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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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마르크스주의에서의 공산주의=좌파공산주의라는 이념을 탄생시켰다[1]
레닌은 대학 물 좀 먹은 중간 계층 지식인, 즉 인텔리겐치아 계급이며 노동자 계급 출신이 아니다. 오히려 당대의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주로 지주, 관료, 혹은 가끔 귀족 출신으로 이들 교육받은 중간 계층이 러시아 혁명의 주축이 되었다.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룩셈부르크는 당 지도부의 보수화와 교조주의를 경계하였을 뿐 노동 전위 조직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보다 명확히 하자면,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닌이 의견을 달리한 부분은 혁명의 수행 방식이라 볼 수 있겠다. 레닌은 소수의 조직된 직업혁명가들에 의한 '위로부터의 혁명'을 주장하였고 이에 반해 로자 룩셈부르크는 혁명에 있어서의 민중의 역할과 자연발생적인 역사적 상황을 강조하였다. 즉, 사회주의 혁명은 소수 당지도층의 결정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의 정치적 계몽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독일 11월 혁명으로 사회민주주의자들에 의해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진 즉시 반자본주의 반란을 일으켰다가 자본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의해 곧 진압되었고 로자는 참교육당했다. (개이득) [2]
ㄴ로자 룩셈부르크는 1월 봉기 이후 정부의 어용 군사조직인 자유군단에 붙잡혀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