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모토 도모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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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일본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느프브 팬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야구를 존나 잘하거나 야잘알이며 야구 그 자체입니다. 믈브나 느프브에 있기 마땅한 존재입니다. 크보나 크프브르 같은 건 그에게 너무 좁습니다. |
이 문서는 튼튼하고 단단한 금강불괴에 대해 다룹니다. 내구성이 강하든 강성이 높든 아니면 네 뚝배기가 단단하든 간에 튼튼하고 단단한 금강불괴라서 아무리 두들겨 패도 잘 드러눕지 않는 대상을 다룹니다. |
파일:도요카프.gif | 놀랍게도 히로시마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시 많은 카프죠시들의 저주로 알거지가 될 것입니다. |
놀랍게도 효고는 물론이고 인근 오사카에서도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한신 아재들에게 잡혀 도톤보리에 강제 입수당할 것입니다. |
가네모토 도모아키 金本 知憲 Tomoaki "Aniki" Kanemoto 감독직 짤렸다 | |
기본 정보 | |
생년 월일 | 1968년 4월 3일 |
출생지 | 히로시마 현 히로시마 시 미나미 구 |
국적 | 일본 |
학력 | 고료 고교-도호쿠 복지 대학 |
신장 | 180cm |
체중 | 88kg |
선수 정보 | |
입단 | 1991년 히로시마 4순위 |
투타 | 우투좌타 |
포지션 | 외야수 |
경력 | 히로시마 도요 카프(1992~2002) 한신 타이거스(2003~2012) |
지도자 경력 | |
경력 | 한신 타이거스 감독(2016~2018) |
소개[편집]
카프 시절의 팀 대선배인 기누가사 사치오와 함께 일본 프로야구의 양대 철인이라고 불리는 선수.
한신시절 아니키(형님)으로 불리며 한신 아재들에게 존경받는 선수였다.
1492경기 연속 전체이닝 무교체 출장 세계기록 보유자이다. 그러니까 1492경기 내내 교체 한번 없이 스타팅 멤버로써 경기를 끝까지 소화했다는 것.
저 기록이 끊긴 이후에도 선발-교체 출장을 반복하며 1766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일본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 참고로 1위는 앞에 언급한 기누가사 사치오의 2215경기.
선수시절[편집]
히로시마 도요 카프[편집]
고료 고교로 진학했다가 고3때 야구부 감독의 착오에 속아서 대학 입시가 꼬이는 바람에 재수를 해서 도호쿠 복지 대학으로 진학했다. 그래서 대졸 또래보다 1년 늦은 1991년에 드래프트 4위로 카프에 지명받으며 프로에 데뷔했다.
입단 이후 2년간은 공격과 수비 모두 영 좋지 못해서 팀 내에서 입지가 좁았고 팀 동료 마에다 도모노리와 에토 아키라 등에게 밀렸지만 94시즌 17홈런을 친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팀의 주전 외야수로 성장해나갔다.
이후 95년 베스트나인, 96년 3할, 97년 3할 30홈런을 차례로 기록했고 98년엔 성적이 다소 하락했지만 데뷔 이래 첫 4번타자로 나서기도 했다가 1999년 전 경기 출장+사이클링 히트로 본격적으로 카프의 붉은헬멧 군단의 핵심 타자로 자리매김하였고 이해 7월 21일부터 훗날 세계 기록이 되는 풀이닝 연속 출장 기록의 스타트를 끊었다.
2000년부턴 FA선언하고 요미우리로 가버린 에토 아키라를 대신하여 본격적으로 4번타자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해 3할-30홈런-30도루로 일명 트리플3까지 달성했는데 이때가 유일하게 20도루를 넘긴 시즌이었다.
2001년엔 통산 1천안타와 200홈런, 역대 6위인 시즌 128볼넷을 찍고 전년도 시즌부터 이어온 1002타석 연속 무병살타까지 기록했다.
이렇게 카프에서 4번타자로 맹활약한 가네모토는 2002년 시즌이 끝난 후 FA를 행사했지만 돈이 없는 히로시마는 가네모토를 잡는 시늉도 안했고[1] 그렇게 가네모토는 한신으로 가 버렸다.
이때 한신은 베이징 목메달니뮤께서 직접 설득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며 가네모토 쟁탈전에서 이길 수 있었다.
