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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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창조적인 도둑놈에 대해 다룹니다. 너무 창조적이어서 창조경제의 기틀을 잡으신 ㄹ혜님도 예상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창조적이어도 죽창 앞에선 너도 나도 한 방! 나라에 예산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도둑놈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
나라를 국밥에 말아드신 분들 | |||||||||||||||||||||||||||||||||||||||||||||||||||||||||||||||||||||||||||||||||||||||||||||||||||||||||||||||||||||||
궁내부대신 | 승녕부총관 | 시종원경 | 친위부장관 시종무관장 |
군부대신 | 내각총리대신 | 탁지부대신 | 학부대신 | 외부대신 | 법부대신 | 내부대신 | 농상공부대신 | ||||||||||||||||||||||||||||||||||||||||||||||||||||||||||||||||||||||||||||||||||||||||||||||||||||||||||||
을사오적 | |||||||||||||||||||||||||||||||||||||||||||||||||||||||||||||||||||||||||||||||||||||||||||||||||||||||||||||||||||||||
이근택 | 이완용 | 박제순 | 이지용 | 권중현 | |||||||||||||||||||||||||||||||||||||||||||||||||||||||||||||||||||||||||||||||||||||||||||||||||||||||||||||||||||
을사삼흉 | |||||||||||||||||||||||||||||||||||||||||||||||||||||||||||||||||||||||||||||||||||||||||||||||||||||||||||||||||||||||
이재극 | 민영기 | 이하영 | |||||||||||||||||||||||||||||||||||||||||||||||||||||||||||||||||||||||||||||||||||||||||||||||||||||||||||||||||||||
정미칠적 | |||||||||||||||||||||||||||||||||||||||||||||||||||||||||||||||||||||||||||||||||||||||||||||||||||||||||||||||||||||||
이병무 | 이완용 | 고영희 | 이재곤 | 조중응 | 임선준 | 송병준 | |||||||||||||||||||||||||||||||||||||||||||||||||||||||||||||||||||||||||||||||||||||||||||||||||||||||||||||||||
경술국적 | |||||||||||||||||||||||||||||||||||||||||||||||||||||||||||||||||||||||||||||||||||||||||||||||||||||||||||||||||||||||
민병석 | 조민희 | 윤덕영 | 이병무 | 이완용 | 고영희 | 박제순 | 조중응 |
박제순(朴齊純) | |
이명 | 호 평제(平齊) |
출생 | 1858년 12월 7일 조선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상도촌 |
사망 | 1916년 6월 20일 경성부에서 병사. |
가족 | 아버지 박홍수, 아들 박부양 |
본관 | 반남 박씨 |
학력 | 1883년 별시문과 합격. |
그 외 | 종친, 관료, 권신, 을사오적 + 경술국적 |
“ |
저 개돼지만도 못한 박제순을 봐라! |
” |
— 황성신문 시일야방성대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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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을사오적, 경술국적 더블콤보를 찍은 조선의 개씨발 매국노새끼이다.
생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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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이후 톈진에서 외교관으로 상당한 기간동안 근무했다.(1883.10~1885.3 홍문관 부교리 임명이전까지 + 1886.1~1887.6)까지 톈진에서 근무했고 귀국이후 4개월간 이조참의 + 성균관대사성 + 참의내무분사 + 경주부윤등 각종 고위관료직을 거쳐갔다. 외교 + 통상쪽에서 일했다보니 1888년 5월 인천항 통상사무 관리, 1889년 3월 전환국 총판이 되었다. 1년8개월뒤 내무부 협판으로 영길리,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주재공사에 임명되었지만 뱃지만 달고 서울에서 꿀빨고 댕겼고 1890년부터 3년동안 형조 공조 한성부 성균관을 거쳐갔다.
1893년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명복이의 명령을 받고 원세개와 청군 파병문제에 대해 회담한 바가 있고 동년 7월부터 1894년 4월까지 이조참판, 여주목사, 장흥부사 + 보외시행사로 있었다가 1894년 6월 전라도 관찰사가 되고 1달뒤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좆본군과 연합, 우금치 전투에서 농민군을 갈아버렸다. 1895년 10월 제용원 태복사장에 임명됨으로써 다시 중앙관료로 임하기 시작했다.
을사오적으로 분류되지만 1905년 농상공부대신을 맡았을 때 8월 일본의 강압으로 체결된 「한국연해 및 내하(內河) 항행에 관한 약정서」에 반대하며 사직소를 올리고, 러일전쟁때 일본이 추진하는 한국에 대한 보호조약을 한규설과 함께 반대했지만 1905년 11월 갑자기 테세를 전환하여 일본 특명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와 함께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을사오적이 되었다. 친일내각의 의정부 참정대신이 되고 1907년 친일 보부상단체인 동아개진교육회(東亞開進敎育會) 찬성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해에는 대한자강회와 황성신문의 실시간 폭격과 을사오적암살단 사건때문에 1907년 5월 내각에서 빤쓰런했으나 중추원 고문으로 빤쓰런해서 살아남았다. 1908년 5월 대한여자흥학회 고문, 6월 한자통일회 발기인, 8월 관진방회 회장, 기호흥학회 간부, 10월 일본적십자사 특별사원으로 위촉되었다. 또한 1908년 9월 일본에서 조선, 대만의 식민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조직된 동양협회에 100원을 기부했다.
1909년 2월 내부대신으로 재입각하면서 다시 관료가 되었다. 동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가 제너럴 안의 007빵을 맞고 뒈져버리자 11월, 이토히로부미의 장례식에 맞춰 장충단에서 관민추도회를 발의하고 이토를 기리는 송덕비건의소 찬성원을 맡았다. 1910년에는 이완용, 조중응과 함께 한일병합 찬성운동을 벌이는 정우회에 후원금을 꽂고 6월 경찰권을 일본에 이양하는 「한국경찰사무 위탁에 관한 각서」와 8월, 내부대신으로서 한국병합조약에 체결함으로써 경술국적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경술국치이후 1916년 뒤질때까지 매년 1,600원의 연금을 받았는데, 1911년에는 일본이 한국을 어떻게 통제할까 짱구를 굴릴 때 조선의 통치자료를 제공하려고 조선구관연구회 조직을 추진했고7월 경학원 대제학에 임명되었으며, 10월 조선귀족대표로 도쿄에 가서 천장절에 참석했다. 1912년 1월 이문회의 회장이 되고 8월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15년 11월 다이쇼 천황의 즉위식에 참석한 뒤 그 소감을 「즉위 대례식 헌송문(獻頌文)」으로 싸질렀으며 11월 처 서씨와 함께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ㄹ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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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직전까지 일본이 조선 먹으려고 계속 불렀음. 그리고 경술국치 되자마자 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