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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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
주의! 이 대상은 개좆병신 정자/난자를 가졌습니다. 이 대상은 자식농사를 망쳤습니다. |
개요[편집]
[https://www.youtube.com/watch?v=
원소(袁紹,element, ? ~ 202년 음력 5월 21일)는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이자 군벌로, 자는 본초(本初)이며 예주(豫州) 여남군(汝南郡) 여양현(汝陽縣) 사람이다. 명문가의 사생아 출신으로 젊어서는 청류파 사상가로 명성을 떨쳤다. 후한 말의 정치적 부패를 타파하고자 십상시를 일소하였으나, 동탁의 개입으로 정권을 잡는것은 실패하고 수도에서 쫓겨났고 이후 자신의 명망을 바탕으로 반동탁연합의 맹주로서 활약했다.
원래는 중앙에서 태어난 관료 출신이었지만 사상가·정치가로서의 명망과 경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군벌화하였고, 한복·공손찬·장연·전해·공융 등의 정부 관료·군벌들을 격파·병합함으로써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으나 관도에서 조조와 싸워 크게 패한 뒤 이를 수습하고 세력을 가다듬던 도중 병사하였다. 원소의 후계자 원상은 종형 원담의 반발로 내전이 일어난 사이에 조조에게 토벌되었다.
연의[편집]
나관중이 촉빠다. 덕분에 조조의 유일한 호적수 원소는 병신이 되었다.
- ㄴ촉빠라서 그랬긴 커녕, 조조 띄워주려고 너프시켰단 생각은 안 드냐? 당장 원소군 포로 생매장 건 덮어준 건 뭔데.
1. 연의나 정사에서 네임드인 사환을 털어버린 원상은 병신이 되었다. 형인 원담,원희도 다르지 않아 연의 기반 게임에서 좆털은 전해보다 좆병신으로 나온다. 대체 범같은 세 아들이라고 띄워준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2. 순욱새끼가 열등감을 가진게 원소 모사들인데 전풍, 저수빼곤 좆쓰레기로 나온다. 특히 배신한 허유.
3. 순우경은 시발 서원팔교위(조조와 원소와 원래 동레벨 클라스)인데 여기선 술쳐먹는 원소군 장비로 나온다. 원래는 조조새끼가 영입하려다 실패해서 참수했다.
4. 전풍, 저수, 심배, 허유, 신비, 곽도, 봉기등 모사진이 곽가나 순욱, 순유새끼들한테 털린다 개씨발 같은
5. 장합, 안량, 문추을 제외한 무장이 좆쩌리가 되었다. 국의는 공손찬도 좆바른 새낀데 조자룡한테 좆털리는 역할이다.
6. 사환도 좆털고 위빠들이 빨아대느라 똥꼬가 헐은 곽가, 순욱, 조조새끼도 당대 유일하게 중원에 세력이 남았던 유표보다 원상을 높게 쳤다. 아 물론 연의에선 사환죽인거 빼면 형제싸움등으로 소리소문 없이 좆병신이 되었다.
정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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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조 생애 전반기의 최대 숙적, 물론 조조가 정사 인증으로 유비 너와 나만 영웅일뿐 본초는 이에 댈수 없다고 입을 털었긴 했지만 조조가 본격적으로 중국의 패권을 잡은게 원소를 이기고 나서였다. 물론 이후 조조가 적벽에서는 유비, 손권과 다이떠서 졌고 이후엔 양측의 공세로 죽기전까지 고생하지만.
2. 유비새끼가 겉과 속이 다른 음흉한 효웅이라지만 원소는 유비 싸다구 후려갈길 정도로 효웅이었으며 원소가 죽었을때 백성들이 존나게 슬퍼했다. 이걸 벤치마킹해서 결국 삼국 판도를 고착시킨 유비도 유비지만.