한신 시절[편집]
본격적으로 연속 경기 출전 스탯을 쌓은 시절이다. 이 시기엔 카프 시절 달던 10번이 한신의 영구결번이어서 등번호를 6번으로 바꿨다.
입단 첫 해인 2003년엔 다소 아쉬운 성적을 냈지만 3번타자로 활약하며 한신의 18년만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고 2004~2005년에 커하를 찍었다. 이중 2004년엔 선수 시절 유일한 타이틀 수상 기록인 타점왕까지 따냈으며 2005년엔 리그 MVP를 수상했다. 두 시즌 연속 3할-30홈런-100타점 이상에 타출장이 3-4-5를 웃도는 수치를 보였다. 다만 전설의 33-4에선 삽질을 일삼으며 팀의 시리즈 참패에 제대로 공헌했다.
그 이후로도 여전히 풀이닝 연속 출장 기록을 이어가며 철인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2010년 이후부터 어깨 부상이 악화되면서 극심한 성적부진에 시달렸고 결국 이해 4월 18일 대 요코하마 원정경기 때 본인이 감독에게 자청해 선발 출전을 포기하면서 풀이닝 연속 출장 기록은 1492시합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선발 출전만 안 한다 뿐이지 경기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나와서 풀이닝을 뺀 연속 출장 기록은 계속 유지했다. 결국 2010시즌 가네모토는 규정타석 미달임에도 전 경기 출전을 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물론 그 댓가로 성적은 엄청나게 하락했다.
하지만 그 연속 출장 기록도 이듬해인 2011년에 결국 깨졌는데, 이해 4월 15일 대 주니치 원정경기 8회 2사 1루 상황에서 9번 투수 자리에 대타로 가네모토가 들어왔는데 이때 1루 주자였던 후지카와 슌스케가 도루를 시도했으나 실패해서 타석이 증발해 버렸고 다음회인 9회 초 때 9번 자리엔 투수를 올리고 가네모토는 수비를 안보고 벤치에 들어가면서 연속 출장 기록은 1766시합에서 종지부를 찍었다.[2] 이해 시즌엔 타율이 2할 1푼대에 OPS가 6할을 찍는 등 완벽한 공갈포로 전락해 버렸고 결국 2012년 은퇴를 선언한다.
그러고 나서 기록들을 하나하나씩 달성해나갔다. 역대 9번째 1500타점, 역대 7번째 겸 대졸 최초 2500안타, 통산 홈런순위 단독 10위 달성 등등... 그해 10월 9일 대 DeNA 코시엔 홈경기가 은퇴 경기가 되었고 4타수 1안타 1도루를 기록하며 현역생활을 끝마쳤다.
통산 기록은 2578경기 2539안타 476홈런 1521타점 167도루 타율 0.285 출루율 0.382 장타율 0.503 OPS 0.885
감독시절[편집]
2016시즌부터 한신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한신 팬들이 그렇게 기피하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데뷔팀은 히로시마라지만 한신에서 커리어하이 기록을 많이 쌓았으니)에다가 외야수 출신 조합이라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감독 첫해엔 4위로 부진했다. 그래도 초보 감독이니 눈감아 줄 수는 있다.
2년차인 2017년엔 작년보단 더욱 나아진 모습을 보이며 팀을 말아쳐먹는 교진 성골출신 감독과는 다르게 카프와 선두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2위로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요코하마의 기적 같은 가을야구의 첫 제물이 되며 허무하게 cs를 마감짓고 말았다..
그리고 2018년엔 작년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고 한신을 17년만의 리그 최하위로 폭망시켜 버렸다. 결국 사임
기타[편집]
왼손목에 사구를 맞고 손목이 작살난 상태에서도 경기에 출전해 거의 오른손만으로 빠따를 휘둘러 안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재일교포 3세로 한국명은 "김박성"이었지만 일본으로 귀화 후 "김지헌"으로 개명했다.
연속 경기 출전 기록을 보유한 사람이니 만큼 몸관리가 지독할 정도로 빡셀거 같지만 사실 술담배를 달고 지내는 사람이다.
현역시절 담배 피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고 라커룸에 소주가 몇 병씩 있었다고 한다.
2009년 이후부터 몸 상태가 개판이었지만 그럼에도 경기 출전을 강행했다.
어느정도였냐면 어깨 상태가 너무 씹창이 나 버려서 중계 플레이가 내야수들 없으면 홈으로 공 연결이 안 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가네모토는 이 고장난 어깨를 은퇴 이후에 수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