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고려)
조무위키
고려조의 역대 임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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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헌종 왕욱 | → | 15대 숙종 왕옹 | → | 16대 예종 왕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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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고려 왕 목록 |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제5대 |
태조 (918년~943년) |
혜종 (943년~945년) |
정종 (945년~949년) |
광종 (949년~975년) |
경종 (975년~981년) |
제6대 | 제7대 | 제8대 | 제9대 | 제10대 |
성종 (981년~997년) |
목종 (997년~1009년) |
현종 (1009년~1031년) |
덕종 (1031년~1034년) |
정종 (1034년~1046년) |
제11대 | 제12대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문종 (1046년~1083년) |
순종 (1083년) |
선종 (1083년~1094년) |
헌종 (1094년~1095년) |
숙종 (1095년~1105년) |
제16대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예종 (1105년~1122년) |
인종 (1122년~1146년) |
의종 (1146년~1170년) |
명종 (1170년~1197년) |
신종 (1197년~1204년) |
제21대 | 제22대 | 제23대 | 제24대 | 제25대 |
희종 (1204년~1211년) |
강종 (1211년~1213년) |
고종 (1213년~1259년) |
원종 (1259년~1274년) |
충렬왕 (1274년~1298년) |
제26대 | 제25대(복위) | 제26대(복위) | 제27대 | 제28대 |
충선왕 (1298년) |
충렬왕 (1298년~1308년) |
충선왕 (1308년~1313년) |
충숙왕 (1313년~1330년) |
충혜왕 (1330년~1332년) |
제27대(복위) | 제28대(복위) | 제29대 | 제30대 | 제31대 |
충숙왕 (1332년~1339년) |
충혜왕 (1339년~1344년) |
충목왕 (1344년~1348년) |
충정왕 (1348년~1351년) |
공민왕 (1351년~1374년) |
제32대 | 제33대 | 제34대 | ||
우왕 (1374년~1388년) |
창왕 (1388년~1389년) |
공양왕 (1389년~1392년) |
“ |
오호라(於戲)! 시작과 종말의 시기를 아니 죽는 자는 아무 후회가 없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산 자는 오래 살도록 하라. 이제 고굉대신(股肱大臣)과 백벽(百辟)과 경사(卿士)들은 왕실(王室)을 보좌하고 우리 국조(國祚)가 무궁(無窮)하도록 도와라. 그리한다면 짐은 눈을 감더라도 마음은 족하다. 국내(國內)에 선포하여 짐(朕)의 뜻을 알리도록 하라. |
” |
— 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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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15대 왕이다. 문종의 아들. 이름은 옹. 원래는 희였지만, 1101년에 당시 중국 송나라의 황제 이름도 희라서 개명한 것. 그리고 왕 되기 이전에는 '계림공' 칭호를 받았다.
조카인 헌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사람이다. 그냥 고려의 수양대군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쪽은 적어도 명분이 있었는데, 당시 고려는 아들보다 동생에게 왕위 계승 시키는 일이 많은데다, 문종 아들 중에선 얘가 가장 왕위 계승감이었다. 또 문종도 얘한테 잘해줬다. 그래서 계림공도 선종이 자기에게 직접 물려주길 기대했는데 현실은...
헌종의 정치 파트너였던 이자의 일파를 작살내고 헌종을 협박하여 왕이 되었다. 뭐 기록에는 형인 선종이 당뇨병으로 병약한 아들인 헌종 대신 자기한테 왕자리 줄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다가 통수 맞았다고 나와있지만 글쎄다.
여하튼 왕이 된 후 이사람 대에 나름 화폐경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해동통보 같은 여럿 화폐를 주조해서 유통시켰으나 당시 씹미개한 좆반도 레벨은 도저히 화폐경제가 안착할 상황이 아니었고 결국 이 정책은 무참히 실패로 돌아갔다.
한편 유학자들이 게거품 물면서 주장한 6촌 이내 근친혼을 금지시킨게 이사람이다. 쉽게 말해 근친상간 금지시킨것. 하지만 당시 분위기는 씨발 우리가 왜 짱깨 풍습 따라해야 하는데? 였다고
도읍을 옮길 생각도 있었던 모양인데 하필이면 그 위치가 현재 서울, 그것도 청와대 자리다.
여진과의 전쟁 스멜이 나기 시작하자 별무반을 만들어 출정하기 전 사열하러 평양으로 갔다가 병이 악화되어 재위 10년만에 52세의 나이로 죽었다. 후임은 예종.
왕위를 찬탈한것도 수양대군과 빼박인데 아들 종묘까지 예종이다.
의외의 사실은 고려 왕 중 유일하게 마누라를 1명만 둔 임금이었다(미성년자 왕들은 제외한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