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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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파울 요재프 괴벨스(디시위키에 쓸것).jpg | 주의! 이 문서는 나라를 처말아먹은 선동가를 다룹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대상은 사람들을 선동해 나라를 말아먹었습니다. 이런 새끼들에게 죽창을 들어 너도 한방 나도 한방을 시전합시다. 여러분, 님이 무엇입니까? 님은 바로 사회주의 락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부우운!!! |
이 문서는 기레기를 다룹니다. 이 문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자기가 직접 갈겨쓴 소설에 불과합니다. 만약 이런 놈들이 있거든 신문을 보면서 이들에게 광고 수입을 주지 말고 차라리 도서관에서 소설이나 빌려서 보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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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나라마저 팔아먹은 거상이자 도둑놈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나라마저도 장물로 팔아먹은 간 큰 도둑새끼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팔림당한 나라의 국민에게는 저주의 대상이니 그들 앞에서는 언급을 피하십시오. |
(미국의 안보를 위협받게 만든놈)
☭ 공산주의는 이 문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네가 이 문서에 푹 심취해서 낫과 망치로 때려부수고 대량학살하는 공산전체주의 독재자들을 빠는 종북 빨갱이가 되지 않기 바랍니다. 만국의 위키니트들이여 단결하라! |
이 문서는 모든 걸 말아먹은 원흉에 대해 다룹니다. 이 한 사람 때문에 그동안 잘나갔던 것들이 한순간에 오염되었거나 폭망했습니다. |
주의! 이 글은 헬-조선의 현실을 다룹니다. 전세계의 그 어느 장소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찾아봐도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K-지옥불반도 헬조선만의 수우많은 자랑거리들!!! 이러한 헬조선의 암울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전세계와 우주가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이런 것들과 당신에게 탈조선을 권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야... |
개요[편집]
1905.7.17~1972.2.15
국공내전에서 중국 국민당이 칭챙총-짱깨 공산당에게 쳐발리게 만드는데 장학량못지않게 큰 기여를 한 병신좌빨기레기다[1]. 물론 이새끼가 빨갱이짓하는데 장학량이 기여를 했다. 장학량 이 씨발롬이 뭐하나 안끼는데가 없어요
미국에서의 행보[편집]
본래 미주리머학에서 저널리즘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는데, 등록금때문에 자퇴하고 뉴욕 컬럼비아 머학으로 재입학해서 졸업했다. 중국여행가서 그걸로 기행문쓸라고 1929년 천조국 주식대폭락이전에 주식을 사가지고 부자가 되었고, 그돈으로 13년간 중국을 여행하고 댕겼다.
한족과의 행보[편집]
이양반은 중국에 있으면서 J.B 파웰이 만든 차이나 위클리 리뷰란 신문에 글쓰는 일을 구했고 중국에서 수많은 작가, 지식인들(쑹칭링포함)과 친목을 도모하고 있었다. 첨엔 장개석총통니뮤랑 같이 일하고 있었다.
1932년, 당시 킹갓-화민국내 천조국 영사관에 근무하던 헬렌 포스터랑 결혼했다.
1930년대에 이양반은 상하이에서 살면서 중국 전역을 돌아댕겼고 총통니뮤랑 다진 친목덕에 중화민국 철도부의 일을 위해 출장을 가기도 했다. 1928년~1930년동안 일어난 대륙의 기근동안 나중에 좆본군이 버마의 길이라고 부르게 되는 길을 방문+ 만주사변을 보도하면서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중국 특파원이 되었다.
1933년, 좆본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뒤 베이핑으로 들어왔고 그곳에 있는 옌칭머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쳤다. 그동안 중국어도 공부해서 마스터했고. 여기서 좆본의 중국침공과 중국현대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때 옌칭머학의 일을 맡아서 하면서 마르크스서적을 탐독했는데, 여기서 이양반이 병신좌빨이 된것으로 본다. 그리고 1935년 일어난 12.9이란 항일운동을 일으킨 학생대표와 친목을 도모했다. 이때 그친목을 도모하면서 빨갱이 짓을 할 때, 옌안에 있는 쩌둥이와 그 휘하 지나족들의 하이브로 들어갈 기회를 얻게 된다.
지나족과의 행보[편집]
1936년, 숭칭링의 소개를 받고 서안으로 들어갔다. 이새끼는 서안 사건을 일으키고 싶어했던 장학량덕분에 맘편하게 옌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 4달을 빨갱이 지나족들과 보내는데, 거기에 있으면서 마오후 쩌둥쩌둥과 회담한 것을 가지고 1936년 가을에 북경으로 돌아가 차이나 위클리 리뷰에다 미친듯이 써갈긴 불쏘시개 모음과 이를 책으로 엮은게 그 악명높은 <중국의 붉은 별>이란 불쏘시개다[2]. 이새끼 이전에도 대장정 이전의 지나족들의 행보에 대해 서방 기자들이 몇줄 끄적인것이 있었지만, 서구여론에서는 전부 듣보잡취급을 했다. 근데 이 불쏘시개덕분에 쩌둥이가 서구에서 스타가 된것.[3]
이 중국의 붉은별은 무려 1만2천부가까이 팔려나가면서 서방권에서의 스노와 마오후 쩌둥쩌둥의 인지도를 엄청나게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 책은 지나족들이 한족으로 변장하고 개지랄 빨갱이짓을 포장하는 표준 참고서가 되었다.
진짜 얘가 이 불쏘시개를 안썼으면 당연히 서구권에서 마오후 쩌둥쩌둥과 그 패거리들은 그들과 친한 갓-개석총통니뮤의 말을 안들으면 지구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를 인간으로 남았을 것이다. 때문에 천조국의 해리 S. 트루먼황상폐하도 국공내전에서 장개석이 만주에서 마오쩌둥 개작살을 내주셨을 거다.
중일전쟁시기의 행보[편집]
중국 공산화이후의 행보[편집]
결국 끝까지 쩌둥이뽕빨고 하악하악 거리다 1950년대 메카시즘 운동을 피해 스위스로 런했다. 1960년, 1964년 천조국이 중공에 보낸 특사중에 한명으로 보내졌다. 이때 쩌둥이하고 주은래하고 회담을 나누었고. 문화대혁명으로 한족의 중국이 지나족의 헬-중화런민공화꿔로 전락해버리기 시작하는 1969년에 다시 중공을 방문하여 '닉슨황상폐께서 중공을 방문하신다면 우리 중공은 그를 환영하겠다'라는 메시지를 받아오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 문화대혁명때 홍위병들의 조옷병신짓을 보고나서야 쩌둥이 뽕을 빼버리고 자기가 쩌둥이 뽕빨고 빨갱이짓한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ㄴ아니다 이새끼 죽을때까지 샤르르트 치매새끼마냥 짱께빨았다.
그리고 암걸려서 스위스에서 투병생활하다가[4] 사망.