3. 연의에선 가문빨 존나 내세우는데 실제론 엄마가 노비인 유복자이다. 그러고도 후한 최고 명문가인 원가의 대표 아이콘이 되었다. 다만 족보 세탁으로 일찍 죽은 숙부의 아들로 호적을 세탁한 것은 좀 어두운 일면이다. 원술 시발롬이 존나 질투한건 덤. 조조나 원술새끼가 원소깔때 하는 소리는 종놈자식이라는 말 한마디 뿐이다. 반면 조조는 황제도 갈아치울만큼 막강한 권세를 자랑한 환관 조등의 의붓손자였다. 애시당초 시작할때부터 배경 자체가 다름.
4. 연의에선 십상시 씹새들 조질때 조조가 대표가 안되게 졸렬갑 모습을 보였지만 여기선 전부다 떠 받든다.
5. 조조의 기록인 무제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다.
6. 천하의 조조새끼조차 원래 원소의 밑으로 들어갈걸 심각하게 고려했었다....도 개소리고 조조는 원래 원소 꼬붕이었고 조조가 세력을 키운것도 원소의 도움을 받아서 키운것이다. 중간에 한번 대차게 말아먹고 원소한테 빌어서 재기한 적도 있다.
ㄴ그렇게 다 죽어가는 새끼 먹여주고 키워줬더니 협천자로 뒷통수 오지게 갈겨버린다 이래서 조아만 개새끼 디 소꿉친구도 여차하면 배신때려버리는 여포같은새끼
- ㄴ 이런 통수쩌는 부분이 나중에 삼탈워에서 쩔게 고증된다.
7. 원소 죽자마자 10년도 못가서 조조한테 땅 다 뺏겼다.
8. 관도대전 발리면서 조조에게 중원 최강자 자리가 넘어간걸로 아는 새끼들이 많은데 관도대전 이후에도 원소는 패배 수습 잘해서 여전히 최강자의 자리를 지켰다. 원소는 죽는 그 순간까지 중국의 최강자였다. 이 문서 틀에 콩라인이라느니 하는 병신같은 틀이 달려있었는데 원소는 공손찬한테 밀려서 콩라인이었던 적은 있어도 조조한테 밀려서 콩라인인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사실 진수새끼도 지 주인님 조조가 원소보다 딸리니까 조조 빨아대려고 원소 병신만들었다. 후한서 보면 원소는 진수새끼 정사삼국지에 나오는 것보다 더 대단한놈임
원소의 주요전적[편집]
- 189년, 십상시를 몰살시킴.
- 191년, 공손찬과의 계교전투, 흑산적 두장과의 업 전투, 흑산적 우독과의 척구전투 승리
- 192년, 업 근처에 주둔중인, 흑산적 유석군을 대파, 광천에서 공손찬군을 대파.
- 193년, 조조와의 연합. 발간에서 도겸군을 격파, 흑산적 장연과의 흑산전투, 여포와의 연합. 상산에서 장연군을 대파.
- 195년, 포구에서 공손찬군을 대파.
- 196년, 동군에서 장홍군을 격파.
- 197년 ~ 198년, 공손찬군을 대파하며 연승.
- 199년, 역경에서 흑산적 장연군을 대파, 역경에서 공손찬군을 전멸.
- 200년, 중원의 패권을 두고 싸운 관도대전 발발. 관도에서 조조군에게 대패.
- 201년, 기주 근처에 주둔중인 반란 세력을 모조리 전멸, 창정에서 원소군 잔당이 대패. ( - )
- 202년, 원소 병사
누가 원소를 실패의 달인이라고 야부리를 털었는데 오히려 한복의 객장에 가깝던 시절의 원소는 자기 세력 먹일 식량도 없는 곤궁한 처지에, 명망만 높지 기반도 없는 상태였는데 그 상태로 당대 최강에 가깝던 공손찬과 맞붙어 계교 전투에서 압도적인 군사 숫자 + 이민족과 싸워 단련된 정병을 기적적으로 이기고 이후의 싸움에서도 자신의 본거지인 업이 흑산적에게 공략 당하는 양면전선 등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해 흔들리지 않고 결국 모조리 처단하는 전적을 올린다.
