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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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승(在家僧)은 함경북도 북부 육진(六鎭) 지역에 거주한, 여진족의 후예로 추정된 이들을 뜻한다. 1936년 1월 1일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함경북도 회령군 창두면 종암동과 온성군 미포면 월파동 등지에 집단촌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특이한 풍습으로 군인에게 부녀자의 모유를 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상기 두 지역 외에도 함경북도 육진 곳곳에 재가승촌이 산재하였는데, 종성군 용계면 봉산동 봉오골, 연산동 평수리(1958년 용계면 일대를 경원군으로 이관),풍곡면 풍계동의 진동부락, 회령군 창두면 무산동, 부령군 연천면 교원동[1] 등이 있다. 재가승촌 다수는 북괴에서도 변방인 함경북도에서도 전기나 학교가 들어오기 힘든 산악지역이나 험지에 위치하였다.[2]
대략 1960년경까지만 하여도 재가승촌과 재가승을 타 토착민들과 구별하였지만, 북괴치하의 강제적 동화정책 기조에 이들도 휩쓸려 독자적 정체성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재가승이 거주한 함경북도, 특히 육진 지역의 경우 황해도나 평안남도 등과 달리 북쪽에 치우쳐 있고 6.25전쟁 당시에도 국군이 대부분 수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출신 실향민이 대단히 적은 편이며, 그렇기에 과거 재가승촌에 속했던 이들의 증언 또한 확보하기 대단히 어렵다.(대신 탈북자는 많다. 다만 요즘 젊은 탈북자들은 너무 오래전일이라 모른다는 점이 문제지) 북괴 내에서 행한 몇몇 연구자료나 해방 이전의 얼마 되지도 않는 기록을 가지고 연구가 더디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정보는 아직도 상당부분 오리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