광옥, 초등교사 배희범 등 한국독립당원 5명이 쏜 총에 맞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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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후 그는 예토전생하여 오징어게임에 참가하지만 논개가 빙의한 한미녀에 의해 운지하고 만다.
뒷이야기[편집]
김구는 이승만에게 가서 자신이 암살한 게 아니니 미군정에 소환되는 일을 막아달라고 했지만 이승만은 거절한다.
송진우 암살 직후, 반탁건으로 미군정 사령부에 끌려가서 경고 먹었는데 송진우 건으로 또 경고를 받고[1] 그 다음에는 여운형 암살의 유력 용의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다만 당내 라이벌인 박헌영도 유력 용의자로 의심되기도 한다.
그런데 장덕수 암살사건이 터지고 현장에서 잡힌 한독당 당원 외에 한독당 간부인 조상항, 김석황 등이 줄줄이 끌려가면서 빼도박도 못하고 김구도 미군정 재판정에 출석. 다만 최대한 예우해서 증인이라는 명분으로 심문을 했다. 이때부터 김구는 이승만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장덕수 암살의 이유 중에는 장덕수가 일제말 기고문을 날린 것, 그 전에는 공산당 좌파쪽 이론가였다는 게 그 이유다.
조소앙도 끌려가서 재판을 받았다.[2] 김구가 상하이에 있을 때 한인애국단 이봉창, 윤봉길 등에게 줄 폭탄을 구해준 인물이 김홍일과 함께 조소앙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