원소에게 발리기 전 공손찬은 전국 제후들 중 손에 꼽히는 세력가였다. 거기에 후방에서 단순 도적떼가 아니고 수만명의 병사를 가지고 있던 흑산적 두목 장연을 격파하고 하북 4주를 손에 넣은것만 해도 대단한 수완이다.
하북제패 하는 시기의 원소의 군사적 활동은 후한 말 ~ 삼국시대 전체 합쳐서 손에 꼽을만큼 훌륭하다. 무슨무슨 이유로 폄하될 수준이 아니고 인심 장악에도 성공해서 조조가 하북을 장악한 이후 백성들을 싹 물갈이 해야했다. 관도대전이 원소의 참패인 건 맞지만 관도대전 후에도 원소가 조조보다 훨쓴 큰 세력이다. 원소 죽고 나서 후계자들이 말아먹은 거고 그나마 나이가 어려서 그렇지 원소의 후계자 원상은 후계자 내분중에도 조조를 격퇴시킨 전적도 있었다.
기타[편집]
원소의 통치는 일장일단이 있었다. 조조가 원상을 격파하고 기주를 평정한 뒤 기주민들에게 내린 포고령에 따르면 원소의 정치는 방만해서 호족들의 발호가 심했다고 하며, 왕수전에서도 원소의 비호 아래 권세가들이 재물을 많이 축적해 심배의 재산이 억대에 달했다는 얘기가 있다. 공손찬과 싸울때 원소는 아예 날을 정해 번갈아가며 군현을 노략질했으며 상납을 거부하는 호족들은 명망이 높든 전에 고관을 지냈든 상관없이 감금, 고문하며 돈을 뜯어냈다. 한편으로는 원소가 어느정도 기반을 잡고 나선 그의 통치가 미치는 하북 4주의 지체 높은 사대부로부터 비천한 아낙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을 막론하고 원소를 흠모해 불평하는 목소리가 없었으며, 원소가 죽었을 때는 온 도시의 저자가 통곡과 비탄으로 마비되었으며 심지어 그의 죽음을 두고 부모상을 치르는 백성들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만 해도 당대의 통치자들 가운데선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다.
원소는 독단적이고 제왕적인 성격이 강했는데 사실 관도대전의 패배 역시도, 전투에서의 전략, 전술적 능력의 부재라기보다는 그의 제왕적, 유아독존적 태도, 부하들에 대한 잦은 숙청으로 인해 유발되던 불합리와 휘하 인물들의 충성심 저하 등의 고질적인 문제가 오소 사건을 기점으로 선을 넘으면서 한번에 터져나온 정치적인 문제가 크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원소는 충분히 이길만한 군사적 능력은 높았지만 성급하고 독단적인 성격으로 저수가 진언하는 상식선의 조치들을 무시했으며 이런 태도가 결국 패배를 불렀다. 사실 계교 전투에서도 본대와 떨어져서 앞서나가다가 다 이긴 판을 공손찬군의 역습으로 죽을 뻔한 전력이 있다.
원소는 자신의 카리스마로 하북을 지배했지만 역으로 지나치게 카리스마에 의존해서 자신의 사후 자신이 없어지면 세력이 쉽게 와해 될 여지가 크게도 만들었다. 당장 원소가 죽고난 뒤 후계자가 이런 카리스마를 대체하기는 어려웠고, 여기에 원소가 급사했다는 것, 원상의 나이가 어렸다는 것, 폐출된 원담이 후계에 도전하도록 아예 판을 짜 놔버렸다는 점, 원상의 후견인으로 권력을 잡은 인물이 하필이면 전략적 식견도 포용력도 전무한 심배였다는 점을 후계구도를 굳히는데 있어선 문제가 많았다. 일본사에서도 원소와 비슷한 인물이 하나있는데 바로 다케다 신겐이다.
결국은 존나 고평가 받는 동시에 존나 저평가 받는 삼국지에서도 특이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